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회
47. 공작님의 장점 (4)
세르펜스는 아침부터 고민에 빠졌다.
'여섯 번째 장점을 생각하는 거려나?'
나와 유지스가 시시덕대며 영양가 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그는 멍하니 넋을 놓았다.
심지어는 밥 먹는 시간조차.
여기서 살이 더 찌면 안 된다는 이유를 들어, 윈스톤이 내 몫의 '사워크림을 끼얹은 통감자 버터구이'를 뺏어가는 것도 말리지 않았다.
윈스톤이 그것을 먹기라도 했으면 내가 말을 안 한다. 배가 많이 고팠나 보네, 생각하며 너그러이 넘어갔겠지.
하나, 윈스톤은 나의 귀여운 감자돌이를 그 자리에서 기차 승무원에게 반납해버렸다.
그는 자기 관리에도 철저했다.
'보디가드인 줄 알았더니, PT 선생님이었을 줄이야!'
식사 후.
뒤늦게 드러난 윈스톤의 정체를 깨닫고, 내 곁을 떠나간 감자돌이를 떠올리며 애도하고 있을 때.
세르펜스가 슬그머니 내게 말을 붙였다.
"혹시···."
"네? 뭐 물어보실 거라도 있어요?"
"그···, 으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이건 대체 뭐 하자는 짓일까?
조금 기다리면 다시 말을 걸어오겠거니 생각하며, 녀석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세르펜스는 입을 꾹 다물고 다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설마 그겁니까? 사람의 궁금증과 답답함을 유발하여 빡치게 만드는 첫 번째 방법?"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왜, 있잖습니까? 첫 번째는 말 하다 마는 거고, 두 번째는···."
"두 번째는?"
"······."
"그래서, 두 번째는?"
"뭐가요?"
"음?"
몇 번 눈을 깜박거리던 세르펜스가 뒤늦게 자신이 당했다는 걸 깨닫고 헛웃음을 흘렸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똑같이 당하고 나서야 자신의 행동에 반성한 세르펜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장점은 그러니까···, 남들보다 더 뛰어난 점을 말하는 것이지?"
말머리에 '혹시'를 붙이고 할 만한 얘기는 아니다. 아직 반성을 덜 한 건지, 각오가 덜 된 건지.
녀석은 아직 망설이고 있었다.
"그렇긴 한데, 꼭 그럴 필요는 없어요."
"으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단것을 잘 먹는 게 자신의 장점이라 말한 주제에. 대체 뭘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남들 앞에서는 연기···를 하잖는가?"
"네, 접수됐습니다!"
"···음?"
"여섯째 장점으로 연기를 잘한다고 말하려던 거 아닙니까?"
"그게, 정말 장점이 되는 건가?"
이건 대체 무슨 세르펜스가 야옹 아닌 멍멍 하는 소리람?
아무래도 녀석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어봐야 할 것 같다. 내가 녀석의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보면, 알아서 입을 열겠지.
"남을 속이는 거잖는가."
"자신을 포장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누구나 약하고 부족한 점은 감추고 싶어 하죠. 또,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요."
"하지만 나는···, 그 정도가 심하잖은가?"
"그렇게 많이 다르지는 않은 것 같은데?"
착하지, 순수하지, 순진하지, 겸손하지, 상냥하지, 친절하지, 이타적이지.
늘어놓자면 한도 끝도 없다.
물론 어엿한 어른인 대외펜스와 다르게 대내펜스는 어리광쟁이 어린애지만, 유별나다 할 정도는 아니다.
남들 앞에서는 어른스럽게 행동하면서, 친한 이들 앞에서는 긴장의 끈을 풀어놓는 사람은 의외로 흔하다.
"유지스가 보기엔 어때요? 차이 심해요?"
"글쎄요···? 실제 성격은 조금···. 네, 조금 소심하긴 한데, 그렇다고 대외적으로 연기하는 모습이 대범한 건 아니잖아요?"
조금이라는 부분에서 그녀가 많이 배려해 주었다는 게 느껴졌다.
