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회
25. 공작가의 기사님 (2)
이어지는 설명으로, 윈스톤이 구해낸 사람들은 교단의 인도를 받아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갔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밖의 자세한 상황은 그가 교단 소속이 아닌 탓에, 전해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언뜻 들려오는 얘기에 의하면, 피해자들의 시체는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쉽긴 하나 [성검의 주인]에서 악마 숭배 세력에서 회수해 갔던 수와 비교하면 확연히 적을 테니, 그것을 위안으로 삼을 수밖에.
그 이후.
윈스톤은 조국에 대한 실망감을 표하며 신성 루멘 제국에 망명 신청을 했다고 한다.
바스툴 왕국 측에서는 차마 그것을 제재할 수 없었고, 루멘 제국은 그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이 주군으로 모시고 싶은 분으로, 평소 존경하던 프라시더스 공작을 꼽았고···.
'세르펜스는 그의 사연을 듣고, 우선 만나보고 싶다는 말을 전해왔다. 뭐 그런 얘기겠지.'
도중에 성검의 선택 결과에 대해서도 들었으나, 세르펜스의 각성 얘기도 함께 들었다고 한다.
"자신만의 철학과 그 굳은 신념! 역시 기사들의 귀감이자, 대륙인들의 모범이라 불리실 만합니다! 이런 분을 제가 주군으로 모실 수 있게 되다니···!"
"아닙니다, 과찬이십니다."
진심으로 감격스럽다는 듯, 윈스톤이 탄복했다.
성검에게 선택받지 못하였지만, 휴마누스의 눈부신 희생으로 말미암아 세르펜스의 자리는 굳건하게 지켜졌다.
그건 그렇고. 세르펜스가 자신만의 뭘 가졌다고?
'철하악~? 구욷은 시인념~?'
겸손한 척하는 세르펜스를 보며, 슬쩍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것을 발견한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그 묘한 기류를 잡아챘는지, 윈스톤이 우리 둘을 번갈아 보며 의아해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제가 무슨 이상한 말이라도 한 겁니까?"
"아뇨, 아닙니다! 그냥 새삼 우리 공작님이 대단하시구나 싶어서···. 뿌듯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다 나옵니다! 하하!"
윈스톤의 질문에 세르펜스는 미소로 말을 아꼈고, 나는 대답하는 척 그를 놀렸다.
과도한 칭찬에 낯간지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세르펜스였지만, 분명 속으로는 두고 보자며 이를 갈고 있겠지.
원래 인생은 되로 주고 말로 받는 법. 아까 그가 비웃은 것에 대한 복수다.
"그보다, 보고사항은 이것으로 끝입니까?"
빨리 이 자리를 떠야겠다고 생각한 것인지 세르펜스가 윈스톤에게 질문했다.
이것은 세르펜스어로써, '어서 끝이라고 말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 보고 사항은 끝입니다. 그리고···."
보고는 끝났으나, 대화는 끝나지 않으려나 보다. 도망펜스는 등장 기회를 얻지 못했다.
"제 가족들까지 영지민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가신의 가족이라면, 프라시더스 가의 식구나 다름없습니다."
가족? 그 단어에 의문이 먼저 머리를 스쳤다.
'그래, 있겠지···.'
[성검의 주인]에서는 그의 가족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리 복수에 미쳐 날뛰었다고는 하나, 가족들이 죽든 말든 하지는 않았을 테고 찾아보긴 했을 텐데···.
'악마 숭배 세력이 그런 복지까지 신경 써 줬을 리는 없고. 윈스톤을 풀어주기 전에 미리 죽였···으려나?'
그런 생각에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자니, 세르펜스가 슬그머니 내 눈치를 본다. 내가 '나의' 가족이라도 떠올리는 줄 안 모양이다.
방금 그렇게 놀렸는데도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 걸 보면, 내가 자식 농사 하나는 제대로 지었다.
나는 괜찮다는 뜻을 담아 그에게 눈빛을 보냈다.
어쨌거나 윈스톤의 얘기를 듣자 하니, 제국까지는 같이 이동했으나 그 이후 갈라져서 가족들은 공작령으로. 윈스톤은 수도로 향했다고 한다.
"가족분들과 함께 영지에서 기다리셔도 되었는데···."
"아닙니다! 가신으로서 제가 먼저 주군을 찾아뵙는 것이 옳습니다!"
