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회
46. 공작님과 수상한··· (2)
'휴마누스가 원래 이렇게 잘난 척이 심했던가···?'
적어도 [성검의 주인]에서는 이러지 않았다. 즉, 세르펜스에게만 이런다는 뜻이다.
나는 그 원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자 도적단 수뇌부들이 이상한 약을 먹더니, 갑자기 막 덩치가 커지는 게 아니겠어? 악마 숭배자들이 개입해 있었다는 소리지.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침착하게···."
휴마누스의 이야기는 언제부턴가 자신의 무용담으로 변해있었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세르펜스는 감탄하는 척했다.
대사에 성의라고는 털끝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데, 그것을 진심처럼 보이게 하는 것도 정말 능력이다.
'아무튼 결론은 세르펜스가 계속 우쭈쭈 해주니까, 신나서 더 저러는 거잖아!'
세르펜스의 속내야 뻔하다.
빨리 이 순간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 때문에 대충대충 말을 내던지고 있었으나, 쓴소리를 못 하는 탓에 이야기가 더 길어져 버렸다.
전역한 복학생이 신입생을 앉혀 놓고 군대 무용담을 줄줄 쏟아내는 모습이 따로 없다.
그런 휴마누스의 행태가 같잖았는지, 푸로르는 낄낄거리며 리에나에게 뭐라 뭐라 귓속말을 하였다.
귓속말을 전해 들은 리에나는 그저 온화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래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전혀 모르겠다.
둘 사이에 앉은 아니마는 허리를 숙여 턱을 괸 자세로, 멍하니 테이블 한구석을 바라보았다.
'그보다, 도적단 놈들이 약 먹고 파워업 하는 전개 따위는 [성검의 주인]에 없었는데···?'
휴마누스 일행이 [성검의 주인] 때보다 약해지면 어쩌나 했으나, 악숭이의 스파르타 교육으로 아주 강인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물론, 악숭이들이 더욱 공격성을 보이는 만큼 마냥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그래서 그때 리에나가 결계를 쳐서···."
"잠시,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습니다."
드디어 휴마누스의 입을 막을 만한 건수를 잡아낸 것일까?
세르펜스가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휴마누스의 말을 끊어냈다.
"걸리는 점?"
"네. 전하의 말씀을 듣다 보면, 치료와 결계에 관한 일은 모두 동료분께 맡기시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그야 그런 건 나보다 리에나가 더 잘하니까."
"연습은···."
"리에나가 조금은 익혀두는 게 좋다고 해서, 가끔 하긴 하는데···. 일단 성검의 힘을 다루는 게 더 중요하잖아?"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세르펜스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듯,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성검이 무기의 형태를 띠고 있기는 하나, 그것이 본질은 아닙니다."
"그게···, 그래서 더 제어하기 힘들단 말이지···."
한창 잘난 척 떠들어대던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휴마누스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그가 성검을 얻은 후, 세르펜스와의 대련에서 보였던 모습을 떠올리면 저 말이 무슨 뜻인지 대충 감이 잡힌다.
'원래 휴마누스는 공격 외의 방법으로는 신성력을 잘 사용하지도 않았잖아?'
같은 순발력 게임이라도 슈팅 게임, 리듬 게임, 퍼즐 게임에서 요구되는 사용자 피지컬이 모두 다른 것처럼.
공격, 치료 및 버프, 결계.
세 가지 기술은 신성력의 운용 방법부터가 다르다.
안 그래도 익숙지 않은 기술인데 성검의 영향으로 신성력이 마구 날뛰니, 수련할 맛이 잘도 나겠다.
비유하자면 슈팅 게임만 하던 사람에게 다짜고짜 리듬 게임 '왕벌의 비행' 헬 난이도를 들이민 것.
낮은 난이도부터 점차 올라간다면 모를까. 혹은 천재적인 리듬 감각을 타고났다면 모를까.
보통은 절대 못 한다.
'그런데 첫 시련 보상으로 받은 거, 성검의 힘 제어를 도와주는 보조 무구잖아?'
그럼 할 줄 알아야지.
"혹시 교단으로부터 볼타 산맥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하신 겁니까?"
