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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회개해주세요!-28화 (28/925)

28회

7. 공작저의 집사님 (4)

"···또 뭡니까?"

또다시 한스의 방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퇴근하고 돌아온 그가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죠?"

어제의 교훈도 있었으니. 그는 몹시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들여 보내주었다.

방안은 깐깐하기 그지없는 한스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깔끔하게 각이 잡힌 채 정돈된 정도를 넘어, 정면으로 보이는 벽 중앙에 머리 부분이 맞닿은 침대를 기준으로 양옆에 고루 배치된 가구들에서 대칭병까지 느껴졌다.

"구경 다 하셨으면 앉으십시오."

한스가 침대와 직선상에 놓인 정사각형의 테이블을 가리켰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 또한 바로 자리에 앉았다.

마치, '너에게는 찬물 한잔 내주는 것조차 아깝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저희가 이렇게 대립하는 건, 저택 분위기상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좌관님께서 흐리신 물입니다."

"아래에 더러운 부식질이 잔뜩 고여있으니 흐려진 거겠죠. 정말 물이 깨끗하다면 미꾸라지가 아니라 장어가 헤엄을 쳐도 흐려지지 않습니다."

"···지금 싸움 걸러 오신 겁니까?"

앗, 나의 실수!

반사적으로 받아쳐 버렸다.

"흠, 흠-! 아무튼 저희가 무슨 파벌 싸움을 할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들까지 끌어들이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들이 판단한 대로 놔두었을 뿐이지."

"그래도 절 싫어하는 티를 내셨으니 그런 것 아닙니까. 어제의 다툼이 있기 전부터···"

"그건 당신이 무능한 주제에 업무 외적으로만 너무 나대서 그런 것 아닙니까? 전 보좌관님의 업무처리량과 비교하면 당신 그의 1/5도 못 따라갑니다."

"···아, 아니. 그건 인수인계도 없었고, 적응 기간이라던가···."

지난 한 달 농땡이를 부리지 말았어야 했다.

정말 뼈저리게 후회스럽다. 적어도 근무 시간만은 열심히 했어야 하는 건데···.

"왜 공작님께서 당신을 뽑았는지, 아니 어째서 당신을 그대로 두는 건지 전혀 이해가 안됩니다. 적어도 당신을 채용할 때만 해도, 제가 못 본 무언가를 본 게 아닐까 했지만."

한스가 잠시 말을 끊고 한숨을 토해냈다.

"그래도 면접은 집사님이 보셨잖아요···?"

"그러니 하는 말입니다. 저도 그렇고 공작님도 그렇고, 당신에게 속은 것이 분명합니다. 분명 면접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뺀질거리지는 않았었는데···."

"그땐 많이 긴장했거든요! 하하하─!"

내 웃음에 한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혹시 흑마법에 세뇌되었다거나, 사람의 모습을 베끼는 악마 같은 게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입니다."

사람의 모습을 베끼는 악마라. 도플갱어 같은 건가?

원작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는데, 그런 개념의 악마도 있긴 한가보다.

"하지만 흑마법이라면 공작님께서 간파하셨을 것이고, 악마가 소환되기엔 아직 이르죠."

"그러니 더 문제라는 겁니다. 과거 행적들과 비교해도 지금의 성격은 대체···."

"뒷조사한 걸 너무 당당히 말하는 것 아닙니까?"

"공작님을 바로 곁에서 모셔야 할 사람이니 그 정도는 당연히···, 으득─."

말을 하면서 울분이 쌓이는지, 이를 빠드득 갈며 날 노려본다. 흉신악살이 있다면 저런 얼굴이 아닐까.

"어, 으음···. 하지만 이미 보좌관으로 임명된 마당에, 공작님도 절 자를 생각이 없으시고. 제가 공작님께 갚아야 할 돈이 좀···. 아. 알고 계시려나요? 솔레르티아씨의 스크롤 대금."

한스가 붉어진 얼굴로 자신의 뒷목을 턱-! 하고 잡으며 고개를 뒤로 꺾었다.

아, 나이도 있는 양반이 저래도 괜찮으신 건가?