그때는 아직 가신이 되기 전 아니었나?
그런데도 윈스톤의 태도는 당당하고 충심이 가득했다. 서임식만 하기 전이지, 실질적으로 그를 받아들인 것이나 매한가지니 대충 그렇다 치자.
'하지만 좀 더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었을 텐데도 용케 떼놓고 왔네.'
긴 시간 만나지 못한 가족이 그리웠을 거다. 그들도 죽은 줄 알았다가 살아 돌아온 아들이 반가웠겠지.
그 재회의 기쁨보다 충성이 먼저라니, 기사도라는 것이 마냥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닌가 보다.
'그러고 보니 공작령에 마지막으로 내려간 게 언제더라?'
이번 달에 내려가면 얼마나 일이 쌓여있을지. 상상만으로 끔찍하다.
"경께서 그러하시다면야···. 그리고 레드포드 경은 기사단의 단원이 아닌 제 개인 호위 기사로서 외부에 알려지게 될 겁니다. 그러니, 그것을 능력으로 증명해 주셔야 합니다."
"예! 결코 실망하실 일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개인 호위 기사란 말에 귀가 번뜩 뜨였다.
권력 자체만으로 따지자면 기사 단장보다는 약하지만, 기사 단장과 비슷하게. 혹은 그 이상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위치가 공작의 개인 호위다.
'알려지게 된다는 말은, 아직 인정은 안 하겠다는 뜻인가.'
쉽게 내줄 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능력으로 증명해보라는 여지를 남기기는 했으나,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셈.
이 와중에 세르펜스는 깨알같이, '이런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어, 정말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가련미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이놈의 연기펜스 진짜···!'
아무튼, 저런 연기를 하면서까지 윈스톤을 명분상으로나마 개인 호위로 두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기사단은 한 명 한 명의 기사들이 모인 집단이다. 그러나 전장에서의 기사단은 단 하나의 존재로서 움직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다년간 서로에게 맞춰 온 자들이었다.
종자 시절부터 쭉 함께해 온 이들이니만큼, 새로운 인물이 끼어든다면 전력의 증진이 아니라 감퇴를 맞이할 것이다.
이미 유기적으로 연결된 진형(陣形)을 다시 분해하여, 새로운 틀을 짜고, 그것에 맞춰나가는 일은 상당한 시간을 소비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관계가 기존의 것보다 좋을 것이란 보장도 없으니.
'갑자기 기사단에 공석이 나지 않는 이상, 외부에서 신입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겠지.'
그 때문에, 보통 외부에서 스카우트된 기사는 개인을 위한 호위 기사가 되거나, 그를 중심으로 새로운 기사단을 꾸리기 마련이니.
그렇다고 공작가에서 윈스톤 한 명을 위해, 새로운 기사단을 창설할 수는 없었다.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어떤 직책을 받게 될지 정도는 보통 사람의 머리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윈스톤은 이것을 어찌 받아들일까 싶어, 그의 얼굴을 살폈다.
이미 각오했다는 표정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세르펜스의 호위다. 기쁘지 않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마냥 기뻐할 수도 없겠지.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호위는커녕 짐이 안 되면 다행인지라, 윈스톤의 두 주먹이 긴장으로 인해 꽉 말아 쥐어졌다.
'그래도 나름 악마 숭배 세력의 간부 픽인데···.'
그것도 장기 프로젝트까지 준비하며, 공들여 키울 예정이었다. 적어도 잠재력 하나만큼은 확실히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
아직 그가 명성을 얻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지 못하고, 그저 그런 백작 가문에 휘둘린 이유는 환경 탓일 거다.
'개차반 같은 놈의 뒤치다꺼리나 떠넘겼으니, 참 잘도 성장하겠다.'
이런저런 사고에 휘말리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놈을 쫓아다니느라 바빠 제대로 된 수련 시간도 확보하지 못했겠지.
필시 악마 숭배자들이 그를 투기장에서 계속 굴린 이유 중에는, 그의 실력을 최고치까지 끌어내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투기장에서 구르는 것보다는, 공작저의 환경이.
오러를 봉인 당한 채 약물에 취해 이지(理智)를 상실한 일반인과 생사투를 벌이는 것보다, 마음껏 제 실력을 발휘하며 공작저의 기사들과 대련을 하는 것이.
그의 잠재력을 피워내기엔 안성맞춤일 것이다.
