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68화 (268/925)

268회

50. 공작님의 마탑 방문 (3)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분명 아니마가 다정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말했었는데. 내가 읽은 [성검의 주인]에서도 그런 사람으로 나왔었는데.

'방금 에드나가 뭐라고 한 거지···?'

하지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기억을 되짚어볼 필요는 없다.

"바, 방금 뭐라고?!"

나와 같은 궁금증을 가진 사람이 존재했고.

"대체 얼마나 머리가 나쁘면 방금 들었던 내용을 바로 잊어버리실 수가 있죠? 노력을 안 하셔서 실력이 그따위인 줄 알았는데, 그냥 멍청해서 그랬던 거군요? 그런 머리로 마탑에 들어오셨다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세상에, 너무 안타까워라!"

에드나의 거리낌 없는 발언은 실시간으로 진행 중이었으니까.

그녀는 명백하게 비꼬는 표정으로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훔치는 척했다.

'말려야···하나?'

먼저 시비를 걸어온 것은 남자 마법사 쪽이었다. 에드나는 그저 맞대응했을 뿐.

그녀가 조용히 참거나 밀리고 있었다면 내가 나서서라도 말렸겠지만, 지금 상황은 좀 애매하다.

여유로운 에드나와 달리 남자 마법사의 낯빛은 붉으락푸르락하느라 바빠 보였다.

지금 말려봤자 저 남자 마법사만 기세등등해질 테다.

"마탑주 손녀 옆에 꼭 달라붙어서, 그 덕에 받은 지원으로 키운 실력이 순수하게 네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제 실력이 밑받침되니까, 마탑의 지원을 받은 거죠. 실력이 없어서 마탑으로부터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 가문의 등골만 빼먹은 어느 버러지와는 다르게."

더는 안 되겠다.

가만 듣고 있자니, 우리 애 정서 교육에 너무 안 좋다.

'세르펜스의 귀를 막자!'

내가 녀석의 귀를 막아봤자, 그의 뛰어난 청력이라면 아무 소용 없겠지.

나는 눈빛으로 유지스에게 작전 지시 명령을 내리며, 독순술 능력을 겸비한 세르펜스를 빙글 뒤돌려 세웠다.

눈치 빠른 유지스는 이전에 어느 지하실로 이어진 계단에서 그랬듯이. 정령력을 동원하여 세르펜스의 귀를 막았다.

완벽하다. 이제 느긋하게 싸움 구경을 즐기면 될 것 같다.

"이 고아 새끼가 뭐가 어쩌고 어째?!"

취소해야겠다. 즐기면 안 될 것 같다. 패드립이라니, 정도를 지나쳤다.

나서서 말리기 위해 입을 열려는 찰나.

"당장 부모님께 사과하세요!"

"킥···, 부모에게 버려진 고아 주제에. 부모님 욕하는 건 못 참겠나 봐?"

"제 부모님이 아니라, 버드렝 씨 부모님께 사과하시라고요!"

비아냥대는 벌레···, 아니 버드렝의 말에 에드나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자신을 대신해서 자신의 부모를 옹호하는 에드나의 말에 버드렝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부모님께 그렇게 지원을 받으며 자랐으면서, 훨씬 어린 천애 고아보다도 못한 자신의 실력을 반성하며! 나태하고 태만한, 머저리 같은 자기 자신을 탓하며! 이딴 굼벵이만도 못한 실력이라서, 쓰레기 새끼라 부모님을 쓰레기로 만들어서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해야죠! 그게 자식 된 도리잖아요?"

다정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더니.

요즘 다정하고 부드러운 사람은 걱정하는 척, 불꽃 같은 패드립을 날리는가 보다. 너무 따스하다 못해 뜨거워서 델 것만 같다.

아니, 불효자 마법사는 데다 못해 지글지글 구워졌다.

"이 X같은···!"

불효자 마법사는 에드나의 권유를 마다하며, 상욕을 입에 올렸다.

에드나 또한 삐리리 삐삐한 쌍욕으로 맞대응했다.

필터링 넣기도 힘들어서, 차라리 문장을 통째로 들어내는 게 나은 수준의 심한 욕이 오갔다.

세르펜스의 귀를 미리 막아놔서 다행이다.

분별력 없는 어린아이가 듣기에 바람직하지 않다.

처음엔 세르펜스의 귀만 막았던 유지스가 이제는 아예 방음막을 펼쳐서 본인의 귀까지 보호하기에 이르렀다.

