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61화 (261/925)

261회

49. 공작님과 드워프 장인 (2)

"어서 본 모습을 드러내 주게!"

"뭐 합니까? 최고의 장인님께서 말씀하잖아요?"

세르펜스가 부끄럽다는 듯, 양손으로 얼굴을 감춰버렸다.

"그 귀한 것을 왜 가리는 겐가?!"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오늘도 얼굴을 가리고 다니려는 걸 간신히 말리고, 적당히 엘프 귀로 타협한 겁니다."

"나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지만, 자네도 심미안이 대단하구먼!"

"제가 좀 그렇죠!"

정말 믿음직하다. 이 장인이라면 최고의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내 신성석을 맡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이 드워프는 무기 장인이잖아?'

신성석을 가공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지, 신성석으로 무엇을 만들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세르펜스가 신성석을 만들면서 염두에 둔 것이 있지 않을까?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어서 엘프 흉내는 그만두고, 날개를 펼쳐 보게나!"

내가 잠깐 딴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드워프는 계속해서 세르펜스에게 기대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의자까지 끌어와서 그 위에 올라서서 시선을 맞추는데, 옆에서 봐도 무척이나 부담스럽다.

세르펜스가 우물쭈물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하지만, 제겐 날개 같은 건 없습니다."

"날개 잃은 천사라···. 캬~, 그것도 좋지!"

대체 뭐가 좋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세르펜스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더는 엘프 코스프레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일까? 세르펜스는 신성력을 일으켜 환상 마법을 강제로 파훼했다.

- 파삭.

무언가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환상이 깨지고 마력의 파편이 흩어졌다.

마력과 신성력의 충돌로 작은 바람이 일어, 녀석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나부꼈다. 그 사이로 동그란 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훨씬 낫구먼!"

드워프는 세르펜스가 신성력을 사용하는 건 당연하다는 듯,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세르펜스의 둥근 귓바퀴와 적당히 살집 있는 도톰한 귓불을 보며, 완벽한 조형(造形)이라며 감탄했다.

"그런데 아직도 약간 조화가 안 맞는데···. 조금만 더 하면 완벽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거참 이상하네···?"

완전 귀신이 따로 없다.

나는 세르펜스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고, 녀석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청은발이 드러나면 정체가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걱정 탓이리라.

"뭐 어때요? 여기서 무기 맞출 거잖아요."

"그것과 이것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무기를 맞추는 것과 자신의 머리카락 색을 보여주는 것의 상관관계를 묻는 말이다.

우리의 대화를 들으며, 무언가 더 있다는 것을 감지한 드워프가 양손을 깍지껴 가슴 앞에 모으고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본 모습을 보여야 세르펜스의 이미지에 딱 맞는 검이 나오죠!"

"무기는 손에 맞는 것이 중요하지, 디자인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건 세르펜스의 생각이고, 제 생각은 다릅니다. 디자인도 기능의 일부입니다!"

내 의견에 드워프가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간 친구가 뭘 좀 아는구먼!'하고 추임새를 넣었다.

이곳에서 무기를 맞춘다면, 이 드워프는 무조건 세르펜스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라 요구할 것이다.

"···먼저 실력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여타 드워프들과 비슷한 실력이라면, 적당한 핑계를 대고 다른 곳에 갈 심산으로 하는 말이다.

드워프 특유의 높은 자존심을 생각해 봤을 때, 다른 사람이 저런 말을 했다면 네가 뭔데 자신을 평가하느냐며 노발대발했을 일이다.

하지만 세르펜스가 지닌 천상의 아름다움은 드워프의 실력을 평가할 자격까지 부여했다.

녀석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드워프는 의자에서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는 짧은 다리로 다다다 달려, 구석에 놓인 사다리를 끌고 와서 벽면에 걸려있는 검을 내렸다.

"다른 곳에서 본 것도 이런 견품이겠지? 하지만 같은 견품이라도 나는 그들과 급이 다르다~, 이 말일세. 관심 있다면 내 창고에 있는 작품들도 구경시켜줄 수 있다네. 그저 이 정도 검을 만드는 건, 내게 식후 운동조차 안 된다는 것만 알아두게나."

드워프가 세르펜스에게 검을 건네며 주절주절 떠들었다.