티 나는 배려였지만, 세르펜스도 자신이 소심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별말 없이 넘어갔다.
"그 연기력을 나쁜 곳에 쓰는 것도 아닌데, 왜 문제가 되는 거죠?"
"맞아요! 그리고 연기라면 유지스도 크게 한탕했잖습니까?"
"···어쩐지 제가 범죄자가 된 것 같은 단어 선택이네요."
유지스가 착잡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듣고 보니 그러하다. 마음속 깊이 반성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런 연기를 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내 탓이잖은가."
"저···, 어째서 두 분 다 제가 범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말씀하시는 거죠?"
울적한 표정으로 말하는 세르펜스를 보며, 유지스는 당황스러워했다.
"더군다나, 그녀의 연기로 피해를 본 사람은 없지만···. 나는 다르잖은가."
"세르펜스의 연기로 피해 본 사람이라고 해봤자, 암흑가 바지사장이랑 악숭이 말고 더 있습니까?"
내 의문에 녀석의 시선이 윈스톤을 향했다.
윈스톤은 그런 소심펜스가 아직 낯설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그는 눈에 띄게 긴장하였다.
어느 정도냐 하면, 휴마눈새가 와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갑자기 몸에 힘을 준 탓에 가슴 근육이 크게 펌핑 하는데, 시각적인 효과가 장난 아니다.
그에게서 운동을 배우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는 걸까?
"저···, 말입니까?"
"처음 윈스톤 경께서 저를 따르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던 건, 이런 제가 아니라···. 제가 연기하는 '프라시더스 공작'을 보았기 때문이잖습니까?"
저번에 대화한 거로 대충 털어 보낸 줄 알았는데, 여간 미안했던 게 아닌 모양이다.
사기 계약을 당한 거나 다름없는데 괜찮으냐는 물음이다.
마음에 걸리는 게 한둘이 아닌 것 같은데, 이것도 장점이 되느냐 묻는 이유는 뭘까?
'연기가 남을 속이는 가면이기도 했으나, 자신을 지키는 보호막이기도 했기 때문···이라는 건 그냥 내 확대 해석이려나?'
그런 기특한 생각의 발로라면 참 좋을 텐데.
대외펜스 설정이 녀석의 생존 수단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닙니다. 생각했던 것과 지금 모습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제가 주군을 따르기로 한 것은 다른 이유입니다."
윈스톤이 세르펜스의 말을 부정하는 말을 했다.
오늘만큼 '조금'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배려 깊어 보일 수 없다.
"그게 아니라면, 어떤 이유지?"
"소문의 '프라시더스 공작님'과 실제로 본 주군은 처음부터 달랐습니다."
듣고 보니 그랬다.
너그러우며 자애롭다는 설정과 달리, 세르펜스는 윈스톤과의 첫 만남부터 살기를 뿌려대지 않았던가.
오죽하면 내가 캐붕을 걱정했을까.
"자신의 사람을 지켜주고, 믿는 모습을 보았기에 따르고 싶었던 겁니다. 그 모습에는 거짓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윈스톤 경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땐 아직 제가 주군의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윈스톤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익숙지 않은 건지, 자신의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쓸며 겸연쩍이 말하였다.
세르펜스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며, 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둘 사이에 어색함이 넘쳐난다.
어떻게든 해 보라는 듯, 세르펜스가 툭툭 내 발치를 건드렸다.
"이제 거리낄 것도 사라졌겠다, 여섯째 장점을 확실히 합시다."
"···당신은 내가 연기하는 걸 항상 못마땅해 하지 않았나?"
"세르펜스가 그 이미지에 짓눌려서 괴로워하는 게 싫었던 거죠.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감탄 밖에 안 나오는데요?"
"그런···가?"
녀석의 눈이 반짝 빛났다.
표정은 안 그런 척해도, 내가 감탄했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거다.
'이게 세르펜스의 장점 말하기 시간이야, 녀석이 장점을 인정하게 만드는 시간이야?'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많이 가는 아이다. 때로는 귀찮을 때도 있지만, 그래서 더 정이 간다.
