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회
43.공작님과 암흑가의 악마 (6)
손님이 뛰쳐나가며 쾅 소리와 함께 닫혔던 문은 그 울림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열렸다.
"방금 그 사람은 뭐지?"
새로 들어온 사람이 대뜸 질문하며 가게 문을 닫았다.
검은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으나, 목소리로 그가 세르펜스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냥 손님입니다."
내 경쾌한 대답에 세르펜스는 후드를 걷으며, 그러니까 손님이 왜 울면서 뛰어가는 거냐고 묻는 표정을 지었다.
"세르펜스가 조금만 더 빨리 왔으면 좋았을 텐데."
"역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어째 녀석의 질문이 '역시 무슨 사고라도 친 건가?'라는 뜻으로 번역되어 들렸다.
날 믿는다더니, 전혀 믿고 있다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꼬투리 잡으면 저번처럼 '나는 당신이 사고를 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는 말이 돌아올 것이 뻔하다.
괜히 건드렸다가 손해 보지 말고, 모르는 척하자.
"방금 나간 손님이 이런 걸 맡기고 갔거든요. 그런데 보석 감정이 가능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세르펜스는 보석 볼 줄 알죠?"
"어느 정도는."
세르펜스는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이 녀석이 저렇게 말한다는 건, 어지간한 전문가 수준은 된다는 얘기다. 나는 냉큼 그의 손바닥에 브로치를 올렸다.
"어때요? 짝퉁 맞죠? 놈이 이걸 280이나 받으려다가 저한테 딱 걸렸지 뭡니까?"
"흐음···."
내가 옆에서 조잘조잘 떠들어대든 말든 세르펜스는 브로치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빛에 비춰보고 하며 자세히 살폈다.
전문가 포스가 좔좔 흐른다.
"최상품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상등품의 루비로군."
"예? 이상하네. 맡기고 간 놈이 가짜랬는데?"
"관리 상태도 나쁘지 않고, 보석과 금속 프레임 부분의 세공도 꽤 괜찮군. 드워프의 손길이 닿은 것 같지는 않으나, 상당한 실력을 갖춘 인간 장인의 솜씨다."
"이게 진짜라고요?"
"그래."
나는 손님 때문에 눌러쓰고 있던 후드까지 뒤로 젖히고, 녀석의 손에 들려있는 브로치를 자세히 살폈다.
다시 봐도 잘 모르겠다.
'아까 낮에 made by 세르펜스 신성석을 보고 난 이후라서 그런가···?'
별 감흥이 안 느껴졌다.
"이 정도면 얼마쯤 하는데요?"
"경매가로 치면 300만에서 400만 사이에서 거래되지 않을까 한다. 이곳이 전당포라는 것을 고려하여 값을 매기자면···. 최저 250만 정도?"
"아니, 그 자식은 왜 이런 걸 맡기면서 15만 아스만 받고 그냥 갔대?"
"······."
세르펜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도둑놈 보는 듯한 눈으로 쳐다볼 뿐.
"왜 그런 눈으로 봅니까?"
"자신의 양심에 물어보도록."
세르펜스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잡고 그것을 내 왼쪽 가슴 위에 얹었다.
"그 자식이 본인 입으로 가짜라고 했다니까요?"
"당신이 그렇게 몰아갔겠지."
"아닌데?"
"자신의 행동을 좀 더 냉정하게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떠한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 것 같기도 하다.
유지스와 윈스톤에게 질문할 때, 진짜 같으냐고 묻지 말고 어떤 거 같으냐고 물을 걸 그랬다.
진짜 같으냐는 질문에 모르겠다는 답이 나왔으니,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 것처럼 들릴 만도 하다.
'무서운 형과 누나가 목숨을 위협하면서 가짜라고 말해버렸으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손님이 울면서 도망간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세르펜스가 내 손을 반대쪽 가슴으로 옮겼다.
"···뭐 하시는 겁니까?"
"표정을 보아하니, 양심이 그쪽에 없는 것 같아서···?"
"아유! 우리 공작님, 개구쟁이가 다 됐네!"
"···이쪽에도 없는 것 같군."
양심 찾기를 포기한 세르펜스가 가슴에 얹어졌던 내 손을 떼어내고, 그 위에 브로치를 올렸다.
"300만짜리를 고작 15만 아스에 맡겼으니 금방 되찾으러 올 거다. 따로 잘 보관하고 있어라."
"예압!"
