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01화 (301/925)

301회

53. 공작님의 영입 제의 (5)

내 간식은 보육원 아이들에게 전부 건네줬지만, 유지스의 유자 컬렉션은 그렇지 않았다.

즉, 그녀의 아공간 주머니에는 아직 먹을 게 남아있었다.

그렇게 저녁 식사는 유지스의 유자 머핀으로 결정 났다.

군것질거리로 끼니를 때운다는 게 별로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이조차 감지덕지다. 식사라 부르긴 뭐해도 일단 배는 차니까.

"감사합니다."

세르펜스는 오랜만에 제과류를 먹는다는 생각에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제대로 된 끼니를 챙겨주지 못해 가슴 아파하는 내 속도 모르고.

머핀을 건네는 유지스에게 감사를 전하는 녀석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들떠 있다.

에드나 앞이라 티 내지 않으려 애썼으나, 녀석의 감정 변화를 눈치 못 챌 내가 아니다.

녀석은 진심으로 유지스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저는 괜찮아요. 지금 뭔가 먹었다간 이따가···.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

아까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초췌한 모습의 에드나가 유자 머핀을 거부했다.

이럴 경우 간식은 세르펜스의 몫으로 넘어가는 게 관례다. 하나, 세르펜스가 체면을 차리고 있었기에 머핀은 유지스의 아공간 주머니 안으로 되돌아갔다.

"시온 씨도 그렇고, 유지스 님도 그렇고···. 단것을 굉장히 좋아하시나 봐요?"

창문에 기대어 반쯤 늘어진 에드나가 의문을 표했다.

이건 그녀의 착각이다. 나와 유지스가 이런 군것질거리를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순전히 세르펜스 탓이다.

그리고 유지스가 좋아하는 건 단것이 아닌 유자다.

"아니마, 그 아이도 달콤한 걸 참 좋아라 했는데···."

에드나가 유지스의 손에 들린 머핀을 보며 아련하게 중얼거렸다.

이 또한 그녀의 착각이다.

아니마는 단것을 그리 즐기지 않는다. 싫어하는 건 아니겠지만, 세르펜스처럼 환장하지는 않는다.

그저 에드나 눈에 귀여워 보이기 위해 좋아하는 척할 뿐이겠지.

칠순의 노래자가 구순의 어버이 앞에서 색동옷 입고 재롱을 부린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 챙강!!

야금야금 유자 머핀을 해치우고 있는데, 마부석 방향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세르펜스, 무슨 일 있어요?"

"말을 노리는 공격이 있었으나, 검으로 쳐냈습니다."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악숭이 놈들은 식사 예절부터 다시 배워야 할 듯하다.

속으로 악숭이들을 한창 욕하고 있는데, 세르펜스가 불편한 침음을 흘렸다.

"으음···."

"왜요? 목 막혀요? 물 줘요?"

"아닙니다. 그저 방금의 공격으로 인해···, 으음···."

세르펜스가 계속해서 으음거렸다.

이쯤 말했으면 얼른 눈치채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제공하라는 신호다.

"유지스, 세르펜스가 머핀 떨궜으니까 하나 더 달래요."

"그럼 당연히 새로 드려야죠."

정답이었나 보다.

유지스가 기꺼이 머핀 하나를 꺼내자, 녀석의 으음거림이 멎었다.

세르펜스의 반사 속도와 단것을 향한 애정 등을 생각했을 때, 녀석이 정말로 머핀을 떨어뜨렸을 리는 만무하다.

단지.

'여기서 보이는 건 세르펜스의 뒤통수뿐이니까.'

머핀을 하나 더 먹기 위한 수작이다.

작은 창을 통해, 세르펜스에게 머핀을 건네는 유지스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걸렸다. 그녀도 눈치챈 게 틀림없다.

악숭이들은 또다시 작전 타임에 들어간 건지. 우리가 먹는 모습을 보고 시장기가 돌아, 밥 먹으러 간 건지 모르겠으나.

세르펜스가 두 번째 머핀을 다 먹도록 놈들은 공격해오지 않았다.

"그런데 페롤 령에 도착하면 어쩔 생각이에요?"

