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85화 (185/925)

185회

37. 공작님과 암흑가 재방문 (5)

세르펜스는 자타 공인 유명 인사다.

그의 공적인 일정은 알만한 사람에겐 다 알려졌다.

또한, 최소한 이 제국 내에서는 다섯 살배기 평민 꼬마 아이조차 대외펜스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을 정도다.

그런 세르펜스를 오랜 시간 지켜봐 왔다니?

만약 이 판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속으로,

'어이구, 예이, 예이. 그러시겠죠, 암요!'

···하고 비꼬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르펜스는 얼떨떨하다는 순진한 얼굴을 꾸며냈다.

"아! 지지난달, 제 보좌관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겨주신 쪽지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세르펜스가 골똘히 생각하다 퍼뜩 떠올랐다는 듯이 감사를 표했다.

표면적으로 본다면 유지스에게 한 말 같지만, 내용만 따지고 본다면 자기 자신을 향한 감사라 할 수 있겠다.

머릿속으로 세르펜스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굿 세르, 굿 펜스! 잘했다, 나 자신!'하고 중얼거리는 모습을 떠올려 봤다.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건 내가 한 일이 아니야. 우리 일루미나티는 수많은 단원들을 거느리고 있고, 그중 누군가가 한 일이지. 감사를 전하고 싶거든, 직접 하도록 해."

유지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세르펜스가 일루미나티에 가입하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깔아두고 말했다.

이미 가입된 상태이니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꼴랑 네 명뿐이면서 수많은 어쩌고 하는 건 너무 비양심적인 것 아닌가?

"사실 아까 얘기가 나왔던 바스툴 왕국의 투기장 건도, 원래는 테스트를 겸하여 당신에게 맡길 예정이었어."

"그 무슨···. 설마 '그 정보'를 위리디아 님께 흘린 것이···?"

세르펜스가 '나 지금 놀랐어요!'라는 말을, 눈을 크게 뜨며 손으로 입가를 가리는 것으로 훌륭하게 표현하였다.

유지스는 가면을 쓰고 있기에 표정 연기라 할 것은 없었으나,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짐작이 맞았노라 긍정해 주었다.

그리고 프레드릭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끔벅거렸다.

아무래도 황제로부터 작년에 있었던 세르펜스의 출장에 관해 아무 말도 듣지 못했나 보다.

의아한 마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법도 하건만.

자신이 나설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프레드릭은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 일을 해결한 것은 그쪽 단체잖습니까? 저희가 바스툴 왕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렇다. 그런 설정이다.

세르펜스는 자신이 바스툴 왕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일이 끝난 후라고 황제에게 보고했던 것이다!

이번에 유지스와 세르펜스가 대본을 짜고, 연기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안이다.

'출발하기 전에 황제에게 허락을 맡고 떠났으니, 당연히 일루미나티가 조작된 단체라는 것도 보고 했을 줄 알았는데···.'

어쩌면 그때부터 일루미나티를 키울 작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꾸 나에게 이상한 설정을 덧붙이는 것도, 그저 나를 놀리는 것에 맛 들여서 그러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쯤 되니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런 요망한 여우펜스 같으니!'

이에 관해 물어봐도, 대답은 안 하고 딴짓을 하며 못 들은 척하던 모습이 수상함을 더 하였다.

거짓말을 해봐야, 내게는 씨알도 안 먹힌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녀가 우리의 생각보다 신중했던 탓이라 해두지. 우리가 흘린 정보를 듣자마자 바로 움직일 줄 알았는데, 자체적으로 그 정보의 사실 여부를 조사하는 통에···."

그녀는 자기 입으로 자신에 대해···. 아니다, 생각하지 말자.

이 순간, 눈앞의 보라색으로 분칠한 엘프는 유지스가 아니라고 믿자.

"일정이 꼬인 탓에 당신이 바스툴 왕국에 도착하여 그 일을 수습했다면, 선택의 날까지 제국에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계획을 변경한 거야."

"그렇다는 건 저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뜻 아닙니까?"

"아니, 그렇지는 않아."

유지스같은 유지스가 세르펜스의 말을 딱 잘라 부정했다.

