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42화 (142/925)

142회

31. 공작가 동상이몽 (5)

"냉정하게 현실을 보고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저 여인이 자신의 정체를 속이고 접근했을지도 모르나, 적어도 프라시더스 공작은 무고하리라 생각합니다."

갑자기 얘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황제를 보던 아르젠토 공작의 시선이 내가 있는 방향을 향했다. 정확히는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도와줄 테니, 모든 죄는 솔레르티아 한 명에게 몰아주고 모르는 척 빠지라는 건가?'

자리를 채운 의원들이 그의 의견에 긍정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언뜻언뜻.

"그럼 이게 1년 전부터 계획되었다는 소린가?"

"프라시더스 공작님께서 너무 순진하셔서 속으신 모양이야."

···따위의 말이 들려왔다.

'이거 안 좋은데?'

당장은 동정표를 얻고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본다면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다.

세르펜스라는 한 명의 인간에겐 문제가 없을지언정, 제국의 최고 귀족인 공작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악마 숭배자에게 속아 넘어가 투자를 했다?

이제까지 성검의 주인 내정자로서 고평가되었을 뿐,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식의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이번 사건은 두 공작가 사이를 이간질하여 제국을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악마 숭배 세력의 계략이었다, 그리 말하는 겐가?"

"네, 그러합니다."

아르젠토 공작이 지금 세르펜스를 두둔해주는 이유는 진짜 적은 페라리우스 백작가라는 사실을 팔숨 경에게서 들었기 때문.

세르펜스가 악마 숭배자일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

그러나, 그것이 아르젠토 공작이 솔레르티아를 믿을 이유는 되지 않았다.

그녀가 정말 악마 숭배자라고 의심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악마 숭배자가 그녀의 스크롤을 대량으로 구매해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나와 세르펜스, 윈스톤, 솔레르티아.

그리고···.

'아. 그때 그 가짜 스토커 이름이 뭐였지?'

생각해보니 이름도 확인 안 했네. 어쨌거나 그렇게 다섯 명뿐.

아르젠토 공작은 그 사실을 모른다.

'아니면, 스크롤이 위조라는 것을 증명해내기 어려울 것 같아서려나?'

공작인 세르펜스가 괜히 편을 들어주다가, 그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같이 휘말려서 구설에 오르내리게 되면 제국이 뒤숭숭해질 것을 염려하여 저러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부정하고 싶어도 그냥 얌전히 눈감고 모르는 척하라고···.'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불안하고 초조한 사람이 누구인가 하고 묻는다면, 단연코 솔레르티아. 그녀라고 할 수 있다.

이대로라면 완전히 악마 숭배자로 낙인이 찍힐지도 모른다.

그녀의 성격대로라면 사용된 마법 스크롤을 확인해 보겠다고 나섰으리라.

그리고 자신의 것과 어떤 점이 다른지. 그 차이점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설명했어야 했다.

그러나···.

'솔레르티아가 지금 괜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아니지.'

마법사 헤론드의 독백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스크롤을 만든 자로 지목될 것을 염두에 두어, 중간중간 고의로 평소와 다른 표현을 섞었을 가능성.

그것이 문제였다.

자신의 입으로 본인을 변호한다면, 미리 준비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게 되어버렸다.

'···저 자식도 악마 숭배자 아냐?'

그가 한 지적은 분명 타당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괜스레 그런 의심이 떠올랐다.

'의심암귀에 씌었나···.'

팔숨 경도 그렇고, 페라리우스 백작과 그 보좌관인 스테인 경도 그렇고.

이곳에 와서 알고 지냈던 사람 중에서 악마 숭배 세력과 관련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미심쩍은 부분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괜히 다 의심스럽다.

사람을 믿는 것조차 어려운 세상이다.

"두 공작 가문을 이간질한다니···. 그렇다면 저 여인은 일부러 자신의 증거를 남겨 잡혀 왔다는 것이 되지 않습니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발언자는 페라리우스 백작이다.

