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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회개해주세요!-351화 (351/925)

351회

61. 공작님과 잠깐의 휴식 (3)

내가 먹는 것에 집중하자, 대화가 뚝 끊겼다.

이따금 에일리히가 세르펜스에게 그간의 일을 질문했으나, 세르펜스는 사무적인 어투로 보고하듯 답변했을 뿐이다.

그렇게 어색한 티타임이 끝나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에일리히가 에드나를 궁금해했기 때문에, 아예 윈스톤까지 불러서 다 같이 먹기로 했다.

잘된 일이다.

처음이 있으면 두 번째가 존재하고, 그게 반복되면 일상이 되는 법이다. 앞으로 얼렁뚱땅 불러서 매일 다 같이 먹어야겠다.

"와···, 고용주님과 엄청 닮으셨네요?"

에일리히를 본 에드나가 입을 손으로 가리며 감탄했다.

작은 목소리였으나 모두에게 들렸고, 에일리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요리가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단연코 눈길을 사로잡는 건, 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거대한 가금류 요리였다.

그걸 본 에드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 세상에! 특별한 날도 아닌 평일에 칠면조 구이를 먹다니!"

"에드나 씨, 진정해요. 멀리 나갔던 가주가 오랜만에 돌아온 날이잖아요. 오늘이 특별한 날이지, 또 언제가 특별한 날이겠어요?"

"아, 그건 그렇네요."

"하지만 평소에도 칠면조 구이가 종종 식탁에 올라오기도 합니다."

"세상에, 특별한 날도 아닌데 칠면조 구이를 먹다니!"

잠깐 진정을 되찾았던 에드나가 다시금 경탄했다.

본의 아니게 그녀를 놀린 꼴이 되었다. 미안한 마음에 칠면조 다리 하나를 잘라서, 그녀의 앞 접시에 올려주었다.

"역시 귀족 가문이라 그런지, 식탁이 호화찬란하네요."

에드나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데 혼자 호들갑 떨었던 게 민망했는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딱히 그런 것도 아닙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세르펜스는 수프랑 빵, 과일밖에 안 먹었어요. 그딴 것만 먹고 어떻게 저만큼 자라고, 근육까지 만들었는지···.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입니다."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하자, 에드나가 식탁 저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천천히 둘러보았다.

"지금 식탁을 보면 상상이 안 가네요."

"이게 다 제 노력의 산물입니다."

"···노력을 너무 과하게 하신 거 아닌가요?"

"자신의 역량으로 감당 못 할 돈을 쓰는 게 사치지, 부자가 돈을 쓰는 건 사치가 아닙니다.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거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에드나가 기가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남의 돈으로, 남의 집 식탁에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따지는 듯한 눈빛이다.

'하긴, 에드나는 자세한 사정을 모르니까.'

내가 먹고 싶은 요리를 한가득 상에 올리고 변명을 늘어놓았다고 오해할 만도 했다.

에드나가 공작저에서 생활하다 보면 별의별 얘기는 다 주워듣게 될 거다. 그중에서 식습관 얘기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나중에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의문을 품게 되느니, 미리미리 설명해 두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제가 오기 전까지 세르펜스는 항상 혼자 식사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입맛도 없고, 먹는 재미도 모르고 산 겁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먹기 위해 사는 사람도 존재하는 마당에, 에너지 섭취 목적으로만 음식을 소비한다니! 저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시온 씨는 먹는 걸 참 좋아하시나 봐요?"

너무 열변을 토한 탓에, 에드나가 엉뚱한 것에 초점을 맞춰버렸다.

말을 할수록 이상하게 꼬여가는 기분이 든다.

이쯤에서 대충 마무리하자.

"그러니까 앞으로도 오늘처럼 다 같이 먹읍시다."

"다 같이라니···. 저도요?"

에드나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깜짝 놀란 듯한 반응으로 봐서, 오늘만 같이 먹는 줄 알았나 보다.

"당연하죠. 오늘처럼이라고 했잖아요? 아, 물론 윈스톤도 포함입니다."

내 말에 조용히 식사 중이던 윈스톤이 나를 쳐다보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맞은 표정이다.

"왜요?"

"···아니오."

윈스톤은 고개를 저어 보인 후, 잠시 중단했던 식사를 이어나갔다.

나는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면면을 살피며, 반대 의견을 제시할 사람은 지금 말하라는 시선을 보냈다.

