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04화 (204/925)

204회

40. 공작님과 실종 사건 (9)

섬세하고 가느다란 손가락 덕분일까?

손끝도 야무진 세르펜스는 내가 준 종이접기 책을 보며, 시행착오도 없이 결과물을 착착 완성해 나갔다.

'처음에는 이딴 게 무슨 재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으면서···.'

막상 몇 개 접어 보더니, 재미가 붙었는지 완전히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불안감을 지우기 위해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는 삼 일 만에 책 한 권을 떼어버렸고, 밤늦게 돌아온 유지스와 함께 셋이서 소소하게 책거리 파티도 열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접었던 것만 계속 반복해서 접던 그가 슬슬 종이접기에 흥미를 잃어간 것이다.

나는 그런 그를 위해 전공 실습 때 배웠던 종이접기 실력을 발휘했다.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서, 점차 난이도를 높여 복잡한 것들을 접어서 그에게 던져 줬다.

녀석은 그것을 자세히 관찰하고 조금씩 펴보기도 하며 내가 접어준 것들을 똑같이 따라 접었다.

레퍼토리가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나는 결국 밑천을 탈탈 털어 말년 병장 시절 심취했던 용 접기 기술을 선보일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조금 헤매는가 싶더니, 그마저도 금세 마스터해버렸다.

'와, 진짜 너무하네! 내가 저거 제대로 접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머리가 좋을 뿐만 아니라 공간 지각 능력까지 뛰어난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세르펜스가 세 종류의 용을 접는 것에 성공해 냈을 즈음.

"걸려들었습니다."

한스의 보고를 받았다.

그가 잠복시켰던 정보원 중 한 명이 납치 장면을 목격하고, 그 뒤를 쫓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비록 들키지 않도록 멀찍이서 쫓아가느라 정확한 위치는 발견해내지 못하였지만, 지역을 특정한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다.

"추격을 눈치챈다면 장소를 옮길지도 몰라서, 들키지 않는 선에서만 쫓으라는 지시를 내렸었습니다."

"네, 잘하셨어요. 그 정도만 알아도 찾아내는 건 일도 아니죠."

물론 내 일도 아니다.

유지스가 할 거다.

"하지만 시간이 꽤 지났어요. 그자들이 언제 일을 벌일지 몰라요."

내 말에 유지스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그녀만이 아니다.

말을 꺼내지만 않았을 뿐. 날이 거듭될수록 우리의 불안감도 점차 커져 가고 있었다.

"그들의 소굴을 찾아내는 것과 동시에 바로 현장을 덮쳐야···."

유지스가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시선을 따라 내 고개도 돌아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유지스가 쳐놓은 방음막 안에서 세르펜스가 방음막에 노크라도 하듯이 가볍게 두드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그녀가 정령을 그들의 세계로 돌려보내며 세르펜스에게 질문했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네?"

"정확한 적의 전력도 파악되지 않은 데다가, 지금까지 납치된 자들의 수가 적지 않으니 감시 인원 또한···."

세르펜스가 자신이 함께 가야 할 이유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바다. 그리 놀랍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유지스, 방음막에 뭐 구멍이라도 뚫려있던 거 아닙니까? 오늘 얘기뿐만이 아니라 이전 보고까지 전부 들으신 것 같은데요?! 혹시 세르펜스에게 부탁을 받아서 소리를 차단하는 척만 했다거나···."

"아니에요! 분명 완벽하게 차단했는데, 그런데 어떻게···?"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한 녀석이 머쓱하게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게, 실은···. 입 모양을 읽었습니다."

어쩐지 보고가 들어올 때마다 우리 쪽을 빤히 바라보는 것 같다고 느끼기는 했다.

매일 밤 내 방에 찾아오는 것도 그냥 불안감 때문이려니 생각했건만.

첫날 한스가 내 방에 찾아와 보고를 올린 것을 우연히 보고 난 후.

언제 또 같은 방식으로 보고가 올라올지 몰라, 아예 내 방에서 잠복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덕분에 나는 매일 바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에 누워있기는 했지만···.'

먼저 일어난 세르펜스가 침대에 올려두고 나간 것일 테다.

침대에서 눈을 떴다고 한들, 바닥에서 잤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침대까지 양보했건만,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한스로부터 첫 보고를 받았을 때, 우리의 기척이 신경 쓰여서 못 잤다는 소리조차 거짓말이었던 게 아닐까 하는···.

