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78화 (278/925)

278회

51. 공작님과 잠입 작전 (9)

"원장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야?"

"그냥···, 어···."

내 질문이 너무 막연했던 걸까?

웬디가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입을 벙긋거렸다.

"너희를 대할 때 어떠셔? 친절해?"

"원장 선생님이 되기 전에는 친절하셨어요. 그런데 요즘은 무슨 상단이 어쩌고, 교육 소개가 어쩌고 하면서, 바빠서 우리를 돌볼 시간이 없대요."

질문을 바꿔서 다시 물어보자, 웬디가 우울하게 대답했다.

슬퍼 보이는 그 표정이 마치 '그때가 좋았는데.'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근데 시온 오빠의 말로는 다 개수작이래요. 그러니까, 시온 선생님 말고···."

"가죽 공방에 다닌다는 그 친구 말이지? 나이가 열넷이랬나?"

내 말에 웬디가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시온이라는 이름도 이름이지만, 돈을 많이 벌어 보육원을 사버릴 거라는 야망을 들은 터라 특히나 기억에 남았다.

"제가 여기 온 건 재작년 10월쯤이었는데, 제가 오기 전에는 원장 선생님이 아주아주 나쁜 놈이었대요. 그런데 이젠 원장 선생님이 돼서, 본색을 드러낸 거라고···. 아! 이 얘기는 원장 선생님께 비밀이에요!"

"그럼, 당연하지"

"아무튼 그랬는데, 저는···."

"아니라고 믿고 싶은 거구나?"

"네에···."

참 정이 많은 아이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웬디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장은 그동안 아이들을 돌보면서, 정이 하나도 들지 않은 걸까?'

원장이 정도껏 나쁜 놈이라면 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만, 여러모로 생각해 봤을 때 웬디의 바람대로 좋은 사람일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런 사람이라면 웬디에게 자존감을 깎아 먹는 말을 하지 않았겠지.

"그도 그럴게, 제가 처음 왔을 때 되게 잘 해주셨거든요. 지금도 바빠서 저희를 신경 써주지 못하는 것뿐이지···. 가끔 소리치고 화내긴 하지만, 때리거나 괴롭히지는 않아요."

웬디가 말하는 좋은 어른의 기준은 턱없이 낮았다.

신체적으로 가해지는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가해지는 고통 또한 폭력이다.

아이들은 어른이 조금만 언성을 높여도 위협을 느끼기 마련인데. 방치하고 소리 지르고, 그런 것 또한 학대의 연장이거늘.

'또래 아이보다 턱없이 작은 키와 가벼운 몸무게가 보육원 생활 탓이라 생각했었는데···.'

웬디가 보육원에 들어온 것이 재작년이라면, 그전에는 어떤 생활을 하다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것일까?

묻고 싶었지만, 물을 수 없었다.

'내가 웬디의 성장을 끝까지 지켜볼 수 있다면 모를까···.'

나는 이 아이를 책임질 수 없다.

그렇기에, 더 이상 깊게 파고들어서는 안 된다.

아마도 내가 세르펜스와 만나기 전이었다면 그녀에게 질문했을 거다. 그리고 그녀를 위로했겠지.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럴 줄 알았으면 위장 취업이 아니라, 교육 실습생 컨셉으로 오는 건데···.'

미처 그 생각을 못 했다.

다가올 이별을 알고 있기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 선을 넘는 순간. 나에게도, 그리고 이 아이에게도 몹쓸 짓이 되는 거다.

나는 세르펜스의 마음을 열고자 그의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언제 어떤 이유로 그에게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선 탓에, 나는 너무 서둘렀다.

아니, 나는 너무 서툴렀다.

처음부터 그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상처를 자극한 것은 어찌 보면 정답이었지만, 그것은 명백한 실수였다.

그 결과 나는 그의 마음을 여는 것에 성공했지만, 세르펜스는 나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며 분리불안 증세까지 보이기에 이르렀다.

아이가 불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전적으로 보육자의 잘못이다.

'좀 더 차분하게 다가갈걸.'

내가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세르펜스가 알면 서운해하겠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따금 이런 생각이 고개를 치켜드는 건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어휴, 그래. 내 잘못이니, 내가 책임져야지.'

녀석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내가 지켜볼 수밖에.

어쨌든 나는 이미 책임져야 할 아이가 있는 고로, 이곳에 남을 수 없다.

아이에게 필요한 사람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착한 어른이 아니라, 지속해서 지켜봐 줄 책임감 있는 어른이다.

"웬디는···, 음···. 누가 원장 선생님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싫어?"

