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27화 (527/925)

527회

68. 공작님과 가주님 (6)

"간혹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 보이긴 했는데···. 설마 그게 부담스러워서 그런 거였나?"

세르펜스가 나를 바라보며,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표정이 마치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말했을 뿐인데, 어째서?'라고 질문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연히 부담스럽지, 그럼 부담스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하지만 당신은 칭찬받는 걸 좋아하잖는가. 그리고 내게 칭찬에 인색해지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나?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든, 타인을 향한 것이든. 칭찬을 하다 보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그대가 내게 그리 말하였잖은가."

세르펜스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확실히 나는 칭찬에 관해 그렇게 말했었다. 그게 녀석에게 장점 말하기를 시켰을 때였던가?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녀석이 나를 과도하게 포장한 건 그 이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나를 데리고 다니는 걸, 남들에게 이해시킨다는 목적이라도 있었는데···. 최근에는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나를 추켜세우는 일이 잦아졌지?'

설정 때문인 것도 없잖아 있지만.

애초에 프레이가 그런 설정을 갖게 된 건 세르펜스가 나를 자랑하고 싶어 해서다.

원래 아이들은 제 보호자가 최고라고 생각해서,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니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게다가 내 입으로 칭찬의 이로운 점을 열심히 설파하기까지 했으니.

그 행동 자체를 탓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칭찬의 내용이다.

세르펜스가 현재 당당하게 나오지 못하고, 반론이 아닌 변명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고작 칭찬을 과하게 해서 부담을 줬다고, 저렇게까지 충격을 받는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런데도 세르펜스가 저토록 불안한 태도를 보이는 건···.'

아마도 윈스톤이 말한 '완벽한 존재'라는 키워드 때문이리라.

나를 만나기 전의 세르펜스는 과연 저게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완벽한 존재'가 되어야만 했다.

남들이 만들어낸 틀 안에 자신을 구겨 넣고, 삐져나온 부분을 잘라내 가며.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타인의 눈에 '완벽한 존재'로 비치는 것이 얼마나 숨 막히는 일인지. 녀석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틀 안에서 괴로워하던 녀석을 밖으로 끄집어낸 건 다름 아닌 '나'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나를 완벽이란 틀 속에 욱여넣고 있으니. 그 사실을 깨닫고 괴로워하는 걸 테다.

'아니지···. 세르펜스의 경우에는 나를 틀에 맞춘다기보다, 그 틀 너머로 보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렇기에 내가 힘들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너무 부담스러웠고, 아주 가끔은 거리감이 느껴지곤 했다.

언젠가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다.

마침 윈스톤이 기회를 마련해 줬으니, 지금 얘기해 두는 게 좋겠다.

"제가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중요한 내용을 깜박했습니다. 무조건 칭찬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요. 어떤 칭찬은 상대방의 행동을 제약하곤 합니다. 가령 제가 '세르펜스는 내 말도 잘 듣고, 참 착한 아이야.'라고 매일 칭찬한다고 칩시다. 그럼 세르펜스는 나쁜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 제 말이라면 뭐든지 따르려고 하겠죠."

"으음···."

"참고로 세르펜스가 덮어놓고 제 말을 따른다고 해서, 칭찬해 줄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세르펜스가 자기주장을 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거든요."

혹시나 해서 덧붙인 말에 세르펜스가 움찔하며 몸을 들썩였다.

그냥 예시였을 뿐인데, 살짝 혹했었나 보다.

"즉···. 내가 당신을 칭찬함으로써, 당신의 자유의지를 제약했다는 뜻인가?"

"다행히도 그건 아닙니다. 세르펜스는 제게 영향을 많이 받으니. 훌륭한 어른으로 있어야겠다는 책임감은 느끼고 있지만, 그렇다고 세르펜스가 말하는 대로 완벽한 선인이 될 생각은 없거든요.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고요."

내 대답에 세르펜스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이르다. 당근을 주었으니, 이제는 채찍을 가할 차례니까.

