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77화 (577/925)

576회

71. 공작님과 성검 (18)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악숭 새끼들이 '유지스가 고향을 떠난 탓에 가족들을 지키지 못했고, 그건 세르펜스가 동료를 만들었기 때문이며, 이는 세르펜스가 성검의 주인으로서 능력이 부족한 까닭'이라는 개소리를 지껄였다는 거죠?"

나는 성검펜스에게 들은 내용을 요약하여 입에 올렸다.

범대륙적 악의 집단 구성원이 지껄인 소리치고는 너무나도 치졸하여,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성검펜스의 고개는 위아래로 움직였다. 얼굴에는 후회가 가득했다.

그는 무엇을 후회하고 있는 걸까?

자신을 감싸던 유지스를 밀쳐내지 못하여, 그녀가 죽게 된 것? 아니면 그녀와 더 친해지지 못하고 벽을 치며 거리를 둔 일? 그조차도 아니라면.

'···유지스가 자신을 따라오는 것을 막지 않은 일?'

악숭이들이 조롱처럼 내뱉은 말로 인해 상처받았을 성검펜스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그냥 아픈 정도가 아니라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심정이다.

'그도 그러할 게, 악숭이의 그 발언 때문에 유지스가 목숨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성검펜스의 말에 따르자면, 1회차의 유지스는 세계수와 관련된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굳이 성검펜스의 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아주 당연한 일이다.

악숭 세력은 세계수 방화 사건으로 혼란에 빠진 아르케 왕국을 공격했다.

성검펜스와 유지스가 아르케 왕국에 도착했을 땐, 수많은 엘프가 목숨을 잃은 후라고 했다.

그중에는 유지스의 가족인 아르케 왕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배자이기에 보호받는 위치에 선 인간의 왕족과 다르게, 이종족들의 왕족은 일족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대표에 가까웠다.

혼란에 빠진 엘프들을 다독이고, 전면에 나서 결사 항전을 벌이다 가장 먼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아르케 왕국으로 향하면서, 성검펜스는 유지스가 슬퍼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겠지. 그런 상황에서 악숭이에게 그런 치졸한 소리를 들었으니···.'

안 그래도 가뜩이나 모든 잘못은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는 녀석이다.

성검펜스는 동요했고, 그 동요는 치명적인 실수를 낳았다.

유지스가 성검펜스를 감싸다 죽은 게 바로 그때였다고 한다.

"빌어 처먹을 악숭이 새끼들···."

나는 뒤이어 쏟아질 욕설을 가까스로 삼켰다.

한 번 입이 트이면, 할 말 못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고 전부 쏟아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으득으득 이를 갈며 조용히 화를 삭이고 있으려니, 성검펜스가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폈다.

"그때, 제가 틈을 보이지만 않았어도···."

"그게 왜 세르펜스 탓입니까? 애초에 세계수에 불을 지른 게 악숭 세력입니다. 그런 주제에 세르펜스에게 그딴 소리를 지껄이다니! 양심이란 게 존재하긴 하나?"

또다시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이러면 안 된다. 진정하자. 내가 흥분하면 할수록, 성검펜스는 침울해하며 입을 닫아버릴 테다.

지금도 성검펜스는 기죽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자신의 탓처럼 느껴져서 그러는 거겠지.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쨌거나 모든 원인은 악숭이들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놈들의 말에 세르펜스가 동요한 것 또한 세르펜스의 탓이 아닙니다."

"······."

성검펜스는 입을 다문 채, 조용히 내 시선을 피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그건 녀석이 고집불통이라서가 아니다. 녀석에게는 그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어린 시절 받아온 학대가 깔려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거기에 더해, 지금 녀석이 앓고 있는 지독한 우울증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리라.

"어지간히 심지가 굳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 상황에는 누구라도 동요했을 겁니다. 당장 마음에 담을 수는 없겠지만, 머리로라도 기억해 두세요. 아니면 그 몸에 머무르는 동안, 그 주제로 유지스와 대화를 나눠 보거나."

내 말에 성검펜스는 머뭇머뭇하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가 슬쩍 들어 올렸다.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 것인지, 그러기 싫다는 거부의 뜻으로 시선을 피한 것인지. 헷갈리는 반응이다.

