소설리스트

게임속 중간보스에 빙의했다-40화 (41/60)

EP.40 기적

처음은 별 반응이 없었다.

그저 끊임없이 흑마력을 흡수할 뿐.

아니. 흡수하고 있는 게 맞는지조차 의문이 들 정도로 어떤 징후조차 없었다.

그래서 좀 더 흑마력을 강하게 일으켜 봤다

이때라도 그만뒀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사아아악.

하지만 미래를 모르는 누리는 계속해서 흑마력을 흡수시켰고.

이내 보석의 색깔이 점점 탁해지더니.

스르륵.

누리의 손으로 흡수 되었다.

"...뭐지?"

"...글쎄요."

당사자인 누리나 지켜보고 있던 유시윤이나 의문을 표하기는 마찬가지.

그때.

두근.

"응?"

갑자기 느껴지기 시작한 맥동.

두근. 두근.

"뭐, 뭔...."

보석이 흡수된 자리부터 시작된 맥동은 점파 팔을 타고 올라오더니.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순식간에 심장에 닿았고, 그 순간.

두근!!

"커억!"

쿠당탕.

갑작스러운 고통에 누리는 숨을 내뱉으며 바닥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야! 왜 그래!"

유시윤이 쓰러진 누리에게 다가가 소리쳤지만 누리는 그녀의 걱정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심장을 직접 쥐어짜는 듯한 어마어마한 고통.

입 밖으로 소리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몰아치는 고통은 어느 때도 겪어본 적 없는 수준의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정신줄을 놓고 싶은 누리.

"끄으으읍."

하지만 여기서 정신을 놓는다면 더욱 사태가 악화될 것이라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기에 어떻게든 버티며 입을 연다.

"천유...끄으윽...가주님. 일성....가주님을...."

"성수언이? 잠깐만."

무언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기에 유시윤은 지체 없이 성수언을 부르러 달려갔다.

다행인 점은 하나의 수업을 위해 성수언이 임시본부에 있었다는 점.

벌컥.

유시윤이 밖으로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온 성수언.

"이게 무슨 일입니까?!"

"유물로 보이는 보석이 몸에 흡수되더니 이렇게 됐어."

"유물이요?"

"그래. 흑탑주가 쓰던 거라고 했으니까 평범한 건 아니겠거니 했지만.."

"커허억!"

그때 숨을 급격하게 뱉어낸 누리가 입을 열었다.

"일성가주님...."

"자네! 괜찮은가?"

"전....괜찮으니...크윽...건물 주변에....결계를....."

혹시라도 자신이 폭주하는 순간 이 주변은 지옥으로 변할 것이 자명한 일.

대마법사 중에서도 상당히 상위의 실력을 소유하고 있는 성수언의 결계라면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알겠네."

누리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눈치챈 성수언은 표정을 굳히고는 군말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

"후우....천유...가주님..."

"그래."

"건물에...있는 사람들...밖으로 대피를..."

몇 없긴하지만 건물관리 직원이 몇명 있기에 일단 대피시켜두는 게 낫겠지.

"알았어."

괜히 자신이 사용해보라는 말을 해서 이 사달이 났다고 생각한 유시윤 또한 군말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

"후우...크읍!"

그와 중에도 고통은 줄어들 생각 없이 더욱 커지기만 하고 흑마력조차 누리의 고통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억눌러보려 했지만, 자신들의 왕이 느끼는 고통의 감정에 흑마력들은 점점 광포해진다.

쿠구구구.

콰장창! 콰직.

누리의 몸에서 줄기줄기 흘러나오는 어둠이 주변의 집기를 점점 망가트리며 퍼져나간다.

이쯤 되니 예상되는 결말에 속으로 실소를 짓는 누리.

점점 뒤틀리는 메인 스토리에 좋아하던 게 조금 전 이 건만 한 번의 멍청한 짓으로 모든게 끝난다.

'하. 참 병신 같은 결말이네.'

정말 바보 같지 않을 수 없었다.

점차 다가오는 끝의 예감에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얼굴들.

아직 흑탑은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는데 알렉스한테 미안하네.

사영 그놈은 요즘 나한테 너무 복종해서 좀 걱정되는데.

레이첼과 약속도 못 지키고.

가연이 마음 좀 받아줄 걸 그랬나.

아빠엄마 어떻게든 살려주고 싶었는데.

하나야 미안해....

"오빠?"

지금도 하나의 목소리가 들리는.....목소리?

번쩍.

"하, 하나ㅇ...크읍!"

갑자기 들려온 하나의 목소리에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움직이려 했지만 몰려오는 고통에 심장을 부여잡는다.

"오빠!"

"오지 마!"

쓰러져있는 나를 보고 하나가 달려오려 했지만 소리쳐 맊는다.

"빠, 빨리 건물 밖으로 나가....허억. 일성...가주님이 결계를 치고 있을 거야."

최대한 괜찮음을 가장하려 했지만 떨려나오는 목소리는 어쩔 수 없었다.

