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66화 (166/925)

166회

34. 공작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5)

이런 치사한 놈들 같으니.

세르펜스가 멀리 떠나기만 하면 수작을 못 부려서 안달이다.

'왜 하필 나한테 난리야?!'

대외적으로 알려진 세르펜스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내가 됐건, 제온이 됐건.

인질로써의 쓰임은 거기서 거기다.

이는 제온이 그대로 감금당했어야 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잡은 물고기를 풀어주면서까지 다른 애를 데려오라는 불확실한 주문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아니면 지금 나한테 복수라도 하자는 건가?'

악마 숭배자들이 제국에서 꾸민 두 개의 사건에는 내가 연루되어 있었다. 화풀이가 목적이라면야.

쪼잔하다고 욕은 하겠지만, 수긍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이유였다.

하지만 하나보다 둘이 좋은 법.

두 명의 인질을 잡을 수만 있다면 한 명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이용해 먹을 수 있었다.

'가령, 한 명을 일단 죽이거나 폐인 상태로 만들어 놓고, 다른 한 명으로 거래한다거나?'

내가 방금 지어낸 것이 아니라, [성검의 주인]에서 그들이 실제로 사용한 방법이다.

확정적으로 다른 인질을 더 얻는 방법이 있다면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놈들, 진짜 뭔가 알고서 그런 거야?'

놈들의 특기가 조작이라는 것을 떠올려 봤을 때, 모르면서 그냥 저지르고 본 것 같기도 하다.

필시 그들은 나에 대해서 조사해 보았을 터.

과거의 정보와 현재의 정보 사이에서 나타난 성격이나 행동의 변화를 토대로, '아~, 이거 이렇게 날조하면 충분히 먹혀들어가겠는데?'라는 생각을 해버렸다면 어떨까?

그래서 승부수를 띄워 본 거라면?

'그럴듯하긴 한데, 놈들이 자칭한 '테네브리오의 예언자'라는 말이 걸린단 말이지···.'

그러나 그들이 진짜 예언자라고 하기에는, 내가 오리지널 시온이 아니라는 것 빼고는 죄다 틀려먹었다.

그 전에, 예언자라는 것과 내가 시온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 것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끄응···. 이거, 참."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성검의 주인]에서는 그딴 놈들 없었는데, 갑자기 골치 아프게 되었다.

"그럼 이대로 무시하는 것으로···."

"잠깐만요, 그건 좀 아니죠."

"···네?"

엮이지 말자고 하길래 알았다고 했더니 갑자기 말을 바꾸는 내 태도에, 제온이 의문을 보였다.

"일주일만 더 시간을 달라고 해 봤자···, 귓등으로도 안 듣겠죠? 거기다 그런 얘기를 하려면 일단 그들을 만나야 하고···. 그렇다고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기에는 그게 또···."

"당연히 그냥 넘어가야 합니다."

오늘 저녁 식사 메뉴로 나온 단호박 수프가 원인일까?

제온이 오늘따라 너무 단호하다.

"세르펜스가 부 집사님께도, 제가 어디 가서 사고 칠 것 같으면 말려달라 하고 갔어요?"

"···그런 명령은 없었습니다."

제온이 노골적으로, 대체 평소에 무슨 짓들을 하고 다닌 거냐고 타박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면 그냥 마는 거지, 그런 눈으로 볼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확인 결과, 당신은 제 형이 맞았고 그들이 한 얘기는 모두 헛소리라 단순한 해프닝쯤으로 치부하며 넘어갔다. 그 정도가 딱 좋습니다. 제가 본 자는 한 명뿐이지만, 얼마나 많은 인원이 잠복해 있을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움직이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그의 말이 백번 옳았다.

유지스에게 협조를 구한다 하더라도, 적의 전력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나와 제온, 둘의 안전을 그녀 한 명에게 죄다 떠맡겨놓고 적진에 발을 디딜 수는 없었다.

또한, 세르펜스는 지금쯤이면 산맥의 결계 안쪽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예언자를 자처하는 숭배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편지를 보내는 것에 성공하더라도, 다음 주쯤은 되어야 결계 밖으로 나온 세르펜스의 손에 들어갈 것이다.

