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03화 (403/925)

403회

65. 공작님과 주교님 (18)

불쌍한 직원을 보낸 후. 나는 안마하고 있다기보다, 그냥 어깨에 얹혀진 것에 가까운 세르펜스의 손을 톡톡 쳤다.

"거 시늉만 내지 말고, 팍팍 좀 주물러 봐요! 안마를 처음 해 본 사람처럼 왜 이래요?"

"처음 해 봅니다."

신관펜스가 쌀쌀맞은 목소리를 꾸며내며 말했다.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얼토당토아니한 소리를 했는지 깨달았다.

제국의 공작인 세르펜스에게 대체 누가 안마해 달라는 얘기를 꺼내겠는가.

심지어 가족 간의 유대감도 없었으니. 나처럼 아버지의 등을 밟아드렸던 어린 시절의 추억도 당연히 없으리라.

짠한 마음이 들었으나, 지금의 세르펜스에게 내 등을 내어 줄 수는 없다.

세르펜스가 작고 가벼웠다면. 혹은 내가 윈스톤만큼이라도 건장했다면, 마음껏 등을 밟게 해 줬을 텐데.

"괜찮습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이니까. 자, 자! 무서워하지 말고, 좀 더 세게 해 봅시다."

"이 정도면 됩니까?"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는 듯했던 세르펜스의 손가락에, 키보드 자판을 누를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실렸다.

녀석이 나를 과보호한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그러고 보면 세르펜스와 대련을 할 때도 좀 그렇지?'

세르펜스의 검은 단 한 번도 내 몸에 닿은 적이 없었다. 진검도 가검도 아닌 목검을 쓰면서, 항상 내 몸에 닿기 직전에 멈췄다.

다쳤다고 해 봐야, 공격을 피한다고 나 혼자 쇼하다가 바닥을 굴러 멍든 게 전부다.

처음에는 내가 검술에 흥미를 붙일 수 있게 하느라 그런 줄 알았다. 아니, 분명 그랬을 거다.

하지만 검술을 배운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윈스톤에게 수련인지 노는 건지 분간이 안 된다는 소리를 듣고 난 후에도.

수련의 강도와 시간, 난이도의 변화만 있었을 뿐이다.

'나더러 실력을 키우라 할 땐 언제고···. 물러도 너무 무르잖아?'

그나마 윈스톤이 나를 빡세게 굴린다지만, 그가 봐주는 건 체력 단련과 근력 운동이 전부다.

대련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세르펜스가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맞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위기감이 없으니 내가 느끼기에도 설렁설렁하게 된다.

어느 정도냐 하면 어린 시절 친구와 플라스틱 검을 부딪치며 놀았을 때, 더욱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았던 것 같다.

이 기회에 내 육체의 내구성이 어느 정도인지. 내가 손대면 톡 하고 터지는 봉선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녀석에게 알려줘야겠다.

어쩌면 지금 이 안마가 세르펜스의 과보호를. 그리고 분리불안을 극복하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중대한 일이었기에. 나는 각오를 다지며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좀 더 세게!"

"여기서 더 말입니까?"

세르펜스의 말꼬리가 평소보다 높이 올라갔다. 얼굴을 보지 않았어도 녀석이 어떤 표정을 그렸을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신관펜스 설정에 맞춰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면서도. 미미하게 커진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테다.

"어허! 어른이 하는 말에 토 다는 거 아닙니다, 막내 신관님."

"죄송합니다."

세르펜스의 손가락에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정도의 힘이 실렸다.

어린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주물럭대는 수준에서 그쳤지만, 슬슬 안마를 받는다는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저기, 그런데 그거 계속하시는 거예요? 직원이라면 방금 나갔는데요."

내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어깨를 주무르는 세르펜스를 바라보며, 에드나가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 나와 세르펜스의 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현재 세르펜스는 나에게 효를 행하는 중이었다. 그와 동시에 내게 용서를 빌고, 기분을 풀라며 재롱부리는 중이기도 했다.

그러니 안마를 그만하라고 하면, 내가 아니라 세르펜스가 거절할 거다.

에드나의 물음에 세르펜스가 침묵을 지키는 것이 그 증거다.

"식사 가지러 갔잖아요. 다시 올 때까진 이러고 있어야죠."

"요리까지 해서 내오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

"아, 맞다! 답답할 테니까, 작은 성기사님께 잠깐 나와 있으라고 할까요?"

