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94화 (394/925)

394회

65. 공작님과 주교님 (9)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하는 모습이 못내 안타깝다. 하지만 녀석이 원하는 대로 해 줄 수는 없다.

아이의 질문을 무시하는 건 매우 좋지 못한 행동이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설명해 주어야 하는 건 아니다. 그건 그거대로 바람직하지 않다.

"안 됩니다. 세르펜스도 스스로 생각할 줄 알아야죠. 매번 제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잖아요?"

나는 심란한 마음을 달래며 애써 단호하게 말했다.

그게 또 서러웠는지 세르펜스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좀 자랐나 했더니, 왜 갈수록 어려지는 것 같지?'

성장 순서가 완전히 뒤죽박죽이다.

학교에서 어린이의 발달 과정은 배웠어도 어른이의 발달 과정은 배우지 못했다. 그 탓에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응애는 시키지 말았어야 했나? 아니, 그런데 얘가 자꾸 아기처럼 굴잖아! 내가 응애를 시키기 전부터, 얘는 이미 응애였다고!'

이대로 세르펜스가 울도록 계속 내버려 두자니 가슴이 아프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덮어놓은 채 우쭈쭈 해 줄 수도 없다.

'이제 와서 어른 대하듯 할 수도 없고···.'

세르펜스는 애정에 목말랐다. 심한 갈증에 시달리면서도 그게 갈증인 줄도 몰랐다.

탈수증으로 쓰러진 사람 입가에 물 몇 방울 떨어뜨리고 물통을 빼앗아가도 유분수지.

남들은 못해도 10년 이상 어리광 부리며 애정과 관심을 받고 자랐다.

반면에 세르펜스는 25년 가까이 인내하고 나서야, 겨우 어리광을 부려도 괜찮다고 허락받았다.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 견제하고 경계한 끝에, 이제 막 본격적으로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사실을 뻔히 알면서,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감질나게 체험판만 살짝 경험시켜주고 뺏어가는 건 너무 가혹하다.

'반감 살 행동을 왜 사서 하느냐는 질문의 답도 아직 못 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다.

내 이미지를 챙기자고 세르펜스의 계략을 까발릴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면, 녀석은 분명 상처받을 거다.

'그런데 정말로 몰랐을까? 휴마누스도 아니고, 세르펜스인데? 얘가 눈치 못 챘을 리가 없는데?'

불현듯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자신을 아끼는 마음에 잘못을 알면서도 감싸주고 있다는 걸, 내게서 확인받고 싶어서. 다 알면서도 그런 질문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설마설마하며, 녀석에게 질문하기 위해 입을 여는 찰나.

- 우웅, 우우웅···!

느닷없이 벽을 감싼 마력이 웅웅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훌쩍훌쩍 울면서도 손을 들어올려 문을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문이 덜걱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 탓에 문을 포함한 벽면을 덮어 싼 마력도 함께 흔들렸나 보다.

그런데도 노크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게 신기할 노릇이다.

'에드나가 펼친 방음 마법은 내부의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으면서, 외부의 소리는 전부 들려왔는데···.'

융통성이 발휘되지 않는 스크롤의 한계인가 보다. 아니면 솔레르티아와 에드나의 마법 실력 차이일지도.

이유가 뭐든 간에, 앞으로는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곳에서는 방음 스크롤을 사용하지 말아야겠다.

세르펜스가 기척을 감지할 수 있더라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문 열어도 돼요?"

나는 울고 있는 세르펜스를 내려다보며 슬쩍 질문했다.

녀석이 울음을 멈추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가만히 뒀다가는 문이 됐건, 방음막이 됐건 뭐든 하나 부서질 것 같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체 얼마나 힘이 남아돌면 노크를 저렇게 힘차게 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흐으으윽···!"

세르펜스가 여전히 흐느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녀석은 울음을 멈출 생각도, 창문 너머로 도망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진짜 열어도 되는 거 맞나?'

어느새 웅웅거리던 소음이 멎었다.

찾아온 손님이 그냥 돌아갔는지, 자신의 방문을 충분히 알렸다고 생각하여 기다리고 있는 건지.