내게도 안에 들어올 것을 권유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누군가는 에드나의 투쟁을 지켜봐 줘야 한다. 나는 결코 싸움 구경하는 게 아니다.

길고 긴 공방이 이어졌고, 자기 분을 못 이긴 버드렝이란 마법사가 울컥 눈물을 쏟는 것으로 승패가 정해졌다.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말대로, 불효자 마법사는 울어버린 것이다.

"그럼 이만 올라갈까요?"

에드나가 우리를 돌아보며, 개운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마가 칭찬했던 다정한 갈색 머리카락이 에드나의 어깨를 스치며 가볍게 흔들렸다.

그 모습에 상황이 종료됐음을 알아챈 유지스가 자신의 정령 친구를 고향에 되돌려 보냈다.

"이쪽으로 올라오세요."

무슨 정신으로 원판에 올라탔는지 모르겠다.

반쯤 홀린 듯이 에드나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안전장치 비슷한 것도 없어 보이는 원판 위로 올라갔다.

에드나가 '48층'이라 말하며 마력석으로 보이는 푸른 보석에서 발을 떼자,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원판이 천천히 위로 떠올랐다.

원판은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떠올랐지만, 그렇게 따지면 자이로드롭도 올라갈 땐 안정적이다.

나는 여차하면 바람의 정령을 불러 몸을 띄울 수 있는 유지스를 붙잡았다.

"죄송해요. 버드렝 씨께서 손님들 앞에서까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어요."

원판이 어느 정도 올라가자, 에드나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내 생각은 그녀와 좀 다르다.

불효자 마법사는 손님들 앞이라 에드나가 말을 자제할 거라 생각해서, 시비를 건 것이 분명하다.

"아까 그 사람과는···, 사이가 많이 안 좋으신가 봐요?"

"버드렝 씨뿐만이 아니라, 다 그렇죠."

"무슨 사정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유지스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에드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얘기는 그다지 하고 싶진 않네요."

누가 봐도 사연 있다는 표정으로, 에드나가 더는 묻지 말아 달라며 딱 잘라 거절했다.

유지스는 말하기 싫다는 것을 억지로 캐묻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마는 잘 지내고 있나요?"

침묵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에드나가 바로 새로운 화제를 던졌다. 우리를 만났을 때부터 줄곧 묻고 싶었던 질문일 거다.

나는 아니마와 만났을 때의 기억들을 되짚어봤다.

시종일관 멍하니 앉아있는 통에 일견 겉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리에나와 푸로르 사이에 앉아있는다거나, 자진해서 그들의 뒤로 몸을 숨기는 모습 등을 떠올려 봤을 때, 신뢰 관계가  확고히 구축돼 보였다.

내가 [성검의 주인]에서 읽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동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것 같더라고요. 일행들도 그녀를 존중해 주고요."

"정말요? 다행이다···. 정이 많고 여린 아인데, 오해를 많이 사서 좀 걱정했거든요."

내 대답에 에드나가 안도를 표하며 말했다.

그리고는 아니마에 대해, 착하고 순하고 배려심 넘치고 어쩌고저쩌고. [성검의 주인]을 읽었던 나로서는 동의하기 힘든 칭찬들을 퍼부었다.

불꽃 같은 패드립과 거친 욕설을 내뱉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정다감한 모습이다.

웅웅 소리를 내며 상승하던 원판이 부드럽게 멈췄다.

어느덧 목적지인 48층에 다다른 모양이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속도를 늦출 게 아니라, 사람이 떨어지지 않도록 벽을 세웠어야 했다.

'어차피 자기들은 마법사라 발을 헛디뎌도 괜찮다 이건가?'

싫어하는 외부인을 초대해 놓고, 등 떠밀어 끝장내는 용도가 아니고서야 이럴 수는 없다.

속으로 손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마법사들의 행태를 욕하며 원판에서 내려왔다.

무게 인식 기능도 갖춘 건지, 아무도 싣지 않은 빈 원판은 천천히 하강했다.

내려갈 땐 어쩌지? 뛰어내리나?

"여기에 마력을 흘려 넣으면 다시 불러올 수 있어요."

내 생각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이 에드나가 설명했다.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보자, 투명한 마력석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우리가 탔던 원판 중앙의, 마력이 넘실거리던 마력석과 달리 속이 텅 비어있었다.

