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9회
73. 공작님과 아르케 왕국 (1)
나는 에드나를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러한 내 시선을 눈치챈 건 에드나가 아닌 아니마였다.
아니마는 에드나의 품에서 토닥임을 받으며, 나를 향해 으스대는 듯한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래서 나더러 뭐 어쩌라고?'
하나도 부럽지 않다고 말해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린아이가 보호자에게 애정을 받는 걸 자랑거리로 삼는다는 건, 그만큼 애정이 결핍되어 있다는 뜻이니까.
그걸 알면서도 괜히 티격태격하며 경쟁심을 부추길 필요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의 가치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
짧은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일단 웃고 보자.'였다.
나는 최대한 인자한 표정으로 아니마를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구나. 아니마는 에드나 씨의 귀여움을 독차지해서 참으로 기쁜가 보구나."
"으엑···."
아니마가 질겁하며 얼굴을 사정없이 구겼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썩은 표정이다.
괜히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옆집 꼬마에게 말을 붙였다가, 무시를 당한 듯한 뻘쭘함이 나를 덮쳤다.
'그래, 요즘 같은 시대에는 낯선 어른이 친한 척하면 일단 경계하고 봐야지. 안전이 제일이니까···.'
아니마의 마법 실력이면, 연약한 일반인에 불과한 나 같은 건 10초 내로 찜쪄먹고도 남았지만.
그런 사소한 사실은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남의 애한테 신경 쓸 시간에 우리 집 애한테 사탕 하나 더 물려주는 편이 이롭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제자리에 서서 이리저리 날개를 움직여보는 신성력 트리오에게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제가 한 말, 잘 생각해 보세요."
에드나가 입을 열어, 내 관심을 자신에게로 되돌렸다. 그에 따라 내 시선 또한 자연스레 그녀를 향했다.
에드나는 진지하다 못해 엄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마의 등장으로 흐지부지된 줄 알았는데, 에드나는 그 주제에 관해 더 얘기하고 싶은 모양이다.
"사람을 사귀는 건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지, 누군가 등 떠밀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거. 알만한 분이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네요."
"때로는 등을 떠밀어주는 손길도 필요합니다. 에드나 씨도 그걸 아시니까 아니마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등 떠밀어 준 거잖습니까?"
"그래도 선우 씨만큼 세세하게 관여하지는 않았어요."
반박을 하려면 할 수 있었다.
자발적 아기인 아니마와 달리, 인간관계에 있어서 세르펜스는 진짜 영유아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아니지? 진짜 영유아는 한 공간에 모아 놓고 적당히 장난감을 쥐여주면, 알아서 함께 놀며 친해지잖아?'
그러나 세르펜스는 그런 게 불가능하다.
앞에서는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뒤로는 신경전을 벌이는 귀족 사회에 익숙해진 탓이다.
그로 인해 녀석은 솔직하지 못했고, 그런 점에서 영유아만 못했다.
그러니 에드나의 말에 반박하려면 못 할 것도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실제로 내가 세르펜스의 교우 관계에 과할 정도로 참견한 건 사실이니까.'
누구누구랑 친하게 지내라는 얘기는 물론이거니와.
녀석이 한창 휴마누스를 불편해했을 때, 정히 가깝게 지내는 게 힘들다면 차라리 단호하게 밀어내라는 식의 조언도 했었다.
우리 아이 자립심, 과연 이대로도 괜찮은 건가?
살짝 걱정되기 시작했다.
"끄응, 듣고 보니 조금 과했던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정도가 아니에요. 선우 씨가 평생 세르펜스 님 옆에 붙어 다닐 것도 아니잖아요."
에드나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정말로 세르펜스가 내 친자식이라서 독립을 앞두고 있다면 동의했을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간다는 가정하에, 녀석과 떨어지면 아쉬운 건 나다.
