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59화 (159/925)

159회

33. 공작님과 시온 리벨론 (5)

[성검의 주인]에서의 그는 수많은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것의 대부분은 원한, 공포, 증오, 타기와 같은 시선들이었다. 그는 그 시선들에 아랑곳하지 않는 정도를 넘어 즐기는 '듯이' 웃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보였던 회상 속의 그는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것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 결과···.

'두려움이 광기로 변하고, 끝내는 그마저도 무뎌졌다고 봐야 하나?'

그런고로, 선택의 날 이전의 세르펜스는 적어도 죄 없는 이를 죽이지 않았을 거다.

그것을 지금은 알고 있다.

증오와 혐오가 담긴 눈빛에는 자괴감을.

공포와 원망이 서린 시선에는 죄책감을.

그동안 세르펜스가 그것들을 감내하며 사람들의 목숨을 거둬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악인이었던 까닭이요, 그러므로 '필요악'이라는 구실을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시온을 죽였다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 믿는다.

'그렇다고 시온이 나쁜 짓을 저지를 만한 사람이냐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원인으로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역시 세미타 거리의 그 사건.

정말 지긋지긋하게도 언급되어, 만약 이곳에서 내가 겪었던 일들을 [성검의 주인]처럼 소설로 뽑아낸다면···.

'독자들이 '또?!'를 외쳤으려나?'

하지만 반쯤 확신해도 좋았다.

그때 시온이 악마 숭배자들의 꾐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세르펜스를 끝까지 믿었더라면, 세르펜스도 그를 조금이나마 신뢰하게 되었을 테니까.

내가 처음 만났을 때의 세르펜스는 그러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밀어내고. 홀로 살아갈 것처럼 굴면서도, 그것이 너무 버거워 기댈 곳을 찾고 있었다.

'어쨌거나 지금의 자신이 한 짓이 아니고, 그래서 기억에도 없는 일인데도···.'

뼛속까지 스며든 자기혐오가 세르펜스의 자책감을 자극하고, 괴로움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런 그의 관점에서는 자신이 죽였던 사람이 짠하고 나타나, '네가 나를 죽였어!'라고 외치고 있는 상황.

'공포 영화야, 뭐야?'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충분히 두려워할 만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네 무력에 옹알이 중인 2개월짜리 아기에게 쫄 필요까지는 없잖아!?'

이 말이 목 언저리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꾹꾹 눌러 담았다.

나도 양심이 있지.

그 아기에게 머리끄덩이가 잡혀 짤짤 흔들린 지 불과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세르펜스에게 뭐라고 할 자격은 없다.

'그래도 저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좀 착잡하기도 하고···.'

비록 멱살은 한 번 잡았지만, 매 한 번 들지 않고 애지중지 키운 우리 애다.

그렇게 곱게 키운 아이가 유치원에서 다른 집 애한테 맞고 온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이라 마음이 조금 언짢다.

힘은 더 센데 얌전히 맞아 주고 왔다는 점에서 더더욱.

'이렇게 착하고 순해 빠져서, 나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혼자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갔···.'

어떻게 살아가긴.

죄다 뒤엎고 학살하고, 험한 세상보다 더 험한 서스펜스가 되어 살아갔지.

"아흐 효 듀이여그!"

비비로 다시 태어난 시온이 또다시 알 수 없는 소리를 외쳤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깊게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그저 귀여운 아기일 뿐이다.

하지만 세르펜스의 눈에는 그 귀여움이 담기지 않는 모양이다. 여전히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다.

어렸을 적 거울 속에서 보았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 깜찍했던 나머지, 그 이하 수준의 귀여움에는 면역이라도 생긴 걸까?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전부 죄송합니다."

세르펜스의 말에 설움이 복받쳐 올랐는지 시온이 아앙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처절함과 귀여움을 오가는 둘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이, 일단 두 분 다 진정하시고, 다시 천천히 얘기를···, 얘, 얘길···."

얘기는 개뿔.

그게 안 돼서 지금 이러고 있는 거잖아, 진짜 환장하겠네!