"세르펜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야 좋은 게 당연하고, 연기펜스도 나쁘지 않아요. 솔직해 보여서 좋습니다."
"···어떻게 연기하는 모습이 솔직해 보일 수가 있지?"
"예를 들어 마카롱을 하나 더 먹고 싶어서 자료를 찾는 척 제 주위를 기웃거린다거나, 푸딩을 두 개 다 먹고 싶어서 일부러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던가? 속이 훤히 보이잖아요."
"······."
가볍게 던진 말에 녀석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나와 둘뿐이라면 모를까, 유지스와 윈스톤 앞이라 부끄러운 모양이다.
"오늘따라 입맛이 별로 땡기지 않네요. 제 몫의 간식은 세르펜스에게 양보하도록 할게요."
"나는 원래 디저트류를 좋아하지 않소. 내 몫도 그냥 주군께 주시오."
유지스와 윈스톤이 자신 몫의 간식을 세르펜스에게 전해달라며, 앞다퉈 내게 부탁했다.
그럴수록 세르펜스는 더욱 괴로워했다.
"자, 자! 그래서 여섯째 장점은? 빨리 말해요, 저도 자랑할 거 있으니까."
"···자랑할 거?"
호기심은 많아서, 부끄러운 와중에도 궁금한 건 궁금한가 보다.
"세르펜스에게 받은 신성석 자랑하려고요. 가공하면 모양이 달라지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부지런히 구경해둬야 합니다."
"진심인···, 아니. 굳이 물을 필요도 없어 보이는군."
세르펜스가 이마를 짚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러할게, 내가 일하는 동안 신성석을 문진처럼 서류 위에 올려둔 것을 보았으니까.
처음에는 방에서만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테라룸 왕국으로 향하는 날짜가 잡히자 아까워져서 어쩔 수 없었다.
"세르펜스는 신성석 제작에 실패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건 프라시더스 영지 전용 신성석 얘기고. 제가 받은 건 제 전용입니다."
"세상에···, 진짜로군요?"
made by 세르펜스 신성석이 실존한다는 얘기에, 유지스가 빨리 보고 싶다며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그러니까 세르펜스, 빨리빨리 진행합시다."
"······."
"뭡니까? 더 시간 끌고 싶다는 듯, 불만 가득한 얼굴은?"
"그대의 착각이다."
세르펜스가 괜히 일찍 줘버렸나 후회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가공을 마치고 아무것도 아닌 듯 던져주는 건데, 따위의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아니라면 어서 하시죠? 여섯째 장점은?"
"나는··· 연기를 잘한다."
"아주 유용한 장점이죠!"
녀석이 알듯 모를 얼굴로 나를 잠시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차창 너머로 시선을 두었다.
어차피 이제부터는 내 신성석 자랑 시간.
만드는 동안 지겹게 보았으니, 우리와 어울릴 시간에 내일 치 장점을 찾는 게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장점을 찾는 게 그렇게 어렵나?'
내가 세르펜스라면 죽는 그날까지 하루 하나씩 자기 자랑을 하고도 부족해서, 죽고 난 후 룩스메아에게까지 자랑질을 해댔을 텐데.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신성석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너무 아름다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게다가 생긴 것만 예쁜 게 아니라, 만져보면 따뜻하기까지 합니다!"
"한번 만져 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내 허락을 받은 유지스가 조심스레 신성석을 쓰다듬었다.
"우연히 기회가 되어 신성석을 본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맑고 영롱한 것은 없었어요. 정말 따스하고, 다정하며, 찬란한···. 세르펜스를 닮은 보석이네요."
그녀는 감상을 솔직하게 말하는 척, 플러팅을 날렸다.
보석에 관심이 없어 보이던 윈스톤도 그녀의 손에 들린 신성석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괜히 내 어깨가 으쓱해졌다.
내가 이 정돈데 제작자인 세르펜스는 어떤가 싶어, 창문에 비친 녀석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옆에서 자신이 만든 신성석을 극찬하고, 오늘의 간식까지 독차지하게 되었음에도 낯빛이 어두워 보였다.
