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회
52. 공작님의 심문 (3)
[성검의 주인]에서 아니마는 악숭이가 리빙 데드에게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한 번 본 것만으로, 리빙 데드를 정지시키는 마법을 즉석에서 만들어 냈다.
그러니 에드나가 아니마의 마법 실력을 극찬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명령을 내리는 체계는 각기 다를지라도, 동작과 관련된 핵심 체계는 하나의 줄기에서 뻗어 나온 거라나?'
등장과 동시에 공략까지 끝나버린 셈이다.
오죽했으면 [성검의 주인]을 읽던 독자들이 '저럴 거면 리빙 데드 설정은 왜 만든 거야?'라며 의문을 표했을까.
리빙 데드의 외형이 사람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과 자폭 기능을 이용한 테러.
움직이는 시체에 불과할지라도 죽은 연인이 되살아나길 바라는 빌런의 등장.
기타 등등의 방식으로 다시 나오지 않았다면, 일회용 설정으로 내 기억 속에서 잊혔으리라.
"그나저나 저 리빙 데드는 이제 어쩌죠?"
"결계로 감싼 상태에서 터트리면 됩니다."
"그럼 그 위력을 세르펜스가 모두 감당해야 하잖아요?"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내 질문에 세르펜스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정말 그 방법이 간단하고 부담이 없었더라면, 진작에 터트렸다.
바깥에서 터지는 폭발을 방어하는 것과 폭발의 위력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온전히 감내하는 건 다른 문제다.
또한, 노인 악숭이가 저 리빙 데드의 폭발 출력을 어느 정도로 잡았는지도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터진 잔해를 보는 것도 좀 그렇고···.'
무엇보다, 앞으로 리빙 데드를 마주할 때마다 세르펜스에게 폭탄 처리를 맡길 수는 없다.
악숭이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위력을 극도로 끌어올린 테러용 리빙 데드를 지속해서 보내올 거다.
그렇게 된다면 세르펜스의 부담도 점차 커지겠지.
차라리 아공간 주머니 하나를 희생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그 순간.
"저···,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에드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말했다.
자연히 나와 세르펜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방금 그 마법진, 도중까지는 리빙 데드의 조작에 관련된 내용이었잖아요. 마지막에 겹쳐 쓰기로 문자열이 바뀌는 바람에 폭발 위력 증가 마법이 될 뻔했지만···."
그렇게 말해도 나는 모른다.
세르펜스를 바라보니, 녀석이 그렇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 악숭이가 자신도 죽을 거란 걸 알면서 리빙 데드를 터트리려 했다는 얘기도 놀라웠으나, 그냥 악숭이가 악숭한 것에 불과하다.
그보다 놀라운 건 리빙 데드를 멈출 수 있을 것 같다는 에드나의 말이었다.
타인의 마법을 즉석에서 해석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일부러 꼬아서 만든 미완성의 마법진을 슬쩍 보고, 제대로 된 마법을 구사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은 아니마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모든 마법사가 그런 걸 할 수 있다면 스승도 필요 없을 테고, 마법을 개발했다 하면 만인의 공공재가 되어버렸겠지.
[성검의 주인]에서는 그녀의 마법을 볼 수 없어서 몰랐을 뿐. 생각보다 에드나의 실력이 상당한가 보다.
세르펜스도 놀랍다는 눈으로 에드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가능하십니까? 베네볼렌 씨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나, 자칫하면 이곳 모두가 위험해질 겁니다."
"네, 알아요. 하지만 가능할 것 같아서···."
에드나가 세르펜스의 눈을 피하며 웅얼거렸다. 자신이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그녀를 바라보는 세르펜스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무엇을 숨기시는 겁니까?"
"수, 숨기다니요?!"
"알고 계시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저자의 마법을 보고 무언가 알아내신 것 아닙니까?
갑자기 분위기 심문, 무엇?
