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9화 (19/925)

19회

5. 공작님과의 귀환

우리가 깨어난 것은 점심때가 다 되어서였다.

저번에 부탁했던 대로, 한 상 가득 채워진 정찬이었다.

"세상에나-! 이렇게 맛있는 고기는 처음 먹어봐요! 완전 살살 녹아!"

"다 제 덕분인지 아세요!"

내가 으쓱해져서 말하자, 스테이크를 썰어 먹던 솔레르티아가 '공작님 덕분이겠죠!'라고 톡 쏘아붙인다.

"···제가 공작님께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이기 위해 노력한 걸 알면, 그런 소리 못합니다."

그녀의 시선이 미트볼에 포크를 찔러넣던 세르펜스에게로 옮겨졌다. 세르펜스가 작게 헛기침을 하며, 내게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는 듯 눈짓했다.

"예, 리벨론 경의 말이 맞습니다. 제가 먹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보니···. 그런 저를 대신해서 리벨론 경이 대신 많이 신경 써 주셨습니다.

"그러시면 안 되죠! 잘 드셔야 건강하고, 건강해야 오래 살죠!"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쾌활한 그녀의 말에 세르펜스가 싱그럽게 웃었다.

"그나저나 처음엔 두 분이 굉장히 이상한 조합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잘 맞는 것 같네요."

"뭐, 유능한 상관 밑에 유능한 보좌관 아니겠습니까?"

"······."

솔레르티아가 입을 꾹 다물었다.

세르펜스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토마토 리조또를 한술 떠서 입으로 가져간다.

"어···, 그건 모르겠지만. 공작님이 아끼시는 것도 이해가 가네요."

"네? 누가 절 아껴요?"

"공작님께서 리벨론씨를요."

나는 세르펜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역시 나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나와 솔레르티아가 나란히 앉고, 그 맞은편에 세르펜스가 앉아있는 형태의 자리 배치상.

표정으로도, 귓속말로도 그 뜻을 내게 전할 수 없었다.

"리벨론 경은···. 예, 좋은 보좌관입니다."

"그렇죠? 하긴, 그러니까 그 비싼 물건값을 대신 치러주셨겠죠!"

'그거라면 월급에서 빠지는 중입니다!'라 외치고 싶었으나, 세르펜스가 미소를 지으며 내 쪽을 바라보며 눈치를 주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 열었던 입에 고기를 한 점 넣고 씹었다.

확실히 부드럽고 맛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세르펜스는 소파에 앉아 한가롭게 책을 펼쳤다. 몹시 흐뭇한 광경이다.

'세르펜스가 쉬고 있어!'

고개를 돌리니, 솔레르티아가 바닥에 엎드려서 스크롤을 제작하고 있었다. 몹시···.

"왜 일 중독자 한 명을 처치하니, 새로운 일 중독자가 나타나는 겁니까?!"

내 외침에 솔레르티아가 세르펜스를 보며 '처치당하셨구나···.'라고 중얼거렸다.

그것을 들은 세르펜스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빨리 가게를 열려면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야죠!"

"지금 가지고 계신 재료도 별로 없으실 텐데, 편히 쉬십시오. 상단에 기별을 넣었으니 저희가 도착할 즈음이면 공작저에 준비되어 있을 겁니다."

"그럴···까요? 안 그래도 재료가 부실해서 영 마음에 안 내켰어요."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바닥에 늘어놓았던 재료와 종이 등을 모아 잽싸게 정리했다.

빨리 가게를 열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겠지만, 투자를 받는 입장에서 투자자에게 열심히 하는 인상을 남기고 싶었던 것 같다.

"리벨론 경은 휴식과 먹는 것을 굉장히 중히 여기는 분이셔서, 어차피 못 당하실 겁니다."

"그래서 처치당하셨군요!"

"후후-, 그런 셈입니다."

굉장히 감개가 무량하다.

세르펜스가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서 식사하고, 그 뒤에 느긋하게 앉아서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을 볼 줄이야!