저번과 같은 요행은 없었다.

"그 정도는 저도 압니다."

"아신다면 무엇을 망설이시는 겁니까? 나중에라도 보좌관님의 정체에 관한 문제가 불거지더라도 가족인 제가 변호를 하면 그만이고, 악마 숭배자가 그러한 주장을 펼친다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것도 잘 압니다."

내 답에 제온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얘는 대체 뭐가 문제지? 본신의 간땡이를 차원 너머에 두고 온 게 문젠가?'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짜 그렇게 생각했을 리는 없지만, 대충 비슷한 맥락의 생각을 품고 있는 것 같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지금 저를 걱정해 주시는 건··· 아니시죠?"

"왜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음···. 시온은 이미 새 육체를 얻었으니까?"

내 대답에 제온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척이나 아니꼽고 탐탁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돌연, 그의 표정을 이렇게 자세히 본 것도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온이 아니라는 것을 들킨 이후로 그의 얼굴을 바로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얼핏 스쳐 지나가듯 본 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제가 보좌관님을 걱정하면 안 될 이유가 되는 겁니까?"

"아뇨, 안되죠.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걱정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 자! 마음껏 걱정하세요!"

"···방금 걱정스럽던 마음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런 안타까운 일이···!"

어쩐지 기뻐서 살짝 호들갑을 떨었더니, 제온이 질겁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딴소리는 그만하고, 질문에나 대답해 주십시오."

"그거라면 아까워서 그랬습니다. 대놓고 '나는 악마 숭배 세력의 핵심 중 하나다. 대단히 많은 것을 알고 있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마왕의 이름을 떡하니 걸어놓은 호칭을 쓰는 놈인데···. 잡아다가 캐내면 뭐가 나와도 대단한 게 걸릴 것 같지 않아요?"

이제까지 등장했던 피라미들과는 다르다.

무려 마왕의 이름을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거물 느낌이 팍팍 난다.

연거푸 고배를 마셨으니, 이번에는 큰맘 먹고 고위급 인사를 보냈을 가능성이 컸다.

내 안전을 위협하면서까지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은 아니나, 아쉬움이 자꾸만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 문제라면, 그냥 신고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신고요?"

"예."

"···그런 방법이?!"

내가 너무 판타지적 사고에 물들었나 보다.

수상한 놈이 있으면 신고부터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거늘.

그것을 제온에게 듣고 나서야 떠올리다니, 현대인의 수치다.

마음속으로 3초간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인이라면 모름지기 삼세번이 기본이니, 반성도 3초면 충분하다.

'치안 신고는 경비대에! 이단 신고는 교단에!'

이단 심문관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악마와 그들의 숭배자들을 처리하기 위함이다.

그것을 전담으로 하는 전문 부서까지 있는 마당에, 이런 걸 교단에 신고하지 않으면 어디에 한단 말인가.

"신고는 어떤 방식으로 하시려고요?"

"이올렌에게 말해서 정보원 중 적당한 인선을 뽑아, 예배를 위해 찾아간 신자인 척 방문하여 편지를 전달시킬 생각입니다."

"이올렌이라면···, 아! 집사님의 손녀분 말씀이시죠? 그런데 저번에는 '님'이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았습니까?"

"······."

"···빨리 편지부터 작성하겠습니다."

제온의 질렸다는 표정에,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장에서 빈 종이와 펜을 꺼내왔다.

"뭐라고 적으실 생각입니까?"

세르펜스도 그렇고, 제온도 그렇고. 왜 내가 나서서 무언가 얘기 전달을 하려고만 하면 불안해하는 걸까.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 없이 되는 대로 쓸까 봐 그러나?’

하지만 나도 다 생각이 있고, 나름 계획적인 사람이다.

"자칭 테네브리오 '교단' 소속이라는 놈들이 부 집사님께 접근해서, 제게 뭔가 씐 것 같다면서 저를 데려와서 테네브리오라는 듣도 보도 못한 놈에게 치성을 올려야 한다는 둥 헛소리를 했다고요."

