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7화 (67/925)

67회. 공작님의 출장 계획 (2)

"왜 그런 눈으로 바라 보는 거지?"

나의 쏘아보는 시선을 느낀 세르펜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참고로 오늘의 세르펜스는 저번에 존댓말을 쓰는 바람에 상하관계가 들켰으니, 평소에도 반말 쓰는 연습 중이라는 설정이다.

"아뇨, 그냥. 호위 도련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 쳐다봤습니다."

"흠···. 악마 숭배자들의 개입 증거가 없으니, 정식 요청은 불가할 테고. 불법 투기장 쪽을 문제 삼는다 하더라도 제대로 해결될 거라 보긴 어렵겠군."

"아무래도 현 바스툴 국왕이 조금 그런 성향이긴 하죠."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하자, 세르펜스가 의외라는 듯 내 쪽에 눈길을 주었다.

얼굴이 가려져 표정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시선이 '네 주제에 그런 것도 아는 거냐?'라는 의미라는 것쯤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확실히. 발뺌하면서 시간만 끌다 흐지부지될 공산이 큽니··· 크다. 게다가 당신이 찾고 있는 자가 바스툴 왕국에 있는 게 확실하긴 한 건가?"

"그, 글쎄요···?"

세르펜스가 또 다른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자칫하면 이대로 악마 숭배 세력에 선수를 빼앗길지도 모르겠다.

"전 가능성이 크다고 봐요. 출신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최근 한 검투사가 연승을 거듭하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거든요. 리벨론 경의 말씀대로 포섭이 목적이라면, 상당한 실력자일 것이라 예상하는데 맞나요?"

"네, 아마 맞을 겁니다."

유지스가 그럴듯한 가설을 내놓았다.

맞다고 확정 짓기는 아직 이르지만, 가능성은 좀 더 올라갔다.

"그런데 위리디아님께서는 이런 정보를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샀는데요? 아, 제 정체와 엘프라는 것은 숨기고요. 순수하게 투기장 도박에 관심 있는 손님인 척 승률이나 검투사의 개인 정보만 물어봤어요."

문득 떠오른 질문을 던지니 유지스가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대답해왔다.

이젠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다크 엘프화 되어 나타나더라도, 그다지 놀랍지 않을 것 같다.

"그럼 이제 그 검투사의 청부 살인 의뢰를 넣으면 되는 건가."

왜 갑자기 이쪽도 서스펜스 모드에 들어간 거지?

그나마 직접 죽이러 간다는 얘길 하지 않는 것은, 바스툴 왕국까지의 왕복 시간 때문이려나.

"아, 아니! 그를 왜 죽여요?"

"제국 내라면 악마 숭배자들이 접근하길 기다리다, 그들을 노리는 방식을 사용하겠지만···. 언제 올지도 모르는 것을 타국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다."

깜짝 놀라 세르펜스를 바라보니, 그가 엉뚱한 소리를 내뱉었다.

이 녀석, 함정 파는 걸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이런 계략펜스 같으니.

"이걸 말하는 걸 잊었네요. 그는 아직 나쁜 짓은 하나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선의의 피해자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했던 이야기대로라면, 결국 악마 숭배 세력의··· 일원이 되는 것 아닌가? 더 큰 해가 되기 전에 없애는 편이 좋다."

그런 이유라면 누구보다 먼저 처단 당해야 하는 건 당신이야, 이 사람아!

'최종 보스에 비하면, 고작 간부 따위···.'

지금이야 그러한 사실을 모르니까 저런 소리를 할 수 있겠지. 나중에 실토해야 할 것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저 생각을 뜯어고쳐 놔야 한다.

"아직 잘못도 하지 않은 사람을 가능성만으로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올곧은 사람입니다. 당장이야 배신당한 상처로 인해, 잠시 세상에 대한 복수르-으읍, 읍···?!"

세르펜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열변을 쏟아내려는데, 갑자기 그가 내 입을 틀어막았다.

'뭐야, 듣기 싫다 이건가?'

그는 입만 틀어막은 게 아니라, 반대 손으로 뒷목을 잡아 고개의 움직임까지 완벽하게 제한했다.

