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속 중간보스에 빙의했다-54화 (55/60)

EP.54 세계협회

"이따 수영장 한 번 더 갈까? 생각보다 잘돼 있던데."

"저녁에 와인바도 가보자."

"지하에 있는데?"

"응응. 거기 분위기 진짜 좋아 보이더라."

"그래. 마지막 날이라고 오빠하고 스승님도 늦는다고 했으니까 둘이 가자."

"아. 그리고...."

누리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회의가 끝나길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을 때.

하나와 가연은 밖으로 돌아다니지 못하는 반발심 때문인지 전력으로 호캉스를 즐기고 있었다.

룸서비스부터 호텔의 마사지샵과 수영장, 디저트 카페 등등.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해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미국에 온 지 나흘 차인 오늘 와서는 즐길만한 것은 전부 즐겼다.

와인바만 빼고.

그래서 둘은 저녁 전 한 번 더 수영장을 들리고, 저녁을 먹고 곧바로 와인바로 향했다.

"우와. 진짜 예쁘다."

호텔은 대절했기에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지만,

이 바는 호텔 이용객이 아니더라도 이용할 수 있게 바깥쪽에도 출입구가 마련되어 있었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어제나 그제 왔어도 자리 없어서 돌아갔을 수도 있겠다."

심지어 전 세계의 중요 이능력자들이 모여 회담을 진행한다고 발표가 났으니 기자들이나 어떻게든 끈을 얻기 위한 사람들이 정보를 얻으려고 이곳에 죽치고 있는 상황.

정부 쪽에서 막으려면 막을 수 있었겠지만 어느 정도 소문이 퍼지는 것 또한 원했겠지.

여론의 지지만큼 중요한 것도 없으니까.

"근데 오빠가 뭐라 하지 않을까."

하나가 살짝 불안하다는 듯이 가연에게 말했다.

"에이. 여기도 엄연히 호텔이라고. 그저 출입구가 두 개일 뿐이지. 그리고 너도 오고 싶었잖아?"

"그건 그런데..."

결국 망설이면서도 가연을 따라 빈자리에 착석하는 하나.

"오! 이거 맛있다."

"이것도 괜찮은데?"

"다음엔 화이트도 주문해보자."

하지만 망설임도 잠시 술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불안감은 어디 가고 제대로 즐기기 시작했다.

돈을 아끼지 않고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었지만 둘은 도통 취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는데.

"쉽게 안 취하니까 좋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아쉽다고 해야 하나."

신체를 강화하는 오러 사용자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연에너지를 몸에 받아들인 이능력자는 기본적으로 일반인보다 뛰어난 신체조건을 갖게 되기 마련이었다.

신진대사가 높아지고 알코올 분해 능력도 뛰어나져 술에도 잘 취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참나. 애초에 제대로 취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그럼 너는 아니?"

"흠흠. 아 이것도 맛있네."

처음 술을 마셔본 때가 이미 이능력자가 된 이후인 둘은 제대로 취해본 적이 손에 꼽았다.

물론 많이 마시면 취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취하자고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기에 그냥 아쉬워하며 적당히 마실 뿐.

그렇게 둘이서 끊이지 않는 수다를 떨며 마시길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슬슬 자리를 파하고 방으로 돌아갈까 생각할 때쯤.

"어? 이게 누구야. 하나하고 가연이 아니야?"

불청객이 나타났다.

"....진짜 징글징글하네."

불청객을 보자마자 가연이 중얼거렸고 하나 또한 내심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당신이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거죠?"

"당신이라니 선후배 사이에 너무 딱딱한 거 아니야?"

이건석이 둘의 앞에 서서 능글맞은 미소로 말했다.

"풉. 선후배? 당신 휴학 때리고 도망갔잖아."

"그건 집안 사정 때문....."

하나의 말에 건석이 무언가 변명하려 했지만,

"구라치지마. 당신 바지에 지렸다며? 소문 다 났어."

가연이 곧바로 팩트로 때린다.

건석이 하나와 가연에게 집적거리다가 누리에게 기절했던 날.

정신을 차린 그는 자신이 바지에 실례했다는 사실을 깨달아 사색이 된 채 수습하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지만 다른 학생에게 그 모습을 들켰고,

그 사실이 순식간에 퍼져 결국 쪽팔림을 참지 못한 건석은 휴학.

가연과 하나의 대학 생활이 한층 편해질 수 있었다.

그가 휴학했다는 것을 안 날, 평생 그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고 둘이서 축배까지 들었건만,

"정말 끈질기시네요."

"....뭘 착각하고 있는지 난 모르겠는데 딱히 너희를 따라온 게 아니야."

"아. 그래요? 그럼 더 잘됐네요. 당장 우리 눈앞에서 꺼져주실래요?"

여기가 학교도 아니고 어차피 학교에서도 더 이상 마주칠 인간이 아니기에 하나는 대놓고 말했다.

"에이. 술맛만 버렸네. 가자 하나야."

"그래."

어차피 슬슬 일어날까 고민하던 차였기에 망설이지 않고 일어난 두 사람이 호텔로 다시 향하려는 순간.

"잠깐!"

모욕감에 얼굴이 빨갛게 변한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던 건석이 돌아가던 둘에게 소리쳤다.

"너희가 왜 거기로 들어가?"

사실 건석이 이곳에 있는 이유 또한 세계협회 설립 회의 때문.

