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회
47. 공작님의 장점 (3)
"아니지? 생각해보니 좀 그러네! 왜 제가 욕을 들어야 하죠?"
"욕을 해달라 요구한 건 당신이잖은가?"
내가 세르펜스에게 따지고 들자, 녀석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반박했다.
그런 식으로 받아칠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욕으로 부탁한다는 말은 안 할 걸 그랬다.
"것보다, 제가 남이 칭찬을 하면 부정부터 하는 버릇 고치라고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자신이 불리하다고 해서 말을 돌리는 건 너무 치사하지 않은가."
"그래서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해, 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비겁한 어른인가 보다.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르펜스에겐 미안한 일이나, 해당 주제는 피하고 싶다. 말이 길어지면 '그런 취향'이란 말이 녀석의 입에 오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휴마누스가 세르펜스에게 이상한 지식을 주입한 탓이다. 세르펜스는 내가 아닌 휴마누스를 탓함이 옳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아라. 나는 칭찬을 부정한 것이 아니다. 그저 내 행동에 관한 당신의 의문을 해소해 주었을 뿐이다."
"어···?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동의를 표하자, 녀석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하여간 단순한 녀석이다.
"그런데 잘생겼다는 말은 왜 그렇게 어려워했습니까?"
"보통은 다들 어려워한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는 걸 보통을 운운하며 합리화시키지 마세요. 세르펜스의 얼굴부터가 보통 사람 수준이 아닌데!"
"···그 정돈가?"
드디어 나의 주입식 교육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내가 모든 교육은 주입식으로 진행되는 나라에서 살아온 세월이 몇 년인데!
다소 애먹긴 했으나, 내 말이라면 껌뻑 죽는 어린애 하나 구슬리는 일쯤이야···.
"시온, 지금 엄청 악당 같은 표정 짓고 계시는 거 아시나요?"
"됐습니다. 도와주지도 않으셨으면서. 실망입니다, 유지스."
"시온이라면 제 도움 없이도 잘 해내실 거라 믿었어요."
유지스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세르펜스에게 칭찬을 부정하지 말라는 얘기를 막 해둔 참이라, 뭐라 따지기도 힘들다.
그렇게 안 봤는데, 유지스도 은근 능글맞은 구석이 있다.
"뭐···, 어쨌거나. 세르펜스, 자신을 칭찬하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자기가 본인 스스로를 아끼겠다는데, 그걸 왜 부끄러워합니까? 제가 저를 아끼고 사랑한다 말하는 모습이 세르펜스의 눈에는 추해 보였어요?"
"절대 그렇지 않다."
"그럼요?"
"으, 으음···."
"그럼 어땠는데요? 네? 네?"
내가 녀석을 종용해대자, 그가 목을 거북이처럼 움츠리며 눈빛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나는 수신을 거부했다. 녀석에게 해 준 칭찬이 몇 갠데, 이렇게 넘어갈 수는 없다.
나도 칭찬받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칭찬을 하는 것 또한 좋은 교육이 되리라.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는가?"
"언어만큼 확실한 의사 전달 표현은 없어요. 눈빛과 몸짓 등으로 어느 정도는 가능할지 몰라도, 주관적 판단이 들어간 만큼 왜곡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구체성도 떨어지고요."
"아닌 것 같던데···?"
세르펜스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아니긴 대체 뭐가 아니라는 건지.
"그게 무슨 헛소립니까?"
"당신이 내게 할 소리는 아니지 않았나?"
"이상한 말로 회피하려는 생각이라면 꿈도 꾸지 마시죠! 어서 날 칭찬하란 말입니다!"
"이런, 뻔뻔한···."
녀석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의 당당함을 칭찬했다. 내가 바라던 종류의 칭찬이 아니다.
"···멋있···어 보였습니다. 뒤에 이상한 말을 덧붙이기 전까진."
뒤에 이상한 말을 덧붙인 건 내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을 녀석은 알아야 한다.
그저 세르펜스가 수줍펜스했을 뿐이란 건 알지만, 말 나온 김에 얘기해 둘 것이 있다.
"세르펜스, 칭찬에 너무 인색해지지 맙시다. 그게 남을 향한 칭찬이든, 자신을 향한 칭찬이든. 칭찬은 받는 사람 기쁘라고 하는 말이지만, 사실은 하는 사람에게 더 이로운 거거든요."
