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27화 (427/925)

427회

65. 공작님과 주교님 (42)

나는 생각을 고쳐먹고, 머릿속에 떠올랐던 말과 정반대의 말을 내뱉었다.

"위험하다면 안 하는 게 낫겠죠. 뭐니 뭐니 해도 안전이 제일이니까."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세르펜스의 얼굴이 안도감으로 물들었다.

그 모습을 보자, 입가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아무리 악숭 세력의 계획이 궁금하다 한들, 세르펜스를 불안하게 하면서까지 알아내야 하는 건 아니다.

교단의 이단 심문관이 법숭이를 심문하여 정보를 캐낼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악숭이들의 계획을 알아내든 못 알아내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로 귀결될 테니까.

'앞으로 성직자가 납치당하지만 않으면 되는 거잖아?'

법숭이는 세르펜스를 보고 좋은 '소재'라 말했다.

그렇다는 건 성직자들을 '재료'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뜻이고, 이는 즉 재료의 수급만 막으면 놈들의 계획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조금 더 노력을 기울인다면, 교단의 성직자들뿐만 아니라 그 범위를 넓혀서. '신성력 보유자들'에게도 조심하라고 주의를 시키거나, 보호 조치를 취하는 정도겠지.

다만 폴드 공국에서 활동하던 성직자들은 그대로 연락이 두절되어, 그 점이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유지스의 추측대로 '신성력을 억제하는 주사'가 그들을 대상으로 실험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면.

'지금도 그들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실험하고 있을 테니까···.'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폴드 공국의 일은 이미 일어난, 과거의 일이다.

그 실험이 어디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내지 못하는 이상 막을 방법이 없다.

악숭이들이 준비하는 모종의 실험이 성공했을 때. 그 결과를 모르고 마주하느냐, 알고 마주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재료 조달 역할을 받은 법숭이가 실험 장소를 알고 있을 턱이 없지.'

외부에서 '조달' 임무를 맡은 자에게는 해당 계획이 실행되는 장소를 알려주지 않는다. 자원이 됐건 자금이 됐건, 여러 단계를 거쳐 전달한다.

그게 [성검의 주인]에서 타락펜스가 정해놓은 규칙이었고, 그 때문에 휴마누스 일행은 번번이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야만 했다.

그 규칙으로 쏠쏠히 재미를 봤던 마왕이 이제 와서 중간 유통 과정을 생략했을 리가 없다.

"꽤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반대하시는 겁니까? 어차피 악마 숭배자는 구속된 상태고, 돌발 상황이 벌어진다 한들 바로 제압할 수 있는 거리에서 대기한다면, 위험할 일도 없을 텐데요?"

베일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나는 적당히 머릿속으로 타협하고 포기했지만, 베일은 그게 안 되었나 보다.

당연하게도 세르펜스의 싸늘한 시선이 베일에게로 향했고, 가여운 베일은 흠칫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저자도 머리가 있다면, 악마 숭배 세력에 붙겠다는 주교님의 말이 정보를 빼내기 위한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금세 눈치챌 겁니다."

세르펜스가 베일에게서 시선을 떼고 기절한 법숭이를 눈짓하며 말했다.

그러고는 베일이 반론이라도 할 새라. '저자가 하는 말이 진실일 거라는 보장은 있습니까?'로 시작하여, 거짓 정보에 휘둘렸을 때 생겨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을 논리적인 척 떠들어댔다.

끝내는 '어쩌면 교단에 붙잡혔을 때를 대비하여, 거짓 정보를 준비해뒀을지도 모른다.'라는 소리까지 해대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고 있더라.

"어설픈 방법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괜히 오기라도 생겨서, 이단 심문관님께서 심문할 때 비협조적으로 나오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입니다."

"그···렇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아셨으니 다행입니다."

베일이 고개를 푹 숙이며 반성하자, 세르펜스가 턱을 치켜들며 도도하게 말했다.

그런 녀석의 고압적인 모습에 베일이 더욱 쪼그라들었다.

"악마 숭배 세력에 붙는 척하며 비전을 제시하라고 시킨다니···. 이런 개소리를 어째서 신빙성 있다고 여겼던 건지, 저도 저를 모르겠습니다. 마치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한 기분입니다."

투구를 쓴 베일의 고개가 나를 향했다.

내가 이상한 행동을 해대니까, 자기도 모르게 영향을 받아서 세르펜스에게 혼난 것 아니냐며 따지는 듯한 모양새다.

