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21화 (421/925)

421회

65. 공작님과 주교님 (36)

에드나의 훌륭한 논리에 한창 감탄하고 있는 그때.

"레반다 님?!"

유지스가 에드나의 가명을 입에 올렸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그 목소리에 에드나는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왜 그렇게 부르시죠?"

"어째서 레반다 님까지 악마 숭배자를 도발하시는 건가요?!"

"주교님의 도발 수준이 너무 약한 것 같길래, 살짝 거들어 봤는데···. 그러면 안 돼요?"

"당연히 안 되죠!"

멀뚱멀뚱 대답하는 에드나를 보며 유지스가 기함할 듯이 소리쳤다.

그 반응을 보고 느끼는 바가 있는지, 에드나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다가 설마설마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주교님께서 무슨 계획이 있어서, 일부러 도발하는 중 아니었어요?"

"놀랍게도 아니랍니다."

유지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러자 에드나가 왜 그랬느냐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다. 자기는 나보다 한술 더 떴으면서.

억울한 마음에 따지려고 입을 떼는데, 돌연 법숭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감히 나를 무시하다니···!"

자기를 두고 우리끼리 대화를 나누는 게,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법숭이가 아까보다도 더 화가 난 표정으로 흑마력을 줄기차게 뽑아냈다.

마왕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자신을 무시하는 건, 마왕을 무시하는 행위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신성력을 가진 놈 치고는 소질이 괜찮아 보이길래, 기껏 기회를 주었건만!"

그 기회가 '마왕 앞에서 무릎을 꿇을 기회'를 뜻하는 거라면, 두 번 다시 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악숭이들이야 마왕을 신처럼 떠받드니, 마왕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게 영광스러운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굴욕을 느꼈으면 느꼈지, 희열을 느끼는 일은 없다.

'아니, 그건 둘째 치고. 말이 좀 이상하지 않아?!'

법숭이가 지칭하는 대상이 '나'로 국한된 것처럼 들렸다. 억울하다 못해 원통하고, 누명을 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 저만 가지고 그러세요? 그쪽을 따돌린 사람은 제가 아니라···."

"닥쳐라!"

변명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법숭이가 일갈했다.

아까부터 조금씩 피어올라, 법숭이의 머리 위에 먹구름처럼 떠 있던 흑마력이 마법진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단순히 '지금 나는 몹시 화가 났다!'라는 뜻을 전달하기 위한 배경 효과가 아니었나 보다.

"유용한 소재와 인재를 한 번에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칫!"

법숭이가 세르펜스에게 흘깃 눈길을 줬다가, 다시 나를 쳐다보며 이상한 소리를 해댔다.

그런 법숭이의 목소리에서 미련이 뚝뚝 떨어졌다.

"인재는 그렇다 쳐도, 소재는 또 뭡니까?"

"······."

손까지 번쩍 올려가며 정중하게 질문했음에도 법숭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법진을 그리면서 말할 수 있는 걸 방금 눈으로 똑똑히 봤거늘. 시치미를 뚝 떼고, 흑마력 조절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니 기가 차다.

"와! 그깟 마왕 좀 같이 안 믿어줬다고, 지금 삐진 겁니까? 진짜 어이가 없네! 제가 먼저 같이 룩스메아 님을 믿자고 말했으면, 자기도 무시했을 거면서!"

나는 발로 땅을 쾅쾅 구르며, 분한 마음을 표출했다.

순간 법숭이가 그리던 마법진이 살짝 흐트러진 것 같은데, 마법진을 알아보는 눈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정말로 저게 도발이 아니라고요?"

"네. 주교님께서는 현재 진심으로 억울해하고 계신답니다."

에드나의 물음에 유지스가 곤란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질문을 받았으니 대답을 하긴 하지만, 이 문답이 법숭이의 속을 더 긁게 될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

"···그래. 차라리 지친 한 놈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죽여 없애는 편이 낫겠구나."

법숭이가 단념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와 동시에 마법진의 형태가 빠르게 변화했다. 마법진을 보는 눈이 없는 나지만, 아까와는 다른 마법이라는 것쯤은 알아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였던 마법진이 두 개가 되었으니까.