어느 쪽인지는 문을 열어봐야 알 것 같다.

'그 전에 세르펜스부터 어떻게 처리하자. 급한 용건이면 기다려 주겠지!'

나는 침대 위에 놓인 베개를 세르펜스의 품에 안겨줬다. 녀석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며, 옆으로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내가 그의 신발을 벗겨주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다리까지 침대에 올렸다.

이불까지 덮어주려는데 하필이면 이불이 세르펜스의 밑에 깔려 있었다. 비키라고 살살 흔들어봐도 꼼짝도 안 한다.

아무리 봐도 자신을 보살펴 달라며 생떼를 부리는 게 분명하다.

어쩔 수 없이 세르펜스를 굴려서 이불로 돌돌 말아 놓고, 방문을 열었다. 구릿빛 피부의 거한이 문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 윈스톤이 제 방엔 웬일이래요?"

세르펜스가 경계하지 않을 만한 방문객이라면 유지스와 윈스톤 뿐이었기에, 그리 놀랍지는 않다.

다만 윈스톤이 내 방에 찾아올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서, 그게 조금 의외다.

"바스툴 왕국의 왕자 저하와 대화를 나눴는데,"

"흑, 으흐흑···!"

"선배에 관해서 묻길래···"

"훌쩍, 훌쩍!"

"내일 출발 하기 전에 얘기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우우우···!"

"······."

윈스톤이 무언가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닫아버렸다.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는 윈스톤의 표정이 무척이나 차갑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세르펜스의 울음소리가 차올랐다.

"···또 주군을 울리신 거요?"

"또라뇨! 윈스톤 앞에서 울린 건, 암흑가에서 한 번뿐···. 아! 기차에서 장점 말하게 시키면서 살짝 울렸던가? 하지만 그 정도면 미수 아닌가?"

"으으읏···."

"대체 주군을 얼마나 자주 울렸길래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거요?"

"아직 열 번은 넘지 않았···을 겁니다! 아마도?"

"흐아아···."

자꾸만 울음소리가 신경 쓰여,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윈스톤도 궁금했는지 문 안쪽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세르펜스는 튀김옷 입힌 새우 같은 자세로 꾸물꾸물 몸부림치며,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과시하고 있었다.

"어째서 주군을 이불로 말아 놓았소?"

"이불 밖은 위험하니까?"

"으브으흡!"

"적어도 지금은 이불 안이 더 위험한 것 같소."

"···그러게요."

김밥펜스를 말 때, 베개는 넣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잘못을 반성하며 세르펜스를 풀어 주었다.

내가 세르펜스를 굴리는 모습을 본 윈스톤이 '허···!' 하고 탄식을 토했다.

"일단 윈스톤도 들어와서 문 닫아요."

"정말 들어가도 되는 거요?"

"할 말 있어서 온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오만···."

윈스톤이 꺼림칙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침대 위에 널브러진 채 베개를 꼭 끌어안고 우는 세르펜스를 바라보며,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절절맸다.

"···달래 드려야 하는 거 아니오?"

"지금 세르펜스는 떼쓰고 있을 뿐입니다. 어디 누가 이기나 겨뤄보자 하고, 제게 시위하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봐서 아는데, 저렇게 울어도 두 시간은 거뜬하더라고요."

"설마 두 시간 동안 울도록 그냥 내버려뒀던 거요?"

어째서일까?

윈스톤의 말을 듣고 났더니, 내가 세상천지에 둘도 없을 쓰레기가 된 것만 같다.

"그, 그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몇 분 울게 놔두면, 지쳐서 잠들 줄 알았죠!"

"선배가 이렇게 매정한 사람인 줄은 몰랐소."

"윈스톤이 애를 안 키워봤으니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겁니다. 안 그래도 애들 체력 따라가기가 쉽지 않은데, 생떼 부리는 걸 일일이 받아주면 보호자가 지쳐서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되면 그 영향이 어디로 향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다 아이에게로 갑니다, 아이에게로! 보호자는 아이만 챙겨서는 안 됩니다! 본인도 잘 챙겨야지!"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소."

내가 선배로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건만. 윈스톤은 여전히 아리송한 눈치다.