처음에는 세르펜스가 대체 무슨 얘길 하는 건가 어리둥절했으나, 갈수록 에드나의 반응이 이상해졌다.
"네, 그러니까 저것을 멈추는 방법을···."
"살아있는 사람의 정신을 붕괴해 조종하는 수법은 예부터 있었으나, 죽은 사람을 살아있는 사람처럼 만드는 마법은 세상에 없던 것입니다. 처음 본 마법을 한 번에 보고 따라 할 수 있다는 건···. 솔직히 말해서 믿기 어렵습니다."
"마법에 대해 아시는 게 많네요···?"
"어려서부터 악마 숭배자와 대적하기 위해 그들에 관한 문헌을 읽다 보니, 자연히 그리되었습니다."
교과서를 읽다 보니, 자연스레 전교 1등이 되었다는 말로 번역되어 들렸다.
세르펜스의 성장 과정을 몰랐다면, 잘난 척하는 것 같아 띠껍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참 대단하시네요."
에드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영혼 없이 감탄했다.
천재인 아니마를 옆에 끼고 살았던 에드나가 저 정도인데,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얼마나 세르펜스가 재수 없게 느껴졌을까.
듣는 귀가 나와 에드나뿐이라 다행이다.
"혹시 같은 마법을···. 그게 아니더라도 비슷한 마법을 본 적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게···."
"부디 말씀해 주십시오. 악마 숭배자들은 이 대륙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그들을 찾기 위해서라면 작은 단서라도 모아야 합니다."
"음···."
"시온은 그쪽을 믿고 자신이 일루미나티의 수장이라는 것까지 말씀드렸는데···."
세르펜스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듯, 슬픔과 충격이 적절히 섞인 표정을 꾸며냈다.
녀석은 나오지도 않는 울음을 참는 듯,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고개를 45°로 숙였다.
청은 빛 앞머리가 사락 흘러내리며 세르펜스의 눈가에 옅은 그늘을 만들어냈다. 그 모습이 마치 실의에 빠진 비련의 여주인공 같다.
세르펜스가 저렇게까지 하는데,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에드나도 참 대단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세르펜스를 바라보지 않으려 애썼다.
"프루이토 씨와 관련된 겁니까?"
"······!"
에드나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아니라면 어떻게 아니마를 악숭이 따위와 엮을 수 있느냐고 화를 냈을 텐데. 그녀는 정곡을 찔린 사람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기야. 대륙의 존망이 걸렸을지도 모를 일을 그녀가 외면할 만한 이유라면 오직 그것뿐이다.
'근데 아니마가 저 마법과 관련이 있다고···?'
그런 얘기는 금시초문이다.
[성검의 주인]에서 리빙 데드가 처음 등장했을 때, 아니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씀하셔도 저희가 프루이토 씨를 오해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세르펜스가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의심할 수 있는 건 닥치고 의심하고 보는 사람이 잘도 안 하겠다.
"모든 오해는 정보의 부재에서 오는 법이며, 오해는 의심을 불러옵니다. 이대로 입을 다물고 계신다면, 제 의지와 무관하게···. 베네볼렌 씨와 프루이토 씨를 의심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알았어요. 말씀드릴게요."
슬퍼하는 척 협박 멘트를 쏟아내는 세르펜스의 행동에 에드나가 한숨을 푹 내쉬며 백기를 들었다.
"프라시더스 씨의 말씀대로 저는 이와 비슷한 마법을 본 적이 있어요. 사용한 적도 있고요."
이로써 [성검의 주인]에서 아니마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건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에드나가 사용한 적 있는 마법이라서 처음 보는 척한 거겠지.'
기본적으로 [성검의 주인]은 작가 시점에서 진행되는 소설이다.
타락펜스가 뒤에서 몰래 계략을 꾸민다거나, 악행을 저지르는 서술을 할 때 등.
간혹 타락펜스를 기준으로 서술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휴마누스를 중점으로 묘사되었다.