"듣기야 했지···. 하지만 결계가 깨지는 것만 막으면 되지 않을까?"
"물론 결계가 깨지지 않는 것이 최선이긴 합니다. 하나,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전하께서 성검의 힘으로 다시 결계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면, 악마 숭배자들은 몇 번이고 그것을 깨부수려 시도할 겁니다."
일단 한 번 깨기만 하면 마물들이 우수수 쏟아지고, 마핵에 내재한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갈 텐데.
악숭 세력이 고작 한두 번 도전해보고 포기할 리 없다.
결계를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힘겹게 시도해봤자 헛고생이라는 것을 알고 그만두겠지.
[성검의 주인]에서 휴마누스는 결계를 다시 만들어내지 못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을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산맥이 터진 것은 제국이 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다.
휴마누스는 애먼 곳에서 악숭이와 드잡이질 중이었고. 뒤늦게 볼타 산맥으로 향했을 땐, 그곳은 이미 마물 밭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곳을 관리하는 악숭이들과 소환된 악마. 그리고 마물들까지 상대하면서 결계를 다시 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어찌저찌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곳을 지킬 사람이 없으니 악숭이가 도로 깨버리면 그만.
'몇 번을 생각해도, 제국이 망한 게 너무 치명적이었어.'
제국의 역할을 대신할 나라가 있어야 한다며, 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면서 시체를 잔뜩 만들어낸 건 또 어떻고?
물론 악숭 세력이 뒤에서 부채질한 결과지만.
애초에 제국이 망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일단 노력해볼게. 한동안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또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한탄하듯 내뱉어진 휴마누스의 말에 세르펜스가 의문을 표했다.
"폴드 공국으로부터 연락이 왔거든. 최근에 공국 내에서 대량 실종 사건이 벌어졌는데, 아무래도 악마 숭배자들의 소행인 것 같다고."
"공국이 말입니까?"
폴드 공국은 루멘 제국 근처의 조그마한 나라다.
본래는 왕국으로 불리며 그 영토 또한 넓었지만, 영토 내에 마핵이 생기며 그 관리를 위해 제국이 그곳을 차지하면서 세가 크게 줄었다.
그 마핵이 생긴 자리는 두말할 것 없이 볼타 산맥이다.
처음에는 제국도 그들의 영토를 뺏을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문제는 볼타 산맥의 자원 때문.
'제국이 그걸 노렸다는 건 아니고···.'
본디 볼타 산맥은 마력의 흐름이 원활하여, 마법 시약 제조 등에 필요한 식물이 많이 자라는 환경이었다.
같은 이유로 마력석 또한 꽤 매장되어 있었고.
당시 왕국이던 폴드 공국이 그것으로 꽤 재미를 봤었는데, 하루아침에 그림의 떡이 되어버린 거다.
어떻게든 그 자원을 이용해 먹을 수 없을까, 결계를 이리저리 건드려 댔고.
그들에게 관리를 맡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제국이 볼타 산맥까지 영토를 확장해버렸다.
그렇게 폴드 왕국은 큰 돈줄이 사라진 것으로도 모자라, 제국에 밉보이고 땅덩이도 작아졌다.
'경제가 휘청하고, 국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지.'
그 틈을 노린 다른 국가들에게 공격을 받아 더 쪼그라들고, 망하기 직전까지 몰렸다.
흑마법사가 대륙 전역에 흐르던 마기를 끌어모아, 자국 내에 마핵을 만들어내는 미친 짓을 벌인 것부터 억울한 일이나 어쩌겠는가.
눈앞의 이득에 눈멀어 결계에 개구멍을 만들려 했던 것은 사실이니, 자업자득이라면 자업자득이다.
어쩔 수 없이 폴드 왕국은 제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그 결과 제국의 종속국이 되어 이날 이때까지 유지 중이라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자체적으로 해결해 보려 했는데, 역부족이라더라. 추가로 조사원을 보내도 자꾸 실종되고···. 마지막으로 받은 정보가 흑마력의 기운이 감지되었다는 내용이라나?"
"으음···."
[성검의 주인]에서 휴마누스가 그런 연락을 받았다는 얘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그것을 아는 세르펜스가 고민에 빠져 앓는 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네가 경매장에서 혈옥을 봤다고 했잖아."
