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90화 (190/925)

190회

39. 공작저에 찾아온 불청객 (1)

"이번 시련은 지혜의 시련으로, 우리가 주는 단서를 통해 새로운 단서를 얻고 최종적으로 시련의 장소를 찾아내는 것으로 시작···. 지금 뭘 하는 겐가?"

"친우에게서 온 편지가 너무 반가운 나머지 그만···."

"커흠···! 그런 건 나중에 읽게! 아무튼, 그것이 관례이나 지금은 시간이 촉박한 듯하니 어쩔 수 없이 바로 마지막 단서를 주겠다. 그 단서는···."

"바로 여깁니까?"

"그러하다. 바로 여기···, 엉?"

* * *

"···이건, 웬 꽃입니까?"

세르펜스의 질문에 유지스는 양손에 화병을 들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의 시선은 세르펜스의 왼손에 꽂혀있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으나, 자신이야말로 그의 왼손에 들린 회오리 사탕에 관해 묻고 싶다 생각한 것이 틀림없다.

점심을 먹고 집무실에 올라오자마자 그의 손에 쥐어진 그것은, 네 시간 전과 비교하면 확연히 줄어있었으나 여전히 커다란 크기를 자랑했다.

"오늘은 웬일로 티타임을 건너뛰시나 했더니···."

그렇게 말하며 유지스가 나를 힐끔거렸다.

정황상, 세르펜스에게 커다란 막대 사탕을 쥐여준 범인이 나냐고 묻는 것일 테다.

나는 엄지를 척 들어 올리는 것으로 대답하였고, 유지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참! 이 꽃은 오늘 정원사분께서 온실의 나무들을 가지치기하시길래, 아까워서 모아왔어요."

정원에서 자주 놀더니 정원사와 친해졌는가 보다.

꽃잎들이 어디 하나 짓무른 데 없이 생생한 것을 봐서, 바닥에 떨어진 걸 주워온 게 아니라 옆에서 바로바로 받아서 하나씩 골라 화병에 꽂은 것이 아닐까?

어쩌면 직접 옆에서 거들었을 수도 있고.

"아까울 게 있습니까? 나무의 생장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가지치기를 해야 나무가 더욱 잘 자란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는데. 이 세상에 마땅히 버려져야 하는 것이 어딨겠어요."

그녀가 양손에 들린, 색색의 수국이 담긴 화병을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햇살처럼 웃었다.

"어차피 시들어버릴 한때의 아름다움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기준에서도 그러한데, 엘프인 위리디아님의 시선으로 보면 더욱 부질없는 것 아닙니까?"

세르펜스가 이해되질 않는다는 표정으로, 작은 꽃들이 모여 큰 덩어리를 이룬 꽃들에서 시선을 거뒀다.

유지스가 세르펜스의 책상 위에 화병 중 하나를 내려놓았으나, 그는 그러거나 말거나 거들떠도 보지 않고 시선을 내려 서류에 집중하였다.

말만 들으면 세상 냉정하고 무정할 것 같지만···.

'이건 뭐, 그냥 사탕 먹으면서 스케치북에 낙서하는 것에 심취한 어린애처럼 보이네.'

그의 손에 들린 사탕이 그가 차갑게 보이는 것을 방해하였다.

"아하! 세르펜스는 생화보다 드라이 플라워가 취향이시구나?"

"그런 거였나요?! 잘 말려서 다시 가져와야겠네요."

"···왜 얘기가 그렇게 되는 거지?"

세르펜스가 사탕의 끄트머리를 입에 물고,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우리를 번갈아 보았다.

"아니에요?"

"아닙니다."

유지스의 질문에 세르펜스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라는데요?"

"죄송합니다, 우리 애가 좀 까탈스러워서···."

"시온이 틀리기도 하나요?"

"죄송합니다. 사실 그냥 되는대로 아무 말이나 한 건데, 진짜 믿으실 줄은···."

어리둥절해진 그녀가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나는 그녀에게 사과했다.

일련의 대화에 세르펜스는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냐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그저 이런 것에 가치와 의미를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책상에 공간만 차지하니, 업무에도 방해되고···."

"지금 손에 들린 사탕은요?"

"이, 이건, 시온이 머리에 당분을 공급하면 업무 효율이 더욱 오른다 하여서···."

그런 얘기를 하기는 했으나, 그 말을 하기 전. 사탕을 꺼낼 때부터 녀석은 그것에 홀려있었으니 저 말은 변명에 불과하다.

유지스 또한 그가 변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꽃보다도 싱그럽게 미소 지었다.

"이 세상에 가치 없는 것과 무의미한 것이란 없어요. 세르펜스 님께서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는 건 아니죠."

