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71화 (571/925)

570회

71. 공작님과 성검 (12)

갑자기 벌어진 눈앞의 사태에 성검펜스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녀석이 무언가에 관심을 가진다는 건 매우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휴마누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자세한 사정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성검펜스가 직접 물어본다면 갈등하겠지만···.'

휴마누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성검펜스는 금방 관심을 거두고 입을 오물오물 움직이며 쿠키 샌드를 마저 먹었다. 어쩐지 세르펜스에게 막 단것을 먹이기 시작했던 때가 떠올랐다.

느린 속도일지라도 꾸준히 이어진 덕에, 성검펜스의 쿠키 샌드는 모두 녀석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나도 남은 쿠키 샌드를 전부 입안에 밀어 넣고 대충 씹어 삼켰다.

휴마누스가 평정심을 되찾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 또한 제 손에 들린 쿠키 샌드를 해치운 후, 머쓱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잠깐 본의 아니게 얘기가 옆으로 새서 미안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성검펜스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이번에도 똑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배를 꾹 누르면 같은 말만 반복하는 인형이 떠올랐다.

"아무튼 세르펜스. 너는 의식을 치르는 그 장소에 있던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의 위치에서 대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거라고. 모든 것을 성검의 주인에게 맡긴 채 손 놓고 있을 생각은 없다고. 성검이 자신의 손에 없더라도, 대륙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그렇게 말했어."

휴마누스가 다시 무게를 잡고 말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조금 전에 벌어졌던 해프닝을 머릿속에서 지워내기 위해 애를 써야만 했다.

"그럴···리는 없습니다."

"목격자가 수두룩한데, 내가 금방 들킬 거짓말을 왜 하겠어?"

"만약 제가 그런 말을 했더라도, 그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저 대외적인 체면 때문에···."

성검펜스가 말끝을 흐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러고 보면 성검펜스는 대외펜스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을 쉽게 입에 올렸다. 동료를 동료로 생각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던 것도 그러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건 절대 아니야. 네가 그 말을 하고 난 직후, 네게서 신성력이 뿜어져 나왔는걸? 그건 분명 각성으로 인한 현상이고, 네 말이 진심이었다는 증명이야."

휴마누스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 각성에 관하여, 세르펜스는 외부의 개입이 작용했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나는 구태여 휴마누스의 말을 정정해주지 않았다.

세르펜스는 내 말을 따라 했을 뿐이라며 자신을 낮췄으나, 녀석은 그날 자신이 했던 말을 이제까지 쭉 지켜왔다.

"그날 네가 말했던 대로, 너는 최선을 다해 악마 숭배 세력의 계략을 막아냈어. 사람들이 너와 비교하며 나를 불신하자, 너는 네 업적을 숨기려고 변장까지 해가며 위기에 빠진 바스툴 왕국을 도왔어."

"······."

이번에는 성검펜스가 곧바로 반박을 내놓지 못했다. 짚이는 바가 있었기 때문일 테다.

조금 전까지 입고 있던 신관복은 '현재의 세르펜스'가 변장하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네가 나를 친구로 여겨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는 건···, 이젠 알아. 하지만 나는 네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야."

성검펜스가 말문이 막힌 틈을 타 휴마누스가 다시 한번 밀어붙이듯 말했다.

진심이 가득 담긴 휴마누스의 말에, 성검펜스의 표정에 혼란스럽다는 감정이 파문처럼 퍼져나갔다.

순간 감정이 격해져 발작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생각은 우려에서 그쳤다.

"그럴···, 리가. 제가, 그런 행동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성검펜스는 아까처럼 자학적인 행동을 보이는 대신,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놀랐을 뿐인가 보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이 굉장히 부끄러웠어. 나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을 테니까. 선택의 날 당일까지. 나는 어차피 네가 성검의 주인이 되어 대륙을 구원해 줄 거라고 믿었어. 너에게 의지했고, 의존했고, 모든 것을 떠넘겼지. 무책임하게도. 그래서, 네가 정말 존경스러웠어."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하는 세르펜스의 말을 휴마누스가 부정했다.