"어떤 점이 말인가?"
"호감을 사기 좋다는 거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테고. 칭찬은 할수록 늘고, 그는 곧 장점을 알아보는 능력도 향상된다는 뜻입니다."
"칭찬을 하면 할수록 칭찬을 더 잘하게 되어, 더욱 많은 이들의 호감을 살 수 있다는 계산인가?"
"갑자기 의도가 불순해졌잖습니까?!"
내가 느닷없이 자신을 혼낸다고 생각했는지, 세르펜스의 표정이 뾰로통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녀석이 끼어듦으로 인해 생긴 오해다.
"그런 이점도 있긴 한데, 그걸 말하려던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세르펜스가 이해하기 쉽도록 말하자면···,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을 키울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겁니다. 자신의 장점을 알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고. 타인의 장점을 알면 보고 배워서 발전할 수 있고, 어떤 행위에서 장점을 느끼면 그게 취미가 되는 거고, 사물에서 장점을 발견하면 그건 세르펜스만의 보물이 되겠죠."
"음···."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아.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세상은 저절로 세르펜스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게 될 테고. 행복감도 가득 차오르겠죠."
"그렇···군."
언제나 그러하듯. 세르펜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참으로 가르칠 맛 나는 학생이고, 키울 맛 나는 아이다.
"자, 그럼 둘째!"
"음?"
"두 번째 장점 말하라고요."
"아···."
너무 깊이 생각에 빠졌던 모양이다. 세르펜스가 한 박자 늦게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대륙인 중에서는 강한 축에 속한다?"
"뭐, 좋아요. 한정 조건이 달린 게 좀 마음에 안 들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요. 잘하셨습니다."
칭찬을 받은 세르펜스의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역시 (스물) 여섯 살이라 칭찬받는 걸 참 좋아라 한다. 물론 보는 나도 참 좋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칭찬을 받고 좋아하는 얼굴을 보는 것만큼, 칭찬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도 없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한다면 그 반대도 성립되는 법. 고래가 춤추면 사람도 칭찬할 맛이 난다.
"그럼 셋째!"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땡! 땡땡땡!!"
이 자식이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람?
간혹가다 온갖 일에 비평을 일삼으면서, 자신이 객관적이며 냉철하다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오해하기 쉬운데, 사실 그건 그냥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일 뿐이다.
나는 어리둥절해 하는 세르펜스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세르펜스가 가장 못 하는 게 바로 그거거든요?"
"아닌가?"
"방금까지 주관적으로 자신을 깎아내려서 혼난 주제에, 어떻게 객관적이란 말을 입에 담을 수가 있죠?!"
"···그렇다면, 내가 나를 어떻게 평가해야 객관적인 게 되는 거지?"
"나 잘났다 떠들고 다녀야죠!"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열어 녀석의 장점을 줄줄이 쏟아내려다 멈칫했다.
무릎을 꿇은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라더니. 이 자식은 내가 '땡!'을 외칠 걸 알면서, 그런 소리를 했던 거다.
은근슬쩍 모범 답안을 얻어내기 위한 수작질이었다.
"세르펜스. 그 좋은 머리를 이딴 데에 쓰지···, 아, 젠장!"
"셋째, 머리가 좋은 편이다?"
"······."
누가 봐도 아는 것을.
이 녀석은 어째서 내 입으로 확인받고 나서야, 그걸 자신의 장점으로 인정하는 걸까?
"좋아요, 좋아요! 그래도 장점을 말하긴 했으니까, 인정해 드리죠. 대신 오늘은 네 번째까지!"
"약속과 다르잖은가! 내 밀푀유를 걸고 맹세했으면서, 어떻게 말을 바꿀 수가 있지?"
이 자식은 지금 밀푀유가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이러는 걸까, 아니면 당장 떠오르는 게 없어서 이러는 걸까?
배신감으로 물든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다소 혼란스러워졌다.
"커닝했잖습니까? 부정행위는 나쁜 겁니다. 심지어 제게서 답변을 유도하려고 하셨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아량을 베풀어 세모점 드렸는데도 불만입니까? 예?"
세르펜스가 소심하게 작은 소리로, 우우 야유를 흘렸다.