"거기에 계시는 편이 덜 답답해하실 것 같으니까, 그분은 계속 욕실에 두기로 해요···."

에드나가 복잡미묘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었으므로, 그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어쨌든 이 정도로는 제대로 근육이 안 풀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운동한 후라 몸이 찌뿌둥했는데, 이러다 내일 근육통 때문에 앓아눕겠습니다!"

"하지만···."

내 채근에도 세르펜스가 우물쭈물 말끝을 흐렸다.

신관펜스 설정에 맞지 않으니,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도 저런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성검과 접촉했던 날. 내 목을 졸랐을 때의 기억을 더듬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시···, 주교님은 안마에 무슨 한이라도 맺혔대요?"

에드나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유지스에게 질문했다.

그냥 실수로 '시온'이라는 이름을 부르려다가 말을 바꾼 것뿐이겠지만, 어쩐지 욕을 하려다 만 것처럼 느껴졌다.

이래서 평소 언행을 조심해야 하나 보다.

"언뜻 보기엔 이상할지 몰라도, 알고 보면 저게 다 프레이 님을 위한 행동이랍니다. 그러니 우리는 조용히 지켜보도록 해요."

유지스는 여전히 후드를 푹 눌러쓴 채였다.

그렇기에 표정은 확인할 수 없었으나, 목소리에서 옅은 웃음기가 묻어났다.

여유로움이 넘치는 유지스의 말을 듣고 에드나는 더욱 혼란스러워했다.

"저게 프레이 님을 위한 거라고요? 어르신들에게 귀염받는 것 외에,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다고···."

에드나가 허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런 에드나를 바라보며, 윈스톤이 동병상련을 느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에드나의 발언으로 인해, 세르펜스가 안마를 배워야 할 이유가 생겨나 버렸다.

내 어깨를 주무르는 세르펜스의 손동작이 미세하게 빨라졌다. 의욕이 넘치나 보다.

"아프면 제가 멈추라고 할 테니까, 천천히 단계적으로 손아귀에 힘을 더해 보세요."

"이렇게 하면 됩니까?"

"좀 더요. 더 세게···. 더, 더···, 아! 좋아요, 제가 바라던 세기가 바로 이겁니다!"

"제가 잘하고 있습니까?"

"그럼요! 그런데 그냥 꾹 누르지 말고, 살짝 문지르듯 근막을 풀어주시면 더···, 어흐~."

조언을 얹기 무섭게 세르펜스가 바로 흡수하여 적용했다. 손 위치를 옮기라는 지시도 내리지 않았는데, 승모근뿐만이 아니라 목덜미까지 이쪽저쪽 열심히 주물렀다.

과연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아는 천재답게, 배우는 속도가 남다르다.

녀석이 꾹꾹 누를 때마다 시원한 자극이 찌릿찌릿 전해졌다. 손길이 지나간 자리에는 여운이 남아, 어딘지 모르게 간질간질했다.

고양이의 꾹꾹이를 받는 집사도 지금의 나만큼 흐뭇하고 만족스럽지는 못할 거다.

"아으~,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피로가 싹 풀리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운동하느라 힘이 들어갔던 근육의 피로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쌓였던 정신적 피로도 풀리는 듯하다.

"제가 도움되고 있습니까?"

나른하게 풀어지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데, 세르펜스가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은근하게 물어왔다.

어쩐지 용돈이라도 쥐여 주어야 할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자, 슬금슬금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그래. 고된 일을 마치고 샤워까지 하고 나와서, 자식에게 안마를 받으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이거야말로 힐링이고, 행복이지!'

따지고 보면 내 스트레스의 원인도 세르펜스였으니, 병 주고 약 주는 셈이지만.

원래 자식은 부모의 속을 태우면서 자라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부모의 속을 치유하는 것 또한 자식이라 했다.

그 말에 틀린 점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요, 막내 신관님은 언제나 제게 도움이 됐습니다."

"흠, 흠."

머리 위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세르펜스가 뿌듯한 마음에 절로 피어나는 웃음을 참아내는 과정에서 새어 나온 소리다.

이 와중에도 어깨를 주무르는 손아귀 힘은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내가 느긋하게 안마를 받는 동안, 에드나와 유지스는 사이좋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무리 주교님께서 '그거'라도 그렇지, 저렇게까지 하다니···. 프레이 님은 신앙심이 참 남다르신가 봐요."

"그러고 보니 레반다 님께서는 두 분이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되었는지, 아직 모르시죠?"

