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64화 (264/925)

264회

49. 공작님과 드워프 장인 (5)

- 쾅!

갑자기 크레아토가 양 주먹을 불끈 쥐고 작업대를 내리쳤다.

소리를 들어서는 제법 세게 내리친 것 같은데 작업대는 약간의 진동만 있었을 뿐, 끄떡도 없었다.

드워프가 쓰는 작업대이니, 이것 또한 드워프제겠지. 그래서 그런지 내구성 하나는 끝내줬다.

그래도 검이 올려진 작업대를 내리치는 게 위험한 행동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나는 슬그머니 내 검을 회수하며, 세르펜스와 윈스톤에게도 치우라고 눈치를 보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문제가 아니네!"

크레아토가 말하는 '그런 문제'란 작업대 위의 검이 아니라, 나와 세르펜스의 대화를 일컫는 거겠지.

나는 어렵지 않게 그가 어째서 화를 내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일단 그 신성석을 내게 보여주게나! 그러고 나서 내가 신성석을 감상하는 동안 실컷 떠들도록 하게."

내 예상대로다.

아름다움에 환장하는 드워프가 신성석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예를 들어 내가 출근하자마자, 세르펜스에게 '오늘은 폭신한 수플레 팬케이크에 달콤한 슈가 파우더를 뿌린 후, 감미로운 아카시아 꿀을 부어, 부드러운 생크림을 곁들여 먹을 겁니다. 아, 물론 지금 말고.' 같은 소리를 지껄였다고 치자.

처음에는 기대할 테다.

팬케이크가 빨리 제 입안으로 들어오기를 고대하며, 하루 종일 힐끔힐끔 시계만 쳐다보겠지.

처음에는 그 기대가 즐거움이었으나, 점차 팬케이크를 먹고 싶다는 욕망이 녀석의 머리를 잠식하게 되고. 일이 손에 안 잡히는 지경까지 오르면, 그때는 화가 나는 거다.

당장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일찍 말을 해서 사람을 기다리게 하느냐며 따지게 된다.

그러고 나면, 지금 당장 팬케이크를 먹어야겠다고 생떼를 부리는 건 당연한 순서다.

'그냥 골려줄 생각이었는데···. 그렇게까지 먹고 싶어 할 줄은 몰랐지!'

하필 점심 먹기 직전에 터져서, 작은 초콜릿 하나로 달래느라 애먹었다.

마음속 깊이 반성하며 과거의 상념을 털어냈다.

"어서···!"

크레아토가 간절히 말하며, 세르펜스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신성석은 희귀했지만 드워프의 수는 한 국가를 이룰 정도로 많았다.

아무리 신성석을 세공할 수 있는 존재가 드워프뿐이라 한들, 모든 드워프들에게 그 기회가 동등하게 찾아올 수는 없다.

그러니 크레아토가 저렇게 안달복달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비록 번지수는 잘못 찾았지만.

"왜 보여주지 않는 거지···?"

"신성석은 제게 없습니다."

"자네가 만든 것 아닌가?"

"제가 만들긴 했지만, 시온의 것이니 시온에게 있는 게 당연하잖습니까?"

"아, 아아! 가문 내 서열 2위 친구 말이지?"

신성석 얘기에 정신이 팔려, 다른 얘기는 듣는 둥 마는 둥 했었나 보다.

크레아토가 상체를 틀어 팔을 뻗은 자세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연히 그의 굳은살 박인 단단한 손바닥도 내 앞으로 왔다.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너무 부담스럽다.

아공간 주머니에서 신성석을 꺼내어 크레아토의 손바닥에 올려주자, 그가 '오오!' 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취미 활동으로 조각이 아닌 그림을 하는 거였는데!"

그의 말에는 그림으로라도 지금 모습을 남겨두고 싶을 정도로, 세르펜스가 만든 신성석이 아름답다는 말이 함축되어 있다.

"아아···, 아니야. 이 찬란한 광채를 고작 종이 따위에 담는 건 불가능해! 세상 그 어떤 물감도 이 맑고 다채로운 빛을 구현해 낼 수 없을 거야! 그리므 시의 최고 거장이라는 무르카 씨가 와도, 색을 고르다 좌절을 맛볼 것이 분명해!!"

신성석을 고이 받아든 크레아토가 탄식을 토해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와중에도 신성석을 든 손만은 미동조차 없이 허공에 고정되어, 마치 게임 중 버그 난 캐릭터처럼 기이해 보였다.