"왜, 왜 그러는데!"

"괜찮으니까 빨리!"

"싫어!"

하지만 하나는 누리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야 김하나!"

"오빠마저 없으면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 절대! 절대 안 돼!"

교통사고 이후 의식이 깨어나고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절망했던가.

다시는, 다시는 소중한 이를 잃는 경험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하나ㅇ...커억!"

다시금 하나를 말리려 했지만 엄청난 고통에 점점 의식이 멀어져 간다.

쿠과과과강!

그에 따라 점점 그 강도를 높여가는 흑마력의 폭주.

"이이익!"

그 와중에 수련에 성과가 있는 것인지 몸에 마력을 두른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 와중에 칭찬할 수도 없고.'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누리는 그 모습을 허탈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하연간 오빠 말은 지지리도 안들어요.....'

성수언과 유시윤이 하나를 구해주기를 바라며 누리의 의식은 결국 끊어졌고,

"오빠아아!!!"

탁.

그와 동시에 하나의 손이 누리의 몸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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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

신에 의하여 행해졌다고 믿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

가능성이 매우 적거나 아예 불가능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

하지만 삶이란 어찌 보면 기적의 연속이라 볼 수 있다.

아침에 무사히 일어나는 것, 밥을 먹는 것, 일을 나가는 것, 일 끝나고 한잔하는 것, 밤에 무사히 잠자리에 드는 것까지.

한번 죽어보니까 살아가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말이 가슴에 절절히 와닿았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 이 순간까지 오는데 얼마나 많은 기적적인 확률이 일어났는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기적이 무조건 좋은 쪽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다치는 것, 병에 걸리는 것, 사고가 나는 것, 친인 죽는 것.

이 또한 한번 죽어보니까 알겠더라.

이렇듯 기적이 일어나도 좋은 쪽으로 일어날지 좋지 못한 쪽으로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만약 안다면 그것은 운명, 또는 신뿐이 겠지.

그래. 빌어먹을 운명과 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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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하나야!"

덜컹! 끼익.

갑작스러운 기상에 흔들리며 신음을 내뱉는 소파.

"허억. 허억."

휘익. 휘익.

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잠에서 깨어난 누리는 주변을 돌아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사장실?"

테이블을 중심으로 놓여 있는 기다란 소파 두 개.

여기저기 부서져 있긴 했지만 분명 파불라 엑시티움 임시본부의 사장실이었다.

"....뭐지?"

솔직히 건물은 절대 무사하지 못 할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멀쩡하다.

'아니 그전에 하나. 하나는 어떻게 됐지?'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 곁에 있던 동생의 안위가 걱정되는 누리가 소파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벌컥.

문이 열리며 들어온 하나.

"하나ㅇ..."

"오빠!"

한손에 젖은 수건을 들고 있는 하나가 누리의 정신이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눈을 크게 뜨더니 누리의 품에 달려와 안긴다.

풀썩.

"나....진짜....오빠도 없어지면......"

누리의 가슴을 눈물로 적시며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하는 하나.

스윽.스윽.

"...그래. 미안하다."

하나가 무사하다는 것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누리는 천천히 하나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사과했다.

동생이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알고 있다.

혼자가 되는 아픔은 뼈가 시리도록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자신은 다시 한번 같은 상황이 온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다시는....그러지 마."

"...미안해."

하지만 이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이 좋겠지.

조금 시간이 지나자 진정이 되었는지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드는 하나.

"쿨쩍. 진짜...다음부터 또 이러기만 해봐."

"알았다. 알았어."

하나가 들고 온 수건으로 하나의 얼굴을 닦아주며 물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나도 몰라."

"모른다고?"

하나가 모른다니. 기절 직전까지 옆에 있던 게 그녀 아닌가.

"나도 잠깐 기절했었어."

그녀의 말은 이랬다. 누리의 몸에 손이 닿은 직후 하나 또한 정신을 잃었고 그사이 돌아온 성수언과 유시윤이 수습했다고 한다.

하나 또한 누리보다 한 시간쯤 빨리 일어났을 뿐.

그녀도 정확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스승님에게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잠잠해서 들어왔는데 둘다 기절해 있고 흑마력 폭주는 멈춰있었데."

즉 하나와 내가 기절한 사이 벌어진 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뜻.

"하아. 도대체 이게 뭔 일인지. 진짜 기적이라도 일어난 건가."

애초에 훔쳐 갈 것도 없는 건물이기에 CCTV조차 설치해두지 않았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길이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무사하니 다행이다."

자신의 병신같은 짓 때문에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하나가 다친다면....

절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오빠도 무사해서 다행이야."

누리의 말에 다시 얼굴을 묻으며 조용히 말하는 하나.

"후후."

나는 아무 말 없이 웃으며 하나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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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란 것은 한번 일어나면 멈출 수 없고,

결과가 보이기 전까지는 어떤 방향인지조차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기적이란 때때로 그 무엇보다 잔인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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