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회
31. 공작가 동상이몽 (3)
나와 팔숨 경이 비공식적인 만남을 갖고 난 후, 두 공작 가문의 정보 단체들의 업무가 원상복구 되었다.
수도에서 나도는 '소문'만 간간이 주워들었던 지난날은 안녕하고, 다시 제국 전역의 '정보'가 모여들었다.
그 정보 중에는 당연히 페라리우스 백작가의 최근 추세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이야, 진짜 제대로 압박하는 데요?"
아르젠토 공작가는 저래도 괜찮은 건가 싶을 정도로, 페라리우스 백작가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었다.
자문회에서 자본의 바탕이 되는 철광석을 비롯한 여러 광석에 붙이는 세금을 올려야 한다는 법안을 내고, 기어이 그것을 매우 빠르게 통과시켰다.
그걸로도 모자라 백작이 가진 사업체들의 영업을 방해하기까지.
페라리우스 가문의 정보원들을 묶어 놓고도 여력이 남아, 그들의 뒤를 캐는 건 덤이었다.
"선우가 웬일로 이런 것에 관심을 보이지?"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거죠, 뭐."
세르펜스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럴 만도 한가?'
나는 여태껏, 한스가 보고서를 올리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집사로서 사용인이나 저택 관리에 관한 보고뿐인 줄 알아서.
거기에 정보 단체의 수장으로서 올리는 보고서가 더해졌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는, 어차피 세르펜스가 알아서 잘하니까.
'반드시 알아야 하는 내용이라면, 묻지 않아도 세르펜스가 어련히 말해 주겠지!'
그런 생각으로, 아예 신경을 꺼버렸다.
내가 개인 사업을 벌일 것도 아니고, 어디의 누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뭔가. 관심이 없었다기보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가깝다.
그런 내가 오늘은 한스가 보고서를 올리고 나가자마자, 세르펜스의 자리로 다가가 주변을 알짱거리며 그것에 관심을 보이니 이상하게 느껴졌나 보다.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좀 알겠는가?"
세르펜스가 기특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다 읽은 보고서를 내게 건네주면서 묻는다.
그것을 받아서 다시 처음부터 꼼꼼히 확인했다.
"글쎄요? 팔숨 경이 제대로 칼을 갈았다는 것 정도?"
"그리고?"
"그리고요? 어···, 딱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 아! 근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공격해도 되는 겁니까? 팔숨 경은 후환이 두렵지도 않나?"
앞뒤 분간 못 하고 달려드는 양반으로는 안 보였는데.
아무리 악마 숭배 세력이 먼저 뒤통수를 쳤다고 해도 그렇지, 그들은 그딴 거 신경도 안 쓸 거다.
'게다가 아직 확실히 친 것도 아니고, 살짝 빗겨 친 정도 아닌가?'
아직은, 세르펜스가 날린 단검을 팔숨 경이 준비한 암살자가 날린 것이라 외쳤을 뿐이다.
사실 그들도 단검을 누가, 왜 날렸는지 모르는 상황.
어쩌면 페라리우스 백작가 측에서는, 어째서 팔숨 경이 눈에 불을 켜고 자신들을 몰아세우고 있는 건지.
영문을 몰라, 당황하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사실을 알면 되게 억울해하겠네.'
그러게 마음 좀 곱게 먹을 것이지.
먹는 음식에 장난질을 치니까 이런 일이 생겨난 거다.
‘안 그랬으면 세르펜스도 단검을 안 던졌지!’
하여간,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이 제일 나빴다.
약을 탄 팔숨 경이나, 그것을 타라고 준 스테인 경이나. 다 거기서 거기다.
'마침 나와 팔숨 경이 만나고 난 이후부터 압박이 시작됐으니까···.'
그들이 보기에는 팔숨 경이 먼저 자기들을 배신했다고 생각하기 딱 좋았다.
"그 반대다."
