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속 중간보스에 빙의했다-46화 (47/60)

EP.46 만남

올리버 램파트.

퀸즈가드의 수장이자 영국의 살아있는 전설.

그리고 레이첼 램파트의 아버지.

"아무래도 무언가 눈치챈 것 같습니다."

평생을 영국에서 벗어나는 일이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자신의 아버지가 굳이 자신을 보러 한국에 오겠다는 것을 레이첼은 믿지 않았다.

"아마 침공에도 귀환하지 않은 것을 트집 잡으러 오는 게 아닌지..."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너무 없는 거 아니야?"

아빠가 딸 걱정이 돼서 직접 올 수도 있지.

하지만 누리의 말에 레이첼은 표정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그건 누리님이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말을 쏟아내는 레이첼.

"평생을 집보다 퀸즈가드의 본부에 있는 시간이 훨씬 길고"

"제가 어릴 적에 저는 아버지가 아버지인지도 몰랐습니다."

"부하의 부상은 챙길지언정 가족은 돌보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머니가 아프셨을 적에도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얼굴 한번 비추지 않고 임종하시고 나서야 얼굴을 비췄을 정도니까요."

어지간히 쌓인 게 많았는지 한참 쏟아내던 레이첼은 겨우 진정이 되었는지 크게 한숨을 내쉰다.

"후우우....제가 너무 흥분한 것 같군요."

"괜찮아."

"아무튼 아버지는 기사로서는 존경할지 몰라도 아버지로서는 절대 존경할 수 없는 인간입니다. 최근엔 조금 달라진 것 같기는 하지만..."

확실히 레이첼의 말을 들어보면 마스터 나이트가 얼마나 가족에게 관심이 없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면 도대체 마스터 나이트가 무엇을 의심하고 오느냐가 문제인데...

"흐음. 혹시 너에게 미행을 붙였을 가능성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아버지는 확실히 명령을 위해서라면 기사도를 어기는 짓도 얼마든지 실행할 위인.

하지만 일 적인 부분 이외에는 기사도를 철저하게 지키며 살아가는 인물이기에 개인적인 조사를 하자고 미행을 붙이진 않았을 것이다.

"예상가는 게 없어?"

"딱 하나 있다면 아마 침공했을 당시 제가 귀환하지 않고 파불라에서 활동했던 일이 누군가를 통해 아버지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합니다."

최대한 레이첼이 파불라에서 활동하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침공 당시라면 정신없던 와중 누군가 눈치챘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 괜히 숨기는 건 오히려 역효과만 날 수도 있겠네."

그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라면 거짓이 들통났을 때 어떤 역효과가 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의도가 어쨌든 엄연히 퀸즈가드의 소속인 레이첼이 아무말 없이 타국의 이능집단에서 활동한 것은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있는 일.

어쩌면 레이첼을 강제로 귀환시킬지도 모른다.

'레이첼이 돌아간다라...'

나름 높은 위치에 앉아있던 경험이 있어 파불라 엑시티움이 자리 잡을 때 많은 도움을 줬던 레이첼.

지금도 운영의 여러 부분에서 도움을 주며 파불라의 안주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분명 그녀가 돌아가면 아쉬움이 많겠지.

공적으로도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넌 어쩌고 싶지? 레이첼."

하지만 선택은 그녀의 몫.

"....그럼 누리님은 어떠신가요."

질문에 돌아온 것은 대답이 아닌 질문.

"...질문을 질문으로 받는 건 좀 치사한 거 아닌가."

"저는 누리님의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항의해봤지만 레이첼은 더욱 집요하게 물어왔다.

"....나는 네가 남아줬으면 해."

일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도 그녀와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동생의 친구이기도 하고 주기적으로 대련을 가장한 싸움까지 했으니 정이 들지 않았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나도 아직 내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딱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네가 떠나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그러니 그녀가 남아줬으면 한다.

"...후후."

누리의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던 레이첼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낮게 웃음을 흘렸다.

"좋습니다."

레이첼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고 입을 열었다.

"하나양, 가연양과 헤어지는 것도 아쉽고 누리님이 그렇게 원하시는데 어쩔 수 없군요."

왠지 모르게 우쭐한 듯한 그녀의 어투에 초를 치고 싶은 마음이 살짝 들었지만,

아무리 눈치 없는 자신이라도 여기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아버지가 오면 어떻게 대응할지 회의해보죠."

뚜벅뚜벅.

대답을 듣지도 않고 뒤를 돌아 나가는 레이첼의 뒷모습을 누리는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역시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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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이구나. 레이첼."

"네. 오랜만입니다. 마스터."

도심 속의 한 카페.

