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62화 (262/925)

262회

49. 공작님과 드워프 장인 (3)

"유지스는 무기 새로 안 사도 돼요?"

나는 내 뱃살을 찔러대는 세르펜스의 손가락을 잡아 그를 저지하며, 유지스에게 질문했다.

그녀는 말을 돌리려는 내 의도를 눈치챈 듯하지만, 모르는 척 미소 지었다.

"네, 저는 괜찮아요. 여기서 산 건 아니지만, 지금 쓰는 활도 드워프제라서요. 저번에 잃어버리고 새로 맞춘 거라, 아직 쌩쌩해요."

예전에 납치당했을 때 잃어버린 후, 새로 맞췄나 보다.

"우선 현재 쓰고 있는 무기를 꺼내 보게나."

나는 허리춤에 매어 놓았던 검을 검집째로 끌러서 작업대에 올렸다.

원래는 간편하게 아공간 주머니 안에 넣고 다닐 생각이었으나, 세르펜스에게 된통 잔소리를 들은 후 줄곧 허리에 달고 다녔다.

사람은 적응의 생물이라더니 매일 달고 다니니 익숙해지긴 하더라.

윈스톤도 등에 비껴 멘 검을 풀어서 작업대에 올려놓았다. 내 키보다 더 기다란 검을 보고 있자니, 위압감마저 들었다.

옆에 놓인 내 검이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다.

세르펜스는 허리춤에 매달고 다니던 세검 외에도, 아공간 주머니에서 장검 하나를 꺼내어 함께 올렸다.

"아, 그래. 자네 성검의 주인 내정자였지?"

툭 던져진 크레아토의 말에 세르펜스가 난감하다는 듯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크레아토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눈으로 세르펜스를 위아래로 쓱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알겠다는 듯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일단 앉아보게."

그가 작업대 옆에 놓인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드워프의 키에 맞춰진 낮은 작업대와 다르게, 의자는 손님용인지 윈스톤이 앉기에도 불편함 없는 높이였다.

손님을 위한 배려라기보단, 까마득한 높이에 있는 손님의 얼굴을 올려다봐야 하는 자기 자신을 위해 준비한 걸 테다.

크레아토는 의자에 앉는 대신 자리에 서서, 작업대에 올려진 세르펜스의 검 두 자루를 손에 쥐었다.

"이쪽 검을 더 오래 썼을 테니, 베기에 많이 익숙하겠구먼? 형태는 이게 편하고?"

금도끼와 은도끼 중 어느 게 네 도끼냐 묻는 산신령처럼, 크레아토가 검 두 자루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질문했다.

"네,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베기와 찌르기 양쪽을 다 염두에 두고···."

크레아토는 혼자 중얼거리며 검의 길이는 어떻게 하고, 날의 폭이 이렇게 하고, 파지법은 어쩌고저쩌고.

검술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운 나로서는 이해 못 할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계속되는 질문에 세르펜스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첨언을 덧붙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잠시만 기다려 보게나."

대충 감이 잡혔는지, 크레아토가 들고 있던 검들을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그는 자신의 뒤쪽에 즐비한 검 중에서 하나를 집어 들었는데, 세르펜스의 세검보다 살짝 폭이 넓은 날을 가지고 있었다.

큰 차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미세한 차이를 위해서 기성품이 아닌 주문품을 사는 거겠지.

옷을 입어도 맞춤복과 기성복은 태가 다르다. 그런데 무기는 오죽하겠는가.

생사가 걸린 전투를 하는 만큼, 더 세세하게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 천하의 명검이라도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오히려 실력을 깎아 먹는 법이다.

가져온 검을 세르펜스에게 휘둘러 보라고 할 줄 알았으나, 크레아토는 그것을 잠시 내려놓고 두툼한 헝겊을 꺼냈다.

'뭘 하려는 거지?'

크레아토는 돌연 헝겊으로 검날을 감싸 잡고,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날과 손잡이가 간단하게 분리되어 버렸다.

분리된 손잡이를 한쪽에 치워놓고 서랍에서 새로운 손잡이를 꺼냈다.

그것의 뒤꽁무니에 달린 무게추까지 바꿔 달고 나서야, 크레아토는 검을 재조립했다.

'실제 전투용으로 쓰는 검을 조립식으로 만들었을 리는 없고···.'

스크루 방식으로 검날과 손잡이가 분리되는 검이라니, 듣도 보도 못했다.

그냥 개인 맞춤을 위해 특수 제작한 검이겠지.

실전에서 저런 걸 사용한다면, 검이 맞부딪히며 생기는 충격을 버텨내지 못할 거다.

"한번 휘둘러 보게나."

검을 받아든 세르펜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녀석이 몇 가지 베기와 찌르기 동작을 하고 나자, 크레아토는 이번에는 날 부분을 교체했다.