누누이 말하지만, 베일을 홀린 사람은 내가 아니라 세르펜스다. 예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 놓고 왜 나한테 저런 소리를 해대는 건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격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애초에 신성력을 지닌 룩스메아 교단의 주교에게, 악마 숭배를 제의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인데···."

베일이 자기가 말해놓고도 허무맹랑하다는 듯, 작은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저도 그 점이 의문입니다."

그냥 무시하며 흘려들어도 되는 혼잣말에 세르펜스가 굳이 대답했다.

어쩐지 이유를 알면서도 모르쇠로 발뺌하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녀석이 왜 저런 반응을 보였는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타락펜스 때문이겠지.'

[성검의 주인]에서는 지상으로 내려온 천사가 아닐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순수하고 청렴결백했던 '프라시더스 공작'도 악마 숭배 세력에 붙어서 크게 활약했다.

그것도 신성력을 유지한 채로.

신성력과 신앙심이 별개라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그 사실을 마왕이 떠들고 다녔다면, 법숭이가 부패한 꼰대 주교쯤은 얼마든지 회유할 수 있다고 자신했을 만도 하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교단의 성직자 중에 악마 숭배 세력에 붙은 사람이 있다는 것처럼 보이는데···."

베일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다시금 중얼거렸다.

원래 대화라는 게 대답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끊기기 나름이고, 혼잣말에 대답을 들으면 뭐라도 답변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는 대로 내뱉은 말이 핵심과 엇비슷한 곳을 찔렀다.

'아니지? 진짜로 저게 정답인 거 아냐?'

신전에서 멀쩡히 일하고 있는 성직자에게 악숭이가 접근한다면, 곧바로 밀고 당할 뿐이겠지만.

그런 여건이 안 되는 이들도 존재한다.

'가령 예를 들어 악숭이들에게 사로잡혀서, 마왕을 섬기지 않으면 흑마법의 실험체가 될 상황에 놓였다거나···.'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런 처지인 사람들이 꽤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괜한 의심으로 내가 생사람을 잡는 게 아닐까 하며, 떠오른 생각을 지워 내려는 찰나.

"아! 혹시 폴드 공국에서 사라진 성직자 중, 악마 숭배 세력에 붙은 사람이 있는 것 아닙니까?"

베일이 퍼뜩 떠올랐다는 듯이 소리쳤다.

다른 사람이 생각해도 그렇게 느껴지는가 보다.

"확실해지기 전까지, 그 추측은 교단에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세르펜스의 경고에 베일의 몸이 크게 움찔했고, 그에 따라 철그럭 쇳소리가 울렸다.

우리가 성직자 행세를 하고 있다고 한들, 진짜 성직자가 되는 건 아니다.

신의 사자인 나와 내 곁을 지키는 임무를 하달받았다는 설정인 세르펜스라면 모를까.

외부인이 그런 소리를 한다면 교단을 모욕하는 꼴밖에 안 된다.

더군다나 베일의 가족들은 악숭 혐의를 받는 상황이며, 이를 밀고한 사람이 바로 베일이다.

지금은 나와 함께 움직이니까 나를 믿고 내버려 둔 것뿐.

베일은 교단의 감시 대상이다.

그것은 그의 가족들이 악숭이들과 손을 잡았다는 게 판명이 난 후에도. 아니, 그렇기에 평화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교단의 감시를 받게 될 거다.

그런 베일이 저런 소리를 해댄다면, 교단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할지 불 보듯 뻔하다.

베일이 몸을 움찔한 것도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일 거다.

* * *

하나밖에 없는 법숭이는 섣불리 건드리지 않기로 결정이 났다.

하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교단의 지원을 기다리며, 멍하니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윈스톤에게 플라가는 이만 치우고 검숭이를 가져오라 명했다.

그 결과.

"프흐흐흡, 흡, 크흡, 프흣-!"

운 없게도 윈스톤의 눈에 띈 검숭이는 입에 천 조각을 문 채로, 자지러지게 쳐 웃었다.

몸을 단련한 자들은 감각이 예민하다더니. 과연 간지럼도 잘 탄다.

검숭이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지만, 뒤에서 그를 붙잡은 윈스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아-, 이제 계획을 실토할 마음이 들었습니까?"

나는 검숭이를 간지럽히던 깃펜을 거두며, 비장하게 물었다.