어쨌거나 견품이라는 건, 어쩌다 만들 수 있는 우연의 산물이 아닌 기본적인 바탕을 뜻했다.

심혈을 기울인 명작과 비교할 수는 없으나, 그렇기에 더 믿을 수 있다.

오히려 창고에서 자신만만하게 들고 온 무기를 보여줬다면 신뢰도가 팍팍 까였으리라.

"으음···."

세르펜스는 한쪽 눈을 감고 검날의 균형을 확인한다거나, 가볍게 휘둘러보기도 하며 그것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 동작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는지, 드워프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때요? 괜찮죠?"

"······."

녀석이 나를 지긋이 노려보았다.

저 드워프와는 오늘 처음 보는 사이 아니었냐, 대체 왜 네가 나서서 그러느냐, 그런 말을 하려면 최소한 견품을 살피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등등.

그의 눈동자 속에서 복잡한 심기가 읽혔다.

"···훌륭합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뛰어난 안목을 갖춘 장인의 실력이 떨어질 리가 없죠! 그럼 여기서 맞추는 겁니까?"

"으음···, 뭐···."

녀석이 떨떠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쯤 넘겨짚은 거였는데, 정말로 다른 드워프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모양이다.

"그렇다면 어서 날개를!"

"···날개는 없습니다."

자꾸 없는 날개를 요구하는 드워프의 말에 세르펜스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카락에 깃든 마법 시약 효과를 밀어냈다.

"완벽해! 등 뒤로 보이지 않는 날개가 돋아난 것 같아!"

- 짝짝짝짝!

세르펜스의 머리칼이 본래의 색을 되찾자, 드워프가 감격스럽다는 표정으로 마구 박수를 쳐댔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날개는 없었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이는 날개를 발견한 모양이다.

'이래서 고양이 키우는 사람이 매일 고양이 사진을 뿌리고 다니는 건가?'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놓고, 리뷰로 뜬금없이 고양이 자랑을 하는 사람의 마음에 공감이 갔다.

세르펜스에게 찬사가 쏟아지자, 뿌듯한 마음에 어깨춤이 절로 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유지스도 흐뭇하게 웃고 있다.

심지어 윈스톤까지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윈스톤 만큼은 다를 거라 생각했었는지, 세르펜스가 배신당했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눈치챈 윈스톤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크레아토 파베르라 하네."

"세르펜스 A. 프라시더스라고 합니다."

한참 세르펜스의 미모를 감상하던 드워프가 이제야 자기소개를 해왔다.

크레아토의 내밀어 진 손을 잡아 악수하며, 세르펜스 또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성검의 주인 내정자로 유명한 이름이었음에도 크레아토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성검의 어쩌고보다 세르펜스의 얼굴이 더 중요한 걸 테다.

세르펜스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혹시 모델 같은 건 관심 없나?"

방심하는 틈을 타 훅 들어온 크레아토의 질문에 세르펜스가 기겁했다. 녀석이 크레아토의 손을 내팽개치고 물러섰다.

"내가 주로 무기를 만들긴 하지만, 불현듯 영감이 떠올라서 말일세. 자네를 모델로 한 천사상이라면 이 대륙 역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명작이 탄생할 것이 분명하네!"

세르펜스가 후다닥 내 등 뒤로 숨었다. 어깨에 녀석의 손이 얹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보다 작은 내 뒤에 숨기 위해 있는 대로 몸을 웅크리며, 어깨너머로 빼꼼 눈만 내민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심리적으로 나에게 의지하고 있었기에 본능적으로 보인 행동일 테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옳지 못한 판단이다.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싶다면 내가 아닌 윈스톤의 뒤로 숨어야 했다.

세르펜스의 행동에 크레아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는 겐가?"

"아까 들렀던 대장간에서 누드모델을 권유했거든요."

"어허~, 대충 누군지 알겠구먼. 저기 사거리에 있는 대장간, 맞지?"

"네, 맞아요!"

"그런 저질스러운 놈과 날 비교하지 말게나!"

크레아토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그 말에 안심했는지 내 어깨를 쥔 세르펜스의 손가락에 힘이 풀렸다.