정확히 말하자면 천유그룹의 회장인 유시윤을 만나기 위해 온 것이다.

이능력자들이 침공 이후 사회로 나서게 된 후, 한국 재계는 한차례 큰 충격을 받았었다.

재계 서열 일, 이, 삼위의 그룹이 나란히 이능집단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평범한 이능집단이 아니라 한국 삼주라 불릴 만큼 강한 힘을 보유한 집단이라는 사실이.

그래서 한국의 재력가들은 세계협회가 설립된다는 정보를 얻자마자 어떻게든 한발 걸쳐보기 위해 삼가주, 특히 회의에 직접 참여한다는 유시윤과 접촉하려 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될 리가 없었고 그중 끈질긴 몇몇은 회의가 열리는 워싱턴까지 사람을 보냈다.

그리고 건석 또한 기업의 사장인 아버지의 명령에 이곳에 왔지만, 유시윤은 커녕 수행원조차 만나지 못한 상황.

그런데 우연히 만난 하나와 가연이 회의 관계자 외에는 출입 금지인 호텔로 향하려 했다.

"왜긴 왜야. 이 호텔에서 묵고 있으니까 가는 거지."

건석의 어투에 그의 목적을 대충 눈치챈 건지 가연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설마....."

"아마 당신이 생각하는 설마가 맞을걸?"

항상 사람을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자신과 하나를 괴롭히던 그가 당황하는 모습이 썩 괜찮은지 놀리는 어투로 말하는 가연이었지만,

"야. 그만하고 가자."

건석에게 바퀴벌레와 다를 바 없는 혐오감을 느끼는 하나는 빨리 돌아갈 생각밖에 없었다.

"쳇. 그래."

하나의 마음을 이해한 가연은 놀리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순간.

탁.

"잠깐 멈춰ㅂ...."

건석은 하나의 어깨를 잡아채며 멈춰 세우려 했고,

퍼억!

털썩.

"아. 사고쳤다."

바닥에 쓰러진 건석을 보며 하나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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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거야."

"하아아아."

하나의 설명을 모두 듣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누리.

"난 또 진짜 사람이라도 죽인 줄 알았잖아."

"아니. 나도 처음엔 숨 안 쉬는 줄 알고 놀라서...."

죄책감이 드는지 하나가 변명하듯이 우물거리니 누리가 위로했다.

"그래. 너희만 무사하면 됐어."

"미안 오빠."

"죄송해요. 오빠. 저도 괜히 도발하지 말고 그냥 갔어야 했는데."

"괜찮다니까."

하나와 가연의 거듭된 사과에 괜찮다 말하는 누리.

"그나저나 용케 조용히 처리했네?"

술집에서 사람 한명 기절시킨 것 치고는 조용히 넘어갔다.

"다행히 통로 쪽에서 벌인 일이고 호텔 경호 쪽에 말하니까 알아서 수습해가더라고요."

"하긴 그쪽도 괜히 시끄러워지는 걸 바라지 않을 테니까."

호텔에 방문한 이능력자가 일반인을 폭행했다는 사실이 퍼져나가면 회의에 잡음이 생길 수도 있으니 그냥 조용히 묻은 것이다.

"그나저나 넌 힘 조절하는 법 좀 더 배워야겠다."

"오빠한테 들을 말은 아니거든."

"흠흠."

실제로 건석을 기절시키는 걸 넘어 피까지 흘리게 만든 전적이 있던 누리가 괜히 헛기침했다.

"그리고 내가 힘쓰는 방식 이런 건데 어떻게 하라고."

마력을 모을 수는 있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없었던 하나.

그런 하나를 보고 성수언이 생각해낸 방법이 바로 이성이 아닌 본능으로 마력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이능력자들은 그 방식에 상관없이 처음 이능을 익힐 때는 의지로 이능을 끌어올리고 점차 반복 숙달해 본능적으로도 이능을 사용할 수 있게 수련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마스터가 되기 직전의 경지에서나 가능한 일.

심지어 본능적으로 신체 내부에 오러를 회전시켜 신체를 강화하는 오러 사용자조차 의지로 오러를 내뿜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성수언은 스스로의 의지로 마력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하나에게 본능을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 훈련을 받으면 어쩔 수 없다고."

인위적으로 극한의 상황을 만들고 마력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내던진다.

하나는 살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마력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고 말았다.

문제는 한 가지 부작용이 있었는데.

"혐오스러운 걸 어떻게."

바퀴벌레를 보면 어떻게든 죽이려고 하듯이 본능이 이성을 이기는 상황에서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나아진게 이정도야."

만약 하나가 처음 훈련받기 시작했던 때라면 이건석의 머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누리 역시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그냥 푸념해봤을 뿐.

"뭐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으니 그냥 잊어버리자. 괜히 기억해봤자 기분 나쁘기만 하니까."

"알았어."

"그럼 오빠. 내일부터 놀러 다닐 수 있는 거죠?"

넘어가자고 말하는 순간 놀러 갈 생각에 다시 눈을 반짝거리는 가연을 보며 누리는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여기는 3일 더 머물 수 있고 더 놀거면 천유가주님이 숙소는 마련해 주신 데."

"그러면 내일은 일단...."

그렇게 그들이 신나게 여행계획을 짜고 있을 때.

하나와 가연이 떠난 와인바의 한구석.

어떤 남자가 조용히 어디론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네. 추적 실시하겠습니다. 그럼."

뚝.

드르륵.

저벅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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