"그러면 곤란해지실걸요? 저기서 싸우는 막내 신관님이 저를 얼마나 따르는데! 말고삐도 끌어주고, 무릎도 꿇고. 제가 하라는 대로 다 합니다! 그러니 저를 생포해서 인질로 잡고, 막내 신관님을 협박하는 방식을 취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정말이냐?"

법숭이가 매우 솔깃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꾸물거리며 마법진의 형상을 갖춰가던 흑마력이 일시 정지라도 한 듯, 움직임을 멈췄다.

"암요! 정말이고 말고요. 아까 말하는 거 들었잖아요? 몰래 성기사를 포기하고 나서부터 저를 실망시켰다고 생각하는지, 그 뒤로는 제가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합니다."

"뭐든···지?"

"네! 뭐든지! 예전에 재미 삼아 고양이 흉내를 내보라고 시켰더니, 야옹부터 시작해서 애옹, 미야옹. 온갖 울음소리를 다 냈다니까요?"

"그런 걸···, 재미 삼아 시켰다고?"

내 얘기를 듣느라 법숭이의 집중력이 떨어졌나 보다.

마법진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흑마력의 흐름이 완전히 멈춰 있었기에, 이번에는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시킬 수도 있죠, 뭐 그런 걸 가지고 놀랍니까?"

"정말···, 대단하군!"

"맞아요, 진짜 대단했죠! '그래도 이건 못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시킨 것도, 고분고분 따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뭐랄까···. 좀 더 본격적으로 시켜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더라고요."

야옹이나 응애 같은 단순한 의성어가 아니라, 제대로 된 성대모사를 시켜보고 싶다는 충동이 말이다.

아니면 진짜 고양이와 울음소리를 교환하며 대화를 시키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동물과의 교감은 어린아이의 정서 교육에 도움이 된다던데.

"이거 놓으십시오!"

갑자기 들린 소란에 확인해보니, 베일이 윈스톤에게 붙잡힌 채로 바동거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사고를 치려 했길래 저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베일의 돌발 행동에 에드나가 당황했는지, '뭐야, 쟤 왜 저래?'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유지스에게 뭐라 뭐라 귓속말을 했고, 유지스도 에드나에게 귓속말로 화답했다.

둘이 워낙 작은 목소리로 말을 주고받은 탓에 내용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안 들리는 소리를 억지로 들으려 귀를 기울이는 대신, 법숭이와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무튼 그냥 죽이는 건 어리석은 판단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악마 숭배자가 할 짓이 아니죠."

"앞의 말은 그렇다 쳐도, 뒷말은 무슨 뜻이지? 소중한 사람을 눈앞에서 죽이는 거야말로, 절망을···."

"에헤이~, 이거 이거! 아직 멀었네, 멀었어. 자고로 악마를 숭배하는 사람이라면, 저를 인질로 잡고 막내 신관님에게 우리 일행을 공격하라고 시켜야죠!"

"······!"

내 대답에 법숭이가 크게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나 보다. 처음 본 내가 자신들 편에 붙을 거라고 믿는 것도 그렇고, 이상한 부분에서 악숭이답지 않다.

"아, 진짜 왜 그래요?! 소중한 사람을 위해, 또 다른 소중한 이들을 직접 해치는 과정에서 갈등하게 하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괴로워하면서도 이리저리 휘둘리는. 그런 꼴을 지켜보며 낄낄거리는 게 악마 숭배자들이 하는 일이잖아요?"

나는 되다 만 악숭이에게, [성검의 주인] 속 악숭이들이 유희거리로 소비하던 행동을 들려주었다.

선학이라고 해야 할지, 후학이라고 해야 할지.

어쨌든 다른 시간대의 악숭이가 저지른 짓거리에 감탄했는지, 법숭이가 짝짝짝 박수를 쳤다.

"어째서 너 같은 사람이 룩스메아 교단의 주교 노릇을 하는 거지?"

"그렇다고 교주 노릇을 할 수는 없잖아요?"

"오오···!"

단어의 어순을 뒤바꾼 말장난이 뭐가 그리도 신기하다고 저런 반응인지 모르겠다.

웃자고 던진 농담에 탄성을 내뱉으며 감동적이라는 표정을 지으니, 괜히 민망하기까지 하다.