어느 쪽이냐고 물으려는 순간.

"그 이후···, 저를 상대하는 악마 숭배 세력의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성검펜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에게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 봤자, 같은 자리만 빙빙 맴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겠지.

나는 성검펜스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그를 설득할 테고, 성검펜스는 자신이 틈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유지스는 죽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할 거다.

이 말인즉슨.

지금 화제를 바꿨다는 건,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자신의 주장을 바꾸지 않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언제 한번, 녀석이 유지스와 대화를 나눠 봤으면 좋겠는데···.'

제삼자인 내가 성검펜스의 탓이 아니라고 백번 말해 봐야 소용없다.

그보다 유지스가 한 번 말해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어떤 식으로요?"

나는 성검펜스가 무슨 의도로 화제를 바꾼 것인지 눈치챘지만, 그에 어울려주기로 했다.

대화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것보다 이게 낫다.

"그 이전에는 제물을 모아 악마를 소환하여, 악마의 힘으로 또다시 사람들을 죽여 제물을 모으는 것에 집중했다면···."

성검펜스가 무덤덤하게 건조한 설명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모습은 꾸며낸 거였다.

녀석은 담담하게, 개인적인 감정을 제외하고 설명하려 애썼다.

그게 훤히 보였다.

"저에 관한 악의적인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불운을 몰고 다니며, 가까이하는 자는 파멸을 면치 못할 거라는 내용의···."

그러한 노력이 무색하게도 표정과 눈빛에서, 떨리는 목소리에서. 전부 느껴졌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 두려웠는지.

직접 말은 하지 않았지만, 녀석이 유지스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이 녀석을 더 외롭게 했고, 자책하게 했으며, 비참하게 만들었을 테다.

1회차에서 유지스가 죽게 된 그 일련의 과정.

그것은 성검펜스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취약한 사람인지, 악숭 세력이 눈치채는 계기가 되었겠지.

2회차인 [성검의 주인]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악숭 세력은 휴마누스. 즉, 성검의 주인에 관해 온갖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소문의 내용만 달랐을 뿐. 성검펜스도 비슷한 일을 당한 모양이다.

어쩌면 그때 성검펜스의 멘탈을 터트리며 재미를 보았던 터라, 지금도 그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저와 함께 다니던···, 엘프의 죽음도. 그녀의 고향인 아르케 왕국에 닥친 재앙도. 세계수가 불탄 것 또한. 그 모든 것이 위리디아 님께서 저를 가까이하신 탓이라는 소문이 퍼져나갔습니다."

사람들도 머리가 있다면 아르케 왕국의 위기가 성검펜스의 탓이 아님을 알고 있으리라.

그와 동시에, 그 소문이 악숭 세력이 보낸 경고 메시지라는 것도 알아챘겠지.

그럼에도 소문은 널리 퍼져나갔고, 반박하며 성검펜스의 편을 들어주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고작해야 황제누스를 비롯한 제국의 주요 인사 몇몇과 룩스메아 교단 정도겠지.'

악숭이들이 퍼트린 건 소문으로 위장한 협박이었다.

'성검의 주인에게 협조한다면 무사하지 못할 거다. 그 본보기가 바로 아르케 왕국이다.'라는 내용이 담긴.

성검펜스를 고립시키기 위한 밑 작업이다.

'아무리 세계수의 인성이 미심쩍어도, 확실하게 글러 먹은 악숭 세력에 비할 바는 못 되는구나!'

어쩐지 턱이 좀 뻐근해졌다.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있었나 보다.

의식적으로 턱에서 힘을 빼며, 성검펜스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화전민 마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악마 숭배 세력의 영향이 미쳐, 마을의 모든 이들이 악마를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흑마법사를 비롯한 악숭 세력 소속 무력 집단. 혹은 정보 단체가 화전을 일구고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니 성검펜스가 말한 '화전민'은 그저 악마를 숭배할 뿐인, 무력 하나 없는 일반인에 불과할 거다.

하지만 아무리 무능력하더라도 악숭이는 악숭이었다.

성검펜스는 그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모두 죽였다.

