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속 중간보스에 빙의했다-50화 (51/60)

EP.50 주인공 side 3

게임 속 세상으로 들어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들어오자마자 고블린에게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달라진 스토리 진행에 혼란스러워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미르는 게임 라이프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조금만 노력해도 쭉쭉 성장하는 실력.

성장하는 실력에 비례해 퍼져나가는 명성.

이러한 명성과 몇 번을 거울로 봐도 질리지 않는 잘생긴 외모가 합쳐져 발생시키는 인기.

변변찮은 취미도 없이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던 그가 언제 이런 인기를 누려보겠나.

"어머. 미르씨는 오늘도 마수까지 토벌하고 온 거야?"

게이트 침공이 일어나도 기존에 있던 마수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당장의 위협은 게이트보다 떨어지기에 낮은 급의 마수들은 최근 폭증하고 있는 신입들에게 전부 떠넘겨진 상황.

"그런 건 다른 신입들한테 맡겨도 될 텐데."

미르 역시 신입이기는 했지만 다른 신입과 그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실력은 이미 신입을 뛰어넘었고 천유가주인 유시윤과 독대까지 하였으니 출셋길도 보장되었다.

그가 마수 토벌을 무시하고 게이트 토벌에만 집중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 신입이니까 저도 부지런히 해야죠."

그런 상황에서 공적 욕심을 내지 않고 다른 신입들과 꾸준히 낮은 등급의 마수를 토벌하며 짬짬이 게이트 토벌까지 하니 위상이 높아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미르.

사실 정석루트를 따르기 위해 위험한 토벌을 아예 피하며 최대한 많은 경험치를 얻으려 한 것뿐이지만.

위상이 높아질수록 미르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 부지런한 미르씨에게 밥이라도 사주고 싶은데. 오늘 저녁 어때?"

지금 눈앞의 접수처 직원처럼.

"죄송합니다. 선약이 있어서."

처음 이곳에 왔을 때라면 익숙지 않은 이성의 접근에 헤벌레하며 어쩔 줄 몰라 했겠지만 몇 달이 지난 지금은 아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많은 사람이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그에게 접근했었고 단시간에 많은 경험을 해보니 사람들이 어떤 목적으로 접근하는지 대강 눈치챌 수 있게 되었다.

"대신 모레 저녁은 어떠신가요?"

물론 오는 여자 막을 정도로 바보는 아니지만.

그렇게 스케줄에 저녁 약속하나를 추가하고 숙소로 돌아온 미르.

"후우. 몸은 바뀌어도 역시 침대가 좋네."

이 숙소 또한 가문 측에서 제공해준 것으로 이 넓은 침대에 누울 때마다 자신의 명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솔직히 처음 정석루트를 밟기 시작했을 때는 과연 제대로 될까 싶었지만

그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정석루트는 아무 방해도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안전하게 쉬운 토벌만 진행해도 사람들은 이능력자의 귀감이라며 우러러봤고 가끔 안전하겠다 싶은 게이트를 토벌하면 역시 유망주라고 찬양했다.

과연 자신이 알던 피지컬 측정기 이스트헌터스토리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

하지만 이런 의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가라앉았고 지금 와서는 즐기는 지경이 된 거다.

"공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그에게 최근 들어 생긴 고민.

아니. 고민보다는 욕심이라고 해야 할까.

정석루트가 너무 스무스하게 진행되니 조금 욕심내서 아이템파밍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욕심.

얼마 전까지는 튜토리얼의 기억이 안전을 추구하게 했지만,

거듭된 성장과 성공으로 튜토리얼의 기억이 저 아래로 가라앉으며 조금씩 욕심이라는 감정이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 시기가 지나면 구하기 힘들어지는 아이템이 있기에 더욱 그랬는데.

"에너지 스톤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게임 전체를 통틀어도 몇 개 구하지 못하는 재료 아이템.

아마 최상위 템을 찍어내지 못하게 하려는 제작사의 밸런싱이겠지만 정작 게임 안에 들어오고 보니 이것만큼 짜증 나는 게 또 없었다.

물론 그런 아이템을 쉽게 구할 수 있을 리 만무.

공략에 흑마력 직업군이 반드시 필요한 흑마력 게이트에서만 습득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원래는 포기했겠지만...."

때마침 우연찮게도 자신에게 흑마술사 인맥이 존재했다.

"분명 이름이 김누리라고 했지?"

천유가주인 유시윤을 독대하러 갔을 때 인사를 나눴던 한 이능집단의 수장.

한국에서 흑마술사가 이능집단을 이끌고 있다는 것이 특이하긴 했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다.

자신이 게임 설정 속에 있는 모든 이능집단을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처음 들어보는 이능집단 한둘쯤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정석루트 초반부에서는 동료로 삼을 기회가 없는 흑마술사와 인맥을 만들었다는 점.

즉 그의 도움을 얻으면 에너지 스톤을 얻을 수 있다.

"....좋아."

누워서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 김누리에게 받았던 명함을 꺼내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번에 인사드렸던 강미르입니다."

"혹시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실까요."

다행히 김누리는 미르의 제안을 수락했고, 다음날 곧바로 흑마력 게이트로 향했다.

얼마 전 미리 확인했을 때 게임 속과 크게 다르지 않던 게이트의 위치.

검은 안개를 내뿜는 게이트는 한눈에 보기에도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그럼 가실까요."