'잠깐만. 은근슬쩍 솔레르티아가 악마 숭배자라고 확정 짓고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의문을 제기하는 척하면서, 그것을 당연한 전제로 깔아버린다.

'세르펜스 이 녀석은 언제까지 잠자코 있을 생각이지? 마법사의 견해를 듣고 나면 바로 나서려는 게 아니었어?'

아르젠토 공작이 나서준 것으로 인해, 좀 더 지켜보기로 결정한 거려나···.

답답한 마음에 시선을 내려, 앉아 있는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당연하게도 표정은 보일 리가 없고, 대신 그의 머리 가마가 눈에 들어온다. 정수리조차 쓸데없이 정결(淨潔)하다.

'무슨 얼굴을 하고 있으려나···.'

고개를 그의 앞으로 빼꼼히 내밀 수도 없고.

솔레르티아가 걱정스럽다는 낯을 꾸며내고 있을지, 그녀를 버릴 생각으로 배신감에 상처입은 표정을 가장하고 있을지, 믿고 있다는 결의를 연기하고 있을는지.

'아무리 그래도 두 번째는 아니겠지.'

세르펜스는 그녀의 스크롤을 모조하기 위해 악마 숭배 세력이 손을 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의감에 넘쳐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면 안 된다, 그런 이유는 아닐지라도.

'지금 솔레르티아를 외면했다가, 그녀가 무고하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면 비난을 받게 될지도 모르니까.'

나중이라 할 것도 없다. 나와 윈스톤 또한 그녀의 무고함을 알고 있었다.

"그 말은 프라시더스 공작을 의심하는 거요?"

"누가 그리 말했습니까? 두 공작 가문 사이를 이간질한다는 것이 착각이 아닌가 해서 드린 말입니다."

얼굴을 굳히며 되묻는 아르젠토 공작을 보며, 페라리우스 백작이 비웃는 듯한 투로 대답한다.

멋대로 오해하여 프라시더스 공작을 적대했던 건 바로 당신이 아니었냐는 질문.

"다른 사람도 아닌, 백작이 그런 소리를 할 줄은 몰랐소이다."

아르젠토 공작이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이번에는 페라리우스 백작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건 무슨 뜻입니까?"

"시치미 떼는 것도 정도껏 하라는 소리요."

"···제가 두 공작가 사이를 이간질했다는 겁니까?"

"아까부터 그리 말하고 있었지 않소."

와, 진짜 화끈하고 거침없이 터트리네.

이런 양반이 왜 자신의 보좌관에게 휘둘리고 있는 거람.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최근 저를 못마땅하게 여기신다는 건 알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모함까지 하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증거는 가지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요?"

페라리우스 백작이 억울하게 중상모략을 당한 사람처럼 말했다.

자신은 무척이나 떳떳하고, 그러니 당당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증거라···."

아르젠토 공작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끌었다.

그를 바라보고 있던 페라리우스 백작의 시선이 아주 잠시 다른 곳을 향했다. 아마 아르젠토 공작 곁에 서 있는 팔숨 경을 본 걸 테다.

대략, '설마 자신이 악마 숭배 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걸, 공작에게 말한 건 아니겠지?' 같은 생각을 한 것이 아닐까 한다.

'아, 맞아! 쟤네 우리가 약물 조사한 거 모르지?'

마시지도 않은 음료를 혹시나 하는 생각만으로 성분 검사하고 다니면 그냥 의심병 말기 환자다.

그것도 보좌관 모임이 있었던 날처럼 정신없는 상황에서 그랬다면 더더군다나.

혼이 쏙 빠져서 그날 입었던 더러워진 옷 따윈 쳐다보기도 싫어, 진즉에 갖다 버렸다고 생각하겠지.

"그동안 그런 증거도 없이 내가 괜한 사람을 몰아간다고 생각했던 거요? 참으로 억울했겠구려."

아르젠토 공작이 오만하게 턱 끝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진짜 무언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 페라리우스 백작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꾸며냈지만, 긴장으로 굳은 얼굴 근육은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크흠-! 이게 도대체 다 무슨 소리란 말인가."