내가 시온에게 당시의 상황을 물은 것은 이런 재롱 잔치나 보자고 한 의도가 아니다.

세르펜스에 대한 오해를 풀고,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시온에게 인지시켜주기 위함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그 사건을 입에 담기에도···.

'너도 세르펜스에 관한 날조 서류 받았지? 그거 폭로하러 가다가 세르펜스에게 슥삭 당한 거잖아. 맞지? 사실 그 서류 건넨 놈들은 악마 숭배자였어!'

역시 이건 좀 아니올시다 싶다.

이렇게 말하면 세르펜스가 변명할 여지조차 안 주는 그런 놈으로 비치지 않는가.

시온이 악마 숭배자들의 말에 속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주저 없이 슥삭한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사실이지만.

"발음 그거, 신성력으로 어떻게 안 되는 겁니까? 혀와 입 주변부 근육을 이케 저케 요로코롬 해가지고, 예?"

"···어느 정도 보완은 가능하나 치아의 부재를 비롯하여, 물리적인 구강 구조의 문제로 인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되긴 된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세르펜스는 머뭇거리며, 긍정적인 서두와 다르게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어쩐지 그 가능성을 이미 떠올려 놓고도 말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들어봐야 원망과 지탄일 테니, 듣기 싫다 이건가?'

그래 봐야 해결되는 일은 없다. 단순히 미루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대화가 통해야 설득을 하든 협상을 하든 할 것 아닌가.

"가장 주된 문제는 어제 보았던 신성력 제어 능력을 봤을 때, 혼자서 그것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겁니다."

내 미심쩍다는 시선에 세르펜스가 얼른 변명인지 설명인지를 덧붙였다.

"세르펜스가 도와주면요?"

"···저분이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계시는지는 모르나, 저를 무척이나 적대하고 꺼리신다는 것만큼은 확연히 느껴집니다."

자신의 신성력을 시온이 밀어낼 것이 뻔해서 안 될 거라는 얘기다.

그렇게 말한 세르펜스는 상처받은 얼굴로 울적한 표정을 지으며, 애잔하게 몸을 떨었다.

'그런 건 나 말고 시온을 보면서 해야지!'

저런 모습을 보고도 세르펜스를 거절하면 그건 더이상 사람이라 불릴 자격도 없다.

나는 재빨리 시온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눈을 꼬옥 감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그 역시 한때는 세르펜스의 보좌관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와 닿았다.

눈을 감는 것으로 회피하다니, 그런 방법이 있었을 줄이야.

이런 것을 선인의 지혜라고 하나? 아닌데? 경력으로만 따지면 내가 더 길 텐데?

"우, 우으으···."

시온이 또다시 발광하기 시작했다.

그냥 발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점멸하기 시작했다.

"나, 나아···누웅. 시, 시옹···."

"핫! 마, 말했어요! 세르펜스, 들어보세요! 시온이가 말을 했어요!"

"······."

"······."

내 호들갑 때문일까?

울적해 보이던 세르펜스의 얼굴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감정이 스쳤다.

한창 빛을 뿜어내고 있던 시온도 불을 끄고, 나를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 아니 그게···, 왠지 감격스러워서···?"

"므아···."

아기가 뭐 이딴 놈이 다 있느냐는 표정을 지을 수도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그러나 기묘하게 일그러진 시온의 얼굴과는 반대로, 세르펜스의 표정은 한결 나아졌다. 그는 여유를 되찾은 모습으로, '후···.'하고 한숨인지 웃음인지 모를 숨을 뱉어냈다.

"그래도 잘하셨습니다."

"으웨?!"

"아마 그대로 두었다가는 어제처럼 신성력이 폭주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

안도하는 듯한 세르펜스의 말에 시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제 그게 폭주인 줄도 몰랐었나 보다.

무식하면 용감이라더니, 그러니까 겁도 없이 신성력을 억지로 끌어올렸겠지.

"아직 이지(理智)가 확립되지 않은 어린아이라면 그 상태로 제어를 도와서 본능에 의한 학습을 유도했을 터이나, 이지를 갖추고 계시니 차분하게 익히시는 것이 훨씬 도움 될 겁니다."

