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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회개해주세요!-57화 (57/925)

57회. 공작님과 함정 수사 (4)

예상했던 대로 그가 말한 '비싼 물건'의 정체는 나였다.

나는 거의 내던져지다시피, 철창 안으로 떠밀려졌다.

"아, 자존심 상해···."

대체 나를 얼마나 물로 봤길래, 이런 허접한 방식으로 유인한 걸까. 그리고 나는 왜 걸려든 거지?

"이거 완전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 아냐?"

"좋아, 그건 인정."

내가 봐도 방금은 좀 심했다. 세르펜스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무의식중에 마음을 놓고 있었나 보다.

오늘 밤 무조건 이불 킥 각이다.

"지금 인정해봐야 늦었습니다, 호갱님. 그러게 누가 이런 곳에 혼자 오래?"

"혼자는 아닌데···."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지."

방금까지 싹싹한 영업사원 같던 그의 얼굴에 비열한 웃음기가 걸렸다.

그런 그의 뒤편에서 가드들이 킬킬거리며 비웃는 게, 정말 클리셰가 따로 없다.

'어차피 마지막으로 한탕 하고 뜰 거, 데리고 있는 노예를 파는 것보다 내 몸값을 받아내는 쪽이 더 이득이다 이건가?'

뜻밖의 행운으로 돈방석에 앉게 되어 그것을 주체하지 못하는 졸부라니, 몹시 훌륭한 호구가 아닌가.

게다가 이제 막 돈을 만지게 됐으니, 제대로 된 뒷배도 없어 보였겠지.

'아, 진짜···. 속으로 혼자 잘난 척 다했는데, 민망해 죽겠네.'

최근, 내가 생각한 예상들이 모두 딱딱 들어맞는 바람에 나 자신을 너무 과신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다른 이들보다 정보에서 앞섰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마치 스스로가 천재라도 된 것처럼 굴었다.

"어이, 귀족 나으리. 그래서 가문이 어디라고?"

사내가 껄렁하게 쭈그리고 앉아, 나와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세르펜스는 이 상황을 예상하고 날 보낸 건가?'

그랬다면 미리 얘기 좀 해주지.

어쨌든 이걸로 귀족 감금죄까지 더해졌으니, 이젠 정말 구해줄 때도 된 거 아닌가?

"왜 대답이 없어?"

"이 녀석, 완전 정신을 놓은 것 같은 뎁쇼?"

내가 쓰러진 자세 그대로 가방을 끌어안고 멍때리고 있으니, 너무 충격을 받아 넋이라도 놓은 줄 알았나 보다.

"뒤져보면 가문의 증표 같은 것 하나쯤은 나오겠지."

"이야~, 게다가 옷에 달린 보석들 좀 보십쇼! 저것들만 떼다 팔아도 꽤 짭짤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래, 그리고 가방에 돈 얼마나 담아왔는지도 확인해보자."

"그, 그건 안돼!"

다른 건 몰라도 가방은 좀 곤란했다.

그들의 대화를 끊고, 벌떡 일어나 가방을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 상태로 슬금슬금 몸을 뒤로 빼자, 녀석들이 조롱 섞인 웃음을 터트렸다.

"자, 잠깐! 내가 누군지 알아?"

"모르니까 지금부터 그걸 알아보려고 하는 거잖아?"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가문 명까지는 안 정해놨는데, 이거 야단났다.

'···그런데 설정충 세르펜스가 이걸 놓쳤다고?'

여기까진 생각하지 않은 건가?

철저하기로는 [성검의 주인] 원탑인 세르펜스가 이런 일이 생길 거라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렇다는 건 이렇게 되기 전에 구해줄 생각이었다는 건데, 어째서 안 오는 거지? 혹시 세르펜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니지, 아직 세르펜스에게 위협이 될 만한 존재는 없을 텐데?'