그리고 성검펜스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힘없는 화전민들을 학살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목격자는 없었으니, 악마 숭배 세력에서 퍼트린 소문이었을 겁니다."

그 소문이 퍼졌을 때. 성검펜스는 해명했다고 한다. 그들은 악마를 숭배하고 있었노라고.

성검펜스는 자신의 해명이 소용없는 짓이었다고 말하였다.

"제가 해명을 하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새로운 소문이 꼬리처럼 따라붙었습니다."

이어진 소문은 성검펜스가 죄 없는 이들에게 악숭 혐의를 뒤집어씌운 후, 그들을 죽였다는 내용이었다.

미리 준비했다는 듯. 곧바로 해명을 뒤집어버리는 것으로 보아, 성검펜스가 화전민 악숭이를 죽였다는 걸 부정했어도 결과는 비슷했으리라.

'없는 목격자를 만들어 내어, 성검펜스가 자신의 죄를 숨기고자 거짓말했다는 소문을 퍼트렸겠지.'

반면에 성검펜스의 말을 증명해 줄 진짜 목격자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에 함께 억울해하며, 근거 없는 소리라고 주장해 줄 동료가 그에겐 없었다.

"그래도 황제누스···, 아. 그러니까 황제가 된 휴마누스와 룩스메아 교단은 소문을 덮으려고 했을 텐데요?"

"네. 하지만 헛수고에 불과했습니다."

"······."

나도 큰 희망을 품고 꺼낸 얘기는 아니었다.

그냥 답답해서 해 본 소리였다.

소문은 모두가 쉬쉬할수록 더욱 은밀하게 퍼져나가며, 그것을 억제하면 '찔리는 게 있나 봐?'라는 목소리가 튀어나오기 마련이니까.

그렇다고 비꼬는 사람들을 처벌할 수도 없다.

세상은 이미 흉흉하고, 사람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이런 시기에 강압적으로 통제하면, 겁에 질린 사람들이 '살기 위해' 악숭 세력을 따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성검펜스는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에 그토록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다른 이들이 자신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에는 그렇게 말하며 넘어갔다.

작은 눈 뭉치에서 시작된 소문은 어느덧 산사태를 일으켜, 걷잡을 수 없는 재해가 되었다.

성검의 주인이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를 보고 기분이 나빠, 그 자리에서 죽였다 카더라.

그러고 나서는 그자에게서 흑마력의 기운이 느껴졌노라 우겼다고 카더라.

알려지지만 않았지, 전에도 그런 식으로 죽인 사람들이 많다고 카더라.

사람들의 눈을 피해 죽인 이들까지 세면 도시 하나의 인구와 맞먹는다 카더라.

프라시더스 공작으로서 보여온 모습은 모두 위선이며, 그 본성은 추악한 악인이라 카더라. 피에 미친 살인귀라 카더라.

그런 식으로 온갖 '~카더라' 하는 얘기들이 성검펜스를 따라다녔다.

그 와중에도 그는 성검의 주인으로서 이 대륙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구해냈다.

"···그렇게 구해낸 이들 중, 한 소년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성검펜스의 말에 '소년이요?' 하고 물어보지 않았다.

어차피 가만히 기다리면 말을 해 줄 테니. 맞장구가 아닌 말 끊기에 불과했으므로.

"정말로···, 제가 소문에서 듣던 것처럼. 나쁜 사람인 것이냐고···.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어쩌다 그런 소문이 난 것이냐고···. 그런 물음을 던졌습니다. 그에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성검펜스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말아 상체를 움츠리며,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가 차마 말하지 못한, 이어질 말을 나는 알고 있다.

녀석은 어릴 적부터 자신은 추악한 본성을 지녔기에, 항상 그것을 숨기고 경계하라는 교육을 받았으니까.

그렇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걸 테다.

"소년은···,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어째서, 부정하지 않느냐고. 성검의 주인은 정의로운 영웅이었던 게 아니냐고···. 울부짖었습니다."

성검펜스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뒤늦게 나타난 부모가 소년을 데려가고, 악의적인 소문은 완전히 기정사실로 굳혀졌다는 얘기를 끝으로.

더 이상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녀석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몸만 어른인 소년은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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