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3 주인공 side 1
빙의.
영혼이 사람이나 동물에 깃들에 통제받는 현상.
빙의 되는 영혼은 사람일 수도 외계인일 수도, 또는 신일 수도 있다.
빙의에 대한 개념은 전 세계의 수많은 종교, 심지어 아프리카의 전통에 마저 존재할 정도로 그 역사가 깊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소설, 만화, 드라마, 영화, 등 각종 창작물에서 사용되며 일반적인 대중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졌을 정도.
뭐 말로는 화려하지만, 실제로 빙의를 하게 되면 생각보다 별 느낌이 없다.
그냥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바뀌어 있을 뿐.
기억의 혼란이니 몸이 어색하다느니 그딴 거 하나도 없고.
"이게 뭐야. 시발."
그냥 당황스럽기만 하네.
분명 새벽까지 게임 하다 잠들고 일어났는데 보인 것은 처음 보는 천장.
당황한 채 일어나니까 처음 보는 방의 낯선 풍경이 나를 반긴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원룸으로 보이는 방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게 된 전신 거울.
"???"
그 거울 속에 표정만으로 물음표를 표현해내고 있는 처음 보는 남자.
스윽.
무의식적으로 얼굴에 손을 대고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잘생겼네."
진짜 잘생겼다. 오뚝한 코에 커다란 눈동자, 선명한 이목구비, 평생 가져본적 없는 넓은 어깨까지.
"그런데...어디서 본 것 같은데...."
분명 처음 본 얼굴이건만 미묘하게 익숙하다.
"그것도 최근에 본 것 같은데 말이지."
하지만 자신의 인맥에 이런 잘생긴 사람이 존재할 리 없으니...
"연예인? 사진으로 봤나?"
아무튼 자신이 이런 미남이 되다니.
걱정되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기쁜 복잡미묘한 기분이 되어 좀 더 방을 뒤지다 보니 지갑에 들어있는 신분증을 찾을 수 있었다.
"강미르? 이름 한번 특이하ㄴ...잠깐. '미르'?"
그 이름을 보고 나서야 거울 속 남자를 어디서 봤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이스트헌터 스토리?"
스토리에 진심인 주제에 높은 자유도와 하드코어한 난이도를 자랑하던 명작.
자신이 자기 직전까지 플레이했던 게임.
그 게임 속 자신이 지은 캐릭터의 이름이 바로 미르.
그리고 무려 2시간에 걸쳐 하나하나 뜯어고친 캐릭터의 커스터마이징이 바로 거울 속 남자의 얼굴과 똑같았다.
즉 흔히 말하는.
"빙의 환생?"
분명 나는 죽지도 환생트럭에 치이지도 않았는데?
환생이란 건 죽어야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지만 고민은 잠깐일 뿐. 고민은 어느새 저 구석으로 밀려나고 그 빈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흥분과 희열이었다.
내가 게임의 주인공이 되다니!
꿈에나 그리던 일이 현실이 될 줄이야.
"아. 맞다."
그렇게 흥분에 차 볼을 꼬집으며 혹시 꿈이 아닌가 확인하고 있을 때쯤 게임의 스토리를 기억해냈다.
"분명 커스터마이징이 끝난 직후에...."
왜애애앵!!
갑자기 들려오는 익숙한 사이렌 소리.
"그래. 튜토리얼."
이스트헌터스토리의 메인 스토리는 외계의 침공으로 멸망할 위험에 빠진 지구, 주로 한국을 구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외계의 침공은 게임 시작 직후 튜토리얼 부분에서 시작된다.
그 튜토리얼의 내용이 바로...
콰장창.
"키에엑!!"
초록색 단신 괴물. 고블린 토벌.
잡몹중의 잡몹인 고블린은 설정상 성인 남성이 맨손으로도 때려잡을 수 있다고 나와 있었지만,
"씨발! 내가 저런걸 어떻게 잡으라고!"
평생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던 그가 싸우는 법을 알 리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현실. 게임처럼 일시정지 따위 있을 리 없기에 본능에 따라 인간을 향해 이빨을 들이미는 고블린.
"캬아악!"
"으아아악!"
그는 겁에 질려 눈을 감고 본능적으로 주먹을 휘둘렀고,
뻑!
"크엑,"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고블린이 나가떨어졌다.
"응?"
남자는 기다리던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슬쩍 눈을 뜨며 주변을 살펴보니
움찔움찔.
제대로 클린히트가 들어갔는지 고블린이 바닥에 쓰러진 채 움찔거리고 있었다.
"하하..."
그것을 본 그는 한 가지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그의 캐릭터 '미르'의 초기 스탯은 힘 몰빵의 전사형이라는 것.
"...힘에 몰빵 하기를 잘했네."
움찔.
케륵.
남자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죽은 줄 알았던 고블린이 움찔거리며 깨어날 조짐이 보이자.
"씨, 씨발!!"
퍽! 퍽! 퍽! 퍽!
"죽어!죽어!죽어!"
겁에 질린 남자는 고블린을 마운팅 한 채 무차별적으로 주먹을 날렸다.
주먹을 쥐는 법도 휘두르는 법도 어설프기에 짝이 없었지만 강한 힘에 고블린의 얼굴은 곤죽이 되어갔다.
철퍽. 철퍽. 철퍽.
이미 고블린의 얼굴이 피곤죽 된 것으로도 모자라 남자의 주먹마저 상처가 늘어가고 있었지만,
"죽어어어어어!!!!"