이 상태라면 떼어내려 노력해봐야, 힘과 시간만 낭비될 뿐이다.

눈알만 데록 굴려 불만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며, 그의 손등을 툭툭 쳤다.

"하아─."

한심해 죽겠다는 듯 크게 숨을 내쉬며, 세르펜스가 쓸 수 없게 된 양손 대신 어딘가를 턱짓했다.

그 끝에는 유지스가 커다랗게 뜬 눈을 꿈벅거리고 있었다.

"그자가 누군지 정확히는 모르는 것 아니었나요?"

"워낙 상상력이 뛰어난 분이라. 종종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그냥 추측에 불과하다. 기사 출신의 노예 검투사라니, 필시 사연이 있으리라 생각하시는 거겠지."

"그렇네요!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우선이라···. 오늘도 한 수 배웠어요."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표정으로 유지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한 편의 소설이 쓰이길 기도할 수밖에.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세르펜스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그런데 방금 그 행동, 하극상 아닌가요?"

"···저번에 호위라는 것을 너무 쉽게 들킨 탓에. 부디 막 대해달라 부탁하셨다."

"그, 그러셨구나···. 그런데 그 설정 무슨 의미 있어요?"

"모시는 분이라는 걸 들키면, 본인이 집중 공격을 당할지도 모른다나?"

졸지에 안전을 위해 자존심을 내팽개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래, 안전이 최우선이지!

"그보다, 앞으로의 계획은 뭐지?"

세르펜스가 급하게 화제를 원점으로 되돌려, 나에게 질문했다.

"그를 만나서 본인 확인 후, 저희 편으로 스카웃 하는 겁니다!"

"본인 확인은 어떻게 하나요?"

"아직 밝히지 않으신 정보나, 나름의 판별법이 있으실 테지. 비밀이 많으신 분이라···. 그쪽이 그런 것까진 신경 쓸 필요 없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세르펜스는 후드 안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되는대로 내뱉는 말에, 자신도 사정을 모르면서 열심히 수습해 준다.

그 모습을 보니 좀 미안하긴 한데, 그 이상으로···.

'편하다···!'

잘 키운 최종 보스 하나, 열 주인공 안 부럽다.

만약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세르펜스가 아니라 휴마누스라 치자. 아마 함께 우왕좌왕하다 가진바 밑천을 탈탈 털리지 않았을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세르펜스를 바라보니, 그가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이 보인다.

'지금 때릴까 말까, 고민하는 건가?'

어쩌면 손바닥으로 때릴지, 주먹으로 때릴지 고민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정말 맞기 전에 정신 차리자.

"그럼 리벨론 경은 무조건 바스툴 왕국에 가셔야겠네요."

"예? 아니, 그래야 할 것 같긴 한데. 제가 공작님을 계속 모셔야 하는 처지라. 혹시 위리디아님 혼자···. 가능할까요?"

"그렇네요, 하루 이틀 거리도 아니니. 하지만 저 혼자 투기장에 잠입해서, 그자를 구해내고. 설득까지 해서 제국까지 데려올 자신은···."

슬쩍 유지스에게 일을 떠넘겨보려 했지만 불가능한 모양이다.

세르펜스라면 혼자서도 가능할 텐데. 오래 자리를 비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참. 저분은 함께 가는 거죠? 둘이라면 충분히···."

"도련님은 안됩니다!"

"보다시피 자신의 안전을 무척이나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라,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는 건 불가하다."

쓸데없는 그의 첨언에, 유지스의 표정에 꺼리는 기색이 드리워졌다.

"요, 용케 미끼 작전에 나서셨네요···. 아니, 생각해보니 그때도 최상급 방어 스크롤을···, 아. 안전이 보장되어야, 그렇구나."

혹시 지금 세르펜스는 내게 고양이 취급당했던 것에 앙심을 품고, 복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몹시 타당하고도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결국, 프라시더스 공작을 움직이게 하면 되는 문제 아닌가? 그렇다면 그 보좌관인 당신도 자연히 따라나설 수 있지 않겠습, 않나?"

세르펜스가 또다시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하며 내게 말했다.

"하지만 그분은 악과 타협하지 않으신다고···."