내 말에 반박할 거리는 없으나, 그래도 치사하다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주군의 저런 행동, 기사인 윈스톤이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헛! 나, 나 말이오?! 그, 그게 그러니까···."
"고치는 게 좋을 것 같답니다! 과연 이 시대의 충심 깊은 기사라, 바른말을 거침없이 하시네!"
"아직 아무 말도 안 하였소···!"
"그래도 하실 예정이었잖아요? 제가 윈스톤의 마음을 왜 모릅니까? 다 이해합니다."
"···원래 항상 이런 식이오?"
윈스톤이 나와 대화하다 말고, 유지스를 돌아보며 그녀에게 질문했다. 몹시 나쁜 버릇이다.
"평소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닌데, 시온이 오늘따라 많이 흥분하긴 했네요. 아, 하지만 어떻게 보면 평소에는 더···."
"······."
"자세히 설명해 드릴까요?"
"사양하겠소."
윈스톤이 기가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그를 보며 유지스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늦든 빠르든, 이번 여행을 다녀오면 익숙해질 수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리라.
같이 술이라도 마시면 적응이 더 빨라지겠지. 그러고 보니, 테라룸 왕국의 술이 그렇게 유명하다던데···.
"자, 그럼 네 번째까지 빨리 해치워 버리죠! 이걸 빨리 끝내야 밀푀유든 뭐든 먹을 거 아닙니까?"
"···돈이 많다?"
"에라이, 그것도 내가 말한 거잖아!"
내 장점 속에 끼워 넣었던 걸 귀신같이 주워 먹었다.
그래도 이번 건 녀석의 장점이라 확실히 짚어주지 않은 것이니만큼은 개뿔이!
"그래서, 밀푀유는 안 주는 건가···? 오늘은 간식이 없어···?"
"크으윽···!"
잘생겼다는 말은 하지 말 걸 그랬나?
얼굴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한 세르펜스가 평소보다 더 반짝이는 얼굴로, 나를 간절하게 바라보았다.
수치로 표현하자면 가히 100만 럭스를 훌쩍 넘기는 밝기다. 이를 측정하는 도구가 있었다면 펑 소리를 내며 폭발해 버렸을 것이다.
"그, 그럼 한 개만 더! 딱 다섯 개만 채우죠? 반절 좋네, 반절!"
"이런 식으로 10개를 다 채우려는 속셈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오늘은 정말 이걸로 끝! 하나만 더 얘기하고 마무리 짓도록 하죠?"
나는 마지막 한 수저 남은 이유식을 아이의 입에 넣어주기 위해 애원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세르펜스를 살살 달랬다.
그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하나만 더'를 연호하자, 고집스럽게 굳어졌던 녀석의 얼굴이 조금씩 풀어졌다.
다섯 번째로 말할 장점을 고민하는 거다.
"단 것을···, 잘 먹는다?"
"예? 그게 장점이라고요?"
"장점··· 아닌가? 아니라면, 어째서 칭찬했던 거지?"
"······?"
"······?"
우리는 서로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니, 뭐···. 전에 미트볼 먹일 때 칭찬을 하긴 했지만···. 세르펜스가 단 걸 잘 먹는 모습을 보면서 '옳지, 옳지!' 하는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는데···."
"했는데?"
본인이 가진 수많은 장점 중에 기껏 고민해서 떠올린 게, 자발적으로 떠올린 첫 장점이, 고작 단 걸 잘 먹는 거라고?!
세르펜스 이 자식, 이대로도 정말 괜찮은 건가? 이게 최선인가? 확실한가?
"장점이···, 아닌가?"
녀석의 눈빛이 흔들렸다. 시무룩해진 시들펜스가 자신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밀푀유를 먹고 싶은 마음에 되는대로 던진 말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면서도, 그게 맞으면 뭐 어떤가 싶은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애가 먹고 싶다는데! 이렇게나 먹고 싶어 하는데!'
따지고 보면 매운 것을 잘 먹는 것도 자랑이고 장점인데, 단것을 잘 먹는 것이 장점이 안 될 건 또 뭐람?
세르펜스는 단것을 정말로 잘 먹는다.
다디단 핫초코에 마시멜로를 두 개나 넣어 마시면서도 좋아라 할 정도로.
"좋아요, 장점으로 인정합니다!"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미리 사둔 밀푀유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시들펜스는 싱싱펜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