한없이 선량하기만 한 세르펜스의 목소리와 걱정스럽게 자신을 내려보는 그 표정에, 시온은 혼란스럽다는 얼굴을 했다.

"아, 아으, 어이샤 아쇼아!"

빛이 사그라든 시온의 발음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당장 대화도 문제지만, 앞으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제가 공자를 도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으···."

"무슨 일이 있었고, 어째서 저를 이렇게 미워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저를 싫어하신다면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완전히 제 페이스를 찾은 연기펜스가 녹색의 눈동자를 애절하게 빛내며 애달픈 목소리로 청원하듯 말했다.

이제는 파란색이 된 시온의 눈동자가 더욱 크게 흔들렸다.

'아, 그래. 지금 막 쓰레기가 된 것 같고, 내가 다 나쁜 놈인 것 같고. 모든 것이 속 좁고 옹졸한 나의 탓인 것처럼 느껴지고, 그러겠지. 딴 데서 뺨 맞고 와서 괜히 죄 없는 애한테 화풀이한 것 같은. 뭐, 그런 기분이잖아?'

저 수법에 한 번 말려들면 헤어나오기란 쉽지 않다.

"어째서 저를 그렇게 두려워하는 눈으로 바라보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 아이···어."

"공자의 의견은 존중하나, 리벨론 가의 다른 분들도 걱정하고 계십니다. 그것만은 외면하면 안 되잖습니까?"

남겨질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당장 수술에 들어가야 합니다, 환자님.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햐이마···."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이렇게 사과를 하여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는 이상, 그저 입에 발린 말이라고 밖에는 받아들이지 못하실 것을 압니다. 부디 저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할 기회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

세르펜스가 이미 차고도 넘칠 정도로 진심 어린 말투를 꾸며내며 사과했다.

시온이 세르펜스의 보좌관으로서 지냈던 시간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일에 대한 원망을 받는 것이 억울할 텐데도, 그저 자신의 탓이노라 말하며 깊은 이해심을 보이는 세르펜스의 모습은 가히 성인(聖人)이라 할 만했다.

'이야, 이건 넘어갔네. 넘어갈 수밖에 없어.'

이쯤 되면 세르펜스에게 살해당했던 기억조차 사악한 악마 숭배자 놈들이 만들어낸 지독한 악몽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우, 우우···."

세르펜스를 노려보던 시온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그것을 본 세르펜스가 작은 미소를 띠었다. 감사의 뜻을 꾸며내었다.

"신성력이 어떤 힘인지는 이제 어느 정도 감이 잡히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시온의 작은 이마에 세르펜스가 검지와 중지를 살짝 가져다 대며 입을 열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피어오른 은빛의 힘이 시온에게로 스며들었다.

"제가 유도하는 대로 천천히 따라와 주십시오. 그리 큰 힘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으시니, 아주 적은 양부터 차차 늘려가는 것이 좋습니다. 힘의 총량이 큰 만큼 좀 더 섬세한 운용이 필요합니다."

"그, 그으···!"

나긋나긋한 세르펜스의 목소리에 이끌리듯, 시온에게서 백색의 빛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뿜뿜이 아니야!'

빛이 새어 나오고 있기에 완벽한 제어라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비죽비죽한 느낌이 아니라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것이, 이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갈무리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약 10여 분가량 지났을까?

"이제 되었습니다."

"그걸로 끝입니까?"

"큰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자신의 몸을 가누는 정도라면 간단한 요령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벌써 끝난 거냐는 내 물음에 세르펜스가 손을 거두며 친절히 대답했다.

"아, 으···아···. 대, 대째, 무어야?"

시온이 어색하다는 듯 혀를 굴리며 천천히 말했다.

제대로 된 발음은 아니었으나, 비교적 들을 만해졌다.

"그건 저희야말로 묻고 싶습니다. 저에 관해서는 이미 밝혔잖아요? 이제 어느 정도 말이 가능해진 것 같으니, 시온도 말씀해 주시죠. 어째서 세르펜스를 그렇게 적대하였는지."

내 말에 시온이 복잡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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