"선택의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확실한 것도 아닌 정보만으로 먼 외국까지 떠났잖아? 고통받는 이들을 구제하고, 악마 숭배자들을 처단하기 위해서. 단순히 책임감이 아니라, 진심으로 대륙을 위하는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 다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을 무시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도 말이야."

좀 미묘한 정보였다는 것은 사실이나, 그 취지에 관해서는 '글쎄올시다.' 소리가 나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세르펜스는 자신이 성검에게 선택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반쯤은 현실 도피였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애당초 시간이 부족하면, 기차여행 다녀온 셈 치고 바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것을 확인하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으니까. 제국을 떠났던 그 시점에서 이미 시험은 통과한 거나 다름없지."

"으음···."

참 잘도 끼워 맞춘다.

"혹시 레드포드 경은···."

"그가 우리의 일원이냐 묻는 거라면, 아니라고 대답하지. 하지만 그가 당신을 주군으로 선택하는 것에 우리의 입김이 닿은 거냐 묻는다면···. 후후."

"···그렇, 습니까?"

의미심장한 그녀의 말에, 세르펜스가 씁쓸한 미소를 꾸며내며 고개를 떨궜다.

"그렇다고 그런 심각한 표정은 하지 말고. 그가 당신에게 보인 충성은 진심이니까. 우리는 어디까지나 조언을 건넸을 뿐이야."

유지스가 세르펜스의 턱밑을 집게손가락으로 받쳐 올리며 말했다.

대본에 없던 애드립이다.

'거, 연기에 사심 넣지 맙시다!'

세르펜스도 이게 뭐 하는 짓이냐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뒤로 뺐다.

그녀도 미련 갖지 않고 손을 거둬들였다.

"주인에게 버림받아 상처 입은 그에게, 믿고 따르며 그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주인이 누구일지. 우리는 그것을 알려준 것뿐이야. 선택을 한 건 그의 의지고, 그것은 당신이 진심으로 충성을 바치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지."

어째 윈스톤을 유기견 취급하는 듯한 뉘앙스지만, 모르는 척하자.

"그래서, 이제 마음은 정한 건가?"

"으음···."

"무엇을 망설이는 거지?"

"저는 황제 폐하께 충성을 바친, 그분의 신하입니다. 그런 제가 다른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 명을 따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황제에게 올리는 보고를 날조하고, 아예 빼먹은 전적도 있는 세르펜스가 말했다.

내가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제국을 들쑤시고 있었을 세르펜스가 말이다.

[성검의 주인]에서 제국을 멸망시켰던 세르펜스가!

지금까지 이런 충신은 없었다. 전대미문이다.

"괜한 걱정이군."

"저에게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야. 이 대륙은 악마 숭배자. 더 나아가 그 뒤에 있을 악마들과 마왕으로부터 대륙을 지켜야 해. 한데 힘을 모아 대륙을 지켜야 하는데, 누구의 명을 받는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누군가의 신하이기 이전에. 어느 국가에 소속되었는지 이전에. 우리는 모두 이 대륙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었나?"

···어떡하지?

가면을 쓰고 양팔을 벌리는 제스처와 함께 저런 소리를 하니까, 너무 사이비스럽다.

"그리고 우리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은 충성이 아니야. 당신을 통해 우리가 알아낸 정보를 제국에 전달하여, 대비하게 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유지. 단순히 우리와 함께하는 것을 제안하려는 목적뿐이었다면, 굳이 2황자를 부를 필요까지는 없었어. 어디까지나 세르펜스가 우리의 대변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공증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지."

그렇게, 프레드릭은 살아 움직이는 공인인증서가 되었다.

"둘째로, 당신이 가진 무력이 필요할 때도 있을 거야.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악마 숭배자들을 처단하기 위해서겠지. 우리가 내린 지령에 따른다기보다, 악마 숭배 세력의 정보를 제보받는다 치면 나쁘지 않잖아?"

"으음···, 과연."

세르펜스가 유지스의 말에 설득당하는 척하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프레드릭이 정말 설득당했는지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이 암흑가의 일만 해도 그래. 일루미나티에서는 진작에 파악을 끝내고 일찍이 대비한 일에, 제국에서는 이제야 정보를 접했을 뿐이지."