부장님이 아니라 회장님이 아재 개그를 해도, 저런 식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이렇게까지 함께 악마를 숭배하고 싶은 사람은 처음이야! 진짜로 테네브리오 님을 따를 생각 없나?"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아까 말한 소재라는 건 뭡니까?"

"······."

분위기도 무르익었겠다, 은근슬쩍 찔러보면 대답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으로 질문을 던졌건만.

방금까지 화기애애 대화를 주고받던 놈은 어디로 갔는지, 법숭이가 입을 딱 붙이고 경계심을 바짝 세웠다.

"아니, 잘 생각해 봐요. 저 녀석을 어떻게 써먹으려는지 알려 줘야, 제가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시킬 수 있을 거 아닙니까?"

"아직은 말할 수 없다. 장소를 옮겨서, 테네브리오 님을 믿고 받들겠노라 맹세의 서약을 마치면 그때 알려주지."

법숭이가 어림도 없다는 듯이 정 궁금하면 악숭하라는 소리를 해댔다.

아무리 세르펜스와 함께 가는 거라지만, 놈을 따라가는 건 너무 위험하다.

애초에 본거지로 데려가 줄 거라는 보장도 없고.

"스카우트 하루 이틀 해 보나!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업무 환경은 어떠한지, 어느 정도의 대우를 받게 될 것이며, 복지는 얼마나 제공이 되는지. 그런 것부터 제시하는 게 기본 중의 기본 아닙니까?"

"그딴 건 룩스메아를 따르는 자들이나 하는 짓이지. 우리는 다르다."

(가)족같은 회사도 저따위로 운영하지는 않을 텐데. 블랙 기업 수준이 아니라, 완전 깡패놈들의 소굴이 따로 없다.

과연 악숭이나 하는 사이비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따위로 포교하니까 신도들이 안 늘어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언제까지고 룩스메아 교단에 밀려서 비주류 취급이나 당하지! 어휴! 근본부터 싹 다 뜯어고쳐야지, 정말 안 되겠네!"

"설마···! 룩스메아의 하수인들을 밀어내고, 신도를 빼앗아 올 방법을 알고 있나?!"

그냥 떠들어 댔는데, 법숭이가 진심으로 혹하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 악숭 제의를 받았을 때 비주류라는 이유로 거절했던 게,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았던 모양이다.

"뭐어,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대략···. 백 서른 아홉 가지쯤 되는데, 그냥 알려주긴 좀 그렇고."

"그래도 자세한 건 아직 말해줄 수 없다."

"아, 왜에!! 좀 말해주면 어디 덧납니까?"

"······."

생떼를 부려 봐도 효과는 없었다.

악숭 세력을 메이저로 끌어올리는 수단 같은 건 알지도 못하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지만. 좀 더 허세를 부려 보기로 했다.

"그럼 하나씩 정보를 교환하는 건 어때요?"

"그게···, 내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서···."

"제가 알려주는 방법 중 다섯 가지 정도만 배워가면,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리에 오를 수 있을 텐데도요?"

"끄으응···."

악숭 세력 따위가 수평적인 구조를 띨 리가 없다.

그냥 계급이 나뉘는 정도가 아니라, 낮은 지위의 사람은 소모품으로 사용되다가 쉽게 버려지니. 악숭을 하는 놈이라면 승진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그 점을 노리고 은밀한 제안을 건네자, 법숭이가 고민에 푹 빠졌다.

마법진을 유지하는 것조차 거슬렸는지, 끄집어냈던 흑마력을 회수하기까지 했다.

"···잠깐만. 그냥 네놈을 생포해서 데려가면 끝나는 일이잖아?"

흑마력을 운용하면서 대화를 나누기엔 뇌용량이 부족했던 걸까?

마법진을 지우자마자 법숭이가 제대로 된 생각이라는 걸 떠올렸다. 나에게는 매우 안타까운 소식이다.

아쉽다는 생각에 쩝 하고 입맛을 다시는데, 불쑥 유지스가 소리쳤다.

"에인젤 주교님! 아니, 에인젤 님께서 이렇게나 당당하게 악마 숭배자와 내통을 할 줄은 몰랐어요! 대체 어떻게···,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는 거죠?!"

유지스가 노엽다는 듯 비분강개하며 소리쳤다.

일행들은 결계 가장자리에서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있었는데, 언제 저기까지 이동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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