"···그렇게까지 이것을 여기에 두고 싶습니까?"

"일단 꽃이 시들 때까지만 둬 보세요. 뜻밖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달콤한 사탕을 매일 입에 물고 있지는 못하니, 그럴 땐 달콤한 꽃향기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겠죠."

그녀의 말에 세르펜스가 꽃을 빤히 노려보다가 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왠지 나도 뭔가 좋은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라나는 어린아이에게 해 줄 만한, 꽃을 주제로 한 훈화(訓化)의 말은 뭐가 있지?

"시들면 좀 어떻습니까? 그래도 눈에 담았던 아름다움과 코를 간질이던 향기는 기억에 남을 텐데. 언젠가 그때와 같은 꽃이 피어나면 그때의 추억도 같이 떠오를 테니, 한순간의 아름다움이라 말하기엔 어폐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 한들, 다시 피어난 꽃과 지금의 꽃은 다른 것 아닌가?"

책상 위에 꽃 하나 올려놓기 참 힘들다.

하지만 '왜요 병'에 걸린 아이처럼 그 의미를 파헤치려 하는 게, 나쁘지 않았다. 좋은 징조다.

'작년에는 세상을 사랑하고 싶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었지.'

그 이면에는 자신도 남들처럼 행복해지고 싶다는 말이 숨겨져 있었을 것이다.

삶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서. 그것을 잃고 싶지 않을 정도로. 간절해질 정도로.

'자신도 그러했으면 하는 바람이었겠지.'

맛있는 음식도 먹고, 즐겁게 취미 생활도 했겠다.

이제야 여유를 가지고 세상에 관심을 표하기 시작하는데, 누가 그것을 타박하거나 귀찮아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늘려 그의 세상을 가득 채우게 된다면.

세르펜스도 남들처럼 행복을 입에 담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럼 이렇게 하죠. 꽃잎 한 장을 간직하고, 다음에 또다시 꽃을 마주하게 되면 그땐 또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로."

나는 유지스가 내 책상에 올려놓은 화병의 꽃 중, 제일 싱그러워 보이는 보라색 꽃 하나를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꽃잎이라더니?"

"뭉텅이를 하나의 꽃으로 보면 이 또한 꽃잎인 것을···."

"헛소리군."

"아무렴 어때요? 꽃 모양을 유지한 채 눌러놓기 딱 좋은 모양새잖아요."

꽃 한 송이든, 꽃잎이든, 이파리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속으로 툴툴거리며 떼어낸 꽃을 서류 뭉치 안에 끼워 넣었다.

"잠깐. 그러면 서류가 물드는 것 아닌가?"

"물들면 좀 어떻습니까? 그래도 서류의 내용을 눈에 담는 것에는 어떠한 장해도 되지 않을 텐데. 언젠가 이 서류를 다시 보게 되면 그때의 추억도 같이 떠오를 테니···."

"실수를 은근슬쩍 좋은 말인 척 넘기려 해봐야 소용없다."

이런 눈치 빠른 꼬맹이 같으니.

나는 쯧 혀를 찼고, 그런 내 모습에 세르펜스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말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유지스도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제 말에 어디 틀린 점이 있나!"

"업무의 효율이 오른다는 사탕을 어째서 시온은 먹고 있지 않은 거죠?"

"그렇다고 진짜 틀린 점을 지적해 달라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이런 잔인무도한 엘프 같으니!

저 말은 업무 효율을 높여야 하는 것은 세르펜스가 아닌 나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세르펜스에게, 사탕을 먹고 있는 건 그냥 당신이 먹고 싶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말이기도 했다.

세르펜스가 왜 그딴 말을 꺼냈느냐는 원망의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구원 요청을 한 거였는데, 이렇게 무차별 데미지를 넣을 줄 누가 알았나!'

오늘 삼파전의 최종 승리를 거머쥔 자는 유지스였다.

"농담이에요, 농담! 세르펜스 님께서 워낙 뛰어나셔서 그렇지, 시온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사실 열심히는 안 하고 있다.

행정관이 늘고 나서 업무량이 확 줄어서 쉬엄쉬엄해도 다 끝나고, 오히려 시간이 남는다.

"그리고 세르펜스 님도요. 좋아하는 걸 즐기면서, 즐겁게 일하면 좋죠. 사실은 단맛보다 좋아하는 것과 함께한다는 것이 효율을 높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해요."

세르펜스가 사탕과 유지스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결국 사탕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것을 슬쩍 핥았다.

그 모습을 나와 유지스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이상하다니요?"

"착각입니다, 착각."

순진한 세르펜스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저는 용건을 마쳤으니 이만 나가볼게요. 일 열심히 하시고, 꽃이 마음에 드신다면 매주 바꿔드릴 테니 말씀해주세요."