세르펜스가 눈치 빠르게 검숭이의 입에 물렸던 천을 빼냈다.

"으···흐흑, 크하하···. 마, 말할···, 히힉, 수 없다."

간지럼의 여운이 남았는지 검숭이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아직 참을 만한가 보다.

세르펜스가 다시 놈의 입에 천 조각을 쑤셔 넣었지만, 나는 놈의 목덜미에 깃털을 가져다 대지 않았다.

가벼운 간지럼은 장난이 되지만, 본격적인 간지럼은 고문이나 다름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애 앞이니만큼, 어지간하면 대화로 해결하고 싶다.

"이 깃펜 말인데요. 멋있어 보여서 충동구매한 건데, 막상 써보니 불편해서 반쯤 버려둔 거거든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어요. 제가 이걸 색별로 구매했다는 겁니다. 그것도 교단 지원금으로요."

실제로는 교단 지원금이 아니라 공작가 경비로 구매한 거지만. 아무튼 공금으로 샀으며, 색별로 일곱 자루나 샀다는 말은 진실이다.

갑작스러운 나의 횡령 고백에 검숭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걸 교단의 업무에 써먹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입니다. 무지개색 총공격을 받고 싶지 않으시다면, 빨리 아는 대로 말씀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타이밍 좋게 세르펜스가 나머지 깃펜이 들어 있는 상자를 열어서 내밀었다.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으며 '어느 색을 고를까, 알아맞혀 보세요. 딩동댕동'을 시전하며 시간을 질질 끌었다.

그러나 이런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검숭이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에잇, 어쩔 수 없네! 좌우 두 개씩 들고 나머지는···. 막내 신관님과 작은 성기사님께서 도와주실래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세르펜스가 깃펜 두 자루를 양손에 하나씩 들었다.

그 모습을 본 베일이 느릿한 동작으로 하나 남은 깃펜을 집어 들었다. 마지못해 따른다는 티가 팍팍 난다.

나는 본격적인 간지럼에 들어가기에 앞서, 검숭이의 표정을 꼼꼼히 살펴봤다.

실눈을 뜨고 눈치를 살피기라도 했다면 다시 대화를 시도해봤을 텐데, 놈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는 건 굳은 각오뿐이었다.

모질게 마음을 먹고, 발바닥을 간지럽히고자 검숭이의 신발과 양말을 벗겨내고 있는 그때.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두두, 말발굽이 힘차게 땅을 박차는 소리도 들려왔다.

잠시 뒤. 에드나를 뒤에 태운 유지스의 말을 필두로, 성기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유지스가 고삐를 당기자, 질주하던 말이 '이히힝-!' 긴 울음소리를 내며 앞발을 높이 들어 올렸고.

"끼야앆-!"

에드나도 말을 따라서 긴 비명을 질렀다.

보통 저러면 말도 함께 놀라 날뛰기 마련이나, 유지스가 입으로 '워, 워' 하는 소리를 내며 달래자 말이 얌전히 멈춰 섰다.

유지스는 허리에 둘러진 에드나의 팔을 가볍게 떼어내고 땅에 내려선 후, 그녀를 말에서 끌어내렸다.

에드나는 땅에 내려와서도 비틀거리며 유지스에게 몸을 기댔다.

'말에 신성력 버프도 안 걸었는데 저 지경이라니. 왕복이었으니 적응할 만도 한데···?'

아무래도 에드나는 스피드를 즐길 줄 모르나 보다.

하기야 이 세상에는 롤러코스터 같은 놀이기구가 없으니까. 말을 자주 타보지 않았다면 그 속도감에 적응하기 어려울 만도 했다.

아니면 나처럼 앞에 탄 게 아니라, 뒤에 탄 것이 문제거나.

"다녀왔어요! 그런데 주교님께서는 어째서 악마 숭배자의 양말을 손에 들고 계시나요?"

새하얗게 질린 에드나를 부축하며 다가온 유지스가 해맑게 질문했다.

그리고 나는 손에 들린 양말을 검숭이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간지럼을 태워보려고 했는데, 나중에 이어서 해야겠네요."

나 말고, 교단의 이단 심문관이 이어서 해 줄 거다.

왜냐하면 이자가 나의 깃펜 횡령을 이단 심문관에게 이르면서, 자신이 내게 간지럼 형에 처해졌다는 사실을 자발적으로 설명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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