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회
32. 공작님과 리벨론 백작가 (1)
"결국 가장 중요한 메인 요리는 다 식어버려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다음에 사줄 테니 너무 서운해하지 마라."
공작저로 돌아가는 마차에 올라 아쉬운 마음에 툴툴대자, 세르펜스가 장난감이 갖고 싶다 떼쓰는 어린아이를 타이르는 투로 말했다.
상당히 불만스러웠지만, 그래도 챙길 건 챙겨야겠다.
"물리기 없기?"
"그래, 그래."
세르펜스가 구깃구깃 주름진 크라바트를 끌러내며, 대충대충 대답했다.
어째 내 질문에 대한 답보다 크라바트를 포개어 접는 그 손길이 더 정성스럽다.
곱게 접힌 그것은 그의 품속에 잘 들어갔는데, 내가 한 말은 그의 귓구멍에 들어간 것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저 자식, 옷 구겨지는 거 싫어서 일부러 저거 잡은 거 아냐?'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한 증거가 바로 눈앞에 있다.
언젠가 녀석의 옷에 붉은 토마토소스라도 몰래 튀겨놔야 성이 좀 풀릴 것 같다.
"···뭘 그리 빤히 보는 거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가?"
세르펜스가 의아하게 물었다.
이 계획은 세르펜스가 모르게 비밀리에. 또, 은밀하게 진행되어야 했다.
고로, 나는 그것을 녀석에게 말할 생각이 없다. 비밀 결사 단체 수장으로서, 그것을 반드시 해내고야 말 것이다.
"할 말이라···. 그러고 보니, 웬일로 팔숨 경을 용서해 주신 겁니까?"
"용서해 준 것은 아니지. 그냥 넘어가 준 것뿐."
"아무튼요. 전 세르펜스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교단에 넘겨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할 줄 알았는데."
그가 '아르젠토 공작의 면을 봐서.'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생각은 없다.
"···내가 그자를 끝내지 않아서 섭섭한가?"
끝내긴 뭘 끝내? 이승에서의 삶을?
눈망울을 애처롭게 빛내는 가련펜스의 얼굴로 서스펜스의 대사를 입에 담다니. 저건 대체 무슨 놈의 환장할 콜라보란 말인가.
이상한 베리에이션이 생겨났다.
"아뇨, 전혀요! 보아하니 세르펜스가 돕지 않았어도 아르젠토 공작이 황제를 잘 설득했을 것 같은걸요, 뭘."
"······."
"아, 그렇다고 슥삭-, 따위를 바라는 건 아니니까 방금 한 생각은 마음속 깊숙한 곳에 도로 집어넣으시죠?"
세르펜스가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지?!'라는 표정으로 흠칫 놀랐다.
집사 몰래 테이블 위의 컵을 밀어서 떨어뜨리려다 걸린 고양이도 아니고···.
"어떠한 간접적인 의도가 담기지 않은 그냥 말 그대로의 질문이니까, 편하게 말해주세요. 그냥 궁금해서 그럽니다."
"···선우는 아무렇지도 않은가? 당신을 위협한 존재를 그대로 풀어 두는 것이?"
"세르펜스 덕분에 별로 위협을 느끼지 못해서요."
이는 중의적인 표현으로 그 덕분에 미수에 그쳐 위협을 느낄 새도 없었다는 뜻이며, 동시에 그가 던진 단검이 더 직접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굳이 입에 올리지는 말아야지. 또 시무룩해질라.'
세르펜스는 긍정적으로 해석했는지, 못내 뿌듯해하였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아르젠토 공작가를 적으로 두면 감내해야 할 문제가 많다. 더군다나, 악마 숭배 세력의 힘이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고, 악마가 대륙 각지에서 소환될 예정이지 않은가."
그때가 오면 제국에만 붙어있기 힘들 테니, 아르젠토 공작가와 척을 지면 곤란하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아예 적극적으로 돕는 게 낫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나름 미안함과 고마움을 가진 것 같긴 한데, 확실하게 빚을 지게 하면 도움이 될 텐데···."
"···세상에는 만에 하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야지."