'거기다 세르펜스가 조금만 신경 써서 그를 봐준다면···.'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힘을 얻어 마인(魔人)으로 거듭났던 [성검의 주인] 속 흑기사보다는 못하겠지만, 인간 윈스톤 레드포드로서는 훨씬 더 강해질 수 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당분간은 병영에서 다른 기사분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명, 받들겠습니다!"
결의를 다지는 윈스톤을 바라보며, 세르펜스가 믿고 있겠다는 둥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며 생긋이 미소 지었다.
"숙소나 기타 자세한 사항은 집사가 안내해 주실 겁니다. 그리고 혹여, 공작저 생활 중 필요한 사항이 생기신다면 언제든지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헉,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미 충분합니다!"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하는 배려심 넘치는 얘기에, 윈스톤이 헛바람을 들이키며 황송함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윈스톤이었다면, 시간 날 때마다 검술을 봐달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그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그냥 거절해버리다니···?'
그게 아니더라도, 다른 누구도 아닌 세르펜스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적어도 여지는 남겨뒀어야 했다.
'나라면 아주 요긴하게 써먹었을···. 응?'
그러고 보니, 세르펜스의 마지막 말이 어딘가 익숙했다.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보니, 내가 처음 왔을 때 그에게서 들었던 말이었다.
'진짜로 누구에게나 하는 기본 멘트였구나?'
저런 얘기를 들었다고 바로 공작에게 철판 깔고 부탁할 만한 사람은 없을 테니, 되는대로 막 날리는 거겠지.
아무리 직접 말해도 좋다는 얘기를 들었더라도,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었다.
보통은 알아서 처리하려 하거나, 집사인 한스를 통해 필요 사항을 전달할 것이다.
'물론 이 세계의 보통이라면 말이지.'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다.
직접 확실하게 전달하는 방법이 있는데, 왜 굳이 중간 단계를 거쳐 빙빙 돌아가는 비효율적인 방식을 택한단 말인가.
오히려, 그가 이런 얘기를 했던 것을 어째서 지금까지 잊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자연스레 내 시선은 세르펜스를 향했고, 언뜻 마주친 시선에 그가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무슨 부탁을 할지 까지는 몰라도, 대충 무언가 요구하려 한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주군?"
"···으음, 제가 너무 경을 부담스럽게 하였나 봅니다. 저는 그저 레드포드 경이 한시라도 공작가에 빨리 적응하셨으면 하는 마음에, 그만···."
분명 세르펜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표정이었다. 한데 윈스톤이 의문을 표하자마자, 그럴듯한 변명이 바로 튀어나왔다.
누가 들으면 정말 그 이유로 그런 표정을 지은 줄 알겠네.
자신의 욕심 때문에 부담감을 안겨줘서 너무나도 죄송스럽다는 표정을 꾸며낸 세르펜스 때문에, 윈스톤은 이럴 땐 어쩌면 좋으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아무거나 부탁해봐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잖습니까?"
윈스톤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고, 세르펜스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허, 허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찌 감히 주군께 부탁한단 말이오?"
"레드포드 경. 아니지, 제 후배를 자처하셨으니 윈스톤 경?"
"말씀하시오."
"모든 부탁이 상대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공작님은 윈스톤 경의 주군이잖습니까? 그에게도 이득이 될 만한 부탁이 분명 있을 텐데요?"
무슨 선문답이라도 들은 듯, 윈스톤이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 세르펜스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눈치챈 모양이다. 별거 아니란 생각에, 안도의 기색을 보였다.
누가 보면 내가 그에게 맨날 이상한 거라도 시키는 줄 알겠다.
"틈틈이 검술을 봐달라고 하시죠. 윈스톤 경이 강해진다면, 주군으로서 그보다 더 큰 득이 어딨겠습니까?"
그가 생각이 짧아서 이를 떠올리지 못한 것은 아닐 거다.
단지, 이제 막 그의 수하로 들어왔는데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이 파렴치하게 보일까 봐. 괜히 주군을 번거롭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여, 생각을 접었을 뿐.
자신은 그저, 가끔 세르펜스가 내킬 때 검을 봐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다고 여기고 있는 게 아닐까?
"과연, 선배님···!"
···아닌가?
어찌 감히 주군을 귀찮게 만들 수 있느냐 묻는다면 어떤 식으로 그를 설득해야 하나 머리를 굴렸으나, 괜한 에너지 소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