나는 루비 브로치를 내 아공간 주머니에 고이 넣었다.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해명하고 사과해야겠다.
"그래도, 으음···. 잘했다."
"네? 뭘요?"
"값을 그렇게나 후려쳤으니, 소문이 난다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 아닌가? 노리고 한 행동은 아닌 듯하나,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군."
진짜 전당포를 차렸으면 말아먹었을 거란 뜻이다.
세르펜스는 더는 손님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섰는지, 아예 가게 문을 걸어 잠가버렸다.
"그럼 창고 청소나 마저 합시다!"
"마저?"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가게만 보고 있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세르펜스가 의문을 표했다.
"그냥 멍하니 앉아 있으면 뭐 합니까? 빨리 치워버리고 뒹굴뒹굴하는 게 낫지. 자, 세르펜스도 왔으니까 어서 도와요! 다들 이동, 이동!"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빗자루를 꺼내서 세르펜스의 손에 쥐여 준 후, 창고로 향했다.
창고 입구에 비스듬히 세워진 가게의 빗자루도 잊지 않고 챙겨 들었다.
빗자루를 든 나와 세르펜스는 바닥을 쓸었고, 유지스와 윈스톤은 잡동사니가 남아있는 장식장을 가장자리로 옮겼다.
세르펜스는 비질을 하는 게 처음인지, 내 행동을 유심히 살피더니 쓱쓱 싹싹 열심히 바닥을 쓸었다.
바닥에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같은 자리를 몇 번이고 쓸어냈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해서 방과 후에 처음 비질을 해보는 아이 같은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고 보니, 유지스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무엇을 말인가요?"
"잠자리요. 이곳 주인이 쓰던 방이 있을 텐데, 거기서 자는 게 편하지 않겠어요?"
"글쎄요? 그런 자가 쓰던 방은 그다지 사용하고 싶지는 않아서···."
마지막 장식장을 옮긴 유지스가 그것에 등을 기대며 고민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해한다. 나도 죽은 전 보좌관의 방을 써야 한다고 들었을 때 장난 아니게 찝찝했으니까.
'그나마 내 방은 시녀들이 깨끗이 청소라도 해 놨지.'
이런 곳에서 사는 놈이 방에서 혼자 뭘 했을 줄 알고 거기서 잔단 말인가.
나 같아도 싫다.
"세 분만 불편하시지 않으시다면 저도 여기서 자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저는 괜찮고, 세르펜스도 마찬가지일 거고···. 윈스톤은요?"
"유지스 님만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상관없소."
내 장담에도 불구하고 유지스는 걱정이 되었는지 세르펜스를 쳐다봤다.
시선을 받은 세르펜스는 나에게 빗자루를 반납하며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유지스는 우리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럼 청소도 끝났고 다들 여기서 자는 거로 결정됐으니, 꺼내 둘 건 미리미리 꺼내두죠?"
사실, 지금 이때만을 기다렸다.
유지스와 윈스톤이 침대를 꺼내어 세르펜스의 코가 납작해지는 그 순간을 말이다.
허구한 날 상식을 운운해대는데, 진짜 상식이 부족한 것은 내가 아니었음을 그는 깨달아야 한다.
'침대의 휴대가 가능한 아공간 주머니가 있거늘!'
거기다 침낭 따위를 넣고 다닌다는 건, 스마트 폰으로 음성 전화와 문자 메시지만 사용하는 꼴이다.
내 또래의 세르펜스가 그런 아날로그적 인간이라는 것이 믿을 수가 없다.
"아, 참! 시온, 침낭 챙기셨나요?"
"···예? 침, 뭐요?"
"역시! 그럴 줄 알고 제가 시온의 것까지 사 왔어요."
유지스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아공간 주머니에서 침낭 두 개를 꺼냈다.
"유지스, 실망입니다."
"아···. 제가 괜한 오지랖을 부렸나요? 시온이 칠칠찮아 보인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살짝 덤벙대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아서···."
"그런 거 아닙니다. 절 챙겨주시는 그 마음은 몹시 고마운데, 하지만···!"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간과한 사실이 있는데, [성검의 주인]에서 아공간 주머니를 얻고 난 주인공 일행은 여전히 침낭을 고집했었다.
'그 장면에서 어째서 침대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건지 의문을 가져 놓고, 그걸 깜박하다니!'
아직 본격적으로 써먹지도 못한 효도권 하나가 날아가 버렸다.