"그렇지만. 만약 제가 누군가의 말에 잘 휘둘리는 사람이었다면,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겁니다. 그리고 나는 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일까 하고 자괴감을 느끼며, 움츠러들었을지도 모릅니다."

"······."

나는 '누군가의 말에 잘 휘둘리는 사람'으로 지칭했지만, 사실 이건 세르펜스의 얘기였다.

세르펜스도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붉게 염색한 머리칼이 스르륵 흘러내려 녀석의 얼굴을 가려 버렸다.

"미안···하다."

세르펜스가 테이블 위에 올려진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사과했다.

그런 녀석의 모습을 바라보는 윈스톤의 표정이 어두웠다.

자신이 꺼낸 말 때문에 세르펜스가 내게 혼나고 있으니, 그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윈스톤은 나를 말리거나 세르펜스를 두둔하지 않고, 우직하게 자리를 지켰다.

지금 이 과정이 세르펜스에게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세르펜스 또한 윈스톤을 원망하지 않았다.

윈스톤이 이런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계속 내게 부담을 줬을 거라는 걸 이해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이건 얘기가 나온 김에 번외로 하는 말인데···,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종류의 칭찬도 피해야 합니다. 자칫 칭찬이 아니라 어쭙잖은 평가질로 느껴질 수 있거든요."

"무턱대고 내 기준에서 좋은 점을 열거하지 말라는 뜻인가?"

"비슷합니다."

"어렵군···."

세르펜스가 희대의 난제라도 마주한 듯.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어렵다던 신성문자도 척척 읽어 내려가는 녀석이었지만, 인간관계만큼은 불가해의 영역인가 보다.

"아무튼···. 저는 세르펜스가 어떻게 생각하든, 앞으로도 제 식대로. 남들이 그러는 것처럼, 평범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겁니다."

"그대가 말하는 평범은···. 어떤 거지?"

"사람이라면. 그리고 다른 누군가와 부대끼고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행동과 자연스러운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 겁니다. 아! 그렇다고 되는 대로 막살면서 남에게 해를 끼쳐도 된다는 말은 아니라는 거. 아시죠?"

세르펜스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마주하며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그 정도는 알고 있다는 뜻이다.

"전에도 말했던 것 같지만···. 저도 누군가를 미워합니다. 가끔은 그것이 지나쳐 욕을 할지도 모르죠. 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 짓고, 둘을 차별하기도 할 겁니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선하다고는 할 수 없죠."

예전에 나도 누군가를 미워한다고 말했을 때. 세르펜스는 그자가 나쁜 사람일 거라며 단정 지어 말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깨를 짓누르던 짐이 갑자기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이상하게 들뜨고 홀가분해졌다.

"그래도 저는 저를 미워하지 않을 겁니다. 신도 편애를 하는 마당에. 제가 뭐라고 아가페 정신을 발휘해서, 세상 모든 이들을 끌어안고 둥개둥개 하겠습니까? 사람이 살다 보면 누군가를 싫어하거나, 폐를 끼칠 수도 있지! 작정하고 타인을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저 자신을 사랑하겠다는데, 남이 뭐라 하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들뜬 상태로 말하다 보니, 자연히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그러자 세르펜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그런 녀석과 눈을 맞추고, 씨익 웃어 보였다.

"제가 이런 사람인 건 싫어요?"

"절대 그렇지 않다!"

세르펜스가 고개를 도리질 치며 강하게 부정했다. 그러고는 왜 이런 짓궂은 질문을 하느냐는 듯, 울상을 지었다.

예상했던 대답과 반응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 녀석이 나를 싫어하게 될 일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수 없다는 것에 가깝다.

'나는 세르펜스에게 평생의 은인이나 마찬가지고, 고맙고도 미안한 사람이니까.'

이미 알고 있는 답을 들었을 뿐인데도. 괜히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어쩐지 안도하게 된다.

