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88화 (188/925)

188회

38. 공작님과 평화롭지 못한 일상 (3)

[성검의 주인]에서도 그러했듯. 악숭이들이 퍼트린 낭설로 대륙은 뒤숭숭했다.

휴마누스가 과연 성검의 주인으로서, 그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에 관한 의문에서부터 시작된 그것은.

진정한 성검의 주인은 세르펜스라는 이간질을 거쳐서, 그로부터 파생된 신 룩스메아의 대륙 포기설까지 다다랐다.

'죄다 근거 없는 헛소리지. 룩스메아가 대륙을 포기했다면 나를 보냈겠어?'

사실, 이러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은 꽤나 오래된 이야기였다.

마왕은 회귀자였고, 이런 소문이 효과적으로 먹힌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굳이 휴마누스가 도적단을 무찌를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미 옛날옛적에 퍼지기 시작한 소문을 내가 이제야 접한 이유는 두 가지다.

[성검의 주인]에서 그랬던 것과 달리 제국은 휴마누스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저런 유언비어가 언급되기가 무섭게, 입을 여는 자를 깡그리 잡아 들였으니.

그런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소문 또한 퍼지지 못하였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요.

두 번째 이유는···.

"앞으로는 꼬박꼬박 얘기합시다. 예?"

"그래서 이번에는···, 아니다. 앞으로는 바로 말하겠다."

진작에 그 소문을 접하였던 세르펜스가 내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제 나에게 혼나고 난 뒤. 내게 말하지 않은 것이 뭐가 있나 생각해보다, 떠올랐다고 한다.

"앞으로 제가 똑똑히 지켜보겠습니다. 아시겠어요?"

"그건 상관없지만···. 솔직히, 선우는 나를 상관으로 생각 안 하지?"

"하니까 이렇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써주고 있잖아요?"

"꼬박꼬박은 아니지 않나? 내게 몇 번이나···."

"어허!"

세르펜스가 억울하다는 듯 입을 비쭉 내밀었다.

자꾸 버릇 들면 안 되는데, 녀석을 놀려먹는 게 재밌어서 큰일이다.

"그거 말고는요?"

"룩스메아 교단에서 테네브리오 교가 악마 숭배자들이 만든 이단이라는 사실을 공식 선포할 예정이라고 한다."

"와! 악숭이들이 아직 '교'를 세우지도 않았는데, 싹이 나기도 전에 뽑아 버리네!"

"선우의 업적이지."

무척 위대한 업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이단 선언과 함께 앞서 말했던 소문들 또한 그들이 퍼트린 허위 사실임을 밝히며, 그 소문을 듣는 즉시 교단에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겠다는 발표도 할 거라 하였다."

교단의 공식 발표라면 제국뿐 아니라 대륙 전역에 퍼진 소문을 잡겠다는 거네.

아직 출범하지도 않은 테네브리오 교를 들먹인 것도 거짓 소문의 근원지를 명확하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교단에서 그런 발표를 할 예정이라는 얘기는 어디서 들은 겁니까? 설마 또···!"

"교단에 숨어 들어간 건 아니니 안심해라. 문제가 되는 소문에 내가 언급되기 때문에, 미리 양해를 구하기 위한 편지를 받은 것뿐이니."

그 소문이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악숭이들이 일부러 지어내어 퍼트린 거라면.

세르펜스가 성검에 미련을 갖고 악숭 세력에 붙었거나, 붙을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허위사실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그것에 대한 양해겠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택의 날에 세르펜스가 성검에 대한 미련이나 집착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인가?'

휴마누스가 성검을 받은 것에 놀라긴 했으나, 다른 이가 성검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 휴마누스의 그··· 언급하기조차 남사스러운 이유 탓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교단도 세르펜스를 믿고, 미리 양해를 구한 것 아닐까?

"예정됐다는 얘기는 세르펜스가 그래도 된다고 허락했다는 겁니까? 아니면 말이 양해고 사실은 통보였다든가?"

"소문을 퍼트린 자가 악마 숭배 세력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다. 차라리 소문이 더 커지기 전에 그것을 잠재우고, 그들이 나를 언급한 건 그들의 이간책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알리며, 나는 황태자가 진정한 성검의 주인임을 믿고 있다고 발표하는 것이 훨씬 이롭다."

"뭐, 그건 그렇네요."

한동안 좀 떠들썩하겠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고, 빚도 이자가 불기 전에 빨리 갚는 게 좋다.

그리고 휴마누스가 무사히 시련을 끝마치고 나면, 줄줄이 연계된 소문들도 거짓이라는 게 판명 날 것이다.

만에 하나, 그때 '성검의 주인 자격을 탐낸 세르펜스가 헛소문을 퍼트렸던 것이다!' 따위의 낭설이 퍼지기라도 하면, 그게 더 치명적이다.

"기왕 하는 거, 그냥 황태자라고 하지 말고 '내 오랜 친우' 같은 말도 덧붙이지 그래요?"

"···내 입장에 관해선, 이미 답장을 보낸 후라 곤란하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덧붙이면 오히려 작위적이지 않은가."

맞는 말이지만, 변명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게 처음부터 그런 표현을 썼으면 좋았잖아?

"황태자 전하가 세르펜스에 대해서 깊이 알게 되면, 이해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요?"

"갑자기 그런 얘기가 왜 나오는 거지?"

"왜겠냐?"

속으로만 생각하려 했는데 답답한 마음에 말이 헛나왔다.

세르펜스가 어깨를 크게 움찔하며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 자! 생각해봅시다! 세르펜스가 휴마누스와 알고 지낸 게 몇 년이죠?"

"잠깐, 그런 호칭은···."

"휴마누스가 유지스에게 그랬다잖아요. 세르펜스의 친구는 자신의 친구이니,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도 된다고. 저도 세르펜스의 친구니까 그래도 괜찮겠죠!"