"아마 세르펜스가 성검의 주인으로 선택받았더라면, 나는 그냥 속 편하게 웃었을 거야. 어쩌면 축하의 말을 건넸을지도 몰라. 너는 성검을 받았으니 알고 있지? 그때, 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

성검펜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휴마누스는 자조와 후회가 섞인 쓴웃음을 머금었다.

"미안해. 항상 말로는 친구라고 하면서도, 나는 단 한 번도 네 처지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널 친구로 두었다는 사실에 혼자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이렇게나 이기적으로 굴었으니, 네가 나를 친구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겠지."

"아닙···."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하지 마. 그거 거짓말이잖아."

"······."

괜찮다는 말을 빼앗겨버린 성검펜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휴마누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어진 한숨은 이내 심호흡이 되었다.

"이런 내가 네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것도 참 염치없지만···. 혹시, 내게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어?"

휴마누스가 머뭇거리며 조심스러운 말투로. 하지만 성검펜스의 눈을 올곧게 마주 보며 말했다.

어지간히도 흥정할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임 없이 악마를 처치하고, '인형술사'로부터 '황제누스'를 지키려 한 것으로 보아.

성검펜스는 아직 성검의 주인으로서 짊어져야 할 의무에 묶여있었다.

그러니 처음부터 '악마와 제대로 싸우려면 비행할 줄 알아야 해. 그러니까 도와줘.'라고 말했으면, 성검펜스는 순순히 알았다고 대답했을 거다.

그런데도 휴마누스는 그에 앞서 자신의 잘못을 고하였다. 그러고 나서 부탁을 했다.

"현재의 제가 전하를 돕겠다고 말하였으니, 저 또한 마땅히 전하를 도와야 한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까?"

성검펜스가 휴마누스의 말을 꼬아서 듣게 된 것도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니야. 그냥 네게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서 그랬던 거였어."

"······."

"그래도 네가 꼭 도와줬으면 좋겠어. 부탁할게."

휴마누스가 간절하게 말했다. 만약 성검펜스가 거절한다면 당장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비행형 악마를 상대할 때마다 애를 먹었는데, 그 해결책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으니.

어떻게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

'그럼 세르펜스는 한동안 성검펜스 상태겠네.'

성검을 놓자마자 돌아올 거라는 확신도 없는데. 그 방법을 실험해 볼 수도 없게 되었다.

더욱이 성검펜스 상태가 길어졌을 때, 세르펜스에게 어떠한 여파가 미치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다.

휴마누스도 이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터.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걸 테다.

"제게 이런 부탁을 하시는 이유는···, 성검의 주인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함입니까?"

"아니, 내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서야."

휴마누스의 대답에 망설임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당장 오늘만 해도 세르펜스가 성검을 쥐지 않았다면, 우리는 전멸을 면치 못했을 거다.

그리고 앞으로 오늘과 같은. 혹은 오늘보다 더한 위기가 수도 없이 찾아오리라.

그럴 때마다 세르펜스에게 성검을 쥐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나 세르펜스가 성검을 쥐었을 때, 무조건 성검펜스만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혹시 누가 아는가?

1/2 확률로 성검펜스나 타락펜스가 랜덤하게 등장하는 시스템일지.

인격이 바뀌는 게 세르펜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이번 한 번으로 끝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휴마누스도 염치 불고하고 성검펜스에게 간청하는 거겠지.

"···알겠습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정말?! 고마워!!"

성검펜스의 대답이 떨어지자, 휴마누스가 반색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째서인가 성검펜스가 몸을 살짝 움츠렸다.

"혹시 내 목소리가 너무 커서 놀랐어? 미안, 드디어 비행형 악마나 마물들을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너무 기뻐서···."