그 말이 아주 거짓은 아닐 테지만, 세르펜스는 팔숨 경을 돕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는 얼굴을 조금도 숨기지도 않았다.
'그래, 뭐 싫으면 어쩔 수 없지.'
싫다는 애한테 억지로 무언가를 시킬 생각도 없고, 티끌만 한 위험 요소라도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도 맞다.
"이제 어쩌실 겁니까?"
"집무실에서 서류···는 내일 보고, 오늘은 이만 씻고 서재에서 쉬다가 자러 갈 예정이다."
아까는 없는 의도를 찾아서 답변하길래 그러지 말라 했더니, 이번엔 너무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답한다.
그것만 빼면 몹시 만족스러운 답변이다.
돌아가자마자 칭찬 도장 판을 만들어, 도장을 찍어주고 싶을 정도로.
"무척이나 훌륭한 답변이지만, 질문의 의도는 그게 아닌데요?"
"그렇군. 이번 일의 수습은 아르젠토 공작이 자처했으니, 리벨론 백작령에 내려갈 때인가."
"···그것도 걱정이긴 한데, 그거 말고 말입니다."
알쏭달쏭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뚫어지라 바라보던 세르펜스가 이내 깨달았다는 낯을 띠었다.
"아르젠토 공작이 말했던 '암흑가'의 악마에 관한 얘기인가?"
"네, 정답입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분발해주세요!"
세르펜스가 '마지막 말을 굳이 덧붙일 필요가 있었나?'하고 따지는 듯한 얼굴을 하였다. 그에, 나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응수해 주었다.
대놓고 들으라는 듯, 그가 절대 혼잣말일 수 없는 데시벨로 '뻔뻔하긴···.'하고 중얼거렸다.
"하여간 그거라면 내일 황궁에 가서 논의를 해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암흑가에 관한 것만 알려졌다면 모를까, 악마가 그곳에서 소환될 것이라는 얘기 또한 같이 나왔으니 크게 변동 사항은 없을 거다."
"그 표정은 '없을 거다.'가 아니라 '없게 할 거다.'쯤으로 해석되는데, 제가 잘못 본 겁니까?"
"···악마가 소환된 것이 알려지고 나서 그곳으로 향한다면, 도착했을 때면 이미 큰 인명피해가 난 후일 거다.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악마보다 확실한 소환 위치를 아는 편이 여러모로 유리하지. 제물도 그 내부에 있는 이들로 충당할 테니, 제국의 오랜 골칫거리도 단번에 일소할 수 있다."
세르펜스가 나도 알고 있을 정도의 당연한 이야기를 구태여 입에 담았다.
그 말인즉슨, 만일 암흑가를 미리 소탕했을 때 다른 곳에서 악마가 소환될 경우를 언급하며, 걱정하는 척 그것을 방치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소리다.
"타국의 경우, 악마가 나타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치워놓고 생각하겠지마는 제국은 다르잖은가."
"그렇죠. 세르펜스도 있고, 성검의 주인인 휴마누스를 언제든 오라 가라 하는 것이 가능하니까."
제국은 악마가 나오는 것 자체를 막을 필요는 굳이 없었다.
어디에서, 무엇을 제물로 삼아 소환되는가. 그것이 중요할 뿐.
"황제와 아르젠토 공작도 생각이 있으니, 내가 먼저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을 방관하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버려두는 것은 아니고, 그곳을 감시하면서 곧 나타날 악마 숭배자의 뒤를 캐겠지."
"그쪽은 문제없다 치고, 암흑가의 보스에 대한 건 어떻게 하죠?"
"암흑가를 일통한 관리자가 운 좋게 일루미나티의 일원이라, 우리의 일에 협조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은가?"
설정펜스가 생글 웃었다.
"···세르펜스, 솔직히 말해봐요. 일루미나티 설정 마음에 들었죠?"
* * *
결국, 이날이 오고야 말았다.
오늘은 리벨론 백작령으로 내려가는 날이다.
'왜 이렇게 실감이 안 나지?'
이제는 익숙해진 열차의 특실에 함께 들어선 금발의 청년. 제온의 존재가 아니었더라면 이대로 프라시더스 령에 내려가는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프라시더스 공작령과 달리 리벨론 백작령은 수도에서 직행하는 열차가 없었다.