그때 유지스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래서 에드나 님의 환영회는 언제 하나요?"

"저녁 먹고 바로 하죠!"

내 대답을 들은 유지스가 만족한 표정으로 손을 내렸다.

칵테일 실력을 뽐낼 생각에 얼굴이 활짝 핀 유지스와 달리, 세르펜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시온, 설마 술을 마실 생각인가?"

"환영회에 술이 빠질 수야 없죠!"

"절대 안 된다."

세르펜스가 단호한 표정으로 딱 잘라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게 알코올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굳은 심지가 엿보였다.

어쩐지 기운이 쭉 빠졌다.

"유지스가 타 준 칵테일···. 진짜 맛있는데···."

내가 뚱하게 중얼거리자, 유지스도 덩달아 시무룩한 표정으로 세르펜스를 쳐다보았다.

세르펜스의 어깨가 미세하게 움찔했다.

"지나치게 취하지만 않는다면야···."

양쪽에서 보내는 눈빛 공격에 결국 세르펜스는 백기를 들어 올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젠 제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파악했으니까, 전처럼 세르펜스에게 주정 부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흐음···, 한 번 믿어보겠다."

믿어보겠다는 말과 다르게, 나를 바라보는 세르펜스의 두 눈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이번에도 만취하면 영원히 알코올과 작별하게 생겼다.

'진짜로 정신 바짝 차려야겠네.'

공복은 알코올 흡수 속도를 높이는 지름길이다.

나는 수다를 줄이고 식사에 집중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어도, 침묵이 흐르는 일은 없었다.

"이 새싹 샐러드, 참 맛있네요!"

"드레싱과 잘 버무려 드시면 훨씬 더 맛있어요!"

"권해주신 건 감사하지만, 샐러드에 드레싱 뿌리는 건 제 취향이 아니라서요."

"그러시다면야 어쩔 수 없죠."

에드나의 답변에 유지스가 실망한 표정으로, 유자 드레싱이 듬뿍 묻은 채소를 입에 넣었다.

시간이 흐르고 상 위에 빈 접시도 하나둘 늘어났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우리는 자리를 옮길 필요도 없이 바로 환영회를 시작했다.

식탁 위에 술판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에일리히도 함께 했으면 좋았겠지만, 젊은 사람들 노는 데 끼어들기 미안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이 안 그래도 됐는데···.'

푸짐하고 기름진 음식들은 치워지고, 토마토 카프리제와 같은 가벼운 안주류 음식과 과일 등이 식탁 위에 올랐다.

유지스가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 놓았던 온갖 종류의 술들을 꺼내놓았다.

그 모습을 보며 에드나가 혀를 내둘렀다.

"와, 유지스 님은 술을 굉장히 좋아하시나 봐요?"

"아니요, 저는 술을 먹이는 걸 좋아해요."

유지스가 싱그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이름 모를 술들을 조합한 결과물을 세르펜스에게 내밀었다.

그 탓에 세르펜스에게 술을 먹이는 걸 좋아한다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술잔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졌고, 심지어 그 종류마저도 가지각색이었다.

그렇게 유지스는 그냥 칵테일 제조가 취미인 엘프가 되었다.

"베네볼렌 씨, 안내는 잘 받으셨습니까?"

어쩐 일로 세르펜스가 먼저 에드나에게 말을 건넸다.

물어볼 거면 진작에 물어봤어야 할 질문이지만, 이제라도 물어본 게 어디랴.

환영회까지 하게 된 마당에, 고용주로서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 건 아니올시다 싶었나 보다.

"네, 집사님께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어요."

"연구 시설은 어떻습니까? 편지로 집사에게 지시를 내려놓긴 했으나, 제가 직접 신경 쓸 수가 없어서···. 마음에 드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들다마다요! 몇몇 기구는 마탑에서도 미리 대여를 신청하고, 한참 후에나 빌려 쓸 수 있는 건데, 이걸 다 혼자 쓸 수 있다니! 저에게 너무 과분한 게 아닐까 걱정되기도 하고···. 정말 감사드려요!!"

마치 언제 물어봐 줄까 기다렸다는 듯, 에드나가 다다다 말을 쏟아냈다.

"과분하다니, 절대 아닙니다. 베네볼렌 씨의 가치를 보고 투자한 것이니만큼, 스스로에게 자신을 가져 주십시오."

세르펜스가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작 말하는 세르펜스의 자신감이 결여되었다는 것만 제외하면 참 좋은 얘기다.