"우선 교단에 들러 악마 숭배자와 원장을 넘기고, 상단에···."

"아뇨, 아뇨. 그게 아니라 악숭이들이 우릴 쫓고 있잖아요. 이 상태로 페롤 령에 도착하면, 그대로 들어가요?"

"그 전에 끝을 볼 생각입니다."

내 질문에 세르펜스가 즉각 대답했다.

머핀을 하나 더 먹기 위한 계획 말고도, 악숭이를 상대하기 위한 계획도 착실히 세워둔 모양이다.

"무슨 수로요?"

"저희는 계속 움직이고 있고, 적도 저희를 따라오고 있지 않습니까? 적들이 공격해 올 때마다, 어느 방향에서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쫓아오고 있는지. 확실히 파악해 뒀습니다."

"네네, 그래서요?"

"그들이 우리가 지쳤다고 판단할 수 있을 때쯤. 한계에 몰려 최후의 선택을 한 거라고 오인할 수 있는 시기에. 그중 가까이 있는 무리를 향해 돌격할 생각입니다."

그 말인즉슨.

적이 세 무리···였으나, 한 무리는 눈사태에 파묻혔으니 논외로 두자.

아무튼 문제는 적이 두 무리로 나뉘어 있다는 거다.

본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되어 세르펜스는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그런 까닭에 마차째로 돌진하여, 우리를 옆에 두고 보호하면서 싸우겠다는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게다가 한계에 몰린 척까지···.'

모르긴 몰라도, 다른 악숭이 무리도 가세하러 올 거다.

힘 빠진 세르펜스가 한 악숭이 무리와 싸우고 있을 때. 뒤를 쳐서 완벽하게 끝내겠다고 쌍수를 들고 쫓아올 것을 생각하니, 치졸함에 치가 떨린다.

그러던 중,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으니.

"그러려면 머핀을 먹는 여유로운 모습 같은 건 보이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당분 섭취가 필요할 정도로 지쳤다는 설정이라면···."

"저 멀리서 우리를 훔쳐보고 있을 악숭이들이 그딴 걸 어찌 압니까?"

"으음···."

꼿꼿하게 지면과 수직을 이루던 세르펜스의 목 각도가 앞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뒤통수만으로 이렇게 시무룩해 보일 수 있다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자리에 에드나만 없었더라면,

'먼저 무언가 먹자고 권한 건 당신이었잖은가?'

'보란 듯이 머핀을 두 개나 먹은 세르펜스가 할 말입니까?'

···와 같은 대화가 오갔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대외펜스 설정을 놓지 못한 세르펜스는 내게 아무것도 따지지 못했다.

그 대신 유지스가 할 말이 있는지 손을 들어 올렸다.

"질문이 있어요."

"네, 유지스의 발언권을 인정합니다."

"새로 잡아 들일 악마 숭배자들은 어떻게 하죠? 수가 늘어나면 관리 하기도 힘들 텐데···."

"확실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네요. 논의 주제로 인정합니다."

나와 유지스가 느닷없이 회의 모드에 들어가자, 에드나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다 죽이면 되는 거 아니에요? 정보를 얻기 위함이라면 대가리만 남기면 되잖아요."

"······."

정정한다.

그녀는 왜 이런 주제로 논의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악마 숭배자들을 생포할 수 있으면 생포하는 게 좋긴 하지만, 대게는 그냥 죽이죠···? 현행범이면 사상 검증도 필요 없고···."

유지스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자세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대로. 현대인의 감각으로는 즉결 사살이 낯설지만, 이 세계에서는 그게 보통이다.

이단 심문관들이야, 놈들을 잡아다가 물리적으로 지지고 볶는 게 일이니까 그렇다 치고.

그 외에는 악숭이를 생포해 교단에 넘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보통은 아등바등 싸워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생포하고 자시고 할 여력이 없다.

[성검의 주인]에서 휴마누스는 그들을 상대할 여력은 충분했으나,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악숭이를 만날 때마다 놈들을 사로잡고, 교단으로 보내고. 그럴 시간이 없다.

운반이 힘들다는 이유도 있으나, 만일을 대비해 힘을 보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생포하는 것보다 죽이는 게 훨씬 쉬우니까.