그곳의 한 테이블에는 몇 년 만의 부녀상봉이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아버지와 딸이라기엔 표정과 분위기 둘 다 딱딱하게 굳어있어 보는 사람마저 숨이 막힐 지경.

"무슨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인사를 나누고도 한참을 침묵하던 둘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레이첼이었다.

"정말 왜 왔는지 모르나."

"몰라서 묻는 것 아니겠습니까."

올리버의 나직한 추궁에도 레이첼은 무감정하게 대답할 뿐.

그런 레이첼을 빤히 바라보던 올리버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말하지 않겠다면 존중해주마. 너도 너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 그러니 이제 돌아와라."

"싫습니다."

"....."

정말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온 딸의 대답에 올리버조차도 순간 말을 잃었다.

하지만 곧 미간을 찌푸리며 분노를 들어내는 올리버.

"지금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알고 내뱉는 것이겠지?"

돌아가기 싫다면 남는 수단은 하나. 탈퇴.

하지만 한 집단에 오래도록 속해있었다면 그 집단을 탈퇴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집단에 속해있으면서 집단만의 비기와 노하우를 배우며 성장했을 텐데,

소속원의 탈퇴는 그런 비기와 노하우의 유출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집단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탈퇴한다면 배신자로 낙인찍혀 추적을 받을 수도 있고,

다른 집단에라도 속하게 된다면 집단 간의 전쟁까지 벌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물론 허락 없이 그런 짓을 했다면 심각한 일이 맞죠."

"그런데?"

"하지만 마스터가 허락하신다면 괜찮지 않습니까?"

퀸즈가드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고 있는 올리버.

모든 기사가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여왕마저 그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낸다.

즉 그가 허락만 하면 레이첼이 다른 집단에서 활동해도 딱히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뜻.

"내가 왜 그래야지?"

하지만 올리버로서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무리 자신의 딸이라지만 몬스터 침공이라는 위기 상황에서도 귀국하지 않고 다른 집단에서 활동했다면 징계를 넘어 파면에 이를 수 있는 상황.

문제삼지 않을 테니 조용히 돌아오라고 말하는 것조차도 차고 넘치게 딸을 배려하는 행동이었다.

"마스터께서 그래야 하는 이유를 보여드릴 테니 잠시 저를 따라오시겠습니까?"

"....."

잠시 딸의 눈을 들여다보던 올리버는 무슨 생각인지 알수 없는 표정으로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안내해라."

"네."

올리버의 수락에 레이첼도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서서 올리버를 이끌었다.

그리고 또다시 펼쳐진, 보는 것만으로 숨 막히는 분위기.

레이첼이 올리버를 이끌고 도심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 도착한 곳은 한 허름한 건물.

레이첼은 망설임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올리버도 따라 건물에 들어가자.

화악.

순식간에 변하는 풍경.

낡은 건물은 어디로 가고 최근 지은 건물처럼 보이는 깨끗한 방 하나가 나타났다.

"이동마법진? 아니 이동마법이라기엔 뭔가 다른데..."

무언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마법의 발현에 의문을 느낄 새도 없이 레이첼이 먼저 움직였기에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곳이 파불라 엑시티움이냐."

방의 문을 열고 나가는 레이첼을 뒤따라가며 입을 여는 올리버.

움찔.

그리고 그의 말에 당황했는지 잠시 움찔거리는 레이첼.

"...역시 알고 계셨습니까."

"설마 딸이 타국에 있는데 정보조사 하나 안 했을 리가."

"그건 의외군요."

뭐 그래봤자 퀸즈가드를 걱정해서이겠지만.

"맞습니다. 이곳은 파불라 엑시티움의 본부입니다."

이미 부친에 대한 신뢰가 땅을 뚫고 지하에 처박혀 있는 레이첼이었기에 올리버의 말을 흘려들으며 순순히 인정했다.

'단순히 본부에 들어오는데 이동마법진을 사용한다, 라... 아무래도 보고가 잘못되었나 보군.'

이동마법진은 수많은 마법진 중에서도 돈이 많이 들기로 유명한 것.

어지간한 이능집단은 설치하기 힘든 종류의 것인데 올리버는 파불라 엑시티움이 작은 규모의 그저 그런 집단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그저 그런 집단이 이동마법진을 설치할 수 있을 리 없지.'

거기에 굳이 이동마법진을 사용하여 본부로 출입하는 방법을 보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곳입니다."

올리버가 속으로 상황을 분석하는 동안 도착한 목적지.

똑똑.

벌컥.

문을 두드린 후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레이첼.

방안에 앉아있던 한 명의 청년이 레이첼의 뒤를 따라오는 올리버를 환영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파불라 엑시티움을 이끄는 김누리라고 합ㄴ...."

"네가 그림자로군."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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