"놈은 보일 듯 말 듯, 얇은 천 너머로 드러나는 실루엣의 매력을 몰라. 걱정하지 말게나. 내 모델이 된다면 천 한 장 정도는 두르게 해 줄 테니."

뭘 좀 아는 드워프다. '배우신 분'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거절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벗고 싶다면야···."

"그런 의미가 아니라, 모델을 할 생각이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세르펜스의 목소리에서 경계심이 풀풀 느껴졌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녀석이 이렇게까지 본성을 드러내다니. 크레아토가 살짝 존경스러워졌다.

"만약 모델을 해 준다면, 평생 무료로 무기를 만들어줄 용의도 있네!"

"저 돈 많습니다."

"허어···."

크레아토의 어깨가 아래로 축 처졌다.

실망감 가득한 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안쓰러울 지경이었으나, 세르펜스는 말을 번복하지 않았다.

"싫다는데 억지로 어쩔 생각은 없으니, 그만 이리 나오게."

세르펜스가 고개를 흔들고 있는지, 녀석의 머리카락 때문에 목 뒤가 간질간질했다.

"그렇게 말해놓고, 세르펜스의 동의 없이 몰래 얼굴을 도용해 조각상을 만들려는 건 아니겠죠?"

"아름다운 존재는 존중받아야 한다네. 그걸 무시하는 짓은 그 어떤 드워프도 하지 않아."

크레아토가 심한 모욕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드워프는 미에 미친 종족이었다.

"들었죠? 자, 자. 빨리 나와요. 무기 견적 내야죠."

차라리 무기를 빨리 주문하고 이곳을 떠나는 것이 났다고 판단한 것일까?

세르펜스가 내 어깨를 놓고 슬그머니 옆에 섰다. 크레아토를 바라보는 녀석의 눈빛은 변태를 바라보는 그것이었다.

"잠시만 기다리게."

크레아토가 '작업 중' 간판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따라오라는 말을 남기며 안쪽에 별도로 마련된 공간으로 향했다.

화덕이 없는 거로 봐서 작업장은 아닌 것 같다. 대신에 다양한 크기와 길이, 형태를 가진 무기들이 가득했다.

"그래, 어떤 무기를 맞추러 왔지?"

"저와 여기 두 분이 사용할, 검 세 자루가 필요합니다."

세르펜스가 나와 윈스톤을 가리키며 답했다.

녀석이 윈스톤에게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았는지, 윈스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같이 가자는 말에 생각 없이 그냥 따라 왔던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주군."

드워프제 무기는 무기를 다루는 모든 이들의 로망이다.

윈스톤은 주군이 베푸는 과한 선물을 거절해야 할지 감사히 받아야 할지 망설이는 듯했으나,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그보다···.

"제 검까지 산다는 말은 저도 못 들었는데요?"

"어차피 사달라고 할 생각 아니었습니까?"

"아뇨? 실력도 없는데 좋은 검 사서 뭐해요?"

"실력이 없으니, 검이라도 좋아야지 않습니까?"

녀석이 갑자기 뼈를 때렸다.

허접스러운 실력이니, 도구빨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아직 누군가를 죽일 마음의 준비도 안 됐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신의 실력으론 그 누구도 해할 수 없습니다."

세르펜스가 안심하라는 듯, 온화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도닥였다.

오늘따라 막말 개쩌네.

"와, 저 그래도 실력 많이 늘었거든요? 무력으로 따지면 제가 리벨론 가에서 2위입니다!"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아기에게 지는 것도 자랑입니까?"

세르펜스가 순수하게 정말 몰라서 물어본다는 표정을 꾸며내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차라리 빈정거리며 말했으면 재능충이 뭘 아느냐고 따지기라도 했을 텐데.

"허어···. 내가 원래 실력 없는 놈들에게는 무기를 안 만들어주는데, 자네 것은 꼭 만들어주겠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제 한 몸 지킬 수단 정도는 있어야지."

비비가 신성력을 타고났고, 그 안의 영혼이 다 큰 성인이라는 걸 모르는 크레아토가 나를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젠장, 진정 노력으로는 재능을 이길 수 없는 것인가!!"

내가 탄식을 토하자, 세르펜스가 내 배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이 지방이 노력의 산물이냐며 비꼬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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