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8 아테르
"자. 이 부분은 시험에 낼 거니까 집중해서 들어라."
칠판 앞에 선 선생님이 시험 범위를 인질 삼으며 집중을 강요했지만,
'....학교 때려칠까.'
영수는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공부따위 포기한 지 오래였지만 부모님이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은 해야 한다고 해서 억지로 다니고 있을 뿐.
지금 당장이라도 학교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부모님은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건 공부뿐만이 아니라며 공부하지 않아도 좋으니 학교는 다니라고 했지만,
'아무리 다녀도 시간 낭비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 걸 어째.'
물론 친구들과 노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수업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다.
관심도 없고 듣지도 않을 수업을 듣고 있는 것만큼 고역도 없기에.
'이럴 시간에 차라리 검이라도 한 번 더 휘둘러야 하는데.'
그가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능력자.
사실 영수뿐만이 아니라 요즘 초, 중, 고 학생들의 대부분 아니 어른들까지도 이능력자가 되는 것을 꿈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화에서나 나오던 이능을 사용하고 손에서 빛과 불, 번개를 내뿜으며 괴물과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
어떤 사람이 꿈꾸지 않겠나.
당연히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이능집단에 몰렸지만,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의 협회에서 이능집단에서 신입 받는 것을 일시적으로 금지 시켰다.
하지만 이능력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의 아우성은 끝이 없었고 협회와 정부에서 공식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는데.
'올해 하반기라고 했으니까 얼마 안 남았는데.'
세계협회가 설립될 예정인 올해 하반기부터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이능 적성 검사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대상자는 18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상관없이 전부.
이 발표가 알려진 직후 전국의 무술 도장과 명상원 등 이능과 관련 있을 법한 곳들이 호황을 맞게 되었다.
'걍 오후 수업 땡땡이치고 도장이나 갈까.'
실제로 영수도 검도를 등록하고 한창 다니고 있었다.
이로인해 수업 중에도 머릿속은 온통 수련에 대한 것뿐.
집중이 될 리가 없다.
"하아아."
그렇게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창문 바깥으로 눈을 돌려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풀어보려던 영수는.
"....응?"
학교 옆 허공에 무언가 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검정선?"
마치 펜으로 허공에 선을 그어 놓은 듯한 형상.
그것을 발견한 영수는 왠지 저것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는데.
'어디서 봤더라....'
분명 어디선가 봤는데 기억이 도통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고 있을 때.
쩌어억!
허공에 떠 있던 그것이 자신의 정체를 들어내면서 명확히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선이 벌어지며 생겨난 허공의 구멍.
"....게이트?"
뉴스와 인터넷으로만 봤던 현상.
자신이 꿈꾸는 이능력자가 된다면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것.
지금 이곳에 외계의 침공이 시작된다는 증거.
영수가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던 이유는 침공이 시작된 당일을 포함해서 단 한 번도 사람이 몰려있는 도심이 나타난 적이 없었기에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
으아아악...
꺄아아악!
게이트다!
저 멀리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영수가 소리쳤다.
"게이트다!!!"
"얌마! 갑자기 소리를 지르ㄱ....."
갑작스러운 영수의 외침에 수업을 진행하던 선생이 호통을 치다가 창문밖의 검은 구멍을 발견하고는 말을 잃었다.
"게이트라고! 빨리 안 도망치고 뭐 해!"
"어어...."
"진짜 게이트야?"
"씨발!"
덜컹!
몇몇 상황 파악이 빠른 학생들이 도망치기 시작하자 그제야 정신 차린 선생과 학생들도 패닉에 빠진 채 도망치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뭐야!"
"게이트는 도심에는 안 열리는 거 아니었어?!"
교실을 빠져나오자 다른 교실도 눈치챘는지 학생들이 혼비백산하며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돼?!"
"옥상! 옥상으로 올라가!"
"뭔 개소리야! 건물 밖으로 가서 게이트에서 멀어져야지!"
하지만 패닉에 빠진 건 다들 마찬가지여서 통솔조차 되지 않는 상태.
통솔해보려는 선생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급박한 상황에 의견이 합쳐지지 않아 결국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옥상? 바깥? 어디로 가야 되지?'
그리고 혼란스러운 것은 영수 또한 마찬가지.
"...밖으로 가자."
게이트에서 무슨 괴물이 튀어나올 줄 알고 옥상으로 간다는 것인가.
차라리 게이트에서 멀어지는 쪽이 더욱 안전하다고 판단한 영수.
결정을 내리고 빠르게 건물 바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려는 무리에 섞여 겨우 학교 건물에서 빠져나왔지만,
쿵!
이미 한발 늦어있었다.
퀘에에에엑!!
울려 퍼지는 포효에 담겨있는 살기는 일반인들이 버틸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고.
털썩. 털썩. 털썩.
