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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회개해주세요!-302화 (302/925)

302회

53. 공작님의 영입 제의 (6)

최단 거리로 향했다면 벌써 페롤 령에 도착해서 발 뻗고 자고 있을 시간이건만. 우리는 아직도 마차를 타고 있었다.

인적이 드물면서도 마차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은 흔치 않아, 무던히 돌아가야 했던 게 첫 번째 이유요.

사람들의 왕래가 없었으니 쌓인 눈이 녹지도 않은 게 두 번째 이유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한 것이 세 번째 이유라.

안 그래도 먼 길을 달리지도 못하고 기어가다시피 마차를 몰았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대로라면 악숭이들을 치러 갈 때 애로사항이 생길 것 같은데···."

"상관없습니다. 저희가 지쳤다고 판단이 되면 일부러라도 잡혀 줄 겁니다."

작은 창을 열고 질문하자, 세르펜스가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가 놈들을 역으로 쫓기 시작하면, 악숭이 놈들은 옳다구나 하고 함정을 파고 기다릴 거란 얘기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우리의 안전만을 꾀한다면, 이대로 악마 숭배자들을 무시하고 페롤 령의 교단으로 향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다만···. 제가 한계에 다다라, 자신들을 피해 도망친다고 생각한 악마 숭배자들이 무차별적인 공습을 펼칠 겁니다. 그 과정에서 민간의 피해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럼 안 되겠네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쩌다 악마 숭배자의 흑마법이 민간인을 향하기라도 한다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세르펜스의 빈틈을 만들어내기 위해, 민간인만 골라서 공격하겠죠."

세르펜스가 하다 만 말을 내가 이어받았다. 작은 창 너머로 녀석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님을 우리는. 나와 세르펜스는 알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그 뒤에 올 말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우리 둘만이 알고 있다.

민간의 피해를 막기 위해 인적 드문 길로 향한다. 여기까지는 허용 범위다.

하지만 쫓기는 와중에 타인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 않다.

'지금의 세르펜스는 타락펜스와 다르다. 세르펜스는 사람들의 죽음을 방관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마왕이 깨닫게 된다.

그러고 나면 [성검의 주인]에서 성검 일행에게 그러했듯.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거다.

당장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것도 문제지만, 앞으로가 힘들어진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물론 세르펜스 자신이 아끼는 이가 위험에 빠진다면, 남이야 어찌 되든 지체 없이 무시하겠지만···.'

애초에 그런 상황 자체가 생겨나서는 안 된다.

상황이 거기까지 치달았다면.

이미 수많은 죽음이 우리의 발밑에 깔린 이후일 거다. 그리고 더 많은 핏물이 우리의 발밑에서 흐르겠지.

[성검의 주인]에서.

휴마누스는 수많은 희생을 딛고, 자신을 희생해가며. 몇 번이고 일어섰다.

더는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자신처럼 나라를, 가족을, 연인을 잃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능력의 한계에 봉착하더라도. 처절하게.

휴마누스가 그렇게 발버둥 쳤음에도, 그는 모두를 구해내지 못했다. 구해낼 수 없었던 사람들의 핏물이 그의 발밑에 고였다.

질척하게 그의 발목을 붙들었다.

그 때문에 휴마누스는 항상 괴로워했다. 그러면서도 위로를 바라는 자신의 마음을 질타했다.

그것은 비단 휴마누스뿐만이 아니라, 그의 동료들 또한 마찬가지였을 거다.

'우리 애가 같은 길을 걷게 할 수는 없지!'

곱디고운 융단을 깔아줘도 모자랄 판에 피가 흐르는 길이라니. 절대 안 될 말이다.

붉은 길을 걸어야 한다면 레드 카펫을 밟게 할 거다.

질척거리는 핏물 위가 아니라, 폭신거리는 융단 위를 걷게 해줄 거다.

- 쾅!!

악마 숭배자가 날린 마법이 마차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이게 대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맞은 위치가 영 좋지 않았는지, 세르펜스의 운전으로 커버할 수 없을 만큼 마차가 옆으로 기울었다.