"음···. 일단 두고 보도록 하겠습니다."

싱글싱글 웃는 유지스의 시선을 피하며, 세르펜스가 고민된다는 얼굴로 꽃을 노려보며 답했다.

누가 보면 꽃이랑 눈싸움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시온은 어때요?"

"아, 저도요?"

"당연하죠. 설마하니 제가 친구를 차별할 것으로 보였나요?"

"아뇨, 그건 아닌데···."

그렇게 보지는 않았지만, 세르펜스에게 작업 건다고는 생각했지.

정말 순수하게 버려질 꽃들이 안타까워서 가져온 거였나?

"저는 마음에 듭니다. 유지스만 번거롭지 않다면야, 저야 좋죠."

"네.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그녀가 웃으며 문고리를 잡았고, 그와 동시에 세르펜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꽃에 대한 보답으로 배웅이라도 해주는 건가 했으나, 그는 유지스가 아닌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다가온 세르펜스는 자신의 손에 꼬옥 들려있던 막대 사탕을 내 손에 쥐여주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뭔데, 이거?'

나는 손에 들린 사탕을 보았다.

흰색과 빨간색, 노란색이 뱅글뱅글 회오리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어린 시절에 이 커다란 사탕을 혼자 먹지 못하고, 먹다 물려서 엄마에게 건넸던 기억이 있었다.

'아기들이 먹다가 물리면, 먹던 걸 부모님에게 건네는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흔한 일이지.'

특히 이런 커다란 사탕 같은 건 더더욱 그러하다.

깨트려서 조금씩 나눠 먹으래도 죽어라 말 안 듣고 통째로 들고 먹다가 결국 물려서. 혹은 다른 게 먹고 싶어져서, 끝까지 다 먹는 일이 드물다.

"···사탕이 너무 커서 둘이서 나눠 먹기로 한 거라면, 처음부터 반으로 가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유지스는 나가다 말고 그 자리에 못 박힌 것처럼 멀뚱멀뚱 서서, 사탕을 손에 든 나에게 자신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피력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딴 약속은 한 적 없다.

"세르펜스, 먹다가 물린다고 먹던 걸 남에게 주는 버릇은 어디서 배웠습니까? 이럴 거면 처음부터 쪼개서 조금씩 꺼내 드셨어야죠!"

"그런 게 아니다."

"아니긴요? 이렇게 먹으면 나중에 세균이 번식할 수도 있으니, 뒀다 먹지도 못하고 그냥 버려야 하잖아요."

버린다는 말에 아깝긴 했는지, 녀석이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자신이 직접 건넨 사탕을 바라보았다.

"하, 하지만···."

"하지만이고 그치만이고, 저 먹는 거에 엄청 민감한 거 아시죠?"

"아, 알고 있지만, 지금은 위급 상황이다."

"위급상황은 무슨 놈의 위급 상황?"

설마 충치라도 생긴 건가? 그렇다면 심각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세르펜스의 자리로 다가갔다.

"빨리 입 벌려봐요! 아- 하세요, 아!"

"설마 그 커다란 사탕을 내 입에 강제로 넣을 생각은 아니겠지?"

"그런 물리력의 한계를 벗어난 짓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전에, 충치가 난 어린이 입에 사탕을 쑤셔 넣는 것은 악마나 할 짓이다.

"자, 어서 아~ 하시죠!"

"잠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

"아앗-!"

"아앗이 아니라, 아-···. 왜 유지스가 아를 하세요?"

숙달된 조교의 시범이라고 보기에도 좋지 못한 예시였다.

"시온, 그런 게 아니에요. 일단 자리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네? 예? 아니, 왜요? 어째서? 뭣 때문에?!"

"방금 저택 본관에 들어온 기운은 분명···. 2층에 왔어요!"

"2층이라뇨? 누가요?"

"휴마누스가 저택에···, 3층!"

그 이름이 대체 왜 여기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쯤이면 한창 바쁘게 아르케 왕국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것 아닌가?

세르펜스가 제국을 거쳐 가는 것을 권장했지만, 그렇다고 수도를 찍고 가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4층! 집무실 방향으로 오고 있어요! 10, 9, 8···."

나는 재빨리 뛰어 내 자리로 돌아갔다.

오고 있는 과정을 일일이 보고하며 초읽기를 해서 그런가?

어째선가 귀신이 쫓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별로 격한 움직임도 아니었는데, 등줄기에 진땀이 흐른다.

"1!"

- 벌컥!!

"세피!! 나 왔어!!!"

유지스의 초읽기는 정확했고, 나는 시간 내로 자리에 돌아가 앉을 수 있었다.

손을 들어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 아. 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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