흥분에 들어찬 남자가 주먹질을 멈춘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난 뒤였다.
"허억. 허억."
숨을 몰아쉬며 말 그대로 피떡이 된 고블린의 머리를 멍하니 바라보는 남자.
"...정신 차려야 해."
이내 고개를 털며 충격도 함께 털어낸다.
튜토리얼은 끝났지만 이스트헌터스토리의 초반부 배경은 몰아치는 침공에 혼란스러워진 한국.
그런 혼란 속에서 주인공이 활약하여 이름을 알리는 것이 정석적인 루트이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여기선 정석으로 간다."
정석이 괜히 정석이겠는가.
다른 루트보다 안정적으로 클리어할 수 있기에 정석인 것이다.
"어차피 여기 있어 봤자 고인물 루트에 들어갈 뿐이야."
튜토리얼이 끝난 후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집으로 들어오는 몬스터들을 초기 스탯, 그것도 맨몸으로 차례차례 상대해야 한다.
이런 특성을 역이용해 고인물들이 피지컬을 판독할 때 사용하던 루트라 하여 고인물루트라 불리는 존버루트.
존버루트에 들어가봤자 자신이 맨몸으로 그 많은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을 리 없기에 나갈 채비를 한다.
채비라 해봤자 손에 묻은 고블린의 피를 씻어내고 신발을 신는 게 다였지만.
"가장 먼저 협회로 간다."
하드코어한 난이도답게 초반부 도처에 깔린 서브퀘스트부터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하기에 클리어를 위한 정석루트는 모든 서브퀘스트를 무시하고 이능협회에 합류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지금쯤 협회는 갑작스러운 침공에 당황한 채로 분전하고 있을 테니 그곳으로 가 협회의 눈에 들어야 한다.
"후우. 후우. 긴장하지 말자. 김...아니 강미르. 그래. 지금 난 강미르야."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자신을 게임 속의 캐릭터 '강미르'라 자기 암시를 한다.
"후우우."
마지막으로 크게 숨을 내쉬고 아비규환일 것이 분명한 바깥으로의 문으로 향하는 순간.
쾅!
"괜찮으십니까!"
문을 부수고 들어온 한 명의 남자.
"방금 괴물이 이곳에....어?"
갑옷이라기에는 미묘하게 현대식 디자인이 가미된 슈트를 입고 한 자루의 검을 쥐고 있는 남자는 머리가 곤죽이 된 채 죽어있는 고블린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거 직접 죽이신겁니까?"
"네? 아. 네."
강미르가 당황스러움에 반사적으로 대답하자 슈트의 남자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대단하시네요. 이런 괴물을 맨주먹으로 처리하시다니...."
"야! 뭐해! 빨리 처리하고 나와!"
"아차."
바깥에서 들려온 큰 목소리에 슈트의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 강미르에게 말했다.
"지금 밖에서 대피를 유도하고 있으니 그 유도를 따라가시면 됩니다."
도대체 이 남자는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강미르가 듣고만 있으니 알아들었다고 생각한 슈트의 남자가 나가다 떠올랐는지 다시 몇 마디를 남기고 나갔다.
"아. 그리고 재능있어 보이시는데 좀 상황이 가라앉으면 이능협회를 찾아가 보시죠. 저는 천유가의 유길성이니 제 이름을 대시면 문전박대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자신의 할 말만 남기고 간 남자의 뒤를 멍하니 바라보던 강미르는 밖에서 들려오는 어수선함에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문밖에 펼쳐진 풍경.
쾅! 쾅! 쾅!
끼에에엑!
"하압!"
괴물들과 이능력자들이 싸우는 모습.
여기까진 강미르의 예상과 같지만,
"자! 이쪽으로!"
"빨리 움직여주세요!"
이능력자들이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는 모습은 전혀 예상과 달랐으며,
"3조에서 지원 요청이 왔습니다!"
"꺄아아악!"
"괜찮으십니까!"
이능력자들이 군경과 협력하며 사람들을 구조하고 있는 모습은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 이게 무슨..."
게임의 스토리대로라면 바깥은 공격하는 몬스터의 괴성과 죽어가는 사람들의 절규로 아비규환이 되어 있어야 했는데 도대체 이 안정적인 대처는 무엇이란 말인가.
"멍때리지 말고 이쪽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다가온 군인의 유도에도 반항하지 않고 끌려간 강미르가 도착한 곳은 지하대피소.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튼튼하게 지어진 대피소는 간이 침상부터 칸막이, 식량, 의료품 그리고 곳곳을 지키는 경찰들까지.
마치 이런 상황을 예견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철저하게 준비가 되어 있었다.
"....뭐지? 이스트헌터스토리가 아니었나?"
이름과 얼굴, 몬스터의 침공, 거기에 튜토리얼의 고블린까지 전부 우연히 같았을 뿐이라고?
"....아냐. 천유가. 분명 천유가라고 했어."
자신을 유길성이라 소개했던 슈트의 남자. 그리고 남자가 언급한 천유가.
천유가는 이스트헌터스토리에 나오는 한국의 엔피씨 집단.
분명 이곳은 이스트헌터스토리가 맞다.
하지만 다르다.
"....도대체 뭐야. 씨발..."
그렇게 강미르가 해결되지 않는 고민에 머리를 쥐어 감싸고 있을 때,
"....."
그를 은밀히 지켜보는 시선 하나가 있었다.
치직.
"확인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