"저···, 제가 뭔가 잘못한 건가요?"
"아닙니다. 시온이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것이 하루 이틀은 아니잖습니까?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 그런가요?"
"예, 그런 겁니다."
세르펜스가 생글생글 웃으며 유지스에게 내 앞담을 깠다.
얄미운 녀석 같으니.
"윈스톤은요? 챙겨 오셨죠? 침대."
"···침낭을 잘못 말씀하신 거 아니오?"
"와, 진짜!! 다들 실망입니다!"
내 반응에 유지스와 윈스톤은 어리둥절해 하였다.
그 와중에 세르펜스 홀로 조용히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한 명도 침대를 가져올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있죠?! 세르펜스는 그렇다 쳐도, 두 분은 침대를 챙기셨을 줄 알았는데!"
룩스메아 교리에 외박은 무조건 침낭에서 해야 한다는 구절이 있는 것도 아닐진대.
혹시 저 둘은 야외에서 자는 일이 종종 있어서, 그때마다 침낭을 챙기는 것이 버릇이라도 된 것이 아닐까?
그럴듯하다. 그래서 침대를 가져온다는 발상 자체를 떠올리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이런 곳에 침대를 챙겨 올 생각을 하는 당신이 특이한 거다."
"아니거든요? 이게 일반적인 생각이거든요?!"
모르긴 몰라도, 아공간 주머니가 나오는 판타지 소설의 독자들은 다들 한 번씩 의문을 품어 보았을 것이다.
'어째서 아공간 주머니가 있는데 침대를 넣고 다니지 않는 것인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만약 지금 상황이 [성검의 주인]처럼 소설로 연재되고 있다면, 다들 나에게 공감하는 댓글을 남겼겠지.
모든 독자가 침대를 넣고 다니는 것이 당연하다며 입 모아 얘기했을 거다.
"···시온."
세르펜스가 홀로 괴로워하는 내 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위로해 주는 건가 싶어 고개를 들어 올리자, 승리자의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나는 더욱 패배의식에 잠식되어 그 미소를 외면하며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녀석은 그것마저도 예상한 것일까?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곳에는 세르펜스의 손바닥이 대기하고 있었다.
"아, 알았어요! 알아서 어련히 줄까! 보채지 좀 맙시다!"
나는 투덜거리며 문제의 아공간 주머니에서 효도권 두 장을 꺼내어 그의 손바닥 위에 얹었다.
"···잠깐, 물건이 다르잖은가."
"예? 그럴 리가요?"
그의 손 위에 올려진 종이 쪼가리를 자세히 살폈다.
효도권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고, 그 아래에 세르펜스의 자필로 '효도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뒷면에는 그의 서명까지.
틀림없이 세르펜스가 나에게 준 효도권이 맞다.
"이거 맞는데요?"
"···당신이 새로 써서 나에게 준다는 것 아니었나?"
"네?! 그랬다면 제가 효, 읍···!"
녀석이 쏜살같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완전 습관화가 다 됐다.
나는 그를 한 번 흘겨준 후 녀석의 손을 치워냈다.
"그랬다면 다른 이름을 붙였겠죠. 안 그래요? 그러게 세르펜스가 처음부터 꼼꼼히 따졌어야죠."
이런 상황을 계산한 건 아니지만, 이번엔 내가 승리자의 미소를 지을 차례인 듯했다.
"저 두 분은 항상 저런 느낌이오···?"
걸걸한 목소리에 시선이 절로 돌아갔다. 윈스톤이 솥뚜껑 같은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유지스에게 넌지시 질문하는 모습이 보인다.
물어보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는지, 질문을 건네는 지금도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럴 리가요? 지금은 윈스톤 님 앞이라서 조금 자중하시는 것 같네요."
"······."
"불편하신가요?"
"아, 아니오! 그렇지 않소."
윈스톤은 손을 내저으며 몇 걸음인가 뒤로 물러섰다.
'설마 따돌림당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앞으로는 좀 더 대화에 끼워줘야겠다.
처음 봤을 때는 나불나불 말을 많이 하길래 수다쟁이인 줄 알았는데.
당시에는 악에 치받혀서 속에 있는 것들을 토해내다 보니 자연스레 말도 길어졌던 게 아닌가 한다.
오래 곁에 두고 보니, 그가 과묵한 성격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과묵하다고 해서 자신이 겉돌아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어떻게 해야 윈스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세르펜스도 그를 인정할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