"잘 모르겠어요. 저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에게 좋은 사람인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

"저는 원장 선생님이 좋지만, 시온 오빠도 좋아하는걸요? 시온 오빠는 이유 없이 누구를 욕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시온 오빠가 그렇게 말했다면, 원장 선생님이 뭔가 잘못한 거겠죠. 그때 일을 모르는 제가 원장 선생님의 편을 들면 안 되잖아요."

"웬디는 참 생각이 깊은 아이구나?"

내가 웬디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하자, 칭찬이 익숙하지 않은 소녀는 쑥스러워하며 양손으로 자신의 두 뺨을 감쌌다.

"지금 원장 선생님 말고, 전 원장 선생님은 어땠어?"

"자상하고 좋은 분이셨어요. 다른 아이들도 다 그분을 그리워해요."

역시 제일 나은 방법은 전 원장님을 다시 불러오는 거려나?

윈스톤이 갔으니, 알아서 잘 모셔오겠지.

진짜 문제는 로시오 상단 쪽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그리고 상단을 처리하고 나면 보육원 운영비는 또 어디서 구하느냐다.

'보육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에드나는 마음 편히 이곳을 떠날 수 없을 텐데···.'

교육 나간 아이들까지 합하면, 엘로윈 보육원의 원아 수는 총 열세 명.

프라시더스 령의 보육원은 세르펜스 개인의 것이 아니라, 엄연히 교단 소유의 시설이다.

한두 명 정도라면 어떻게 부탁이라도 해 보겠지만,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을 데려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누구는 데려가고, 누구는 데려가지 않는다는 건 더더욱 안 될 말이다.

남겨진 아이들은 자신들이 버려진 거라고 생각할 테고, 데려온 아이들은 평생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겠지.

'제국의 귀족인 세르펜스가 먼 외국의 특정 보육원을 후원해 주는 건 좀···, 그렇겠지?'

그럴 돈이 있으면 국내에 먼저 신경 쓰라는 말이 나올 게 뻔하다.

남 트집 잡기 좋아하는 사람의 입을 거치면, 비자금 마련을 위한 돈세탁이 어쩌고 하는 얘기로 변질될지도 모른다.

'어우, 머리 아파. 이건 나중에 생각하자.'

당장 눈앞의 문제를 처리하고 나서, 이후 문제는 천천히. 머리를 모아서 다 같이 고민하면 된다.

혼자서 백날 고민해 봤자, 내 머리만 아프다.

"그런데 이런 건 왜 물어봐요?"

"으, 응? 내가 다닐 직장에 대해 궁금해하는 게 이상한가?"

"아뇨···. 그냥···, 시온 선생님이 그만두실까 봐···."

"······."

"원장 선생님이 지금 힘드셔서 그렇지, 여유가 생기면 분명 예전으로 돌아올 거예요! 그러니까, 시온 선생님이 도와주신다면···. 그럼···, 안 되나요?"

웬디가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소녀의 질문에 나는 쓰게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 * *

아이들과 밖에서 눈 놀이도 하고 동화책도 읽어주며 함께 놀았다. 꺄르륵, 아이들이 아이답게 웃는 모습은 언제 봐도 보기 좋았다.

아이들 점심을 챙기면서, 야옹이 밥도 잊지 않고 챙겨 줬다.

원장 놈은 챙겨 줄 생각이 없었는데 자기가 알아서 기어 나오더라.

놈은 대체 뭘 하는지, 식사 시간 외에는 원장실에 처박혀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엘로윈 보육원에서의 둘째 날도 어찌어찌 지나가는 듯했다.

교육 나갔던 아이 중 한 명이 갑자기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부엌에서 한창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들이닥쳐 에드나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어찌나 다급하게 구는지, 에드나는 손에 들고 있던 식칼도 내려놓지 못했다.

'분명 얘가···, 시온이었지?'

돌아오는 것 자체는 아무래도 좋았지만, 돌아온 아이의 모습이 엉망진창이었다는 것이 문제다.

당근을 연상시키는 주황색 머리칼은 아무렇게나 헝클어졌고, 주근깨 가득한 얼굴은 푸른 멍으로 물들었다.

신발 자국이 선명한 옷 안에는 더욱 심한 피멍이 들었겠지.

만신창이가 된 시온의 모습을 본 에드나가 놀라서 손에 들고 있던 식칼을 놓칠 뻔했다.

나는 그녀의 손에서 식칼을 뺏었고, 빈손이 된 에드나는 상처투성이로 돌아온 아이를 품에 안고 다독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오는 동안 울음을 꾹 눌러 참고 있던 아이는 에드나의 품에 안기자마자, 와앙하고 울음을 터트려 버렸다.