갑자기 죄책감이 밀려들어 온다.

"찬물이라도 떠다 드릴까요?"

"됐습···빠득, 니다."

혈압도 혈압이지만, 치아도 걱정스럽다.

"대체 그쪽은 무슨 말로 공작님을 구워삶으신 겁니까? 어째서, 왜 당신 같은 자를···!"

"그, 그냥··· 돕고 싶다고?"

"돕···! 하, 하하─. 하하하하─!!"

어처구니없다는 느낌의 조소로 시작된 그 웃음은, 이내 미친 사람의 그것과 닮아가고 있었다.

아주 잠시,

'지금 살짝 창문을 열어서 한스의 웃음소리를 밖으로 흘려보낸 뒤, 도로 닫으면 화해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만두었다.

그 웃음이 슬슬 허탈 쪽으로 넘어가고 있기도 했고, 그보다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지금 공작님의 긍휼과 배려를. 자비롭고 선량한 마음을 이용했다는 겁니까?"

"예? 전혀 아닌데요?"

"그 스크롤도 처음부터 제작자와 짜고 빚 변제를 구실 삼아─"

"아뇨, 아뇨! 제 조사를 해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솔레르티아씨와 저는 접점 하나 없습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스가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며 숨을 몰아쉰다.

"그럼 도대체 당신이란 사람은 어떻게 되어 먹은 겁니까···!"

평소보다 10년은 더 늙어 보이는 한스가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쥐어짜듯 말했다. 너무 처량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죄, 죄송합니다. 그게 제가···, 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내 평생 노인을 울리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갑자기 나 자신이 너무나도 쓰레기 같고, 정말 죄송스러운데. 어찌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이, 멘붕이란 게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다.

- 똑똑─.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열어야 하나? 하지만 지금 상황이···.'

짧은 순간,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이 상황을 어찌 수습해야 하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왜 이곳에 있는 것인가.

나도 정말 울고 싶다!

"접니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지금 상황과 전혀 맞지 않을 정도로 청아한 이 목소리의 주인은···.

"고, 공작님!!"

반가운 마음에 문을 벌컥 열어 재끼자, 세르펜스가 고개를 숙인 채 이마를 짚으며 서 있었다.

이마를 짚은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세르펜스의 시선이 베일 것처럼 날카롭다.

"일단 비켜주십시오."

그는 나를 지나쳐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한스의 앞에 섰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한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비틀거리며 쓰러질뻔한 것을 세르펜스가 부축해 다시 자리에 앉혔다.

"주, 주인님···!"

그의 행동에 한스가 감격한 표정으로···.

'아, 한스는 세르펜스를 직접 부를 때 주인님이라고 부르는구나. 아니, 뭐 그렇지. 그게 맞는데···.'

촉촉한 눈빛으로 세르펜스를 올려다보며, 그렇게 부르는 모습을 보니 보기에 썩 좋지 못했다.

"으음···. 리벨론 경, 분명 화해하러 가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세르펜스가 한스의 이마에 손을 얹고 신성력을 불어넣으며, 이쪽을 향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게, 저도 왜 이렇게 된 건지 잘···."

"일단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골치가 아프다는 듯, 세르펜스가 손을 휘휘 내젓는다.

그 뒤편에, 어느새 정신을 차린 한스가 이쪽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잘못 본 건가 싶어,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비웃고 있었다.

'아니, 뭐, 저딴 양반이 다 있어! 내 죄책감 돌려줘!'

내가 잃어버린 맷돌 손잡이를 찾고 있든 말든, 한스는 당장이라도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를 외칠 것 같은 표정으로 세르펜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런 자를 보좌관으로 둔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안하무인에 비열하고, 몰인정한 저런 자는 공작님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두어야 제게 도움이 됩니까?"

손을 거둬들인 세르펜스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한스에게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그에 내가 뭐라 입을 열려 했으나, 세르펜스는 이쪽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손짓만으로 조용히 하라는 의견을 전해왔다.

"그야 당연히 전 보좌관처럼 유능하며, 충정스러운 자를 두어야 합니다! 저런 무능하고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키지 못하는 놈은 백해무익합니다."