[성검의 주인]에서 테네브리오 교단이 처음으로 출범했을 때는 '테네브리오'가 마왕의 신명임을 아무도 몰랐다.

룩스메아 교단이 흔들리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이비 종교들이 판을 쳤을 때. 그중 하나인 척 스며들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일반인을 끌어들여 단숨에 신도를 늘리고 덩치를 키울 수 있었다.

그들이 악마를 믿는 집단이란 것이 알려졌을 때는, 일반인들은 이미 미친 광신도로 변해 있거나, 제물로 바쳐진 후였다.

'하지만 이젠 아니지!'

처음부터 테네브리오가 마왕을 뜻한다는 것을 알면 말이 달라진다.

마왕을 신으로 받아들여 모시자는 개소리를 하는 놈이 있다면, 정상적인 사고 판단이 가능한 대다수 사람은 자세한 얘기를 듣기도 전에 도망갈 거다.

'그게 안 되는 놈이라면 이미 악마를 숭배하고 있거나, 앞으로 숭배하게 될 테니 거기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대놓고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없게 만드는 것만으로, 그 세력이 [성검의 주인]의 악마교에 비해 확실히 줄어들 것이다.

"이것만으로는 사이비스러움이 좀 부족한가?"

"교단이라는 명칭을 쓴 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이단입니다."

"아뇨, 그런 것만으로는 이단 축에도 못 낍니다!"

그게 어디 사이비 종교인가?

그냥 길거리에서 전단 나눠주며 포교하는 평범한 종교 단체지.

"그들이 부 집사님께 '형제님의 형제분이 안타까워 구제해 주려는 순수한 호의일 뿐, 무언가 얻고자 함이 아니다.'라던가, '하지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고 운명. 좋은 말씀을 함께 나누고 싶다.' 그리고 '지금 대륙에 세워진 모든 질서를 무너뜨리고 곧이어 이어질 새로운 세계에서 함께 나아가자.'라는 말들을 했다고도 하죠."

역시 사이비하면 '운명'이란 단어와 '형제님, 자매님'하는 호칭. 그리고 '좋은 말씀을 나누고 싶다.'라는 얘기가 빠지면 안 된다.

조상신이 어쩌고 하는 얘기까지 더한다면 보다 완벽해지겠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개념이니 넘어갈 수밖에.

"새로운 세계라니, 그건 너무 위험한 말 같은데···."

"악마 숭배자가 하는 말이잖아요. 게네가 하는 말이 다 그렇죠, 뭐."

"······."

내 말에 납득했는지, 제온은 가타부타 말을 더하는 대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얘 피부가 원래 이렇게 하얬던가?

몸도 마르고 피부도 허연 것이, 뭐라도 많이 먹여야 할 것 같다. 시온은 그동안 동생 밥도 안 먹이고 뭘 한 거람?

"그리고 테네브리오 교단이 악마교라는 것을 좀 더 확정 지을 만한 근거가 있으면 좋을 텐데, 좋은 방법 없을까요? 이교도만으로도 룩스메아 교단에서는 길길이 날뛸 테지만, 만약에라도 평범한 이단으로 만만히 봤다가 거꾸로 당하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 세르펜스나 유지스였다면 아이디어가 마구 쏟아져 나왔을 텐데.

지금이라도 유지스를 불러와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될 정도다.

"아, 그렇지! '마···, 아니, 테네브리오 님이야말로 진정한 신이며, 질서이다.'라고 하면서 '마'뒤에 '왕'이라는 듯한 입 모양을 보였다고도 쓰죠!"

"시, 신이라니···."

"마왕의 장래희망이 '신'이라는 거. 몰랐습니까?"

"장래희망···."

"치성을 올릴 때 필요한 제물과 도구들은 알아서 준비할 테니, 금품을 가져오라 했다는 말도 쓸까요? 아니다, 이건 너무 추레해서 악마 숭배자인 척하는 또 다른 사이비 같다. 그쵸? 이건 그냥 뺍시다."

"······."

세르펜스라면 떨떠름하게 '그, 그럽시다···.'라고 말해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을 텐데.

제온의 고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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