'아차, 그건 거짓말 맞았었지?'

아무튼.

녀석이 독순술까지 익히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나는 깊은 빡침을 느끼며 숨을 길게 나눠 뱉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후의 일은 저희끼리 알아서 할 테니까, 집사님은 방에 돌아가 주세요."

세르펜스를 혼내기에 앞서 한스를 방으로 돌려보냈다.

그가 비밀 통로 너머로 사라지자, 세르펜스는 자신이 혼날 것을 감지했는지 목을 움츠리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불쌍해 보이는 표정으로 눈을 치켜떴다.

아랫입술을 살짝 내민 채 입을 위아래로 실룩거리는 것은 덤이었다.

그런 얼굴을 해도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이번 한 번은 이렇게 넘어가지만, 다음번에는 국물도 없을 줄 아세요!"

"그래, 고맙다. 다음부터는 조심하지."

"크윽···. 두고 보자!"

이런 치사펜스!

어디서 이런 신기술을 배워왔는지, 아주 요망하기 짝이 없다.

"시온, 방금 세르펜스에게 뭐라고 쏘아붙이려던 거 아니었나요?"

"하, 하지만 저렇게 반성하는 표정을 짓고 있잖아요!"

내가 세르펜스를 가리키며 말하자, 득의양양하게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던 그가 곧장 울먹거리는 표정을 만들어 냈다.

저런 가증펜스 같으니라고!

"···어쨌거나, 할 수 있으면 유지스가 해 보시죠. 저 얼굴을 눈앞에 두고 혼낼 수 있나! 전 못 합니다."

"그건···! 그렇네요···."

귀여운 아깽이의 애교를 보고도 화를 풀지 않으면 그건 사람도 아니다.

아무리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멈칫할 수밖에 없으리라.

"넘어가는 건 이번 한 번뿐입니다. 세르펜스가 불안해서 그랬다는 거, 그 심정 충분히 아니까. 그래서 그냥 넘어가 주는 것뿐입니다. 아셨어요?"

"그래, 잘 알고 있다. 내가 그대의 생각을 왜 모르겠나?"

녀석이 내 말을 귓등으로 튕겨 내며, 아무렇게나 말을 지껄였다. 아무리 봐도 모르는 것 같다.

얘가 요즘 왜 이렇게 얄미운 짓만 골라서 하는지 모르겠다.

어디서 이상한 친구를 사귀어서 이상한 물이라도 든 건 아닌가, 심히 걱정스럽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을 거다. 그러라고 내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준 것 아닌가?"

딱히 그런 것은 아니었다.

긴 시간, 그는 짐을 짊어진 채 홀로 정신없이 달려왔다.

이제야 조금씩 짐을 덜어내고 달음박질치던 걸음을 조금씩 늦추며 여유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축적됐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올 때도 됐지.'

그는 항상 휴식이 필요해 보였다.

업무가 끝나고 함께 취미를 가지기도 하고, 같이 떠들고 놀았다고는 해도. 휴식과 노는 것은 완전 별개다.

그러던 와중에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였다.

때문에, 더 이상 휴식을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뿐.

다른 말은 잘 들으면서 쉬라는 말 하나는 오지게도 안 듣는다.

"그럼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거기가 어딘 줄 알고?"

"어디긴요, 레클뤼턴 령이죠."

"그런 뜻이 아니다."

세르펜스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라고 녀석이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모르겠는가?

당연히 위험한 곳에 내가 함께 가는 것을 걱정하는 거겠지.

하지만 나도 걱정돼서 그런다.

'무력만 강하면 뭐해?'

악숭이 놈들은 한두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한 것인지, 거의 서른에 달하는 인원을 납치했다.

그의 악몽 속 사람들이 서른이나 모여있는 것이다.

아무리 유지스도 함께 간다고는 하나, 불안한 건 불안한 거다.

"애초에 세르펜스는 제게 그런 말 할 자격도 없습니다."

"그 말은 무슨 의미지?"

녀석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어째서 자신이 날 걱정할 자격이 없느냐고 따지는 거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지만, 대강 비슷하긴 하다.

"세르펜스는 제가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게끔,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게 일부러 유도하고 있잖아요."

"그, 그건···."

"세르펜스가 종종 말했죠? 악마들이 이 땅에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면, 자신도 성검의 주인처럼 대륙 곳곳을 돌아다녀야 할지도 모른다고."