"불법 투기장이라는 악을 무너뜨리고, 그곳에서 고통받는 피해자를 구출하러 가는 일이니."

유지스가 제기한 의문을 세르펜스가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 그러나 시선만은 계속 내 쪽으로 고정하고 있었다.

"당신이 공작을 설득해 볼 수 없습니까?"

"네?! 어떻게 설득한다 쳐도, 그분이 장기간 자리를 비우는 건 너무 티가 나잖습니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세르펜스가 저런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저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방법이 있긴 하다는 얘기일 테지만···.

"저쪽이 악마 숭배자에 관한 소문이라도 들어서, 당신을 통해 비밀리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식으로. 적당히 둘러댄다면, 그가 알아서 황제에게 보고를 올리고 어떻게든 하겠지."

세르펜스가 유지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만히 있으면 자기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나는 대답만 해라. 이건가?

"까짓 거 해보죠, 뭐."

이런 대답 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악마 숭배 세력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쩌죠?"

"일단 도달만 하면 될 거다. 눈앞에서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면 그 또한 어련히 도우려 하겠지."

"그런 식으로 공작님을 막 이용해도 되는 건가요?"

"뒷수습은···."

유지스와 대화를 나누던 세르펜스의 시선이 또다시 내게로 향했다.

"공작님은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일단 저도 아르케 왕국에 둘러댈 말을 생각해둬야겠네요."

"아! 공작님께서 함께 가시니, 호위 도련님은 뒤에서 몰래 쫓아 오셔야 하나?"

그의 몸은 하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은근슬쩍 운을 띄우며 세르펜스를 바라보니, 그가 잘했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들키지 않을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가겠다. 하지만 공작의 무력을 생각한다면 제···, 내가 나설 일은 없을 거다."

"그래도 괜찮겠어요? 가끔 제가 정령이라도 보낼까요?"

"괜히 공작에게 의심만 받겠지."

"아···. 그렇겠네요."

드디어 상황 정리가 끝난 것 같다.

앞으로의 일은 세르펜스가 알아서 착착 진행할 테니, 나는 느긋하게 여행 계획이나 세우면 되려나?

"그러고 보니 함께 일할 사이인데, 아직 이름도 안 물어봤네요. 호위 분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이름이 꼭 필요한가?"

"그, 그야 부르기도 애매하고···."

"굳이 불러야 할 필요가 있는가?"

"···네?"

유지스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다시 한 번 되물었다.

그래, 아예 부를 필요성 자체를 부정할 줄은 몰랐겠지. 솔직히 말해 나도 몰랐다.

이 세상 철벽이 아니다.

"그, 그게 우리 도련님이 낯을 조금···. 네, 무지막지하게 많이 가립니다. 하지만 차츰 익숙해지면 괜찮아 질 겁니다."

"···낯을 가리는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요?"

"아뇨! 잘 생각해 보십시오, 저번에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말투도 상당히 자연스러워지고! 저번보다 대화도 많이···오갔나?"

"그,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긴가민가한 지, 유지스가 요리조리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긴 하지만, 그의 말투가 자연스러워진 것도 사실이니···.

익숙지 않은 반말을 하느라 가끔 멈칫거리는 부분이 있긴 해도,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다.

'저번에 암흑가에서 들었던 그의 하대는 상당히 부자연스러웠지.'

아니, 부자연스러운 정도가 아니었지.

나 이외의 사람에겐 혼잣말처럼 말하거나, 말 허리를 뚝 끊어낸 것처럼 끝맺음이 무척이나 어색하고 딱딱했다.

아예 나에게 말을 건네는 식으로 에둘러 의견을 전달하기도 하고.

'그조차 여의치 않으면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으니.'

역시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고. 나에게 편하게 말해 버릇하니, 슬슬 감을 익힌 모양이다.

"리벨론 경은 알고 계시는 거죠? 저분 이름."

"저야 당연 이름은 물론 얼굴까지 알고 있죠. 하지만 본인이 알리길 꺼리니···."

"그냥 정체를 완전히 숨기시는 건가 확인한 것뿐이에요. 오기로라도 반드시 제힘으로 알아내고야 말겠어요!"

그녀가 두 주먹을 꽉 쥐고, 열의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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