에드나가 재빨리 마법을 펼쳐 마차를 바로 세웠다.

그리고는 다급한 손길로 창문을 열어젖히고, 머리를 내밀었다.

"읍, 우웩···!"

기어이 밀려오는 토기를 참지 못한 에드나가 속 안의 내용물을 게워냈다.

뒤집히려는 마차에서 마법진을 그려낸다는 건, 달리는 자동차에서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고난도의 행위다.

이 정도면 많이 버텼다. 굉장한 인내력이라 아니 말할 수 없다.

웩웩거리는 에드나의 등을 유지스가 토닥였다.

세르펜스는 안쓰러운 그녀를 위해 신성력을 써주지 않았다.

고작 멀미를 안정시키는 데 필요한 신성력조차 아껴야 할 정도로, 신성력이 바닥을 드러냈다···,라는 설정이다.

어차피 주변에 지나는 사람도 없겠다, 세르펜스는 일찌감치 후드를 벗고 있었다. 먼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악숭이에게 얼굴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피로에 찌든 사람을 연기하며, '나는 지금 굉장히 고단하고, 초조하다. 완전히 지쳤다.'라는 걸 악숭이에게 어필하고 있겠지.

초췌한 낯빛을 꾸며내고, 불안한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짓씹고 있을 거다.

그러나 녀석이 아무리 메소드 연기를 펼친다 한들, 진짜 한계에 봉착한 에드나만 할까.

안색이 허옇다 못해 퍼레진 에드나의 낯빛은 위태로웠다. 삶과 죽음, 그 경계선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반대쪽 또 다른 창문을 열었다.

"우웨에엑-!"

"···두 분, 괜찮으신 겁니까?"

나까지 토악질하기 시작하자, 세르펜스가 나와 에드나 둘을 걱정하는 척 물었다.

여기서 '척'은 세르펜스가 나를 걱정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나만 걱정한다는 뜻이다.

"우웩-."

"웨에엑···."

당연한 일이지만, 나와 에드나는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었다. 하나, 그게 곧 괜찮지 않다는 대답이 되었다.

"이제 슬슬···,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차는 한참 전부터 눈밭과 눈발을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니 세르펜스가 출발하겠다 말한 것은, 악숭이 무리를 향해 방향을 틀겠다는 뜻이다.

이견은 없었다.

양 창문에 각각 매달려 웩웩대는 나와 에드나의 등을 두드려주던, 유지스의 손길이 사라졌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분명 활을 꺼내 무장을 점검하고 있으리라.

정령을 불러내지 못하는 환자까지 나서야 할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라는 설정에 충실히 하기 위해서.

이 말인즉슨.

마차에 탄 네 사람 중 두 명은 컨셉질 중이요, 두 명은 토악질 중이라는 뜻이다.

내가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 꽈광-!!

이제껏 공격이 날아올 땐 어느 정도 텀이 있었는데, 세르펜스가 마차의 방향을 틀기 무섭게 공격 마법이 또 날아왔다.

나와 에드나가 창밖에 머리를 내밀고 있던 탓에 세르펜스가 결계를 펼쳐 공격을 막았다.

한 차례 공격을 막아낸 결계가 바로 걷혔다. 결계를 오래 유지할 신성력이 없다는 설정 탓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느 정도 신성력이 남은 거지?'

한계에 다다른 것은 설정이지만, 녀석이 무리한 건 사실이다. 공격이 날아올 때마다 말들이 놀라서 난동을 부리지 않도록 진정시켜야 했다.

마차는 에드나의 마법으로 강화됐다지만, 말이나 세르펜스 본인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은 직접 막아야 했다.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괜찮을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마부석에서 세르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에 신성력을 담은 것도 아닐진대,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여차하면 녀석이 나와 유지스를 양 옆구리에 끼고 도망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심이···.

'안 되잖아?! 그럼 적진에 홀로 남은 에드나는 어떡하라고!'

다른 방향으로 불안감이 생겨났다.