처음에는 내가 업고 있던. 아직 이름조차 없는 아기가 따라 울었고, 손 쓸 새도 없이 하나둘 울기 시작하더니, 보육원은 곧 울음바다가 되어버렸다.

시종일관 의젓함을 유지하던 웬디도 펑펑 울어댔다.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들 서럽게도 울어댔다.

심지어는 에드나마저도 그런 아이들이 안타까워 찔끔 눈물을 보였다.

하마터면 나까지 울 뻔했다.

'일단, 식칼부터 치우자.'

나는 부엌에 가서 식칼을 도마 위에 얌전히 내려놓았다.

간 김에 얼음주머니도 챙겨 들고, 다시 현관과 연결된 놀이방 쪽으로 향했다.

"답답해 죽겠네!! 울지만 말고 빨리 뭐라도 말을 해 봐!"

언제 나온 건지, 원장 놈이 시온을 에드나에게서 억지로 떼어내며 윽박지르고 있었다.

저럴 거면 차라리 원장실에서 쥐죽은 듯이 있는 게 도와주는 길이다.

"저기요, 원장 선생님. 일단 진정하시고···."

"넌 또 뭐야? 가서 애들이나 달래!"

"애들 앞에서 큰 소리 내면 안 울 애들까지 웁니다. 일단 어른이 진정해야 아이도 진정할 수 있어요."

"다 우는데, 안 울 애가 어딨어?!"

"······."

굳이 찾자면 어딘가에 숨어 있을 세르펜스라 답할 수 있겠지만, 그의 존재는 비밀이다.

그걸 따지고 들기 전에 논점부터 어긋났다.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다.

일단 아이들을 달래야 하는 건 맞으므로,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아기를 어르면서 다른 아이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고래고래 소리만 질러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원장 놈은 에드나가 원장실에 다시 밀어 넣었다.

덕분에 겨우겨우 아이들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하, 진짜. 누가 원장인지 모르겠네."

울음소리가 멎어 들자, 원장이 빈정거리며 원장실 밖으로 기어 나왔다.

"원장 선생님께 아이들에게 소리치지 말라는 것도 안 배웠어?"

"그러는 너는 아이들 앞에서 비난하지 말라는 것도 못 배웠나 봐? 그리고 네가 자꾸 까먹는 것 같은데, 지금 여기 원장은 나야. 알아?"

"원장이면 원장답게 아이들을 잘 돌봐야지."

"넌 내가 항상 한심하고 못마땅하지? 엉?"

"대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가 언제 널 무시했다는 건데?"

"됐다, 내가 너랑 무슨 얘길 하겠어."

원장이 한숨을 푹 내쉬며 에드나를 그냥 지나쳐, 아직도 훌쩍거리는 시온에게로 다가갔다.

에드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원장의 뒤통수에다 대고 소리 없이 벙긋거리다가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대체, 꼴이 그게 뭐야?"

걱정이라도 해주는 줄 알았더니, 애를 다시 울리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 같은 말본새다.

너덜너덜해진 시온의 옷자락을 엄지와 검지로 슬쩍 잡고 말하는 모습이 마치 더러운 거라도 만지는 듯 보였다.

"······."

"그래, 말 안 한다 이거지?"

히끅거리며 딸꾹질하는 아이를 상대로 꼭 저렇게 다그쳐야만 하는 걸까?

말리려는데 품에 안은 아기가 으애응, 칭얼거리는 통에 타이밍을 놓쳤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넌 맨날 들어가서 얘기하자고 하더라?"

"···아이들이 듣잖아."

"쟤들도 다 들어야지. 쟤들이 크면 다 이렇게 될 텐데."

"이렇게라니···?"

에드나의 되물음에, 원장 놈의 턱 끝이 시온을 향했다.

안 그래도 멍투성이 얼굴이 울고 난 탓에 더욱 부어올라, 아까보다 더 안쓰러운 모습이 되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얼음주머니를 조심스럽게 시온의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시온은 반사적으로 내 손을 쳐내려다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며 얼음주머니만 쏙 뺏어갔다.

"뻔한 거 아니냐? 부모 없는 고아 새끼가 일하다가 무시당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그래서 맞은 거겠지, 화풀이 같은 거로."

"말 좀 가려서 해!"

"가리긴 뭘 가려? 너도 마탑에서 무시당하며 지내잖아? 그런데 쟤들은 오죽하겠어?"

원장의 말에 말문이 막힌 에드나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모습에 아이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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