'하긴···. 전 세계를 누비며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이 세상을 위협하는 악의 무리를 만날 때마다, 꼬박꼬박 공공기관에 넘기는 것도 좀···.'

이 부분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권선징악의 교훈을 담은 동화 같으나, 잡혀간 악당이 공공기관에서 고문을 당한다면 성인용 잔혹 동화다.

"왜 다들 그렇게 새삼스럽다는 반응이죠···?"

이 세상의 기준에서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을 우리가 낯설어하자, 에드나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평화를 호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전쟁을 외치는 과격분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듯하다.

"그동안은 매번 생포해서 제국 자문회에 데려가든지, 교단에 넘기든지 했거든요."

세르펜스가 나서서 악마 숭배자들을 몰살시킨 건, 유지스와 윈스톤을 추적해온 놈들을 해치웠을 때가 처음이다.

유지스가 다친 게 어지간히도 화났던 모양이다.

"한 개인이 악숭이를 생포해 넘긴 횟수는, 모르긴 몰라도 세르펜스가 제일 많을걸요? 이쯤 되면 명예 이단 심문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 아! 물론 우리 세르펜스는 악숭이 고문 같은 건 안 하지만요! 세르펜스는 마음이 여리거든요!"

"···누가 뭐라고 했어요?"

"뭐라고 하진 않았죠. 그냥 세르펜스도 마력 구속구를 합법으로 소지할 수 있도록 허가해 줘야 한다,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얘기가 살짝 옆길로 빠졌지만,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울컥했다.

세르펜스가 마력 구속구만 지니고 있었어도 녀석이 악숭이를 고문하는 일은 없었···을 거다. 아마도.

물에 몇 번 담갔다 뺐을지언정, 마력 타래를 끊어내진 않았겠지.

"좀 웃기지 않아요? 범죄자들은 몰래몰래 잘도 쓰는데,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건 이단 심문관과 각국 황실이나 왕실의 근위단원뿐이라니···. 이게 정녕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타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물건이잖습니까. 불법적인 일에 악용 되는 만큼, 법적으로 제약을 걸어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울분을 쏟아내고 있자니, 바른 생활 어린이 세르펜스가 판에 박힌 말을 하며 끼어들었다.

"그런데 너무 공공연하게 쓰이잖습니까?!"

"재료가 되는 금속이 워낙 대륙 각지에 퍼져있는 터라···. 죄송합니다."

"엥? 세르펜스가 왜 사과해요?"

"제국의 귀족으로서 최소한 제국 내에서라도 그런 물품이 퍼지지 않도록, 불법 채굴을 막아야 하는데···. 레펠로 광맥이 발견될 때마다 폐쇄 조치를 내리고 있긴 하나, 그게···. 으으음···.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

그렇다.

나는 세르펜스의 얼굴에 침을 뱉고 있었던 것이다.

"세르펜스가 잘못 했다는 게 아니라···. 애초에 그게 문젭니다! 레펠로 광맥이 대륙 각지에 퍼져있는 거!! 대체 신 룩스메아는 무슨 정신으로 그딴 걸 전 대륙에 걸쳐 뿌려놨대요?!"

"···시온. 최소한 신학 공부는 제대로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신의 사자잖습니까?"

"예?"

"마력 구속구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 재료가 되는 금속, '레펠로'는 볼타 산맥에 마핵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겁니다."

"엥?"

"대륙 전역에 흐르던 마기가 볼타 산맥으로 모여들며, 본래 마기가 흐르던 길이 레펠로 광맥이 되었습니다."

생판 처음 듣는 얘기다.

[성검의 주인]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정보다. 이건 이제 그냥 그러려니 한다. 생략된 정보가 한두 개도 아니고.

다만 시온의 기억을 뒤져봐도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정보는 아닌가 보다.

"더불어, 대륙 전역에 마기가 흐르게 된 것 또한 신 룩스메아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렇다는 건···, 마왕 짓이란 거네요?"

"예. 긴 세월 마기가 흐르면서 해당 경로상의 암석이 변형을 일으켰다는 게, 신학자들의 일반적인 통설입니다."

아무튼 마왕이 개새끼라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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