물론 제아무리 세르펜스가 강하다고 한들, 제대로 레이드 공대를 꾸리면 제압하지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런 큰 소란이 일어났다면, 여기가 아무리 지하라도 이렇게 조용할 리 없겠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일단 살고 봐야 하니 시간을 좀 끌어보자.

"이, 이러면 곤란한데···. 손님에게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거래는 신뢰가 생명인데!"

"아이고, 손님께서 얌전히 협조해 준다면야, 우리도 챙길 것만 챙기고 무사히 풀어드리지요."

"사, 사장 나와! 사장 나오라 해, 어디 손님 대접이 이따위야!"

"사장? 하! 본점이 망했는데 그딴 게 어딨겠어. 우리끼리라도 새로운 사업을 차리려면 어쩔 수 없다고."

저 사내가 아무래도 지점장이었나보다.

- 우둑, 우두둑─.

어디선가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나기에, 고개를 올려보니 가드 중 한 명이 손가락 마디를 풀고 있었다.

이들은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으로 말보다 주먹을 더 선호하는 모양이다.

"···살려주세요?"

"그럼~, 당연히 살려 드려야지. 몸값이 얼만데."

"저 이제 진짜 무서워지려고 하거든요?"

"풋! 이제서야?"

"안 계십니까? 아무도 없어요?"

"······?"

처음엔 내 말에 일일이 대답하던 그들이, 중간부터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는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검지를 세워 관자놀이 쪽에서 빙글빙글 돌리는 게···.

"저 안미쳤습···! 아니지, 여기선 미친 걸로 해두는 게 낫나?"

{공작님께서 스크롤을 사용하라고 전해 달라 하셨어요.}

"이 새끼, 진짜 뭐 하는 놈이지?"

그냥 미쳤다고 해두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하자마자, 어디선가 환청이 들려왔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 미칠 생각은 없었는데?!'

{어서요! 인질로 잡히셔도 구해드릴 수는 있겠지만, 다치실지도 몰라요.}

재차 환청이 들려왔다. 무척이나 맑은 목소리였으나, 세르펜스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틀림없이 어디선가 들어본 여성의 목소리다.

"잠깐. 방금 어디선가 바람이 분 것 같지 않습니까?"

"뭐? 지하에 바람이 불어올 리 없잖아?"

{저들이 확실히 눈치채기 전에 돌입해야 할 것 같아요.}

목소리가 환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나는 주저하지 않고 품속에 숨겨놓았던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어, 어어?! 뭐, 뭐야!"

"마법 스크롤?! 그런걸···, 젠장!"

공격 마법이라 생각했는지, 그들이 좌우로 흩어지며 몸을 숙였고, 거의 동시에 푸른색의 반투명한 막이 반구형으로 내 주위를 감쌌다.

그리고 1층과 연결된 계단 쪽에서 세르펜스가 내려왔고, 한쪽 벽이 갑자기 회전하더니 유지스가 튀어나왔다.

'유지스가 왜 거기서 나와?!'

어쩐지 세르펜스가 늦다 했더니, 그녀에게 상황 설명 후 도주로 차단을 위한 양동 작전을 세우느라 그랬나 보다.

"거, 거봐···. 내가 혼자 아니라고 했잖아! 지켜줄 사람 있다고!"

내가 발악하듯 외쳤으나,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점장으로 추정되는 사내는 유지스가 불러낸 바람의 정령에게 붙잡혀, 허공에서 발버둥 쳤다.

가드들은 세르펜스에게 제대로 검을 휘둘러보기도 전에, 그에게 맞아서 기절해 버렸다.

그리고 세르펜스는 의도적으로 내 말을 못 들은 체 하며, 철창 안에 갇힌 사람들을 한 명씩 풀어주며 신성력으로 그들을 치료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유지스는 벽이나 바닥에 귀를 대고, 여기저기 주먹으로 통통통 두드리고 다녔다.

"누가 저 좀 신경 써 주시지 않겠습니까···?"

결국 세르펜스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모두 풀어주고 나서야, 나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리벨론 경?"

"손바닥이 살짝 긁히고, 마음이 크게 다친 것 말고는 없습니다."