"제가 일단 그 녀석의 보좌관인지라, 계속 붙어 다녀야 하는데···. 그리고 전 대륙을 통틀어 이보다 좋은 직장도 없거든요. 에드나 씨도 공작가에서 월급과 각종 복지 혜택을 받으니까 아시잖아요."
"그, 그건 그래요. 할 수만 있다면 평생직장으로 삼고 싶을 정도죠."
에드나는 어른스럽게 나를 훈계하려 했으나, 어른이기에 돈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
엘로윈 보육원의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나는 짊어진 게 많은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 주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으나 아니마가 내 손을 쳐내는 바람에 미수로 그쳤다.
그로 인해 '짝' 하는 소리가 울렸고, 에드나가 '헉!' 하고 헛숨을 집어삼키며 냉정함을 되찾았다.
"하마터면 깜박 넘어갈 뻔했잖아요!"
"에이, 그냥 넘어오시지."
"됐어요! 어쨌든 선우 씨가 보좌관이면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되죠. 제국의 단둘뿐인 공작 중 한 명의 배후에서 누구를 가까이하고 누구를 멀리해라. 그러는 거 완전···."
"흑막 같네요."
"······."
에드나가 차갑다 못해 매몰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잘 아는 양반이 왜 그러고 사냐고 따지는 듯한 얼굴이다.
나는 괜스레 멋쩍은 기분을 느끼며 아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런 나를 보며 에드나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웃고만 있지 말고, 진짜 진지하게 생각해 보세요. 제가 오늘 이런 얘기를 한 건, 세르펜스 님이 아니라 선우 씨를 생각해서 그런 거니까."
"저를요?"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예전의 제 모습이 떠올라서 그래요. 보육원 운영에 도움이 되겠답시고, 밤잠을 줄여가며 마법 스크롤과 시약을 제작하다가 쓰러진 적이 있거든요. 덤으로 작은 폭발 사고도 있었고···."
그렇게 말하며 에드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마법과 관련된 물품을 제작하다 쓰러지는 바람에 폭발 사고가 생겼다니, 정말 위험천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아니마가 에드나를 꽉 껴안으며, 칭얼거리는 목소리로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앙알댔다.
"선우 씨는 저처럼 돈 문제로 고생할 일은 없을 테지만···."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얘기죠?"
"네. 선우 씨는 개인 시간도 거의 없고, 생기더라도 이래저래 걱정거리를 끌어안고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는 오래 못 버텨요."
에드나가 재차 얼굴을 굳히며 경고했다.
너무 세르펜스에게 매여있지 말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라는 말이었다.
'나름대로 워라밸을 잘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에드나가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아닌가 보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일과 휴식, 양쪽 모두를 세르펜스와 함께 하는 시점에서 글러 먹었는지도 모른다.
이래서야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는 아이와 함께 재택근무를 하는 꼴이지 않은가.
꿀 같은 점심시간에 아이의 밥을 챙겨야 한다면, 그건 휴식이 아니라 또 다른 업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악숭이 때문이라도 세르펜스와 떨어지는 건 너무 위험하고···."
나는 정말 내 건강을 챙기면서 세르펜스도 잘 키워보고 싶은데, 세상이 도와주지 않는 기분이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가정 대다수가 이러할 테다.
"저와 아니마는 마탑에서 생활할 적에 계속 붙어 다녔지만, 항상 그랬던 건 아니에요. 각자 연구에 매진할 때도 있었고, 제가 커피를 마시는 시간만큼은 존중해 주기로 약속했거든요."
에드나가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자신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라는 걸 자랑하려는 건 아닐 테니, 개인 시간을 가지라는 말의 연장선이겠지.
급한 성격의 소유자인 에드나가 느릿하게 커피를 내려 마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냥 카페인 중독자라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육아와 마법 연구에서 벗어나, 정신적 휴식과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한 의식 비스름한 거였나 보다.
"꼭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을 필요는 없어요. 책 한 권을 읽어도 그러는 동안 옆에서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그 시간은 온전히 선우 씨의 것이잖아요?"