"위리디아 님과 선우는 처지가 다르잖은가."

"다르긴 하죠. 유지스는 아직 반 친구 레벨이고, 저는 완전 절친, 짱친, 쏠메니까! 아, 쏠메는 소울메이트의 줄임말입니다. 영혼의 단짝을 뜻하죠."

예전 같았으면 그래서 뭘 어쩌라는 눈을 했을 텐데.

지금의 세르펜스는 '그런 거라면 어쩔 수가 없네.'라고 말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슬쩍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필사적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입술을 짓씹었다.

"으흠, 흠! 그런 거라면야, 뭐···. 내 친구가 어째서 황태자의 친구가 되는 건지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지만···. 음, 그래. 어쩔 수 없군."

우리 둘이 친구라면 다들 나를 부러워할 일이나, 세르펜스는 자신이 만인의 부러움을 사는 것처럼 굴었다.

그를 만나고 1년하고도 3개월째.

녀석이 이렇게나 자부심 넘쳐 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좋냐?

"그자를 처음 만난 건···. 8살 즈음이던가."

"생각보다 더 오래됐잖아?! 그런데 어째서 아무 얘기도 안 하셨어요?"

"무슨 얘기를 해야 했지?"

"괴롭다거나, 힘들다거나, 무섭다거나. 그런 거 있잖아요?"

"아···."

그렇게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표정을 지으면, 거기다 대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숨이 턱턱 막힌다.

"어, 음···. 8살부터 알고 지냈다면 그···. 뭣이냐, 그거···."

"괜찮으니 돌려서 얘기하지 않아도 된다."

얘가 괜찮다고 말하면, 내가 안 괜찮아지더라.

"어쨌든요! 얘기할 만도 했잖아요. 휴마누스는 프라시더스 가문 소속도 아니고, 황제에게 그것을 일러바치게 유도했다면 잘 해결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때는 내가 처한 환경이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책임을 가져야 하는 위치에 서는 자라면, 누구나 겪는. 그런 당연한. 일상적인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힘겨워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그러했지.

이것이 문제다.

이래서 어린아이가 어디서 학대를 당해도, 그것을 당연한 거라 말하는 어른들 때문에.

도움을 구하지 못하고, 그렇게 묻혀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모두 어른들의 책임이고 잘못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에게 매를 드는 일은 잘못된 일이라는 걸, 모두가 알아야 한다.

'말 못 하는 짐승조차 칭찬과 간식으로 다독이면 교육할 수 있는데···.'

어떻게 말이 통하는 사람의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지,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

훈육은 매가 아니라, 덕(德)으로써 사람을 인도하여 가르치는 것이라 했다.

덕이 아닌 매를 선택했다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덕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리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그건 당연히 아이의 탓이 아니다.

"세르펜스, 그건···."

"안다. 이제는, 알고 있다. 그냥, 그때는 그랬다는 거다."

억지로 만들어낸 그 미소가, 얼마나 애달프게 느껴지는지.

녀석은 알고서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자 또한 차기 황제로서 비슷한 일을 당하고 있다 생각해서. 그럼에도 밝게 웃는 그 모습을 보며···. 약간은···, 조금은. 그자를···, 존경했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고, 그는 진심으로 행복하여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런 휴마누스가 자신에게 동질감 어쩌고 하며 친한 척을 해대니, 얼마나 가증스러웠을까.

그것은 아마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진정한 의미의 배신이었을 테다.

'이런 사연이 있었다는 건 몰랐네···.'

역시, 이래서 대화를 나눠 봐야 한다.

친하게 지내라고 떠들어대기만 했지, 그 이유를 이제야 물어본 나 자신이 부끄럽다.

"손잡아드려요?"

"괜찮다. 아니, 괜찮지 않···. 하아···."

그가 긴 숨을 토해냈다. 그 숨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가늘게 떨렸고, 콱 막혀있는 것을 억지로 쥐어짜 낸 듯 메말라 있었다.

녀석은 왼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숙였다. 오른손에 들고 있던 만년필은 그대로 놓친 건지, 툭 하고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 책상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 그의 비어있는 손을 잡아주었다.

"세르펜스."

"아···, 선우."

그제야 녀석이 숨통이 트였다는 듯, 숨을 크게 들이켰다.

고개를 든 그의 얼굴은 울고 있지 않았지만, 울 정신조차 없어 보였다.

그 얼굴에 반사적으로 발이 주춤했다. 발치에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어 내려다보니 아까 떨어진 만년필이다.

떨어지는 충격으로 안쪽의 카트리지가 깨졌는지, 흘러나온 검정 잉크가 눈물 자국처럼 번지며 카펫을 적셔나갔다.

"그것이 그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세르펜스가 고해성사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다. 전혀 그럴 필요 없는 말이었음에도.

이런 상황에서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처음에는 그를 고쳐 쓰는 것이 가능할까 회의적이었는데, 해묵은 먼지를 걷어내는 것만으로 그는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좀 더 다가가, 내 비어있는 손으로 그의 어깨를 짚었다.

"맞아요. 그건 휴마누스의 탓이 아니죠.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탓하는 것이 세르펜스의 잘못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세르펜스도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그럴 수 있는 일이고, 그럴 만했어요. 그 누구라도.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선우는 절대···."

"아뇨, 그건 모르는 일이죠. 제가 살아온 삶은 세르펜스와 다르니까."

"···어렵군."

"자꾸 부정하려고 하니까 어려워지는 겁니다. 세르펜스가 평범한 삶을 살았다면, 세르펜스가 연기하는 대외적인 모습보다도. 훨씬 근사하고 멋진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아직 늦지 않았고요."

그는 또다시 어렵다는 말을 입에 담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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