"으, 으음···. 죄송합니다, 먼저 신경 써 드려야 했는데···. 하지만 다른 분들의 상태가 워낙에 안 좋아 보여서···."

내 말은 빨리 도와주지 않은 것에 대한 작은 투정이었는데, 세르펜스의 한마디로 인해 순식간에 쓰레기 발언으로 탈바꿈되어 버렸다.

그의 어깨너머로, 유지스가 뜨악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보였다.

"아,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공작님. 당연히 다른 분들 먼저 구하셔야죠! 그냥 좀 늦으셨구나 싶어서···. 물론 그렇다고 공작님께서 잘못 하셨다는 건 아니고···."

유지스를 비롯해 감금당했던 사람들 시선도 있으니, 불평도 함부로 못 하겠다.

"우선 영지의 경비대에 이곳 상황을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위리디아님께서 이분들을 돌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괜찮아요! 어서 다녀오세요."

"그리고 당신은 아래층에 내려가, 장부를 비롯한 서류들을 챙겨와 주십시오."

"넵! 맡겨주세요!"

세르펜스는 자연스럽게 내가 서류를 교체할 수 있도록 지시를 내리고, 탁탁거리는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계단을 뛰어올랐다.

'···정말 디테일이 장난 아닌데?'

암흑가에선 계단이든 뭐든 소리 하나 없이 날렵하고 사뿐히 걸어 다녔으면서, 지금은 숙련된 기사의 절도 있는 발걸음 소리를 일부러 꾸며냈다.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유지스가 열심히 기어 다니며 찾아낸 통로를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사실 그러지 않아도, 이미 세르펜스가 알고 있었지만···.'

숨겨진 지하 2층에는 사람이 오면 자동으로 불이 켜지는 마법 센서가 있는지, 굳이 스위치나 초를 찾아 휘적거릴 필요는 없었다.

'유지스는 위에 잘 있겠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유지스가 감금돼있던 사람들이 흐느끼는 것을 달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을 다독이며 이름이 뭐냐던가, 어디서 왔는지 등 신상을 묻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안도의 숨을 몰래 내쉬고, 가방을 열어 세르펜스가 적어준 지시사항을 살폈다.

'평소 서류에서 보던 글씨체가 아닌데?'

잠깐 의문이 들긴 했지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당장 할 일이 우선이니 내용을 자세히 읽었다.

'장부가 들어있는 금고는···. 여기서 이렇게 다이얼을 돌리고···. 그리고 빨간색 띠가 둘러진 서류는 책장의 오른쪽 상단에 있는 20장···, 뭐야. 이거 일일이 세야 해?'

서류는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으로 총 세 묶음이었다.

"이제 마지막 파란색인가···."

"그건 몇 장이에요?"

"마흔 장? 이건 꽤 많···."

방금 나는 누구와 대화 한 것인가.

침을 꿀꺽 삼키고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유지스가 찬찬히 서류를 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위, 위리디아님? 대체 언제부터···."

"그가 언제 돌아올지 몰라요, 들키기 전에 어서 서두르죠!"

여기서 '그'라는 건 세르펜스겠지? '이걸 시킨 게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내가 말을 거는 바람에 숫자를 어디까지 셌는지 까먹은 듯, 유지스가 서류의 첫 장으로 돌아와 장수를 다시 헤아렸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자니, 유지스가 알아서 띠를 벗겨내어 마지막 서류의 바꿔치기 작업을 끝냈다.

거기다 마무리로 불의 정령을 소환하여 원본 서류를 불태웠다.

'이 장면, 어디선가 본 것 같아···.'

훌륭한 증거 인멸의 현장이다.

"저, 저기 위리디아님···?"

"쉿! 알아요. 대강의 상황은 파악했어요. 우리 연회장에서 본 게 초면 아니잖아요. 그렇죠?"

"예···?!"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대강은 알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들킨 거고, 세르펜스는 안 들킨 거잖아.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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