왠지 코끝이 찡해져 집게손가락으로 코 아래를 비볐다.

"콧물이 나면 더럽게 손으로 닦지 말고 휴지를 쓰세요."

솔레르티아가 티슈를 한 장 뽑아 내게 건넸고, 세르펜스는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고개를 돌렸다.

웃고 있는 거겠지, 저거?

'···진심으로 웃는 건 아니려나.'

우리는 기차 안에서 느긋하게 늘어졌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기차여행 느낌이다.

방 안에 비치된 카드 게임 등을 함께 즐기거나, 각자 책을 읽기도 하고, 낮잠도 자며 빈둥거렸다.

세르펜스는 낮잠 대신 기도인지 명상인지 모를 자세를 취했다.

"어머, 지금 스콘에 크림을 먼저 바르신 거예요?"

티타임 간식으로 나온 스콘에 세르펜스가 꾸덕꾸덕한 크림을 펴 바르자, 솔레르티아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안되는 겁니까?"

"당연하죠! 자고로 스콘에는 잼을 먼저 바른 후 크림을 올려야 하는 법이에요. 그래야 스콘에 잼이 스며들어 촉촉~하면서도, 그 위에 크림을 골고루 펴 바를 때 잼과 크림이 섞여 그 맛이 환상적인 하모니를 자아내는걸요!"

세르펜스는 층이 깔끔하게 나뉜 자신의 스콘과 크림과 잼이 뒤섞여 마블링 되어 스콘 위에서 흘러내리는 솔레르티아의 것을 번갈아 보았다.

"사람마다 다른 방식을 취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강요하시는 건 조금···."

"아아니~, 강요가 아니라 이게 맞는 방식이란 것을 알려드리는 거예요! 더 맛있게 드실 수 있도록!"

"레세라투스씨의 취향은 존중해드리겠습니다. 하나, 아무래도 제겐 맞지 않는 듯합니다."

"아이, 참~! 한 번만 이렇게 드셔보시면 바로 아실 텐데···."

아무래도 더러워 보였나 보다.

세르펜스의 패턴을 보면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일 만도 한데, 핫도그를 먹을 때도 소스 한 방울 안 흘리고 먹는 양반이니만큼 용납할 수 없는 걸까?

"시온씨는 어때요? 어느 방법이 더 맛있어 보여요?"

"예? 저, 저요?"

왜 화살이 이쪽으로 날아온 거지?

솔레르티아가 갑자기 내 쪽으로 질문을 던졌다.

안 그런 척하지만 세르펜스도 은연중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부먹이 좋아, 찍먹이 좋아? 잼이 먼저냐, 크림이 먼저냐?'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대체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당장 눈앞에 신 룩스메아가 있다면, 멱살을 잡고 짤짤이라도 하고 싶어졌다.

세르펜스의 푸르른 녹음을 닮은 눈동자와 솔레르티아의 청명한 하늘을 닮은 눈동자가 이쪽을 바라보며 대답을 촉구하고 있었다.

둘 중 누구도 택할 수 없는 문제였지만, 나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어느 쪽도 택할 수 없다면, 나는 제3의 길을 걷는다!'

나는 나이프를 들어 스콘의 아랫면에 크림을 바르고, 윗면에는 잼을 올렸다.

어떠냐는 표정으로 세르펜스와 솔레르티아를 바라봤다. 그 둘의 눈에 숨길 수 없는 짙은 혐오가 담겼다.

"왜, 왜요! 왜 그런 눈으로 보시는 겁니까?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으···와···."

세르펜스가 눈을 지그시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솔레르티아가 경악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나와 세르펜스. 거기에 솔레르티아까지 세 명을 태운 마차가 저택 앞에 멈춰 섰다.

출발할 땐 두 사람이었지만, 돌아왔을 땐 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한가?'

어쨌거나, 돌아왔다.

공작령에 내려갈 때와 달리, 새벽 일찍 출발한 덕택에 저녁 식사 즈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리벨론 경,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이만 쉬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작님도 오늘은 푹 쉬시지요."

