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속 중간보스에 빙의했다-52화 (53/60)

EP.52 세계협회

유시윤과 일별하고 우선 들린 곳은 파불라 엑시티움의 본부.

웬일로 레이첼은 없고 한동안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사영과 알렉스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영은 원래부터 원채 보기 힘들었고 알렉스는 흑탑의 조직개편과 이사로 인해 최근 들어 바빴기에 보고를 제외하고는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보기 힘든 조합이네."

보고를 제외하곤 이 둘이 따로 모여있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왕이고 주인이고 오글거리는 호칭이었기에 그냥 사장으로 호칭을 통일시켜버렸다.

어째서인지 레이첼과 실렌이 짜게 식은 눈으로 보았지만 알렉스와 사영은 아무 반발 없이 곧바로 복종하였다.

"그래. 흑탑원들은 이제 잘 정착했나?"

흑탑원들은 각국에서 납치되거나 차별을 피해 찾아온 사람들.

국적도 다양하고 인종도 다양했기에 한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신분이 필요했다.

돈이라도 많았으면 모르겠지만 흑탑을 이사시키면서 유일하게 남았던 마수사냥도 불가능해진 상황.

기존의 파불라 엑시티움과 어둑시니의 자금이 있긴 했지만 흑탑원들 전부를 커버하기에는 부족했다.

"네. 삼가주분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때 도와준 것이 바로 삼가주.

누리가 요청하자 별 말없이 곧바로 도와준 유시윤, 성수언과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자금을 지원해준 현창식.

그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흑탑원들은 무사히 한국에 정착할 수 있던 것이다.

"그래서 둘은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지?"

"한 번 더 조직개편을 진행하려 합니다."

누리가 알렉스의 말에 의문을 표하며 되물었다.

"응? 조직개편을 다시? 얼마 전에 했잖아."

"이번 기회에 어둑시니와 흑탑을 합쳐 파불라 소속으로 돌리는 게 사장님께 더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흑탑이야 이곳으로 온 지 얼마 않되었고 어둑시니는 몇십 년간 이끌어온 사영이 있기에 괜히 조직을 개편하는 것보다 그대로 두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했기에 따로 손대지 않았었다.

"그냥 두는 게 어둑시니든 흑탑이든 소속원들도 반발이 없지 않을까?"

사람이란 망각의 동물.

아무리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겁을 줘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희미해지기 마련.

지금이야 공포 때문에 따른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누리의 말을 반박하는 사영.

"혹시 사장님은 청부의뢰집단이 어떻게 인원을 모으는지 아십니까?"

청부의뢰 또한 엄연히 범죄임으로 정상적인 루트를 통해서는 인원을 모집하지 못한다.

"보통은 보육원이나 버려진 아이 중에서 재능있어 보이는 아이들을 입양해서 교육합니다."

물론 흑탑처럼 납치도 병행하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둑시니는 그러지 않았다.

"모두 버려진 채로 어둠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청부의뢰를 진행하기 위해선 신분을 숨겨야 하기에 제대로 된 신분을 가질 수 있을 리 없었다.

심지어 심장의 마도구까지.

"제 죄를 회피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

실제로 사영은 누리를 만나기 전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우를 해주었지만.

심장에 자폭용 마도구를 심어두고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 채 위조된 신분으로만 살아가는 것에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사장님이 저희를 거두어 주신 이후로는 많은 게 달라졌습니다."

죽지 않는 이상 제거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 마도구가 누리에 의해 제거되고 청부의뢰의 업을 그만두고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엔 한국삼주의 지원하에 정식신분마저 얻게 되었으니 절대 얻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평범한 일상을 얻게 된 것이다.

누리는 모르고 있었지만 어둑시니의 소속원들은 자신들에게 일상을 되찾아준 누리에게 상당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

"저희 흑탑도 마찬가지입니다."

흑탑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핍박을 피하고자 온 흑탑에서 오히려 금제에 걸려 착취당하던 그들에겐 구원자나 다를 바 없는 누리.

죽은 자들의 왕에게 본능적으로 느끼는 충성심을 제외하고도 그들이 누리에게 느끼는 고마움은 적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이 조직을 전체적으로 개편하기 위한 적기입니다."

파불라 엑시티움의 소속원들은 어둑시니와 흑마력 사용자들이 전부나 다름없기에 그들의 충성심이 극에 달한 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

"흐음. 좋아. 진행해봐. 어차피 사람 관리는 너희들이 전부하고 있는데 내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

실제로 파불라 엑시티움의 인력관리는 사영과 알렉스가, 재정관리는 레이첼이 해주고 있다.

'전문적인 일은 전문가에게'

라고 생각하는 누리였기에 주요 결제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하는 일은 없었다.

이제와서 간섭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니까.

물론 이런 행동은 그들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이 되어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원인 뭐였든 그들 둘 다 자신의 변덕으로 거둔 인재들.