"그러죠."

김누리는 미르의 말에 망설이지 않고 게이트에 진입했다.

흑마력이 이 정도로 뿜어져 나오니 흑마술사에게는 이보다 좋은 장소는 없겠지.

후웅.

그의 뒤를 따라 게이트에 진입하자 미르의 눈에 보이는 광경은 김누리가 마법으로 만들어둔 불과 그런 불이 비춰주는 동굴의 풍경.

"나쁘지 않군요."

게이트의 내부는 게이트마다 다른 환경이 나타나는데 사막이나 열대우림에 비하면 동굴은 최상의 환경이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흑마력으로 가득 찬 이곳은 마법사는 아예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고 오러사용자도 활동에 제한이 생긴다.

즉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마법을 사용할 동안 앞에서 방어하는 것 뿐.

"하하. 그럼 출발하실까요."

그렇게 시작된 게이트 토벌.

토벌은 미르의 예상보다 더욱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앞에 셰이드 두 마리입니다."

펑!펑!

"고블린이 떼거리로...!"

화르륵.

"오거가!"

콰광!

"....."

수월하다 못해 너무 쉬워 할말을 잃은 미르.

'유시윤하고 독대하던 이유가 있다는 건가?'

마스터급도 아니건만 영창속도가 매우 빠르다.

확실히 마스터급의 단축 영창이 아니기에 생략 없이 영창을 전부 말하고 있지 그럼에도 일반적인 마법 전개 속력보다 훨씬 빠르다.

어쩌면 조만간 마스터급에 올라설지도.

"후우우우."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한숨 소리에 슬쩍 뒤를 보니 김누리가 숨을 내뱉으며 지친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쯤에서 한번 쉬다가죠."

"네? 아. 네. 감사합니다."

미르가 쉬고 가자는 제안을 하자 당황한 표정을 짓던 김누리는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러고 보니 누리님은 어쩌다 한국에서 활동하시게 된 겁니까?"

"네?"

"보통 흑마술사들은 흑탑에 속하지 않습니까. 뭐 흑탑이 테러 단체이기는 하지만 흑마력 사용자들은 흑탑으로 간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설정으로 알고 있던 것이지만. 어쨌든.

"???.....아!"

미르의 질문을 듣고는 한동안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던 누리가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을 지으며 탄성을 내뱉었다.

"음....기밀은 아니지만 이건 제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토벌이 끝나고 유시윤가주님께 물어보면 말해 주실 겁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무언가 수상쩍었지만 이미 유시윤이 알고 있다니 심각한 일은 아니겠지.

그렇게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시작된 토벌.

자신의 전위와 김누리의 후위는 완벽에 가까운 조화를 보여주며 속전속결로 게이트의 끝에 다다르게 되었다.

크르르르르.

이제 남은 것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게이트 코어이자 게이트 보스.

덩치가 곰조차 훨씬 뛰어넘는 하얀색의 늑대.

그리고 여지껏 흑마력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던 게이트에서 홀로 자연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존재.

아마 저 늑대를 잡으면 에너지 스톤을 뱉어낼 것이다.

쿵!

먼저 발을 구르며 뛰쳐나가는 미르.

천유가 기본검. 환.

늑대의 코앞에 도착함과 동시에 휘둘러진 미르의 검이 안개처럼 흐릿해지며 분간하기가 어려워진다.

크릉!

하지만 괜히 보스몹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듯 흩어지는 검에 현혹되지 않고 순식간에 뒤로 검을 피해내고 다시 미르에게 돌진하는 백랑.

천유가 기본검. 방.

쿠궁!

오러를 보충할 수 없는 미르는 최대한 방어적으로 검술을 펼쳐 오러를 아끼며 시간을 끌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미르님!"

누리의 외침이 들리자마자 옆으로 피한 미르의 곁을 스쳐나가는 마법.

콰광!

깨갱!

그리고 너무 완벽한 타이밍에 날라 온 마법에 피할 겨를 없이 적중당한 백랑.

"흐읍!"

콰직!

미르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백랑을 향해 빠르게 다가가 검을 쑤셔 박았고,

캐액.

"후우."

곧이어 혀를 빼물고 즉사한 백랑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누리님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쉽게 잡지 못했을 겁니다."

"저야 뒤에서 마법을 쓴 일밖에 없는걸요. 하하."

스르륵.

그렇게 둘이 덕담을 나누고 있으려니 백랑의 시체가 녹아 사라지며 물건 하나를 남겼다.

원래라면 마정석이라 불리는 푸른색 돌을 남겨야 하지만 남은 것은 어째서인지 푸른 돌이 아닌 새하얀 보석.

‘에너지 스톤.’

그것이 에너지 스톤임을 확신한 미르가 어떤 말을 하고 챙겨야 하나 고민하고 있으려니

"챙기시죠. 미르님."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김누리.

"...괜찮으시겠습니까."

사실 설득해보고 안 되면 천유가의 이름까지 꺼내려 했지만 먼저 저쪽에서 이야기를 꺼내니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저 그렇게까지 눈치 없지는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나중에 제 이름만 기억해주시면 됩니다."

결국 미르가 걱정하고 있던 점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은 채 무사히 끝마친 토벌.

사라져가는 게이트에서 빠져나와 미르를 일별한 김누리는.

"후우. 호감도 작업하기 힘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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