과연 경험자의 조언은 귀 기울일 만했다.
세상이 도와주지 않아도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아내는 삶의 지혜가 묻어났다.
너무 존경스러운 나머지 '누나' 소리가 턱 끝까지 올라왔지만 꾹 삼켰다.
이 이상 족보가 꼬이면 감당이 안 된다.
'아니마가 나를 적대시할까 봐, 그것도 걱정이 되고···.'
지금도 아니마는 에드나의 품에 안긴 채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베일을 바라보던 세르펜스의 눈빛이 아니마의 분홍색 눈에서도 보였다.
"저는 에드나 씨에게 키워질 생각이 없습니다."
"저도 선우 씨를 키울 생각이 없어요!"
에드나가 불에 데기라도 한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러고는 조언 한번 해 줬다가 별말을 다 듣는다며 어이없어했다.
나는 그저 아니마에게 내가 라이벌이 아니라고 해명했을 뿐이건만.
에드나는 그게 자신을 향한 말이라고 착각한 모양이다.
"아무튼 오늘 말씀하신 거, 생각해 볼게요."
"생각만 하지 말고요."
"넵, 실천에 옮기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노력만 하지도 말고요."
"···네."
어쩐지 혼나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아이를 위해 마지못해 참가한 학부모 모임에서 육아 베테랑 선배를 만나, 온갖 비법들을 전해 받고 돌아온 듯한 느낌이다.
"저, 에드나 씨가 권해 주신다면 계모임도 가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제가 싫어요."
내 딴에는 신뢰를 가득 눌러 담아서 한 말이었는데, 에드나가 자세히 들어볼 것도 없다는 듯 정색했다.
계모임이 조직되기 위해서 얼마나 큰 신뢰가 필요한지 모르는 까닭일 테다.
문화 차이라는 건 알지만, 칼 같은 거부 의사 표현에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래서 시무룩해져 있는데 어디선가 눈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그러니까, 세르펜스? 혹시 너 선우가 친하게 지내라는 사람이랑만 친하게 지내고 있는 거야?"
휴마누스였다.
그러고 보니 나와 에드나는 개방된 장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주위가 조용해진 탓에 그만 깜박해 버리고 말았다.
유지스와 푸로르는 주변을 순찰하러 갔고.
윈스톤은 구석에서 혼자 검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천막에 들어가 버렸는지 지금은 안 보였다.
그러니 나와 에드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건 세르펜스, 휴마누스, 리에나, 아니마뿐이다.
휴마누스와 아니마는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리에나는 조금 애매하다.
'딱히 문제 되는 내용은 없었지···?'
나는 재빨리 지난 대화 내용을 회상했다.
주로 내가 세르펜스를 애 취급하고 교우 관계에 참견하느라, 개인 시간을 엿 바꿔 먹었다는 내용뿐이었다.
"선우는 신의 사자로, 여차하면 이 대륙을 배신할 사람과 절대 그럴 리 없는 사람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폐위된 전 바스툴 국왕과 최근 왕위에 오른 현 바스툴 국왕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그렇기에 그 조언을 받아들여 참고할 뿐이지, 모든 판단을 선우에게 맡기는 건 아닙니다."
세르펜스가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내가 친하게 지내라고 등을 떠밀어 줘도, 성검 일행과 거리를 두고 있으니까.
"아···, 역시 그렇겠지? 내가 너무 이상한 질문을 했네. 미안."
"아닙니다."
세르펜스가 자신에게 사과하는 휴마누스에게 잠시 시선을 주었다가, 고개를 돌려 나와 에드나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표정에서 분하다는 감정이 설핏 스쳐 지나갔다.
'설마하니 에드나가 나와 자신을 떼어놓으려 한다고 오해한 건 아니겠···지?'
긴장감에 온몸의 털이 쭈뼛 선 그 순간.
세르펜스가 말없이 에드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며, 느릿하게 눈을 한 번 깜박였다.
적의가 아닌 감사의 마음이 담긴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