그녀의 말에 세르펜스는 반박할 필요가 없었고, 프레드릭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

두 명의 입을 다물린 유지스가 후후 웃었다.

"대체 그런 정보들은 어디서 알아낸 겁니까?"

"정보 수집에 능한 조직원들이 많기도 하지만, 핵심이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 이런. 이 이상은 기밀이라 말해 줄 수 없어. 물론, 우리의 일원이 된다면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만."

유지스가 양손 검지를 교차시켜 X자를 만들어, 가면 너머 입이 있을 위치에 가져다 대었다.

실수로 말을 꺼낸 것처럼 굴었지만, 정보의 출처가 궁금하다면 일루미나티에 들어오라는 노골적인 의도를 드러낸 말이었다.

"아직도 마음을 못 정했나?"

"잠깐···. 잠깐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직은 너무 혼란스러워서···."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한잔하는 건 어때?"

"사양합니다."

두 번 연속된 거절에, 유지스의 귀가 살짝 아래로 처졌다.

"저는 공작께서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전하?"

세르펜스와 유지스의 대화를 들으며 깊게 생각에 잠기는 듯했던 프레드릭이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진지한 모습에 세르펜스 또한 진지한 연기로 답하였다.

세상 물정 모르는 황자님을 속여 먹는 느낌이라, 참으로 찝찝한 광경이라 할 수 있겠다.

'사기꾼일수록 오히려 호감형 인상을 하고 있다더니···.'

[성검의 주인] 세계관 공식 미인 1, 2위를 하는 둘이 힘을 합쳐 사기를 치고 있는 모습에 헛웃음도 안 나온다.

이런 걸 얼굴 낭비라 해야 할지, 적재적소라 해야 할지.

"저분의 말씀대로 지금 대륙은 힘을 합쳐야 할 때입니다. 아바마마께는 제가 잘 말씀드릴 테니, 그 부분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2황자 전하···."

세르펜스가 감격한 얼굴을 꾸며냈고, 프레드릭은 자신만 믿으라며 밝게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제안,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굳게 결심한 표정으로 세르펜스가 말하였다.

이 모든 것이 연극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 프레드릭은 얼마나 억울할까?

"잘 생각했어. 그 결정,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야."

눼이, 눼이. 아무렴 그러합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는 이곳에 찾아오지 마. 앞으로의 만남도 암흑가 밖에서 이루어질 거야."

"어째서입니까?"

"이곳에서 당신들은 너무 눈에 띄어. 아무리 겉모습을 위장해도, 알맹이는 변함이 없지. 자주 드나들면 결국에는 들키고 말 거야."

유지스가 '특히 너!'라고 말하는 것처럼 2황자를 빤히 바라봤다.

"그럼 저희 쪽에서 먼저 연락을 취해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다려."

"하지만···!"

불만스럽다는 2황자의 표정에 유지스는 고개를 저었다.

타협은 없다는 의미다.

"나도 막무가내로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니야. 당신들도 봤으니 알겠지만, 이 암흑가는 아주 넓지. 이곳을 관리하는 것뿐이라면 모를까, 악마 숭배자가 숨어드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서는 내가 열심히 뛰어다니는 수밖에 없어."

"자리를 비워서 안 된다는 얘기입니까?"

"그래. 이 주점은 나보다 내 부하가 지키고 있는 시간이 더 많을 거야."

"그렇다면 그자에게 편지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면···."

유지스가 또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야말로 순진한 생각이군."

"그건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 이곳이 암흑가라는 사실을 잊은 건 아니겠지? 그는 어디까지나 이 거리의 사람. 힘에 굴복하고 있을 뿐, 믿을 수 있는 자는 아니야."

그 부하라는 작자가 이 거리에서 대충 주워다 쓰고 있는 건지, 외부에서 데리고 들어온 사람인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그걸 어찌 안단 말인가?

내가 프레드릭이었다면 무척이나 억울했을 노릇이다.

"아무튼 이제 할 말은 끝났으니 돌아가 보도록 해. 암흑가에 관한 정보는 앞으로 한 달 간격으로 보고해 주도록 하지."

유지스가 크게 선심 쓴다는 말투로 말했다.

끝까지 자신의 설정값을 잊지 않는 프로정신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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