"그렇다면, 제가 세르펜스의 좋은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을 모두 알고도 받아들인 것처럼. 세르펜스도 '진짜 저'를 외면하지 말고, 온전히 마주하고 받아들여 주세요. 저는 세르펜스와 동등한 위치에 서고 싶은 거지, 항상 우러러봐야 하는 숭배의 대상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나도···, 그러고 싶다. 반드시 그리하겠다."

그렇게 말하는 세르펜스의 목소리에 바람과 다짐이 담겨 있었다.

만일 녀석이 현재 내 옆에 앉아 있었다면, 곧바로 머리를 쓰다듬어 줬을지도 모르겠다.

"참! 그리고 앞으로는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면, 오늘처럼 대뜸 '나는 이런 사람인 것 같다.'라고 말하지 마세요. 세르펜스가 밑도 끝도 없이 자기 자신을 비하해 버리면, 듣는 저와 윈스톤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으음···, 미안하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말하면 되는가?"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설명해야죠. '이러이러한 얘기를 듣고 났더니, 내가 이런 사람처럼 느껴졌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지?' 대충 이런 식으로요."

"알겠다. 새겨두도록 하지."

세르펜스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손에 종이와 펜이 들려 있다면 곧장 메모라도 할 듯한 기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일순간, 윈스톤에게 세르펜스를 대신 쓰다듬어 달라고 부탁해 볼까 하는 충동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건 윈스톤에게 몹쓸 짓을 시키는 것 같아서 관뒀다.

그렇지 않아도 윈스톤은 이미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윗사람인 주군을 기특하다는 눈으로 보지 않으려는 건지, 그는 세르펜스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연거푸 마른세수를 해댔다.

'사람이 너무 착실해도 피곤하다니까?'

세르펜스를 보고 '우윳빛깔 공작님'을 외친 사용인도 있는데. 기사가 주군을 기특하게 여길 수도 있지.

내가 윈스톤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자, 세르펜스의 관심도 그에게로 향했다.

"으음···. 윈스톤 경?"

"네! 듣고 있습니다."

윈스톤이 잽싸게 얼굴을 가린 손을 치우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며 바로 앉았다.

그냥 호명만 했을 뿐인데 듣고 있다는 말이 튀어나오다니. 본인이 딴짓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었나 보다.

하지만 세르펜스는 그런 이유로 윈스톤을 부른 게 아니었다.

"고맙습니다. 경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저는 시온에게 더 큰 잘못을 저질렀을 겁니다. 앞으로도 제게 고쳐야 할 점이 보이면, 오늘처럼 충언으로 바로잡아 주시겠습니까?"

"제가 주군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세르펜스의 청에 윈스톤이 굳건하고 다부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여전히 단단해 보이는 얼굴과는 다르게. 목소리에는 감격이 듬뿍 묻어났다. 기쁨을 티 내지 않고 절제하는 게 참 윈스톤다웠다.

하지만 여기에 감동이 더해진다면 어떨까?

"저도 윈스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저를 동료로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그런 당연한 소리를 하는 것이오? 나와 직군이 다르긴 해도, 선배는 엄연한 직장 동료요."

윈스톤이 돌연 정색하며 말했다.

듣고 보니 정말로 그러하다.

나와 윈스톤은 '프라시더스 공작가'라는 같은 직장을 다니며, '세르펜스'라는 같은 상사를 모시는 직장 동료였던 것이다.

애초에 그가 나를 부르는 '선배'라는 호칭 또한 '직장 선배'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거늘.

괜히 머쓱해졌다.

"가만 보면 윈스톤은 유독 저한테만 매정하게 구는 거 아세요?"

"내가 아니더라도, 선배를 감싸주는 사람은 많지 않소? 나까지 선배를 덮어놓고 두둔한다면, 선배는 한없이···. 뻔뻔해질 게 분명하오."

윈스톤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뒷말을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표정이 영 개운치 못한 게,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 것만 같은데 떠오르지 않아서 대충 얼버무린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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