'저런 게 가능한 일인가?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할 것 같은데? 드워프라 신체 구조가 다른 걸까?'

잘 모르겠다. 아무튼 신성석을 아주 신성하게 모시고 있다는 것만은 잘 알겠다.

"어, 음···. 세르펜스의 의도는 잘 알겠어요. 그런데 적의 공격을 막는 것뿐이라면, 검보다 방패가 낫지 않아요?"

"예? 시온이 적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

세르펜스가 자꾸 순진한 낯을 꾸며내며 나를 팩트로 두드려 팼다.

평소엔 안 그랬는데. 오늘따라 연기하는 의미가 있는 건가 의심스러운 말을 많이 한다.

'설마하니···. 내가 크레아토와 짝짜꿍하며 노느라, 자기편을 안 들어줬다고 삐진 건 아니겠지?'

그 의심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녀석의 눈을 마주 보았다.

세르펜스는 내가 왜 이런 눈빛을 보내는지 모르겠다는 연기를 하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허윽···!"

갑자기 들려온 숨 들이켜는 소리에 무슨 일인가 봤더니, 크레아토가 왼손으로 심장을 부여잡고 있었다.

한 가지 특이점이라면 신성석을 든 오른손이 높이 들려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세르펜스를 향하고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신성석 감상에 푹 빠진 줄 알았더니, 세르펜스의 얼굴과 함께 보고 있었구나?'

좋은 것과 좋은 것을 더하면 더 좋은 것이 나오는 법이다.

아름다운 것 또한 마찬가지.

그렇지 않아도 시너지 효과로 눈부신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있는데, 세르펜스가 순수한 표정을 꾸며내며 갸웃거리기까지 했으니.

하마터면 우리의 무기를 만들어 줄 최고의 장인님께서 심쿵사 당할 뻔했다.

가쁘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잠시 고개를 숙인 크레아토의 뒤통수를 세르펜스가 싸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신흥 유지스 계파의 창시자, 유지스 위리디아는 그런 세르펜스의 표정을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오늘, 무기보다 더욱 값진 것을 얻었다.

'윈스톤은···.'

많이 놀랄 줄 알았는데, 뜻밖에 덤덤한 얼굴이다.

"괜찮으십니까? 어디 편찮으신 곳이라던가···. 과한 참견이 아니라면 제가 신성력을 써드려도 되겠습니까?"

크레아토가 고개를 드는 타이밍에 맞춰, 세르펜스는 걱정스럽다는 연기를 선보였다.

녀석의 이런 표정 변화는 몇 번을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과한 참견이라니! 그런 것 아니네. 하지만···. 조금만 더, 이 여운을 느끼게 해 주겠나?"

"······."

세르펜스가 가까스로 표정을 유지하며 고개를 돌리는 데 성공했다.

"다소 오해가 있었던 듯합니다. 제 말은 당신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녀석은 크레아토의 호흡 곤란 증세 따위 본 적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자꾸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을 없는 셈 치는데, 좋은 버릇이 아니다. 하지만 방금 그건 나도 받아주기 힘들었다.

착한 무시를 인정합니다.

"그럼 무슨 뜻이었는데요?"

"만일 여기 있는 누군가가 당신에게 무기를 휘두른다면, 막으실 수 있겠습니까?"

비하가 아니라더니. 세르펜스가 확인 사살을 했다.

그렇구나. 나를 깎아내리려는 말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압살하려는 말이었구나.

"그런 의미 또한 아니니, 그런 표정은 거둬 주십시오."

"제가 뭘요?"

"후우···. 그저 시온이 일반인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당신은 뛰어난 근력을 타고나지도 않았고, 근육을 강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런 당신이 적의 공격을 방패로 막아 봤자, 방패째로 짓뭉···. 아니, 으음···."

이미 할 말 다해놓고, 조심스러운 척하는 꼬락서니하고는.

내가 방패를 들어 봤자 그냥 방패에 깔려 죽을 뿐이라는 얘기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이 또한 팩폭이었으나, 나를 이해시키려는 용도였다.

나는 쓴소리도 받아들일 줄 아는 어른이었기에, 얼굴에서 불만을 지웠다.

"그런데 신성석을 도구에 박아 넣으면 그 힘이 도구에만 미치는 겁니까? 영지를 지키는 신성 결계 같은 건요?"

