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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회개해주세요!-298화 (298/925)

298회

53. 공작님의 영입 제의 (2)

유지스의 착각을 바로 잡아준 뒤. 나는 세르펜스가 한 '거짓말'의 의도가 무엇일지 궁리했다.

에드나와 아니마의 마법을 훔친 범인은 이미 마탑을 떠났다. 악숭 세력에 귀의했다.

내부에 숨어있는 적은 솎아내야 하지만, 바깥의 적은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적이다.

그렇기에 누구인지 알아낼 필요도 없고, 안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그것이 녀석의 주장이다.

그런 면에서, 어째서 찾는 걸 포기하느냐는 유지스의 질문에 부합하는 변명이다.

'정말 그게 전부일까? 다른 누구도 아닌 세르펜스가?'

아니마와 에드나가 만든, 남들에게 알리지 않은 그들만의 마법을 악숭이가 사용했다.

세간에 알려진다면 가장 먼저 의심을 받는 건 당연히 그들이다.

'하지만 그들을 모함하기 위해서. 혹은 그들의 마법이 쓸모 있어 보여서. 악숭 세력에 빼돌린 변절자의 존재가 확고해진다면?'

그들은 단지 피해자가 될 뿐이다.

자신들의 추억을 더럽힌 악숭이들에게 타당하게 분노할 수 있다.

"대체 마법을 어떻게 훔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리빙 데드 마법의 근간은 저와 아니마가 만든 마법이 맞아요. 제가 저의. 그리고 그 아이가 만든 마법식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잖아요?"

에드나가 분하다는 듯 이를 갈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유지스는 악숭이들의 행동을 용서할 수 없다며 함께 분노했다.

세르펜스는 동조하는 척 안타깝다는 표정을 꾸며냈다.

내가 말실수할 거라고 녀석이 믿어 의심치 않는 것처럼.

나는 세르펜스가 타인에게 씌워진 의심을 이유 없이 벗겨내 주지 않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녀석에겐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다.

그의 뿌리 깊은 의심병.

그리고 녀석이 자주 쓰는. 순진한 모습으로 상대를 방심시킨 후, 뒤에서 엿을 선사하는 수법 등을 고려해 볼 때···.

'고려고 뭐고, 그냥 그거잖아!'

변절자의 존재를 확고히 한다. 에드나와 아니마의 혐의가 벗겨진다.

의심에서 벗어난 아니마, 혹은 에드나, 혹은 그 둘이. 방심하여 자신이 악숭한다는 증거를 흘리기를 기다리는 거다.

'와, 진짜, 이 자식···.'

이 주제에 관해 녀석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눠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세르펜스의 의심병이 깊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으나,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에드나 또는 아니마가 악숭이일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악숭이였다면, [성검의 주인]에서 벌어졌던 일은 존재할 수가 없다. 가정조차 성립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거라면 세르펜스는 당연히 알 거다. 그런데도 녀석은 뭐가 문제인지,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믿어야 할 이유는 배제하고, 믿지 말아야 할 이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쯤 되면 믿고 싶지 않아서 의심하는 수준이다.

유지스는 사람을 너무 믿어서 탈이고, 세르펜스는 너무 안 믿어서 탈이다.

'둘을 반반씩 섞어놓으면 딱 좋으련만.'

불현듯 떠오른 생각인데, 정말 끝내줄 것 같다. 특히 얼굴이.

내 머릿속이 삼천포로 흘러가는 동안 대화는 흐르고 흘렀다.

세르펜스의 주도하에, 악숭이가 에드나를 타락시켜서 어쩌고 하는 악숭이의 계략 설명회가 열렸다.

나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좀 더 딴짓해도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어디까지 했더라? 세르펜스와 유지스의 미모를 합치는 것까지 했나?'

좋은 것에 좋은 것을 더하면 시너지가 발동하여 열 배 더 좋은 것이 탄생하는 법이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광채가 나는 둘을 합쳐 놓는다면 얼마나 빛이 날까?

어쩌면 신 룩스메아도 그 아름다운 빛에 눈멀어, 신 자리를 양도할지도 모른다.

"시온, 정신 차리십시오."