"전하께서는 혈옥이 공국의 실종자들로···, 그게···."
세르펜스가 실종자들로 혈옥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차마 입에 올리기 두렵다는 듯.
말끝을 흐리며 슬픈 표정을 자아내었다.
"아주 예전부터 천천히 준비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럴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직접 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래야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휴마누스가 대답했다.
그에 반해 세르펜스는 고민스럽다는 티를 내었다.
"악마 숭배자들의 함정일까 봐 걱정하는 거야? 괜찮아, 현 공왕은 믿을 만한 사람이야."
공왕 러스티 뤼제 폴드.
그녀는 [성검의 주인]에서 제국을 잃은 휴마누스에게 가장 먼저 지지를 선언한 지도자이다.
그리고 끝까지 그것을 지켰다.
한순간도 성검의 일행을 배반하거나 악마 숭배자들에게 휘둘리지 않았다.
'특이점이라면, 약혼녀를 잃은 휴마누스에게 혼사를 권했다가 차인 전적이 있다는 것 정도?'
숙원을 달성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이었다.
그 숙원은 당연하게도 공국을 다시 왕국의 반열에 올려놓기 위함이다.
제국이 망하고 나서 은근슬쩍 왕국을 자칭했으나, 주변국에서는 인정해주려 하지 않았다.
온갖 국제회의에서 배제되고, 무시당하고, 따돌려졌다.
그 때문에 그녀는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국의 후계자인 휴마누스를 국서(國壻)로 맞이하려 하였다.
하지만 휴마누스는 그런 이유로 혼인할 수 없다는 말로 거절했다.
'왕의 자리를 만드는 것은 타국 왕의 인정이 아닌 본인의 지도력이라든가. 백성의 지지라든가. 어쩌고저쩌고하는 말을 늘어놓았었지.'
이후에 진짜로 휴마누스에게 반하긴 했지만, 미련을 보이지는 않았다. 거절당한 것을 담아두지도 않았다.
그저 한 국가의 수장으로서 대륙을 수호하기 위해 성검의 주인을 지지했을 뿐.
끝까지 성검 일행의 든든한 배후가 되어준 것을 떠올리면 믿을 만한 사람이긴 한데···.
'왠지 찝찝하네.'
제국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공국의 숙원인데, 제국이 건재하고 현 황제는 공국을 해방해 줄 생각이 없다.
지금이야 제국의 종속국인 공국을 함부로 건드리는 국가가 없지만, 해방된다면 얘기가 다르다.
폴드 공국은 대륙 유일의 속국으로 군사, 경제적 발전도가 형편없다.
욕심을 부려서 대륙을 위험에 빠트리려 했던 국가라는 이유로 제국에서 억압한 탓이다.
'제국이 손을 떼는 순간. 공국은 육식 동물 우리에 풀려난 초식 동물 신세가 되어버린단 말이지.'
당장은 악숭이들의 제물용 시체 수집을 막기 위해, 제국의 무력시위와 교단의 엄포로 함부로 전쟁을 막고 있지만.
악숭이 문제가 해결되고 난다면?
국가의 발전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폴드 공국에서는 해방과 함께, 그동안 자신들의 발전을 막아온 것에 대한 보상으로 100년간의 비호를 요구해왔다.
'그래, 뭐···. 몰래 키워온 군사가 있으니 그냥 해방해 달라고 말할 수도 없어서 그런 요구를 한 걸 테지만···.'
덧붙여 군사의 존재는 제국 멸망 후에나 드러나게 된다.
[성검의 주인]에서는 악숭이들로부터 자국민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말하였지만, 글쎄?
제국이 멸망한 이후라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을 뿐. 그 이유가 전부일 거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는 휴마누스도 알면서 그냥 넘어가 주었다.
제국이 망한 탓에 그 말대로 되어버렸으니까.
"···예.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왕이 아닌 그 아래에 있는 사람까지 전부 믿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국만 해도 그자들의 손이 닿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세르펜스는 그렇게 말하였지만, 공왕 또한 의심하고 있다는 것에 녀석이 내일 먹을 디저트도 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