그러한데 신뢰조차 주지 못하면 어쩌겠는가.

"아. 그리고 다음 주 일주일 동안 미국에 갈 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

"미국말입니까?"

"혹시 세계협회 건 때문입니까."

사영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물어왔다.

"응. 천유가주님이 부탁하더라고."

"그럼 제가 수행하겠습니다."

곧바로 따라나서려는 사영을 누리가 말린다.

"아니. 방금 조직 개편하겠다고 했잖아. 네가 있어야지."

"...그러면 조직원 한 명이라도 붙여드리겠습니다."

사영이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중재안을 내놓았지만, 그마저 거절하는 누리.

"어차피 웬만한 건 천유가쪽에서 처리해줄 거니까 필요없어."

"...네. 알겠습니다."

그제서야 포기하는 사영.

"혹시 레이첼오면 레이첼에게도 전해주고."

그렇게 본부에서의 볼일을 마친 집으로 향하는 누리.

본부를 나오니 어느새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해를 대신해 가로등이 길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비행기 타고 해외로 나가는 건 또 처음인데 뭘 챙겨야 하나."

해는 졌지만 해가 지기 전보다 사람이 많아진 거리를 걸으며 전 후생을 합쳐서 처음 타보는 비행기에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도착하니.

"왔어?"

"안녕하세요. 오빠!"

하나와 가연이 수다를 떨며 놀고 있었다.

"웬일이야. 이 시간에 집에 들어오고?"

평소에는 세시도 되지 않아서 들어오던 오빠가 저녁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 되어 들어오자 묻는 하나.

털썩.

"그냥 오늘따라 일이 많네."

누리는 소파에 주저앉으며 피곤하다는 듯이 말했다.

실제로 아직 흑마력 게이트에서의 정신적 피곤함이 좀 남아있는 상태에서 천유그룹과 파불라의 본부에 들르고 왔으니 아직 피곤함이 남아있었다.

"힘드시면 저희랑 같이 여행 가서 힐링해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또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는 가연.

"....이제 한국에서 안 가본 곳이 더 적지 않을까?"

"에이. 그럴 리가요. 한국에 여행할 곳이 얼마나 많은데."

요 몇 년간 당일치기든 일박이일이든 틈이날 때마다 가연은 하나를 끌고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실제로 한국 여행지는 안 가본 곳을 세는 게 더 빠를 정도.

"그러니까 어때요? 오빠?"

"안 돼."

"네~? 왜요?"

"다음 주에 갈 데가 있어서. 한 일주일 정도 나갔다 올 거야."

"일주일? 어디 가는데?"

지금까지 누리가 하루 이상 외박하는 것을 본 적이 없던 하나가 급히 물었다.

"일 때문에 잠깐 미국에 갈일이 생겨서. 그러니까 다음 주ㄴ...."

그러니 가연에게 일주일 동안 마법수업이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찰나.

"뭐? 미국? 나도 같이 가!"

"저도 같이 갈래요. 오빠!"

누리의 말을 끊고 들어오는 두 명.

"....아니. 일하러 간다니까?"

"오빠는 일해. 우리는 거기서 놀러 다닐 테니까."

"와! 저 비행기 처음 타봐요! 여권부터 발급하면 되나?"

"그래야겠네. 비자카드 있으니까 환전은 필요 없겠지?"

"그래도 비상금은 있어야지."

"잠깐!"

둘이서 척척 여행계획을 짜고 있는 것을 누리가 급히 막는다.

"내 일이라면 모를까 천유가주님 부탁으로 가는 거라 이번에는 진짜 안돼."

"시윤 스승님 부탁?"

"그래. 그러니까 이번에는...."

"잠깐만."

다시 누리의 말을 끊은 하나는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한다.

뚜르르르.

"네. 스승님. 혹시 오빠랑 미국 가실 때 저랑 제 친구가 따라가면 안 될까요? 네. 네. 얌전히 있을게요. 정말요? 네! 감사합니다!"

뚝.

"자. 이제 스승님도 허락하셨으니까 됐지?"

"....우리 동생 행동력 하나는 참 빨라."

"칭찬 감사."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는 하나를 본 누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진짜 위험할 수도 있어. 그래서 내가 따라가는 거고. 그래도 가고 싶어?"

마지막으로 진지하게 말해봤지만,

"오빠 바보야? 여기 있는 것 보다 오빠 옆에 있는 게 훨씬 안전할걸?"

하나에게 따로 직접 정체를 말한 적 없지만, 그녀는 몇 번 파불라 엑시티움의 본부에도 들락거리면서 어느 정도 누리의 힘을 추측하고 있었다.

"...할 말이 없네."

이곳에 있는 것도 충분히 안전하겠지만 누리의 곁에 있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하아. 그러면 내 말 잘 들어야 된다."

"네~."

"걱정마. 알아서 잘할 테니까."

"그래서 더 불안하다만."

그렇게 누리의 걱정과 함께 세 명의 미국행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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