그 때문에 정기권으로 예약해둔, 평소 타던 열차를 타고 하루 정도 가다가 중간에 내려 갈아탈 예정이다.
이동 인원은 나와 세르펜스, 그리고 제온. 이렇게 세 명뿐.
"···보좌관님."
"네?"
짐을 내려놓고 평소대로 편하게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있자니, 제온이 나를 불렀다.
그의 손에는 서류철이 하나 들려있었다.
"이게 뭡니까?"
"보좌관님과 작은 형의 행동 중, 심각하게 다른 행동들 위주로 정리해봤습니다."
다르면 다른 거지 심각하게 다를 건 또 뭔가.
얼떨떨하게 받아서 그것을 펼치자, 시온의 기본 프로필과 행동 패턴 같은 것이 적혀있었다.
몇몇은 붉은색으로 밑줄까지 쳐져 있다.
"형에 관한 것은 기억을 토대로 정리한 거라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느낀 점은 가족들과 다르지 않을 테니 괜찮을 겁니다."
"어, 그게···. 고맙습니다?"
내가 시온이 아니라는 것을 숨기는 것에 제온이 협조해 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방식은 상상도 못 했다.
기껏해야 시선 끌기 정도일 줄 알았지.
맞은 편에 앉은 세르펜스도 신기하다는 눈치다.
그런데···.
"···살짝 소름 돋는 데요?"
"저라고 좋아서 분석한 거 아닙니다."
본인도 작성하면서 이건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했나 보다.
있는 대로 얼굴을 잔뜩 찌푸린 그의 표정으로부터, 약간의 자괴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거기에 쓰인 대로 완전히 따라 하실 필요는 없고, 밑줄 친 부분만 주의해 주십시오. 나머지는 알아서 보조하겠습니다."
침착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하는 그 모습이 상당히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어느 정도냐 묻는다면···.
'내 손에 들린 서류가 궁금해 죽겠지만, 제온의 눈치를 보느라 아닌 척하는 세르펜스보다 더?'
다른 일이라면 세르펜스만 한 우군도 없으나, 리벨론 가는 제온의 홈그라운드가 아니던가.
세르펜스가 시선 강탈자라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막내의 일로 시온의 아버지인 리벨론 백작과 이것저것 조율해야 하므로, 피치 못하게 자리를 비울 일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미리 편지를 통해서 프라시더스 공작님의 보좌관이 되면서 자신감도 높아지고, 사교 활동을 통해 성격도 많이 활발해졌다는 식으로 얘기해 두었으니, 말투라던가 표정까지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만···."
제온이 건넨 서류를 훑어보고 있으니, 그가 보고를 올리듯 추가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언제 그런 밑 작업까지 해놨는지 모르겠다. 그 철두철미함에 한결 더 믿음직스럽다.
"만? 그다음은요?"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문장 표현이나, 과도하게 공작님과 친근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좀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조금만 차분하고 의젓한 태도를 보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 표현은 대체 뭘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그런 이상한 소리를 했던가?
그리고 세르펜스와의 거리는···.
'사석에서 편하게 이름으로 부르고, 그가 내게 하대를 하는 걸 알면 아주 기겁하겠네.'
제온이 아니라, 리벨론 가의 장남인 카론이 말이다.
저 조항은 분명 세르펜스(25세)를 존경해 마지않는 카론(29세) 때문일 거다.
안 그래도 세르펜스의 보좌관이라 내게 묻고 싶은 것이 많을 텐데, 거기서 질문 가짓수를 더 늘린다면 대화 또한 많아질 테니.
마지막으로 차분하고 의젓한 태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굳이 하지 않겠다.
나의 의젓함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아도르가 알고 세르펜스도 잘 알고 있다.
"또한 말을 할 때는 주어와 목적어를 확실하게 하여, 오해가 생기거나 수상해 보이지 않도록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
"그냥 평범하게만 말씀하시면 됩니다."
내가 그렇게 말을 이상하게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대각선 방향에 서 있던 제온에게서 시선을 떼서 맞은 편에 앉은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제온의 말에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 주어 부분은 인정!'
인정할 건 인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