지나치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나 하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세르펜스는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 얼굴에는 부담감마저 느껴졌다.
"그렇게까지 거창한 건 필요 없는데···."
이력서 장점란도 아니고, 그 누구도 점수를 매기거나 하지 않는다.
그냥 아무거나 말해도 상관없다.
툭 까놓고 말하자면, 나는 세르펜스가 '이젠 반말도 곧잘 한다.' 같은 소리를 해도 장점으로 인정해줄 용의가 있다.
"뭘 그렇게까지 고민해요? 어차피 제 장점도 그렇게 대단한 것들은 아니었잖습니까?"
"아니, 대단했다. 나는 당신이 말한 그 모든 것에서 위안을 얻었으니까. ···두 번째는 빼고."
세르펜스가 창문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바라보며 답하였다.
그걸 꼭 빼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과 동시에···.
"잠깐만요. 제가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다는 것도 해당하는 겁니까?"
"따지고 보면, 그것이 시작이었잖은가."
내가 얘를 먹을 거로 낚았었다는 걸 새삼 떠올렸다.
그땐 작든 크든 한 가지만 하라고 혼났었는데, 여기까지 오다니. 역시 음식은 위대하다.
이 녀석이 왜 단것을 잘 먹는 걸 장점으로 꼽았는지 알 것도 같다.
"좋은 자셉니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장점을 찾아보면 됩니다. 세르펜스가 느끼기엔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다른 사람이 느끼기에는 큰 장점일 수 있거든요."
"···그, 렇군."
단것을 잘 먹는다는 건 반대였지만.
녀석에게는 큰 장점이었으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그게 무슨 장점이야 할 거다.
"긴가민가 잘 모르겠으면 오늘처럼 물어봐도 괜찮으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시죠!"
"벌칙이··· 너무 부담스럽다."
"그건 부담 가지셔도 됩니다."
세르펜스는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단것을 잘 먹는다는 장점이 있는 사람답게, 식빵에 딸기 콩포트를 가득 발라 줬더니 금세 밝아졌다.
정말 대단한 장점이다.
* * *
다음 날.
세르펜스가 나에게 질문을 해 왔다.
"나는, 성실한 편인가?"
"세르펜스가 불성실한 거라면, 이 세상에 성실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
"그래서 일곱째는?"
"나는 성실하다."
그렇게 녀석의 일곱째 장점이 정해졌다. 장점을 말하는 그의 모습이 이전보다 확연하게 편안해졌다.
내가 만족스럽게 웃어 보이자, 녀석이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어떤 식으로 진행하면 되는지, 이제야 감이 잡힌 모양이다.
"나는 신중한가?"
"매우요."
"···그렇군. 나는 신중하다."
다음날 녀석이 또다시 질문을 던졌고,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답변이 마음에 들었는지, 세르펜스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여덟째 장점이다.
그리고 또다시 시간이 흘러 하루가 지났다.
"나는 계획성이 좋다."
자신감이 붙은 것일까? 녀석이 웬일로 질문을 던지는 대신 확언을 하였다.
무척이나 기특하다. 아직 간식 시간은 안 되었지만, 작은 초콜릿 하나쯤은 줘도 괜찮을 것 같다.
"맞습니다! 이걸로 아홉째네요? 이제 하나만 더···."
"그리고 열째."
"네?"
아공간 주머니에서 금빛 포장지에 쌓인 아몬드 초콜릿을 꺼내는데, 녀석이 불쑥 숫자를 올렸다.
"당신이 나의 친구라는 것."
내가 세르펜스와 친구라는 걸 나의 장점으로 꼽았을 때부터 계속 생각해 뒀던 모양이다.
계획성이 좋다더니.
"일부러 마지막에 말하려고 아껴둔 겁니까?"
"상당히 짓궂다는 것이 흠이지만, 그래도 좋은 친구다."
말과는 다르게 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표정이다. 녀석은 유쾌하다는 듯 웃고 있었다.
자신의 손에 쥐어진 초콜릿 때문만은 아닐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