황제가 크게 헛기침을 하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었다.

그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설명은 제가 아니라 프라시더스 공작이 해 주실 겁니다."

아르젠토 공작이 이제 자신은 할 만큼 다 했다는 듯, 세르펜스에게 바통을 넘겼다. 황제를 비롯, 모두의 시선이 세르펜스에게로 쏟아졌다.

"제가 제시할 수 있는 증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방금 언급되었던 증거품은 저택에 있으니, 사람을 시켜 가져오라 이르겠습니다."

"알겠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

"사람입니다. 약 한 달 전, 수도 감옥에 수용된 '크로만 베롬'을 증인으로 요청합니다."

그자의 이름이 크로만이었나 보다.

세르펜스가 자신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움직이려는 것을 알아챈 솔레르티아가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페라리우스 백작과 스테인 경이 귓속말을 주고받는 모습도 보였다.

백작은 다소 심각한 얼굴이었으나, 스테인 경이 그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이니 한결 편안해졌다.

'어차피 죽었을 테니, 문제없다는 얘길 하고 있겠지.'

당연한 말이지만 그는 멀쩡하게 살아있다.

수도의 감옥에 갇힌 자에 대한 정보를 열람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그 기록이 남으니, 확인하지 못했나 보다.

"죄인을 말인가? 승인은 하겠네만···. 지금 두 공작은 페라리우스 백작을 이번 일의 배후로 지목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맞는가?"

"그렇사옵니다, 폐하."

"네. 그렇다고 사료됩니다."

황제의 질문에 아르젠토 공작과 세르펜스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다들 웅성거릴 거라 생각했으나, 반대로 숨소리조차 신경 쓰일 정도의 적막이 회의장을 가득 채웠다.

그것을 깬 것은 황제의 탄식이었다. 허어─, 하고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가 자신의 보좌관에게 손짓했다.

"사람을 보내거라."

목적어를 생략하였지만, 그것이 어디에. 무엇을 위해 보내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작저에는 무어라 전하면 되는가?"

"집사에게 보좌관 모임에서 있었던 일과 관련된 자료를 달라고 하면 알아서 건네줄 것입니다."

황제가 자신의 보좌관에게 눈짓을 보내자, 그가 예를 갖추어 몸을 숙여 보인 후 회의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럼 이제 설명해 주게나. 증거품이 없더라도 정황 설명 정도는 가능하겠지."

"네. 다만 증인은 그 증언이 필요하니, 우선 증거품에 대하여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황제의 고개가 느릿하게 끄덕여졌다.

"저와 아르젠토 공작이 페라리우스 백작을 의심하게 된 계기는 한 달 전 있었던 보좌관 모임 때문입니다."

"그 얘기라면 들었네. 아르젠토 공작의 저택에서 경의 보좌관이 사고를 당했던 일이지 않은가. 그것이 페라리우스 백작의 소행이라는 겐가?"

"예, 그러합니다."

세르펜스의 말에 페라리우스 백작과 스테인 경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대충 네가 했냐, 나는 안 했다. 뭐 그런 느낌이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사건이 일어난 후, 돌아가기 위해 시온 경···. 저의 보좌관이 마차에 올라타니 그곳에 한 장의 카드가 있었다고 합니다. 가져올 증거품 중 하나이나, 이 자리에 없으니 그 내용을 먼저 읊어 드리겠습니다."

"그리하게."

황제의 허락이 떨어졌다.

세르펜스는 바로 말하는 대신, 입에 담는 것조차 끔찍한 일이라는 듯.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입을 열었다.

"[팔숨 경이 당신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으로 당신이 마실 음료에 약을 탔습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돌아가시는 대로 옷에 묻은 음료들의 성분을 조사해보십시오.]"

모두의 시선이 팔숨 경에게 꽂혔다.

'단, 두 명만 빼고.'

페라리우스 백작과 스테인 경의 시선은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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