이렇게 육아를 몰라서야.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배워 두지 않으면, 좋은 아버지가 되긴 글렀다.

"나중에 윈스톤이 결혼해서 애가 생기게 되면, '아! 역시 시온 선배는 대단하오! 어쩜 이렇게 어질고 현명할 데가! 이래서 그때 그런 말씀을 하셨구나!' 하고 감탄하게 될 겁니다."

"···그런 건 아직 모르겠고, 선배가 주군을 완벽하게 어린아이로 본다는 건 잘 알겠소."

"아 참, 그렇다고 애를 그냥 방치하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세르펜스니까 두 시간을 울고도 팔팔한 거지, 다른 아이 같으면 큰일 납니다!"

"내 말은 듣고 있지도 않구려."

그렇게 말하는 윈스톤 또한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이 와중에도 세르펜스가 훌쩍거리는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고, 그 울음소리가 점점 BGM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집단 독백이 따로 없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세르펜스의 침대에 걸터앉아, 녀석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한탄했다.

"윈스톤도 거기 앉아요."

"그냥 서 있겠소."

내가 내 침대를 가리키며 자리를 권했으나 윈스톤은 칼같이 거절했다.

너무 단호한 거절에 다시 권하기도 민망해서, 그러고 싶으면 그러라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그래서 지금까지 베일과 대화하다 온 겁니까?"

"그렇···소."

"세르펜스는 신경 쓰지 마세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소?"

"어린애들은 원래 자주 웁니다. 그때마다 쩔쩔매면···."

"그 얘기는 이제 됐소."

윈스톤이 내 말을 끊으며 딱 잘라 말했다.

그렇게 안 봤는데, 윈스톤도 은근히 매정한 구석이 있다.

'우는 남의 아이를 달래라고 말하는 건 쉽지! 저래놓고 직접 업어서 달래라고 시키면, 곤란해하며 내뺄 거면서!'

하지만 윈스톤보다 세르펜스가 먼저 도망칠 것 같아서,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 대신 검지를 세워 세르펜스를 콕콕 찔렀다.

"세르펜스도 이제 그만 울고 일어나세요. 윈스톤이 대화에 집중이 안 된다잖아요?"

"그,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않았소!"

윈스톤이 화들짝 놀라며 솥뚜껑처럼 커다란 손바닥을 붕붕 내저었다.

그저 내 말을 부정하고 있을 뿐인데 무척이나 위협적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녀석, 지금 윈스톤이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하고 울음도 다 멎었는데, 뒤늦게 부끄러워져서 계속 우는 소리를 내는 것뿐이니까. 봐요, 여기 귓바퀴 빨개진 거."

"흐···윽···."

세르펜스가 어깨를 움찔 떨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얼굴은 여전히 베개에 파묻은 채였다.

"정말 주군을 위한다면 세르펜스는 이제 그만 보고, 베일이랑 무슨 얘기 했는지나 말씀해 주세요."

"어째서 주군이 선배의 무례한 행동을 그냥 넘어가는지 묻더이다."

내가 세르펜스를 끌고 가는 걸 보고도 얌전히 물러나는 게 어째 이상하더라니.

먼저 나와 세르펜스의 관계를 파악한 뒤, 세르펜스에게서 나를 떼어낼 계획을 세울 작정이었나 보다.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 대충 뭐, 그런 느낌으로.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요?"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어서, '주군의 개인적인 일이라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시온 선배는 주군의 은인'이라고 둘러댔소."

그 말속에서 '선배는 주군을 어린애 취급 중이며, 주군은 그것을 즐기는 듯하다.'라고 말할 수 없었던 윈스톤의 고뇌가 전해졌다.

그래도 내가 세르펜스의 은인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록 유지스만큼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해도, 윈스톤도 우리의 관계를 어렴풋이나마 눈치챈 모양이다.

"어째서 윈스톤이 저를 선배라고 부르는지는 안 묻고요?"

"물었소. 하지만 그자가 선배에게 적개심을 드러내는 듯해서, 상관하지 말라고 답하였소."

철벽이 장난 아니다.

윈스톤의 부모님은 그의 이름을 '윈아이언'이라 지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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