눈짐작이라 확실하진 않으나, 길이가 조금 길어진 것 같다. 그에 맞춰 무게추 또한 교체되었다.

세르펜스가 다시 검을 휘둘러본 후 둘이서 쑥덕거리며 의견을 교환했다. 그렇게 몇 번에 걸쳐 검날이 교체됐다.

이제 끝난 건가 했으나, 내 생각을 비웃는 듯 크레아토는 또다시 검을 분리했다.

가드의 형태가 이리저리 바뀌고, 무게추의 모양도 납작해졌다가 동그래졌다가 왔다 갔다 해댔다.

세르펜스의 검이 수정본을 거쳐, 최종본, 최종의 최종, 진짜 레알 최종본으로 진화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기분이다.

이는 세르펜스가 까다로워서라기보단, 긴 시간 자신에게 심하게 맞지 않는 검을 사용해 왔다는 방증이다.

그걸 알아챈 것인지, 장인정신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아름다움을 존중해주는 것뿐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크레아토는 귀찮아하는 내색 한 번 없이 섬세하게 부속품을 골랐다.

오히려 세르펜스가 정신적으로 더 지쳐 보였다.

"이제 어떤가?"

"으음···."

세르펜스가 긴가민가한 얼굴로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이번에는 뭔가 다른 건지, 녀석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어딘가 홀린 듯한 눈으로 제 손에 들린 검을 내려다보더니, 처음 조립 검을 건네받았을 때처럼 여러 동작을 펼쳤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매일 흙장난만 하다가 난생처음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처럼, 세르펜스는 뭔가 기쁜 듯하면서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웃음이라기엔 어딘가 서글펐고, 울음이라기엔 너무 희맑았다.

"그래, 그래. 내 아주 화려하고 멋들어진 명검을 만들어 주겠네!"

크레아토의 눈으로도 검을 휘두르는 세르펜스의 동작에서 불편함을 찾지 못했나 보다. 그는 흡족하게 웃으며 세르펜스에게서 검을 돌려받았다.

"저, 화려할 필요는 없습···."

"설마하니 내가 실용성 없이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달기라도 할까 그러나? 걱정하지 말게나. 다 기능을 생각해서, 거슬리는 것 없이 섬세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줄 테니."

세르펜스는 눈에 띄지 않는 디자인을 원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의견은 반영되지 않을 것 같다.

"자, 그럼 다음은···."

크레아토가 이번에는 윈스톤의 검을 들었다.

자신의 키보다 두 배는 더 길어 보이는 거대한 검을 들어 올리는데도, 한 번의 휘청임조차 없다.

근력도 근력이지만, 드워프 특유의 신체 구조 덕분이다.

대체 어떤 성분으로 구성된 건지 알 수 없는 가볍디가벼운 엘프의 뼈와는 정반대로, 드워프의 뼈는 무척이나 무거웠고 두껍기까지 했다.

덤으로 작은 키 덕택에 무게 중심까지 완벽하다.

그렇기에 아무리 무거운 검일지라도, 드워프가 그 무게에 휘둘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크레아토는 윈스톤의 검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무게를 가늠하듯 검을 든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거나, 돋보기로 손잡이를 유심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나 정도 되는 장인이면 칼자루에 남은 손가락 자국만으로 가중된 힘의 정도를 파악하여,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으나, 크레아토는 굳이 자신의 행동에 부연 설명을 했다.

그냥 자기 자랑이었다.

"오오, 대단합니다! 과연 테라룸 왕국 최고의 장인님!"

세르펜스의 검을 세심하게 신경 써준 걸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좋은 검을 만들어 달라는 아부 차원에서, 최선을 다해 맞장구쳐 주었다.

짝짝짝 물개 박수를 치며 감탄사를 연발하자, 크레아토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크레아토는 윈스톤의 검을 돌려주며 몇 번 휘두르게 시킨 후에야, 조립식 검을 만지작거렸다.

"자."

세르펜스에게는 친절한 목소리로 한번 휘둘러보라고 말했으면서, 이번에는 고작 '자'가 끝이다.

이러다 내 순서 때는 말 한마디 없게 생겼다.

윈스톤은 내밀어진 대검 형태의 조립 검을 받아들고 허공에 휘둘렀다.

훙훙, 묵직하고 위협적인 소리가 들렸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검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윈스톤이 예의를 갖춰 말하며 검을 돌려주었다. 크레아토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지경이다.

"아무렴, 당연히 그렇겠지! 비교할 걸 비교하게나!"

물론, 그 입에서 나온 말은 가소롭다는 반응이었다.

저 끝없는 자신감과 드높은 자존감을 세르펜스가 본받으면 좋으련만.

"자, 그럼 다음!"

세르펜스에게 맞는 검을 찾는 건 한참 걸렸는데, 윈스톤의 검은 허무할 정도로 금방 끝나버렸다.