학교에서 달려 나오던 학생들이 순간 제자리에서 멈춰선 채 동시에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그중 몇 명은 아예 기절했는지 쓰러지기까지 한 상황.
"미, 미친."
영수는 어떻게든 일어나보려 했지만 한 번 힘이 풀린 무릎은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쿵! 쿵! 쿵!
점차 가까워지는 땅을 울리는 소리에 영수는 고개를 들었고.
'그것'과 눈을 마주쳤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황금색 동공.
검정색의 비늘이 뒤덮여 빛을 반사하고 있는 육중한 몸.
육중한 몸을 지탱하는, 기둥 같은 네 개의 다리.
마지막으로 괴물의 얼굴은 마치 이야기 속의 드래곤을 떠올리게 했다.
'....씨발.'
괴물과 눈이 마주치자 오늘 이 자리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영수.
'나도 이능이 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죽지 않고 발악이라도 해봤을 텐데.
막상 죽음이 닥치니 죽음의 공포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는다는 억울함이 몰려왔다.
쿵! 쿵!
"...씨이이이바아아알!!!"
있는 힘껏 소리치며 죽기 전 억울함이라도 표현해본다.
......
"?"
그런데 어째서인지 기다리는 죽음은 오지 않고 갑자기 찾아온 정적.
"학생분. 이제 눈뜨셔도 됩니다."
"!!!"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영수가 눈을 뜨니 괴물은 어디 가고 웬 검은 가면을 쓴 사람이 옆에 서 있었다.
"제가 안내할 테니 어서 대피하시죠."
"아...네."
당황한 영수는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검은 가면의 부축받고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영수는 주변 상황을 눈에 넣었는데.
"자. 이쪽으로."
"대피는 이쪽으로 하시면 됩니다!"
"옥상으로 두 명 더 보내!"
또 다른 가면의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괴물은....?"
그리고 보이지 않는 괴물을 찾아 고개를 조금 더 돌리자.
쾅! 쾅! 서걱. 서걱.
포효를 듣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던 괴물이 사람 한 명에게 맥을 추지 못한 채 공격을 주고받고 있었다.
"한 명....아니 두 명인가?"
처음에는 검은 오러를 줄기줄기 뿜어내고 있는 검사 한 명인 줄 알았는데 조금 자세히 보니 괴물의 몸 구석구석에서 새로운 상처가 생겨나고 있었다.
"관찰력이 좋으시군요."
그런 영수의 중얼거림을 들은 검은 가면이 칭찬을 건네왔다.
"...당신들은 누굽니까?"
하지만 영수는 칭찬에는 관심이 없는 가면에게 정체를 물었다.
'이 사람들 전부....이능력자야.'
지금에서야 눈치챘지만 괴물의 난동을 부리며 날라 오는 파편들을 처리하고 기절한 사람들을 한꺼번에 몇 명씩 나르는 것을 보고 든 확신.
가면의 인물들은 전부 이능력자였다.
영수는 이능력자를 목표로 하는 만큼 한국의 이능집단에 대해서도 철두철미하게 조사했었지만,
자신이 아는 한 가면을 쓰고 활동하는 집단은 한국에 없었다.
"후후. 조만간 알게 될 겁니다."
영수의 물음에도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며 답을 회피하는 가면.
그 사이 괴물과의 전투는 어느새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쿠어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붉은색 피를 줄줄 흘리며 동작이 굼떠진 괴물.
검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검정색 오러를 쏟아내는 검을 내리쳤다.
"흐흡!!"
서걱!
오러와 부딪혀도 간간이 폭음을 내며 오러를 방어하던 것에 비해 너무나도 쉽게 갈라지는 비늘.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진 괴물이더라도 뇌가 손상을 입은 이상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쿠웅.
육중한 몸답게 육중한 소음을 내며 바닥에 쓰러지는 괴물.
그리고 괴물이 쓰러지는 것을 신호로 가면의 사람들이 동시에 사라지기 시작했고,
휘릭.
왜애애앵.
마지막 남은 검사까지 사라지자 저 멀리서 싸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마 구조대원들과 이능력자들이겠지.
영수는 너무 순식간에 지나간 일에 자신이 꿈을 꾼건가 싶어 볼을 잡아당겼지만,
"아야."
아프기만 할 뿐.
그리고 볼을 꼬집어 보지 않아도 길거리 한복판에 있는 괴물의 시체는 꿈이 아니라는 것을 당당히 증명하고 있었다.
"뭐였지.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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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름은 아테르.]
[죽은 자들의 왕을 모시며 얼마 전까지 흑탑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자들이다.]
[며칠 전 흑탑의 이름을 사칭하고 테러를 일으킨 자들에게 경고를 남기기 위해 영상을 남긴다.]
[우리가 흑탑의 이름을 버렸으니 흑탑을 사칭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우리의 왕을 욕되게 한다면]
[반드시]
[너희를 말살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