마력이 없는 이가 여기서 나가려면 뛰어내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 모양이다.

"좀 불친절하죠? 마법사들이 원래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족속들이라···. 특히 마탑 소속 마법사들은 그게 더 심해서, 남을 깎아내려서라도 자신의 우월감을 표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들이 대다수거든요."

에드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본인도 마탑 소속의 마법사인데 저런 말을 해도 되는 건지 의문스럽다.

"아, 방금 버드렝 씨에게 그런 말을 한 제가 이런 얘길 하는 건 좀 이상하려나요?"

다른 게 의문이었지만, 그냥 그런 거로 치자.

확실히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으니까.

"전 실력 없는 사람을 무시하는 게 아니에요. 앞서 나가는 사람을 잡아당겨 넘어뜨리고. 그렇게 다친 사람을 짓밟아서, 발밑에 두려는 사람이 싫은 거지. 그런 사람들이 가장 못 견뎌 하는 게, 자기보다 모자라다 생각하던 사람에게 무시당하는 일이거든요. 저는 그걸 해준 것뿐이에요."

좀 과격하긴 하지만, 그게 에드나 나름대로 아니마와 그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식이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눈썹이 씁쓸하게 찡그려졌지만, 보랏빛 눈동자만은 당당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탑의 다른 마법사들이 그 아이의 반만이라도 순수했으면 좋았을 텐데···."

에드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녀가 말한 '그 아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아니마를 지칭하는 말이겠지.

그러고 보면 아니마도 말을 참 거침없이 하던데. 그게 에드나의 약화 버전이었을 줄이야.

역시 아이는 어른을 비추는 거울인가 보다.

"아, 혹시 마법사들과 말다툼할 일이 있을 땐 자존심을 건드려 보세요. 그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좀처럼 인정하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을 지적당하면 아까처럼 제풀에 못 이겨서 이성과 논리를 잃게 되죠. 이성과 논리를 잃은 마법사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어요."

졸지에 마법사와 말싸움에서 승리하는 팁을 얻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웃으며 참고하겠다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더니, 세르펜스가 나를 노려봤다.

무력도 없는 게 마법사 앞에서 깝치지 말고, 갈등이 생기면 조용히 닥치며 목숨이나 부지하라는 뜻이다.

'내가 뭘 어쨌다고!'

에드나는 자신의 실험실로 우리를 안내하며 마탑의 이런저런 시설들을 설명해주었다.

솔직히 말해 에드나의 욕설만큼 굉장한 건 없었기에, 뭘 봐도 시들시들했다.

애초에 마탑 구경에 내가 열성적으로 동의한 건, 이 세상의 엘리베이터를 직접 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세르펜스에게 그 편리함을 설파하며, 공작저에도 하나 설치하자고 조르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하지만 직접 본 엘리베이터는 실망스러웠다. 안전장치는 하나도 없고, 마력이 없으면 엘리베이터를 부르지도 못한다.

이런 걸 탈 바에야 그냥 세르펜스를 타는 게 낫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저를 찾아오신 건가요?"

실험실에 도착한 에드나가 우리에게 자리를 권한 뒤에 차를 타면서 질문했다.

차에 과자가 빠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슬그머니 '초코 얼그레이 모자이크 쿠키'를 꺼내, 테이블 중앙에서 약간 세르펜스 쪽으로 치우친 자리에 올려놓았다.

에드나가 찻잔을 데우기 위해 뜨거운 물을 잔에 따르는 사이, 세르펜스가 잽싸게 쿠키를 집어먹었다.

"그게 실은···."

세르펜스의 입은 쿠키를 우물거리느라 바빴기 때문에, 그의 보좌관인 내가 일련의 상황을 설명했다.

아니마에게 말했던 막연한 위험이 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보육원에 관한 이야기를 콕 찍어서.

프뤼네 왕국 주변에서 만난 일루미나티 단원에게 받은 추가 정보라는 설정이다.

'일루미나티에 가입하면 아니라는 게 들통나겠지만, 뭐···. 그땐 우리가 조사했다고 하면 그만이지.'

아니면 신의 사자 특권으로 룩스메아 ARS 찬스를 사용했다고 하던가.

지금 중요한 건 정보의 출처 따위가 아니다. 일루미나티에 신규 멤버를 받느냐 마느냐가 문제지.

우리는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진짜로, 에드나의 인성을 확인해야만 하는 상황이 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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