내 말에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제가 누굽니까? 세르펜스어 마스터 겸 세르펜스 행동 발달 전문가입니다. 세르펜스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그렇게 힌트를 흘리고 다녔으면서, 제가 눈치 못 챌 줄 아셨습니까?"

"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군."

목소리까지 떨리기 시작했다.

틀리길 바랐으나, 안타깝게도 내 짐작이 맞은 모양이다.

"시치미 떼지 마시죠? 세르펜스는 저를 다른 사람의 보호 아래 두는 것보다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본인이 직접 지키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해서, 눈에 안 보이면 걱정돼서, 위험하든 안 하든 저를 데리고 다닐 계획을 세우고 계셨으면서. 새삼스럽게 왜 그래요?"

"그건 내가 자리를 비우기라도 하면, 당신이 바로 사고를 쳐서 그런 거잖는가!"

세르펜스가 울컥 소리쳤다.

사실상 내 말을 시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심각한 분위기를 느끼고 돌려보냈던 정령을 다시 불러들여, 소리를 차단하고 있던 유지스도 그것을 알아챘다.

그녀는 내가 한 말이 진짜냐고 묻는 듯한 눈으로 세르펜스를 쳐다보았다.

그제야 자신의 말이 내 얘기를 인정한 꼴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녀석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하나, 뱉은 말을 무르지는 않았다.

"제가 어디 그러고 싶어서 그랬습니까?"

"······."

녀석이 입을 꾹 다물고 나를 노려보았다.

공교롭게도 그의 시야가 미치지 않을 때마다 일이 터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내가 자초한 부분이 없잖아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겠지.

나도 알고 있다. 반성하는 바이다.

원망 섞인 그의 녹색 눈동자를 마주 보고 있노라니 양심이 콕콕 찔려왔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일부러 그 불안감을 고조시켜서 날 데려가게 만들 수는 없잖아?'

녀석의 증세를 알고 있으니, 그건 무척이나 쉬운 일이다.

이번 일이 세르펜스의 과거를 까발리는 목적뿐 아니라, 그를 밖으로 유인해내고 나를 노리려 하는 양동 작전이 어쩌고 하는 얘기만 슬쩍 흘리면 충분하다.

그것만으로 녀석은 초조해하며 나에게 같이 가달라고 사정할 것이다. 불 보듯 뻔하다.

'그 대신, 이번 일이 끝나고 나서도 나를 장마철 우산처럼 어딜 가든 챙겨 들고 다니려 하겠지.'

안 그래도 중증인 녀석의 불안감을 자극해서 상태를 악화시킬 수는 없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게 만드는 쪽이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더 낫다.

"세르펜스도 그들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잖아요. 가뜩이나 정신이 혼란스러울 텐데···. 저를 데려가도 신경 쓰이고 두고 가도 신경 쓰인다면. 괜히 보이지 않는 미지의 공포와 싸우는 것보다 눈에 띄는 곳에 두는 것이 차라리 낫죠. 저를 지켜야 한다는 게 흠이지만···.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뭐해도, 제가 세르펜스의 신경 안정제 역할은 톡톡히 하잖아요?"

"···당신 멋대로 하십시오."

녀석이 완전히 토라져서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정말, 내가 얘 때문에 별짓을 다 하네!'

이게 다 녀석이 나에게 과도하게 의지하고 있어서 그렇다.

최근 자신이 느끼고 있는 평온함이 모두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에, 내가 없으면 모든 것이 이전으로 돌아갈까 봐.

자신의 모든 심리적 안정을 나에게서만 찾고 있었다.

까놓고 말해, 이제껏 아무 일도 없었다 하더라도 녀석은 갖가지 이유를 대면서 나를 데리고 다니려 했을 것이다.

'내가 없으면 자신이 못 견딜 것 같으니까.'

여러모로 중증의 분리불안이다.

내게 의지해주길 바란 건 맞지만, 이렇게까지 나에게만 의지하길 바란 건 아니었다.

일정 부분은 스스로 이겨내길 바랐으나, 녀석이 너무 짠한 나머지 너무 어화둥둥 해버렸다.

'그것을 깨달았으면서 녀석이 걱정돼서 같이 가겠다고 우기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참 극성이라니까.'

하지만 걱정되는 걸 어쩌랴.

발작하며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히던 그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그것만 아니었더라면, 이런 억지는 부리지도 않았을 텐데···.'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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