기차 안에서 충분히 쉰 것 같지만, 역시 집에서 쉬는 것과는 별개다.

하지만 푹 쉬라는 나의 말에 세르펜스가 온화하게 미소짓는 것을 봐서, 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너무 늦게까진 하지 말고 일찍 주무세요."

"그걸 어찌···. 예,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복잡해 보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세르펜스가 이내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리고 레세라투스씨. 리벨론 경과 식사를 마치시면, 시녀가 당분간 지내실 방을 안내해 줄 겁니다."

"배려 감사합니다."

솔레르티아의 감사에 그가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고, 홀로 본관 쪽으로 향했다.

"공작님께서는 따로 드시나 봐요?"

"그렇죠, 혼자···."

"좀 외로우시겠네요."

"···역시 그렇겠죠?"

지난 이틀간 셋이서 함께 떠들썩하게 먹었는데, 돌아오자마자 덩그러니 홀로 앉아 삭막하기 그지없는 식사를 한다니.

아무리 세르펜스가 프로혼밥러라 할지라도.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쓸쓸하지 않을까?

"공작님, 잠시만요!"

막 현관 문턱을 지나려던 그가 멈춰서서 돌아봤다.

차마 상관을 오라 가라 손짓할 수는 없기에 저택 입구의 계단을 뛰어올라, 의아한 표정으로 기다리는 세르펜스를 마주했다.

"무언가 잊으신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공작님도 식당에서 같이 드시는 게 어떠십니까?"

"···예?"

그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큼, 큼-! 보좌관님. 공작님의 권위가 있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한스가 크게 헛기침을 하며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저 양반은 대체 언제부터 있었지?

"하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평소 권솔들의 식생활도 살펴볼 수도 있고, 혼자 드시는 건 좀 인력 낭비가···."

"지금 공작님을 모시는 것을 인력 낭비라 칭하신 겁니까?"

아, 실수했다.

충동적으로 붙잡은 거라, 중간에 누가 끼어들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그 탓에 논리가 부족했다.

"말실수입니다! 그저 공작님 혼자 드시는 게 신경 쓰여서···."

"보좌관님이 새로 오신지 얼마 안 되어 잘 모르시는 모양이신데, 공작님께서는 혼자서도 고고하신 분입니다. 굳이 그런 신경은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고하면 어떻고 공작이면 또 어떤가. 고고한 게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닐진대.

'게다가 내가 모르긴 무엇을 모른다는 거지?!'

그러는 본인이야말로, 세르펜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저딴 소릴 내뱉는 걸까.

가만 보니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고 있다.

"리벨론 경."

욱해서 한바탕 쏟아내려고 입을 여는데, 세르펜스가 손을 들어 이쪽을 제지했다.

여느 때처럼 자신의 본심을 내보이지 않는. 꾸며낸 미소를 지으며, 나와 시선을 마주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다.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가 신성력을 일으킨 것도 아닌데 어쩐지 심신이 차분해졌다.

이런 걸 두고 얼굴이 열일한다고 하나?

"리벨론 경의 제의는 감사하나, 그 자리의 다른 분들이 부담스러워 하실까 염려됩니다."

세르펜스가 조심스럽게 말해왔다.

그 말에 한스가 우습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첫날부터 생각한 거지만, 진짜 마음에 안 드네.

"그러나 경의 말씀도 일리가 있으니, 앞으로는 제 식사 또한 그들과 같은 차림으로 준비해주시길 바랍니다."

그의 지시를 받은 한스의 표정이 단박에 일그러졌다.

비록 같이 먹는 건 실패했지만, 앞으로는 적어도 밍숭맹숭 삭막한 음식 대신에 사람이 먹을 만한 음식이 식탁에 올라갈 테니.

얘기한 보람은 있었다.

'그나저나 한스, 저 양반이랑은 이상하게 잘 안 맞는단 말이지···.'

언젠가 한 번 크게 부딪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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