휴마누스가 안절부절못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자에도 도로 앉았다.

마치 놀라서 우는 아이를 달래는 듯한 말투다.

"아닙니다. 그저, 평소처럼 전하께서 제게 달려드실 줄 알고···."

성검펜스의 대답으로 미루어 봤을 때.

아무래도 황제누스는 황위에 오른 뒤에도 꾸준히 성검펜스에게 달려들었던 모양이다.

휴마누스는 '너무 만져서 불쾌하다.'라는 뉘앙스가 담긴 세르펜스의 말에 충격받아, 그 버릇을 고칠 수 있었지만.

"그것도 사과할게. 그동안 내가 너무···, 만져대서 불쾌했지? 미안해."

아직 그 오해가 풀리지 않은 탓에, 휴마누스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기운 빠진 목소리로 사과했다.

유지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슨 파렴치한이라도 보는 눈빛이다.

그런데도 성검펜스는 딱히 휴마누스의 말을 부정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휴마누스의 접촉이 불쾌했던 건 사실이니까.

더군다나 조금 전 휴마누스에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를 압수당했으니.

얼른 휴마누스에게 세르펜스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야겠다.

오해가 눈덩이처럼 굴러가기 전에.

"저기, 휴마누스···."

"시온에게도 미안해. 네게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이런 결정을 내려서.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야. 이해해 주었으면 해."

휴마누스가 내 말을 자르고 제 할 말을 늘어놓았다.

세르펜스의 보호자인 내 허락 없이, 성검펜스를 붙잡아 두어 미안하다는 얘기였다.

나도 그가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안다. 이게 최선이라는 것 또한.

그러니 사과는 안 받아도 된다. 오해를 바로잡는 게 더 중요하다.

"아니, 그게···."

"하핫! 어쩐지 오늘따라 미안하다는 말을 할 일이 많네? 앞으로는 미안해할 일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할게."

휴마누스가 머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내 말을 또 끊어먹었다.

됐다, 이제 말 안 하련다. 오해가 풀리면 풀리는 거고, 안 풀리면 마는 거지. 어차피 세르펜스와 휴마누스는 과거 청산하고 화해한 거 아닌가?

"아 참. 그 날개 말인데, 혹시 성검을 쥐고 있는 사람만 만들 수 있는 거야? 그런 거라면 지금 상태로 연습하기 힘들 텐데···."

"아닙니다. 신성력을 다룰 줄만 알면 됩니다."

성검펜스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저 말에는 '아주 섬세하게'라는 표현이 묵음처리 되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도 그러할 게 아무나 신성력으로 날개를 만들어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이미 룩스메아 교단 성직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날아다녔을 테니까.

자문회가 열리는 날 아침. 신성력을 지닌 귀족들이 날아서 출근하는 진풍경이 펼쳐졌을 수도 있고.

"지금부터 바로 시작···, 하기에는 네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보이네. 오늘은 더 이상 신성력을 쓰지 않고 쉬는 게 좋겠다."

휴마누스가 흥분해서 당장 연습을 시작하자고 말하려다가, 성검펜스의 파리한 안색을 보고 말을 바꿨다.

"그럼 오늘은 이론을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처음 휴마누스가 나는 법을 알려달라 부탁했을 때, 내켜 하지 않았던 성검펜스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세르펜스가 자신은 누구를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으니. 성검펜스도 그런 것일까?

"피곤하지 않아? 어차피 시간도 늦었는데 내일 시작하는 게···."

"빨리 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휴마누스의 걱정 섞인 물음에 성검펜스가 모순적인 대답을 했다.

빨리 쉬고 싶다면 지금 당장 쉬어도 될 텐데.

'하지만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겠지.'

지긋지긋한 피로감이 우울감과 뒤섞여, 성검펜스의 얼굴에 드리워졌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직감했다.

'너, 자살했어?'

목구멍에 걸린 물음이 내 입 밖으로 나가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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