"마법 관련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물품이 있다면 부담 갖지 마시고 편히 말씀해 주십시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때로는 부담 갖지 말라는 말이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때가 바로 지금이다.

에드나가 속이 탄다는 듯, 자신의 앞에 놓인 연보랏빛 칵테일을 꼴깍꼴깍 마셨다.

이대로 뒀다가는 나중에 정말 필요한 게 생겨도 미안해서 말을 못 꺼낼 것 같다.

"정말로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세르펜스는 제가 출근하던 첫날, 좋아하는 차가 있다면 따로 준비해 주겠다는 소리까지 했던 녀석입니다."

"첫날이 아니라 둘째 날이다."

세르펜스가 갑자기 끼어들며, 아무래도 상관없는 내용을 굳이 정정했다.

어이가 없어서 시선이 절로 세르펜스를 향했다. 녀석은 자기야말로 더 어이가 없다고 말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마주 봤다.

"···봤죠? 세르펜스가 워낙에 섬세해서 말이죠. 원래 복지가 끝내주기로 유명하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 필요한 게 생기면 얼마든지 말씀하셔도 돼요."

"저, 그럼···."

내 말에 용기를 얻었는지, 에드나가 무언가 결심했다는 듯 입을 뗐다.

"저는 커피로 부탁드려요···!"

무슨 대단한 부탁이라도 하는 줄 알았더니 그냥 음료 주문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전하려던 말은 자유롭게 음료를 선택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부담감을 덜어도 된다는 뜻이었다.

'그, 그래···. 누군가에겐 카페인이 무엇보다 소중할 수도 있지.'

아무래도 에드나는 지독한 카페인 중독자였나 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작은 마티니 잔에 담긴 술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잔 바닥에 가라앉아있던 올리브 한 알도 데굴데굴 굴러 입안에 쏙 들어왔다.

* * *

세르펜스의 우려와는 달리, 나는 조금 비틀거리기만 했을 뿐. 멀쩡하게 내 발로 내 방까지 걸어왔다.

약간 알딸딸했지만 정신은 또렷했기에, 세르펜스의 입에 안줏거리를 쑤셔 넣지도 않았다.

"봐요! 저는 한다면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욕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외쳤다.

혼자 뮤지컬 놀이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씻는 동안 내 방에 숨어들었을 침입자에게 하는 말이다.

프뤼네 왕국에 다녀오는 동안 제자리를 찾았던 탁자와 의자를 구석에 밀어놓고, 침대를 꺼내 이부자리를 정리 중이던 세르펜스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이 몹시나 아니꼽다는 눈빛으로 나를 흘겨봤다.

"그럼 전에는 일부러 안 했다는 뜻인가?"

어리석은 물음이다.

내가 황실 연회에서 와인을 조금씩 홀짝거리는 걸, 몇 번이나 봤으면서 저런 질문을 하다니.

'와인이든 칵테일이든, 결국 다 같은 알코올이거늘!'

매번 술 마실 때마다 개가 된다면 알코올 중독을 경계해야 한다.

유지스의 칵테일이 워낙 맛있기도 하고, 분위기에 취해서 되는대로 마셨을 뿐.

마음먹으면 조절 못 할 이유가 없다.

"저는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

세르펜스가 괜한 걸 물었다는 표정으로 침대에 기어들어 갔다.

하지만 나는 바로 잘 생각이 없었기에, 품 안에서 와인병을 꺼냈다.

"짠! 어차피 취한 거, 좀 더 마시다 잘래요?"

"···그게 왜 거기서 나오는 거지?"

"본관에서 나올 때, 제온에게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방금 받았죠."

내가 욕실의 비밀 통로를 가리키며 말하자, 세르펜스가 조용히 이마를 짚었다.

"어차피 둘 뿐이잖아요. 말실수를 해도 눈치 볼 사람도 없으니, 괜찮지 않아요?"

"알코올 중독인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누가 들으면 내가 매일 술을 퍼마신 줄 알겠다.

"그냥 터놓고 얘기나 하자는 뜻입니다."

"으음···."

"싫어요?"

세르펜스가 고민하는 듯하다가, 결국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좋아요! 그럼 침대 치우고 다시 테이블을 원위치···."

"······."

"···로 옮기는 건 제가 하겠습니다. 그냥 침대만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주세요."

이럴 줄 알았으면 세르펜스에게 미리 말해 둘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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