"반대요? 그럼 후환을 걱정해서 저러는 거라고요?"
"그래."
세르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선우에게 페라리우스 백작가 측이 악마 숭배 세력과 관련이 있다고 밝혀 두었으니, 그들이 악마 숭배자라는 것을 증명해 낼 수 있다면 지금 아르젠토 공작가의 행보는 모두 그들과 싸우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그렇죠."
"그들을 철저히 몰아붙여서 악마 숭배 세력의 힘을 끌어오게 만들 수만 있다면 이후 진실이 밝혀졌을 때. 그에 대한 공으로 보상을 받는 것뿐 아니라, 교단에 보호를 요청할 수도 있겠지."
증인 보호 조치 같은 거려나?
악마 숭배 세력의 자금줄 중 하나를 끊어낸 쾌거를 이룩한 셈. 보호를 받을 만도 하다.
'그런 이유라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이해가 가네.'
어중간한 태도를 보이다가, 가장 큰 공로를 다른 사람에게 뺏기기라도 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노려도 그쪽을 먼저 노릴 테니, 보복이 두렵다 뭐다 말해봐야 제1 공로자만 싸고돌 뿐이다.
"근데 우리는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구경만 해도 됩니까? 아, 세르펜스가 몰래 잠입해서 감시하는 거 말고요."
"백작가의 금전 흐름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
"그거면 돼요?"
"그럼 페라리우스 백작가 쪽에도 접근해서 이간질이라도 할까?"
세르펜스가 부러 짓궂게 말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지금 저 놀리는 거죠?"
며칠 전.
팔숨 경을 만나러 가기 직전에, 세르펜스에게 '이간질을 할 거다, 왜 말을 못 해?'와 같은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구태여 우리까지 진흙탕에 발을 담글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당장은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다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그때 나서도 늦지 않다."
내 말이 아주 맛있나 보다. 자꾸 씹는 걸 보면.
녀석이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내 말을 씹으며 평이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 * *
또다시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아르젠토 공작가는 페라리우스 백작가를 일방적으로 열심히 두들겨 팼고, 그동안 악마 숭배 세력의 움직임은 없었다.
'이번 달 마지막 주에 리벨론 영지에 내려가려던 계획을 다음으로 미뤄야 하나?'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쯤.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오늘 새벽, 아르젠토 공작저가 테러를 당했습니다. 십수 개의 마법이 동시에 저택을 덮쳤다고 합니다."
사건만 터진 것이 아니라, 아르젠토 가문의 저택도 터져 나갔나 보다.
'십수 개씩이나?'
그렇게 많은 마법사가 한 번에 마법을 쓰는데, 그걸 막지도 않고 그냥 두었을 리는 만무.
덮쳤다고 했으니 미수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확실히 마법에 당했다는 소리일 터.
"마법 스크롤입니까?"
내 질문에, 보고를 하던 한스가 잠시 말을 멈추고 놀랍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틀렸어요?"
"···아뇨, 맞···습니다."
한스가 무척이나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도 너무한 양반이다.
그나저나 스크롤이라니.
솔레르티아에게 구매해간 것들이려나?
"피해 범위는 저택 본관의 일부가 소실되었으며, 사상자도 꽤 된다고 합니다. 정확한 수는 현재 조사 중입니다."
"본관이요?! 저택 입구에서 본관까지 거리가 꽤 될 텐데요?"
"···안 그래도 그 얘기를 하려던 참입니다."
내가 또다시 중간에 끼어들자, 한스가 슬쩍 눈총을 준다.
세르펜스도 조용히 듣고 있는데, 왜 자꾸 자신의 말을 잘라먹느냐는 것일 테지.
질문이 있다면 다 듣고 나서···. 아닌가? 그냥 닥치라는 눈빛 일지도.
"정기적으로 식료품을 배달하던 짐마차가 탈취당했다는 모양입니다. 범인은 현장에서 바로 붙잡혔습니다."