"어쩌고 자시고 그냥 면접을 봐서···. 아 참! 저래 보여도 주교님께서는 '그거'니까, 평범하게 만나지는 않았겠네요."

"그렇죠."

에드나가 말하는 '그거'란 신의 사자를 일컫는 걸 테다.

고작 안마하는 걸 보고, 신앙심이 남다르다고 하다니. 교황이 내게 하는 꼴을 보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졌다.

물론 궁금하기만 할 뿐, 보고 싶지는 않다.

"레반다 님께서도 저희와 한 배를 탔으니, 어둠을 걷어내는 한 줄기의 빛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들으실 자격이 있지요. 하지만 지금은 빛에 속하지 아니한 분께서 함께하시니, 나중으로 미루는 게 좋겠어요."

유지스가 이단 심문관 복장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빛을 운운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광신도를 연상해 버렸다.

얼핏 들으면 몹시 의미심장하게 들렸으나 유지스의 말을 풀이해 보면 별거 없다.

에드나도 이제 일루미나티의 멤버가 되었으니까. 지금 말고 베일이 없을 때, 유지스가 지어낸 일루미나티의 창립 설화를 들려주겠다는 얘기였다.

"빛에 속하지 아니했다니···, 설마 악마 숭배자가 숨어든 건가요?!"

"아니에요, 그냥 일루미나티 단원이 아닌 분이 계신다는 소리였어요!"

유지스의 말을 단단히 오해한 에드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에드나를 말리기 위해 유지스가 황급히 따라 일어서며, 스태프를 꺼내려는 에드나의 팔을 붙들었다.

아직 음식이 나오기 전이라 다행이다.

나는 살짝 손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저희들 전원이 일루미나티라는 건, 작은 성기사님에게 아직 얘기 안 했습니다. 우리는 그냥 공작님을 따라온 수행원이라는 암묵적인 설정이 있었어요!"

"그랬나요?! 당연히 진작 들키···, 말씀하셨을 줄 알았는데···.  어쩐지, 그래서 렉스 님께서···."

유지스가 에드나를 자리에 앉히며 혼자 무어라 중얼거렸다.

어째서 당연히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따지기 전에 짚고 넘어갈 것이 있었다.

"그런데 렉스가 누구였죠?"

"저분입니다."

내 물음에 윈스톤이 어딘가를 삿대질하며 대답했다.

그곳에는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베일이 있었다.

엉겁결에 눈이 마주쳤는데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들고 있던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랬더니 쿵 하고 문이 닫혔다.

"······."

우리는 눈빛을 교환하며, 음식이 올 때까지 침묵을 지키기로 무언의 약속을 했다.

이 난리가 벌어졌는데도 세르펜스의 꾹꾹이는 계속 이어졌다. 모처럼 내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아주 즐거운가 보다.

어째 안마를 받는 나보다, 하는 세르펜스가 더 안정을 얻은 것 같다.

잠시 후 직원이 음식을 가지고 들어왔고, 그제야 세르펜스가 내 어깨에서 손을 거뒀다.

"크으! 가뿐한 건 신성력을 못 따라가지만, 안마를 받을 때의 그 노곤하면서도 시원한 이 느낌은 정말이지~! 이래서 제가 안마를 못 끊습니다! 그나저나 우리 막내 신관님은 손끝이 야무진 게, 마음에 쏙 듭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나는 괜스레 어깨를 빙빙 돌리면서 세르펜스의 수고를 치하해 주었다.

세르펜스가 애써 도도한 표정을 꾸며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예, 앞으로도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대체 뭘 정진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신관펜스는 도도하고 시크하면서도, 승진을 향한 어마어마한 야망을 품었다는 설정인가 보다.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새침한 모습으로 꼰대 주교에게 아부를 떨 리가 없다.

나는 꼰대답게 아부에 좋아 죽는 모습을 보여 주기로 마음먹었다.

"아이고~, 우리 막내 신관님을 보면 교단의 장래가 참으로 밝습니다! 그에 비해 작은 성기사님은···, 쯔쯧. 우리 막내 신관님처럼 고분고분하면 좀 좋아?! 큰 성기사님도 그렇게 생각하지요?"

"네. 렉스 님은 정신적으로 더 단련되어야 합니다."

내가 기습적으로 던진 애드립을 윈스톤이 덤덤하고 자연스럽게 받아쳤다.

음식을 가져온 직원이 윈스톤을 엄청난 아첨꾼 보듯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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