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속 중간보스에 빙의했다-45화 (46/60)

EP.45 만남

주인공.

주인 주, 사람 인, 공평할 공.

연극, 영화, 소설 따위에서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

어떤 일의 중심이 되거나 주도적인 역할을 맡은 사람.

이야기의 중심에 서서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가는 역할. 독자 혹은 시청자들이 좀 더 쉽게 이야기에 몰입하게 해준다.

이렇듯 그 어떤 매체이든 주인공이란 중요한 요소이고.

게임에서 또한 마찬가지이다.

게임에서의 주인공은 플레이어를 대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어떻게 보면 주인공이 게임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이스트헌터스토리에서도 마찬가지.

이스트헌터스토리는 플레이어, 즉 주인공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분기로 나누어지고 결말 또한 달라지기에 그 중요성은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

누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주인공을 찾아보려 했고 실렌에게 부탁도 해보았지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데 어떻게 찾음?'

실렌에게 한 소리 들었을 뿐 성과는 없었다.

이스트헌터스토리는 커스터마이징과 플레이어 이름을 직접 정할 수 있는 게임.

즉 주인공의 이름과 외모를 예측할 수 없다.

그나마 게임 시작 지점인 원룸으로 위치를 추측해보려 했으나 그것도 인게임 영상으로 스킵되는 부분이 있기에 제대로 알 방도가 없었다.

'아니. 솔직히 스킵버튼을 누가 안 누르겠어?'

그러니 이건 내 탓이 아니다. 흠흠.

아무튼 고심하다가 떠올린 것이 바로 튜토리얼의 고블린.

튜토리얼에서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고블린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주인공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침공이 시작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어느 집에 고블린이 들어가는지만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최대한 범위를 좁혀서 핀포인트만 살펴본다.'

게임 속의 단서로 알아낸 주인공의 예상 등장 지점은 협회로 달려가서 합류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원룸촌.

이래도 발견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다. 주인공이 두각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물론 침공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했다.

삼주와 협력하여 전국에 전력을 분산배치하고 곳곳에 지하대피소를 잔뜩 지어놨다.

'나라의 높으신 분과도 이야기가 끝났으니 군경과 협력하는데 어려움은 없을 거다.'

유시윤의 도움으로 군경의 협력까지 얻어낸 상황.

준비는 완벽하다.

하지만 준비가 완벽하다 해도 인간이기에 빈틈은 존재했던 걸까.

게이트가 열리고 시작된 침공.

"꺄아아악!"

"으아아악!"

"살려줘...."

많은 사람이 죽고 많은 사람이 다쳤다.

"반드시 막아라!"

"여기가 뚫리면 대피소까지 직행이야!"

"시체는 나중에 수습한다! 지금은 막는 일에만 집중해!"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보호하던 많은 이능력자들 또한 죽고 다쳤다.

누리도 발에 땀나도록 돌아다녀 보았지만, 그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한 손으로 여러 손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

파불라 엑시티움 역시도 다수의 사망자가 나왔다.

그중에는 자신이 처음으로 스카우트했던 흑마술사 한도훈, 그도 포함되어 있었다.

'건물에 깔린 사람들을 마법으로 구하다가 괴물에게 공격받고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누리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자신은 인간이고 이곳은 현실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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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그 많은 건물 중 창문을 깨고 고블린이 침입한 원룸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유시윤을 통해 누리에게 전해졌다.

"이름이...강미르?"

"그래. 나이 스물넷. 고아원 출신으로 공장에서 계약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더군."

아직은 확신할 수 없었다.

진짜 그저 우연히 고블린이 들어갔을 경우일지도 모르니 확신은 금물.

"그래서 도대체 왜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찾는 거야?"

고블린이 침입한 집의 거주자를 찾으라니.

요청을 들어주긴 했지만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요구에 유시윤이 물었다.

"음. 글쎄요. 말하자면 운명이랄 까요."

그래. 운명.

만약 약하디약한 고블린이 우연히도 이능력자와 군경의 경계를 뚫고 우연히 침입한 집에 우연히 주인공이 있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 아닐까.

어쩌면 자신이 최종 보스보다 더욱 경계해야 할 빌어먹을 운명 말이다.

"흐음. 운명이라."

"아무튼 전에 말씀드린 대로 부탁드립니다."

"그래."

군말 없이 대답하는 유시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최근 들어 누리의 부탁을 거절 없이 들어주었다.

"그럼."

하지만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 뻔하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자세하게 따지고 있을 시간이 없으니 일단 넘어가기로 한다.

현재로서 그녀의 도움은 누리에게 없어선 안 될 것이기에.

이후에 상황을 수습하면서도 강미르에 대한 보고는 잊지 않고 꾸준히 받아왔다.

천유가를 통해 재능이 있다는 말을 남겨놨음에도 첫날엔 일반 대중들처럼 지하대피소로 피난을 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길래 자신이 잘못 짚었나 싶었지만,

이틀째 갑자기 자신도 돕고 싶다고 의사를 전해 왔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유시윤에게 미리 부탁을 들어주되 사람 한 명을 붙여 놓으라고 이야기 해뒀던 누리.