투기장에서 기형 검을 오래 쓴 탓에 나쁜 버릇들이 생겼으나, 그런 건 세르펜스가 수련을 봐주며 다 잡아내 주었다.

윈스톤 또한 그것을 고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고.

그 덕분에 지금 쓰는 검 형태가 몸에 잘 정착된 모양이다.

"어디 보자···. 응?"

내 검을 검집에서 뽑아 든 크레아토가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검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검 관리를 잘못해서 혼내려는 건 아닐 거다.

'왜냐면 세르펜스가 자신의 것을 하는 김에 내 것도 항상 같이해 줬으니까!'

검 관리를 아예 안 하는 나를 보며 세르펜스가 뭐라고 하길래, '녹슨 검을 들고 다니면 파상풍이 무서워서 적들이 피하지 않을까요?'라고 농담조로 답변한 결과다.

내 대답을 듣고, 녀석은 '차라리 독을···.'이라는 말로 서두를 열었다가 돌연 입을 다물었다.

파상풍은 자신이 치료할 시간이라도 확보할 수 있지, 괜히 강한 독을 썼다가 실수로 내가 베여서 즉사해 버릴 가능성을 떠올린 걸 테다.

"왜요? 뭐 문제 있습니까?"

아무튼 나는 거리낄 게 없으므로, 당당하게 행동하기로 했다.

"정말···, 놀랍구먼. 버릇이 하나도 없어!"

나도 놀랍다.

설마 내 안에 나도 모르는 검술 재능이 숨겨져 있는 걸까?

예기치 못한 긍정적인 반응에 기대감이 슬며시 고개를 치켜들었다.

"자네는 검술 훈련을 아예 안 하나?"

"···예?"

"아니, 하더라도 아주 드문드문하고 있지?"

"엇, 어어···."

"잠깐씩 깔짝깔짝하고 마는데, 무슨 버릇이 생기겠나?"

조금도 긍정적이지 못했다.

"그게···,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게 검술을 가르쳐준 세르펜스가 슬퍼할 것 같은데···."

"자네가 훈련을 하지 않아서 슬퍼하는 거겠지!"

세르펜스의 이름을 팔아먹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가증스럽게도 세르펜스는 옆에서 '저도 그게 항상 걱정입니다.' 같은 소리를 해대며, 우수에 젖은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 아니···. 사실 제 본업이 그냥 서류나 뒤적거리는 거라서요···."

"자네를 이긴 아기는 싸우는 게 본업인가?"

"······."

이건 크레아토가 아기에 대해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아기는 언제나 투쟁에 힘쓰고 있다.

본능적으로 뒤집기라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뛰어드는 타고난 전사이자, 오른손에 든 장난감과 왼손에 든 장난감을 싸움 붙이길 즐기는 사령관이며, 식사 시간에는 폭군 그 자체이거늘.

"그래도 일단···, 뭐라도 해 보게."

검을 휘둘러보라는 뜻···이겠지?

가뜩이나 검세(劍勢) 훈련을 등한시했는데, 최근에는 이런저런 핑계로 훈련을 거의 안 한 탓에 잘 기억나질 않는다.

대충 기억나는 대로 검을 휘두르자, 크레아토는 참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어때요?"

"어떨 것 같나?"

"떨어질 곳이 없으니, 이젠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크레아토의 시선이 내 검술 스승인 세르펜스에게로 향했다. 녀석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달아올랐다.

"···괜찮네. 사람이 다 가질 수는 없는 법이지. 얼굴이 그렇게 완벽한데, 누굴 가르치는 재능쯤이야."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주군께 검을 배워 봐서 압니다. 주군께서는 지도 능력 또한 탁월하십니다."

크레아토는 세르펜스를 위로했고, 윈스톤은 세르펜스를 두둔했다. 내 편만 없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지?"

"주군께서 선배를 가르치시는 걸 옆에서 본 사람으로서···. 우선 첫째로 선배는 강해지려는 열의가 없고, 둘째로 주군께선 선배의 투정을 너무 받아주십니다. 솔직히, 보고 있으면 수련을 하는 것인지 노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갑니다."

이상하다. 나는 훈련할 때마다 빡세게 굴려진 기억밖에 없는데.

윈스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아프게 때렸다. 충심 어린 그의 말에 세르펜스도 많이 아파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나를 보는 세르펜스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다. 앞으로는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게 굴려질 것 같다.

"쯧쯧."

줄곧 서 있던 크레아토가 의자를 끌고 와 자리에 앉았다.

"어···, 저는 검 조립 안 해 줘요?"

"그 검을 기준으로 만들어 줄 테니, 그걸 몸에 익히게나. 개성 있는 검을 다루기엔 자네는 기초가 너무 없어. 평범한 게 배우기도 편하고···. 하여간 그냥 그걸로 하게."

"······."

자세히 설명할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크레아토가 급하게 말을 마무리 지었다.

다행히도 안 만들어주겠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열심히 장단을 맞춰주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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