그렇게 머릿속으로 세르펜스와 유지스의 이목구비를 열심히 조합하는 중. 세르펜스가 내 열린 입을 닫아주며 말했다.

딱, 이와 이가 맞부딪히는 소리에 나는 상념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많이 지루하셨습니까?"

"아뇨? 완전 흥미진진한데요?"

"얘기가 지루하여 딴생각에 빠지신 줄 알았더니···. 흥미진진한 딴생각에 몰입하느라 대화를 듣지 않으셨나 봅니다."

"어차피 저에게 하는 말도 아니었고 뭐···."

"그렇다 해도, 남이 말할 때 침까지 흘리며 멍하니 있는 건 예의가 아닙니다."

세르펜스가 샐쭉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자신이 말할 때 딴생각한 것이 서운했던 모양이다.

하기야 학예회 무대에서 열심히 율동을 추는데, 정작 부모가 멍때리느라 집중을 안 하면 당연히 서운할 수밖에.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나는 소매로 입가를 문질러 침을 닦은 후, 그에게 사과했다. 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지금 당장 출발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런 이유가 뭐죠?"

"···…."

내가 아는 얘기가 다 끝난 후, 다른 얘기도 나왔었나 보다.

진작 불러주지. 앞으로는 정말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

세르펜스가 말한 '그런 이유'의 설명은 유지스가 대신해 주었다.

대충 요약하자면, '폭파된 상단 어딘가에 로시오 상단의 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내용이다.

'악숭이가 상단을 폭파한 게 단순히 이목을 잡아끄는 목적뿐 아니라, 증거 말소의 목적도 겸한 것 같다나, 뭐라나?'

더불어, 우리는 생포한 노인 악숭이도 페롤 령의 교단에 넘겨야 한다.

그렇게 '그런 이유'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에드나는 출발 전 마법진을 다시 점검하며, 전 원장님과 아이들에게 여러 주의사항을 알렸다.

세르펜스는 떠나기 전 보육원 내외부를 살폈다. 그리고 윈스톤은 말을 빌리러 나갔다.

윈스톤이 말을 끌고 오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으니. 사실상, 할 일 없는 나와 유지스는 기다리는 동안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죽인 셈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지스는 평소와 달리 외투를 여러 겹 껴입었다.

정령력을 끌어내지 못하면서 신체 기능이 범인의 수준까지 약화된 탓이리라.

거기까진 이해한다. 그러나.

"유지스도 가는 겁니까?"

옷을 껴입는다는 건 나갈 채비를 한다는 뜻과 동일하다.

"본단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잖아요. 제가 도면을 그려드린다 해도, 어디에 뭐가 있었는지 알아보기 힘드실 거에요. 직접 그곳에 들어갔다 온 저와 함께 가는 편이 더 도움 되겠죠."

"그래도···. 몸도 안 좋으신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세르펜스는 제 몸이 회복된 후에. 하다못해 내일 출발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증거를 찾는 건 더 어려워질 거예요."

유지스가 말하였다.

엘프 특유의 가냘픈 몸은 두툼한 겨울옷에 가려졌다. 그녀의 안색은 여전히 파리했지만, 표정만은 굳건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여기에 두고 가는 건 좀···. 불안할 테니까.'

정령을 부를 수 없더라도 그녀는 여전히 명사수다. 하나 단순히 활을 잘 쏘는 것만으로 악숭이를 상대하기란 역부족이다.

세르펜스로서는 그녀가 걱정될 수밖에 없다.

유지스가 같이 가겠다고 나서지 않았더라도, 녀석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데려갔을 거다.

어디에 있든 똑같이 위험하다면, 자신의 곁에 두는 걸 최선이라 생각하는 녀석이니까.

무엇보다도.

'만약 이곳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유지스는 또다시 무리해서 아이들을 구하려 할 테니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한 가지 변화를 알아챌 수 있었다.

세르펜스의 과보호 대상이 하나 더 늘었다.

"유지스는 그러면 안 됐어요. 아니, 진짜로 이제 어쩔 겁니까?"

"···네?"

유지스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거렸다.

나는 구태여 그녀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어차피 녀석의 과잉보호를 직접 겪으면 깨닫게 될 거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나도 외투를 단단히 챙겨 입고 보육원 앞마당으로 나왔다.