'완력은 정말 이능력자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강하고 검을 매우 능숙하게 다룬다.'

힘 몰빵에 기초 검 숙련을 지닌 전사형 캐릭터.

'천유가의 입단을 거부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압도적인 재능을 보이며 천유가의 유망주라고 소문이 퍼졌다.'

캐릭터 보정으로 기술을 익히기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을 테고.

'하지만 재능이 매우 뛰어난 것에 반해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꺼려한다.'

'그러면서 낮은 등급의 괴물과 마수 사냥은 꾸준히 진행한다.'

최대한 좋은 집단에 들어가 스킬을 익히며 안정적으로 경험치를 쌓는 정석루트까지.

그에 대한 보고를 들으면 들을수록 의심은 점차 확신으로 변해가는 누리.

"분명 정석 루트가...."

이스트헌터스토리의 공략법 중 하나인 정석루트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강미르.

정석루트는 집단에서 최대한 경험치를 쌓은 후 최단 동선으로 파티를 모으고 차근차근 필수 서브퀘스트를 진행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즉 강미르가 주인공이라면 어느 정도 성장이 끝나고 파티를 모으려 할 것이 분명.

"미리 얼굴을 비춰놔야겠군."

그가 성직자 직군이 아닌 이상 자신을 알아볼 방법은 없다.

물론 이 또한 확신은 못 하지만 어차피 언젠간 마주해야 할 주인공.

지레 겁먹고 가만히 있어 봤자 시기만 늦춰질 뿐 해결되는 것은 없다.

그래서 유시윤에게 부탁해 성사된 만남.

"저 이분은...."

"아. 소개를 깜빡했네. 이쪽은 이래저래 가문을 도와주고 있는 파불라 엑시티움의 수장. 김누리."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김누리라고 합니다."

정말 고대하고 고대하던 만남.

그의 첫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잘생겼네.'

남자가 보기에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잘생겼다.

'이 정도 얼굴을 가지고 공장 계약직이었다고?'

심지어 신체 비율도 좋으니 더 좋은 돈벌이가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기에 더욱 주인공이라는 생각에 확신을 보탠다.

"요즘 소문이 자자하시더군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누리가 내민 손을 마주 잡고 흔들며 웃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지만, 딱히 정체를 알아보는 듯한 느낌은 없었다.

"손님도 오셨으니 저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천천히들 이야기 나누시죠."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것은 많지만 오늘은 물러나는 것이 맞겠지.

어차피 정석루트를 선택했다면 그에게 접근할 시간은 차고도 넘친다.

'천천히,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 그리고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주시길."

그래도 친절한 인상 정도는 심어 주는 게 좋겠지. 유시윤과 독대할 정도의 유망주라면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물론 이런 사정을 강미르가 알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럼 저는 이만."

유시윤에게 적당한 핑계를 대라고 미리 말해뒀으니 여기서 빠져도 괜찮겠지.

그렇게 천유그룹의 건물에서 빠져나온 누리는 파불라 엑시티움의 임시본부,

'아. 이제 임시가 아니지.'

신 본부로 향했다.

그냥 쉐도우점프를 이용하면 곧장 이동할 수 있지만 딱히 빨리 가야 할 이유가 없었기에 천천히 도시의 풍경을 보며 여유롭게 걸어갔다.

침공이 시작된지 한달.

도시는 어느새 일상을 회복하고 있었지만,

곳곳에 재건축 중인 건물들이 침공의 상처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 침공이 끝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침공을 막아내는 영웅들. 이능력자들의 출현이 사람들이 희망을 놓지 않게 한 것이다.

이능력자들은 침공이 시작되자마자 도시를 중심으로 방어 라인을 구축하고 군경을 도와 목숨을 걸고 침략을 막았다.

말 그대로 영화 속에서나 보던 영웅의 출현에 누가 열광하지 않겠는가.

거기에 이능력자들이 사실 먼 과거부터 존재해 왔으며,

마수라는 위험한 생명체를 사냥하며 인류를 지켜왔다는 사실이 퍼지며 더욱 이능력자들에 대한 관심이 커져만 갔다.

물론 각 나라의 이능집단이 행한 언론플레이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심지어 국가에서도 빠르게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이능력자를 영웅으로 만드는 작업에 동참했다.

"다행히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네."

침공 이후에도 상황은 누리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진행되었다.

누리의 경고가 먹힌 것인지 한국에 비교해서는 모자랐지만, 원작보다는 훨씬 빠르게 침공을 막아낸 타국들.

너무 빨리 침공을 제압해 이능력자들이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는 상황에 대비한 언론플레이.

그리고 이런 대처를 곧바로 타국들도 동참해 이능력자들이 차질 없이 사회에 녹아드는 것에 성공했다.

"한동안은 별일 없겠지."

침공이 시작된 이후에는 한동안 큰 이벤트가 없기에 마음을 놓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뭐?"

미래는 알 수 없기에 미래라고 했던가.

"아무래도 영감...아니 아버지가 오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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