"그렇다면. 집사 본인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많은 도움이 되고 있지요. 주인님께서 도련님이던 시절부터 줄곧 곁에서 지켜보고 도와드렸지요."

"으웨, 읍─!"

아름다운 추억이라도 회상하듯 부드럽게 미소짓는 한스의 얼굴을 보니, 치밀어오르는 역겨움에 나도 모르게 헛구역질이 나왔다.

재빨리 입을 틀어막았으나, 이미 늦은 듯하다. 한스의 멸시 어린 눈초리가 얼굴에 꽂혔다.

내 두 번 다시 저 양반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나 봐라···!

"···집사."

"예, 주인님."

부드럽게 입꼬리를 끌어올린 표정으로, 세르펜스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자신을 부르는 그 목소리에, 한스가 감명 어린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얼핏 보기에는 끈끈한 의리로 묶인 주종관계로 보인다.

"리벨론 경은 아직 젊지 않습니까."

"···네?"

"보좌관이 된 것도 처음인데, 전임자도 없었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

"제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 그게 무슨···?"

"잘 지켜봐 주십시오."

세르펜스가 대자대비한 미소를 지으며 한스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였다. 그 손길이 더해질수록, 한스의 표정은 점차 썩어 문드러져 갔다.

'지금 이거, 명백하게 내 편을 들어준 거지?'

도와주지 않을 것처럼 굴어 놓고. 중립이라도 잘 지켜주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하, 하지만···!"

"정 불편하시다면, 지금까지처럼 제게 보고를 올리셔도 좋습니다."

아, 보고는 받는구나···. 그래도 감동이었다.

매일 사료를 챙겨주며, 먼발치에서 지켜보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길냥이님이었다.

그 도도한 길냥이님께서 먼저 다가와, 죽은 벌레를 선물이랍시고 갖다 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감동과 찝찝함이 뒤섞여 밀려들어 온다.

"집사께서 피곤해 보이시니, 저희는 이만 나가봅시다."

"···네!"

허망한 표정의 한스를 뒤로했다.

세르펜스가 앞장서 방을 나갔고, 나 또한 그 뒤를 따랐다.

"저, 공작···"

"─쉿."

그가 검지를 세워 자신의 입술에 갖다 대며, 방금 나온 한스의 방문 쪽을 턱짓했다.

확실히, 여기서 떠드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세르펜스가 자연스럽게 계단을 올라 내 방문을 열었···.

'···어? 이거 뭔가 이상한데?'

그래, 그가 내 방문을 열 수는 있다.

따지고 보면 이 저택은 모두 세르펜스의 것이다. 마스터키쯤은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어째서···.

'···잠금장치가 안 걸려있지?'

굉장한 위화감을 느끼며 방 안에 들어섰다.

테이블 위에 누군가 방금까지 마시고 있던 것 같은 찻잔이 하나 놓여있었다.

"어쩐지···. 들어오신 타이밍이 공교롭다 했습니다."

바로 윗방인 이곳에서 엿듣고 있었던 거다.

신성력으로 강화한 세르펜스의 청력이라면, 바닥에 엎드리지 않고도. 테이블에 앉아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모든 대화를 훔쳐 들을 수 있었겠지.

"이제까지의 행동들을 미루어 봤을 때, 바로 찾아가실 줄 알았습니다."

세르펜스가 태연하게 찻잔이 놓인 자리에 앉아, 웬 종이를 찢으며 말했다.

찢긴 종이에서 푸른 빛이 터져 나와 방 안쪽 벽에 얇은 막처럼 자리 잡았다. 그냥 종이가 아닌 마법 스크롤이었다.

"이거···. 방음 마법인가? 맞죠? 여기 방음이 그렇게 안 좋던가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습니까."

조심 한 번에 최소 50만 아스가 날아갔다.

아마 그보다 훨씬 더 비쌀 것 같지만, 정확한 가격은 모르니 넘어가자.

"아, 그보다 아까는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좀 자중하십시오."

"넵!"

흐흐 웃으며 세르펜스를 바라보자, 그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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