"당신이 막아낼 수 없는 공격이라면 신성석이 방어해 줄 것 같기는 한데···."

"한데, 뭐요?"

"효율성의 문제입니다."

"효율성이요?"

내 반문에 세르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지에서 쓰이는 신성석은 기존의 신성 결계를 '유지' 할 뿐입니다. 결계를 '유지'하는 것과 새로이 펼치는 건, 소모되는 신성력의 양부터가 다릅니다. 그 낭비를 줄이고자 도구의 형태를 취하는 것인데, 정작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의 능력이 부족하여 신성석의 힘만으로 방어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힘없는 자의 서러움이란 게 이런 걸까?

나는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왠지 혼나고 있었다. 이는 모두 룩스메아의 탓이다.

'거, 좀 유능한 사람 몸에 집어넣어 주지!'

다른 세상에서 사람을 불러오면서 그럴듯한 몸도 준비해두지 않았다니.

손님을 부르는 기본 태도부터 글러 먹었다.

"그냥 결계가 펼쳐진 사이에 버티면···."

"외부의 충격을 버텨야 하니 신성력이 빠르게 소모될 겁니다."

"······."

신성력이 떨어지자마자 적에게 당할 거라는 얘기다.

방패 루트의 끝은 사망 엔딩뿐인가 보다.

"그럼 제가 검을 들면 뭐가 좀 달라집니까? 제가 검을 든다고 힘이 세지는 것도 아니니, 결국 신성석의 힘으로 방어하게 되는 건 똑같을 텐데요?"

"검은 벨 수 있잖습니까."

"저더러 사람을 베라고요?!"

"···날아오는 마법을."

"아."

오러와 마법에 대응할 수 있다는 말이 그런 뜻이었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당신은 방패를 잡아본 적도 없잖습니까?"

"그냥 막으면 되는 거 아녜요?"

"아닙니다. 타이밍에 맞춰 밀어내며 공격을 튕기거나, 방패 면을 이용해 흘려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모서리를 이용해 공격하는 등. 방패는 기술을 꽤 요구하는 도구입니다."

더불어, 흘리는 거 빼고는 죄다 근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했다.

보조로 사용하는 거라면 모를까, 주무장으로 사용하기엔 내게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나마 숙련된 검이나 열심히 쓰라는 말이기도 하고.

"또, 당신이 검을 들었을 때의 장점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검은 공격을 위한 도구입니다. 상대도 피해를 볼 수 있으니 적당히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테고, 그 틈을 노린다면 도주할 가능성···은 모르겠지만. 시간을 끄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될 겁니다."

말뿐이라도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해주면 어디 덧나는가 보다.

"적의 공격을 피하는 건 배웠으니, 앞으로는 공격을 흘리는 것을 중점으로 배웁시다."

권유형으로 말하고 있었으나, 내 의견 따윈 반영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동안은 내 의견을 물어보고 수련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강제로 굴려지게 될 것이다.

사실 그간의 수련은 체험 기간에 불과했다.

가볍게 시작한 무료 체험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평생 회원으로 등록돼 있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시면, 피해야 하는 공격과 흘려야 하는 공격을 구분하는 수련도 함께할 겁니다."

구분하여 실행하는 수련이겠지. 구분만 하고 끝날 리가 없다.

"가능하다면 간단한 공격도 배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게 가르치겠다는 말이다.

세르펜스가 교육열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윈스톤의 놀고 있다는 말이 그렇게 충격이었나?

이렇게 된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포기하는 심정으로 슬그머니 손을 들어 올렸다.

"네, 질문하십시오."

"신성석의 힘은 어떻게 사용하면 됩니까?"

"아마 자동으로 발현될 겁니다."

듣던 중 희소식이다.

성검에게 휘둘려 다니던 휴마누스가 떠올라서, 나도 그 꼴이 나는 게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그냥 냅다 휘두르기만 하면 알아서 된다니!'

오토매틱 자동차 운전만큼 편리하다.

물론 운전 자체는 내가 해야 한다는 게 흠이지만. 자동 주행 자동차만큼 편리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세르펜스를 닮았으면 얘도 절 과보호하겠네요."

"애초에 위험을 자초하지 않으면 될 것을."

"아,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면 제가 직접 컨트롤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요?"

내 말에 일리가 있었는지, 녀석이 그것도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라고 부정해주길 바랐는데. 그건 너무 큰 바람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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