문 앞을 지키던 병사는 배달하는 사람이 바뀌었는데도 알아보지 못한 건가?
아니면 새로 온 직원인 줄 알고, 마차 안의 식료품만 확인하고 그냥 들여보내 준 거려나.
'테러할 것을 알면서, 미쳤다고 들여보내 준 건 아닐 거 아냐?'
오늘과 같은 일이 터졌을 때, 가장 먼저 의심받고 책임져야 하는 자가 문지기다.
마법 스크롤은 기본적으로 종이였다.
돌돌 말린 두루마리를 펼쳐 몸에 감으면, 몰래 가지고 들어오지 못할 것도 없다.
"그리고 주인님께서 투자하신 마법 스크롤 상점, <현상의 왜곡>의 주인이 체포당했습니다."
"솔레르티아 씨요?! 대체, 왜···."
한스가 또다시 째려본다.
"···계속 하세요. 네, 진짜 조용히 하겠습니다."
오늘 새벽이면 아직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사용한 스크롤의 잔해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누가 만들어 낸 것인지 알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
"잡힌 범인이 그녀를 지목하며, 자신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구현된 마법과 스크롤의 잔해로부터 흑마력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작정했구나,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솔레르티아와 처음 만났을 때.
세르펜스가 분명, 비교할 표본이 많으면 동일인이 만든 스크롤이 맞는지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서명인가 뭔가가 없더라도···.'
참고할 표본이 많으면 글씨체를 흉내 내는 것처럼, 그녀가 제작한 스크롤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뜻.
그런 위조를 경계해서 서명을 만들어 넣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악마 숭배자도 완벽을 기하기 위해 그것을 알아내려 한 걸 테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났는데, 알아냈으려나?'
잠깐, 그전에···.
"솔레르티아 씨에게는 흑마력이 없잖아요."
"제작에 사용된 재료에 담긴 마력의 성질 또한, 완성된 스크롤에 영향을 끼칩니다."
마법사는 아니지만, 마법에 일가견 있는 세르펜스의 답변이다.
흑마법사가 아니라도 마법 스크롤에 흑마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
- 똑, 똑, 똑.
정갈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제온이었다.
"긴급 자문회를 소집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사건이 터진 것은 새벽이고, 지금은 이미 해가 중천이다.
자문회의 수장을 맡은 아르젠토 공작의 저택에서 문제가 생겼으니, 그것을 처리하느라 늦었나 보다.
"시온 경, 갑시다."
세르펜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따라 일어서서 그의 뒤를 따랐다.
밖으로 나오니 마차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제온이 연락을 받자마자 집무실로 올라오면서, 시종에게 마차를 대기시켜 놓을 것을 지시했나 보다.
우리가 마차에 오르자, 마부는 익숙하게 말들을 출발시켰다.
"잡혔다는 테러범이 그때처럼 세뇌에 걸려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걸 세르펜스가 풀어내서 모두 거짓말이었다고 밝히게 하면 되잖아요!"
"글쎄. 내가 그것을 풀어내어 다른 증언을 듣는다고, 사람들이 그것을 믿을 거라 생각하나? 처음부터 계산된 것이라 생각하겠지."
세뇌 상태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풀린 후에는 누구를 범인으로 지목해라.
···따위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오해하는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오늘 자문회는 폐하께서 주도하실 테지만, 테러의 피해자이자 자문회의 수장인 아르젠토 공작의 발언에 가장 많은 무게가 실릴 거다. 그저 소모품일 뿐인 범인에게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럼 문제없겠네요!"
팔숨 경은 페라리우스 백작가가 악마 숭배 세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적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르젠토 공작은 팔숨 경의 의견에 상당히 휘둘렸으니.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다.
"그 보좌관이 갑자기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면 큰 문제는 없겠지."
"···갑자기 그런 말을 들으면 또 불안해지잖습니까!"
"별일 없을 거다."
이 자식이 지금 나한테 병 주고 약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