윈스톤이 마차에 말을 매고 있었다.

환자와 함께 길을 떠나면서 마차가 아닌 말을 빌려 온 게 이상하더라니.

'아공간 주머니 안에 마차를 넣고 다니겠다던 그 말···. 진심이었냐?'

검소한 척은 혼자 다하지만, 은근히 돈 지랄에 도가 튼 녀석이다.

그가 준비한 마차니만큼, 외형은 흔해 빠졌으나 내부는 초호화판일 거다.

내 시선이 후드를 푹 눌러 쓴 세르펜스를 향했다. 녀석은 살짝 후드를 걷어 칭찬을 바라는 눈빛으로 화답했다.

때마침 에드나는 악숭이와 원장 놈을 가지러 간 상황.

나는 잽싸게 녀석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 줬다.

"···다 되었습니다."

윈스톤이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곧이어 에드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뒤에는 악숭이와 원장놈이 두둥실 떠 있었다.

"그럼 다녀오십시오."

"어? 윈스톤은 안 가요?"

"예. 이곳을 지키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말을 사 온 것도, 말을 마차에 맨 것도, 전부 윈스톤이 한 일이다. 그런데 정작 그는 두고 가다니.

"누군가는 이곳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암흑가에서 제가 윈스톤 경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잖습니까?"

프뤼네 왕국이 너무 추운 탓에, '연출'이 죄다 얼어죽은 모양이다.

세르펜스가 저런 헛소리를 당당하게 말하는 거로 보아 확실하다.

"제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인상이 남았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결코 회유되지 않는 존재입니다. 여러모로 악마 숭배자들에게 윈스톤 경은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 예에···."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일부러 윈스톤을 별동대처럼 운용하려고 악숭이를 속인 줄 알겠다.

"그러니 노린다면, 저희 쪽이 될 겁니다."

세르펜스가 숭고한 척, 무게를 잡으며 말했다. 일부러 희생을 짊어지는 자의 표정이다.

"또 양동 작전을 쓸 가능성은요?"

"그럴 여력이 있다면 저희 쪽에 전력을 집중할 겁니다."

어쩐지 자기 자신을 레이드 보스쯤으로 취급하는 것 같다.

악숭이 기준으로는 실제로도 그런 느낌이니, 틀리진 않나?

앞서 깔아둔 밑밥이 개소리들뿐이었으나, 결론은 그럴듯했다.

환자 하나, 일반인 하나, 포로 둘. 확실히 짐이 많긴 많다.

그에 비해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에드나와 세르펜스뿐.

추격자 물리치랴, 유지스 치료하랴, 악숭이의 마력 타래를 끊어내랴. 세르펜스의 신성력 소모가 많았다.

녀석의 체력과 신성력이 얼마나 회복되었는지도 아리송하다.

에드나도 밤새 마법진을 그렸으니, 꽤 지쳤을 거다.

'확실히 악숭이네가 보기엔 절호의 찬스로 여겨질 만도 하네.'

갑자기 마부가 없는 것도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악숭이가 습격할 것을 확신하고, 짐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곳 아이들은 에드나 씨에게 소중하잖아요. 만에 하나라도···."

"그 만약을 대비해 윈스톤 경을 남겨둔 거잖습니까?"

"······."

여기에 대고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윈스톤이 지키고 있는데 아이들이 위험하다든가 하는 말을 하면, 윈스톤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밖에 안 된다.

"정 걱정되신다면, 시온이 가지고 있는 마법 스크롤을 그에게 넘겨주는 게 좋겠습니다."

세르펜스가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남을 걱정하는 그 모습이 보기 좋다는 듯, 흡족한 미소를 꾸며냈다.

녀석도 어련히 생각이 있어서 이러는 걸 텐데도. 이상하게 찝찝하고 구리다. 세르펜스의 페이스에 휩쓸리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나와 유지스는 소중하고, 윈스톤은 안 소중하고. 그런 거 아니지, 너?'

윈스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 같은데.

내 마법 스크롤을 윈스톤에게 넘기라고 말한 걸 보면, 분명 그를 걱정하긴 하는 것 같은데···.

나중에 둘만 있을 때 물어봐야 할 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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