이 와중에도 우리를 향한 공격은 계속해서 쏟아졌다.

세르펜스는 신성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결계를 치는 대신 검을 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활을 등에 멘 유지스가 마부석으로 자리를 옮겨 고삐를 잡았다.

설정값을 모르는 악숭이 눈에는 우리가 한계에 몰렸다고 오해할 만한 모습이다.

"악숭이 놈들은, 우웁! 지치지도··· 않나? 뭔 놈의 마법을 이렇게···, 으웨···."

"괜찮으십니까? 정 힘드시면···."

세르펜스가 걱정스럽다는 목소리로 슬그머니 운을 띄웠다.

버티기 힘들면 치료해 주겠다는 뜻이다.

"아니, 아니. 됐, 읍···어요. 어차···피, 마차가 또 흔들리면···, 으으···."

설정이 아니더라도 신성력은 최대한 아끼는 게 낫다. 치료를 받는다면 악숭이를 물리치고 난 이후여야 한다.

내 거절에 녀석은 나를 치료해 주지는 않았지만, 이 대화 이후로 마차에 마법이 적중하는 일은 없었다.

녀석이 죄다 쳐내고 있는 거겠지.

그것까지 말릴 생각은 없었다.

에드나의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다. 마차의 내구를 강화하는 마법이 깨진다 해도, 다시 걸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그 증거로 마차의 겉면을 감싼 푸른 마력의 빛이 눈에 띄게 희미해졌음에도, 그것을 보수하지 못하고 있다.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힘드시겠지만, 창문은 이제 닫는 게 좋겠습니다."

어차피 더 나올 것도 없고, 있더라도 토할 힘이 없다. 세르펜스의 말에 따라, 나와 에드나는 머리를 거두고 창문을 닫았다.

등받이에 기대며 심호흡을 하는데, 발밑이 꿈틀거렸다.

'아, 맞다. 아직 있었지?'

묶인 채 바닥에 누워 흔들림을 분산시킨 덕일까?

원장 놈은 안색이 다소 좋지 않았으나, 나와 에드나처럼 속을 게워내지는 않았다.

악숭이는 여전히 기절 상태다. 맞고 기절하기를 반복하면서, 깨어나면 맞는다는 걸 몸이 깨달았나 보다.

'교단에 던져주면 알아서 약 주고 병 주고 하겠···지?'

이 악숭이는 이대로 쭉 기절해 있는 편이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 쾅! 쾅! 콰르릉!

상념에 잠길 새도 없이 머리 위로 굉음이 계속해서 울렸다. 세르펜스와 전면전을 벌이기 전에, 녀석의 힘을 최대한 빼놓기 위함일 거다.

마차 위에서 세르펜스가 버티고 서서 지켜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호흡을 고르며 속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아니었으면 겁먹고 오들오들 떨었겠지.

'이 원장 놈처럼.'

발밑이 덜덜 떨리니까, 진정될 속도 진정되지 않는 느낌이다. 나는 신발을 벗고, 맞은편 빈 좌석에 다리를 올렸다.

"이러니까 좀 낫네···."

"세상에···,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마음 편히···으웁!"

내 모습에 에드나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다, 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직도 속이 울렁거리나 보다.

"몸이 편하고, 머리가 진정해야, 속도 가라앉는 법입니다. 에드나 씨도 따라 해 보세요."

"대범한 건지, 겁이 없는 건지···."

"지금 그게 중요해요? 속이 진정돼야 악숭이와 싸울 때 마법을 쓸 거 아닙니까?"

"···또 결계를 치시지 않을까요?"

에드나가 그런 의문을 갖는 것도 이해한다. 사실 나도 그게 매우 걱정이다.

그렇기에.

"그거야 에드나 씨의 실력을 보기 전이고. 녀석이 혼자 다 처리하는 나쁜 버릇이 있긴 한데,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머리도 있거든요."

세르펜스더러 들으라고, 일부러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스텝이 엉켰는지 머리 위에서 작게 발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찔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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