‘이런 걸 제한적, 또는 선택적 작가 시점이라고 부르던가?’
휴마누스가 보는 것.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그런 요소들을 소설로 풀어낸 게 바로 [성검의 주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에드나의 이름도 작중에 등장했겠지.'
아니마가 리빙 데드를 보고 에드나를 떠올리며 혼란스러워한들, 눈새누스가 눈치챘을 리 만무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성검의 주인]에서도 묘사가 빠진 걸 테다.
"아! 물론 교단의 교리를 어기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았어요. 맹세할 수 있어요!"
"예. 저도 두 분께서 그런 짓을 하셨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르펜스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잠깐 정신을 차린 원장 놈의 뒷목을 검집으로 후려치지만 않았더라면, 정말 온화해 보일 뻔했다.
피곤했다면 기절한 김에 몇 시간이고 푹 잠들어 버렸을 텐데.
남들 맘고생 시켜놓고, 밤에 얼마나 잘 잤길래 자꾸 깨는 건지 모르겠다.
"제가 사용한 마법은···. 이런 시체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인형을 움직이는 마법이었어요."
"'인형'이라면···."
"그냥 말 그대로 인형이요.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솜이 들어간 평범한 인형."
인형에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세르펜스가 의심했으나, 돌아온 답은 그냥 평범한 인형이라는 얘기였다.
"인형이 아닌 인체를 조작해야 하니, 여기저기 뜯어고치긴 했지만···. 움직이게 하는 핵심 체계는 저희가 어렸을 때 인형놀이용으로 만들었던 마법이 분명해요."
대체 인형놀이를 얼마나 판타스틱하게 한 건지 가늠이 안 된다.
"으음···. 그 마법을 아는 사람은 두 분뿐입니까?"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요."
"그 마법은 어디에서 주로 사용했습니까?"
"마탑에서···. 혹시 마탑에 악숭이의 끄나풀이 있는 걸까요?"
"속단할 수는 없지만···."
세르펜스가 말끝을 흐렸다.
보통은 '속단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라는 뜻이 되겠으나, 녀석이 말한다면 '그쪽도 여전히 의심스럽다.'라는 뜻이 되어버린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접어두고, 우선은 이것의 동작을 멈춰주시길 바랍니다."
"폭파 기능 때문에, 회로를 한번 자세히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에드나의 말에 세르펜스가 리빙 데드를 감싼 결계를 해제했다.
의심스러워도 당장은 믿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을 내린 거다.
자세히 살펴봐야 하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세르펜스가 발로 밟는 대신, 에드나가 속박 마법으로 리빙 데드를 꽁꽁 묶었다.
에드나는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아 이불을 걷고, 리빙 데드를 이리저리 뒤집어가며 살폈다.
세르펜스는 관심 없는 척하면서 그녀의 행동을 자세히 살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에드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잠깐 붙잡아 주시겠어요?"
세르펜스가 리빙 데드의 복부를 발로 밟자, 에드나가 속박 마법을 해제했다.
그녀는 스태프 끝을 리빙 데드의 심장 어름에 가져다 댄 뒤, 스태프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스태프를 통과해 한 번 정제된 마력이 작은 마법진을 그려냈다.
마법진이 반짝 빛나는 듯하더니 꿈틀거리던 리빙 데드가 얌전해졌다.
"와, 저 악숭이 놈. 엄청나게 복잡한 마법이라고 떠들어 대더니···."
"이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서 그렇게 느낀 거겠죠."
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에드나가 스태프를 거둬들이며 대답했다. 굉장히 못마땅하다는 투다.
아니마와의 추억이 담긴 마법을 변질시킨 게 화가 났나 보다.
그녀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한다.
만약 세르펜스와의 추억이 담긴 미트볼 토마토 리소토에 악숭이가 독을 탄다면, 나 또한 무척 화가 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