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33화 (633/925)

633회

75. 공작님과 백부님 (1)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 제국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에 대해 말하던 중년인은 이미 식당을 떠난 뒤였다.

하지만 상관없다.

'진위가 불확실한 소문을 쫓아다니는 건 비효율적이니까.'

우리는 제국 수도에서 일어난 일에 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단체를 하나 알고 있다.

그 단체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룩스메아 교단이다.

악숭이가 사건을 일으키고 나면, 반드시 그 장소에 찾아가서 뒤처리를 하는 게 교단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더군다나 신성 루멘 제국의 수도에서 일어난 일이라 하니, 당연히 파악하고 있을 터.

번거롭게 발품을 팔며 정보를 모을 것 없이, 우리는 곧바로 이 지역의 신전을 찾아갔다.

그리고 신전의 대표인 주교를 만나서 사건에 관해 질문했다.

"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공문을 받긴 했죠."

어째서인지 주교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무척이나 수상쩍은 반응이다.

"크흠! 인명 피해가 없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인데, 용케도 알고 오셨군요?"

의심 가득한 내 시선을 느낀 건지, 주교가 헛기침하며 사족을 덧붙였다.

미심쩍음이 추가되었다. 누가 보아도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한 모습이다.

"인명 피해 없이 악마 숭배 세력의 테러 행위를 막았다는 소식이 널리 알려지면, 사람들이 불안을 달래며 안도할 수 있을 텐데···. 어째서 교단은 그 일을 공표하지 않은 겁니까?"

세르펜스는 주교를 추궁하지 않았다.

대신에 '아이, 궁금하다~!'라고 말하는 듯한 순진무구한 표정을 꾸며내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리고 주교가 입을 열 때까지 그와 시선을 맞추고 눈을 깜박거렸다.

바른대로 말하라며 멱살을 틀어쥐는 것보다 더한 압박감에, 주교의 이마에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혔다.

"그, 그것이···. 피해자분께서 알리지 말아 달라고 하셔서···."

"예? 어째서입니까?"

세르펜스의 고개가 반대 방향으로 갸우뚱 기울어졌다.

성검 일행도 있는데 저런 연기를 참 잘도 하는구나 싶다.

'아, 상관없나?'

이미 세르펜스는 성검 일행 앞에서 '저는 백부님의 조카' 발언을 한 전적이 있다.

내게 머리를 쓰다듬어지며 헤실헤실 웃기도 했고.

그러니 저런 순진무구한 모습을 보인다고 하여도, 상대방으로부터 정보를 캐내기 위한 고도의 연기라는 의심은 받지 않을 테다.

그냥 어린애 특유의 호기심 가득한 모습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렇게 스무 살을 갖다 버리고 살면 좋아? 만족해?'

나는 복잡한 심경으로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세르펜스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어린아이처럼 때 묻지 않은 순진함을 지닌 순수한 사람' 연기를 이어나갔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 가족이 걱정할지도 모른다고···."

주교는 그리 말하며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세르펜스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완전히 신경을 끌 수는 없었는지, 식은땀을 닦아내는 중간중간 곁눈질로 세르펜스의 눈치를 살폈다.

무언가 이상하다.

교단이 대의보다 개인의 부탁을 우선시하여, 소문을 내지 않은 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까지 숨겨야 할까?

만약 그래야 한다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혹시 그 '가족'이 우리 중에 있는 건가요?"

유지스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발언했다.

땀을 닦아내는 주교의 손이 바빠졌다. 유지스의 말이 정답이라는 증거다.

"잠깐만. 우리 중 제국 수도에 가족이 있는 사람은 휴마누스랑 세르펜스 나리 말고는 없지 않아?"

"시온의 동생도 세르펜스의 저택에서 집사로 일하고 있어요."

"아! 그래, 그래. 금발에 똘똘하게 생긴 걔 말이지? 잠깐 깜박했네."

내가 시온이 아닌 선우라는 게 완전히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 푸로르가 '시온'의 가족도 수도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유지스의 발 빠른 대처 덕에 작은 해프닝으로 끝났고, 주교는 아무런 의심 없이 넘어갔다.

'어차피 교황은 내가 천계에서 온 천사의 영혼이라 믿고 있으니, 의심하든 말든 별로 상관없지만.'

지금 중요한 건 내 정체가 아니다.

"아, 시온 님의 가족분도 그곳에···."

주교가 무심코 흘린 한마디로 우리는 테러가 일어난 장소를 구체화할 수 있었다.

이 빌어먹을 악숭이 놈들이 세르펜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프라시더스 공작저를 공격한 것이다.

세르펜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후우···. 눈치채셨다시피, 악마 숭배 세력이 테러를 자행한 장소는 프라시더스 공작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인명 피해는 없으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들어주세요."

주교가 한숨을 푹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운을 뗐다.

"제가 받은 문서에 따르자면···. 에일리히 님께서 마물의 기척을 눈치채셨을 때는 이미, 거대한 바위가 지상으로 추락하는 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분을 비롯하여 제국의 수도에는 신성력 보유자들이 많으니, 마물은 필시 매우 높은 고도로 날아서 저택까지 도달한 거겠지요. 그리고 정확한 위치에 바위를 떨어뜨리기 위해 고도를 낮춘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해당 사건에 관해 말해주기 꺼릴 때는 언제고.

막상 입을 열자 발동이 걸렸는지, 주교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추론까지 늘어놓으며 자세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뛰어난 이단 심문관이셨던 에일리히 님께서는 재빨리 결계를 펼쳐, 공작저 본관으로 떨어지는 바위의 궤도를 바꾸셨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큰 참사를 피할 수 있었던 거죠."

남의 입을 통해 아는 사람의 무용담을 듣는 건 꽤 오묘한 기분이다.

내가 칭찬받은 것도 아닌데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세르펜스는 내 아이나 다름없으니까, 세르펜스의 삼촌이면 내게 형 같은 존재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니 좀 더 으스대도 될 것 같다.

"하지만 혼란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겠죠. 그 틈을 타 악마 숭배자 몇몇이 저택에 침입했고, 바위를 떨어뜨린 마물 또한 지상으로 내려와 공격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저택의 기사들이 워낙 잘 훈련되기도 했고, 마침 근처에 계시던 알타르 이단 심문관님께서도 가세하신 덕분에 빠르게 일이 마무리되었다고 해요."

"···제 백부님께서는 괜찮으십니까?"

세르펜스가 조심스럽게 에일리히의 안부를 물었다.

에일리히의 활약상을 칭송하던 주교가 이번에는 그를 언급하지 않자, 덜컥 불안해졌나 보다.

"바위가 워낙 높은 곳에서 떨어진지라. 그것을 급하게 막아내는 과정에서 내상을 입어, 저택에 침입한 악마 숭배자들과의 싸움에서는 활약하지 못했지만, 교단에서 신관을 보내어 치료해 드렸다고 하니 아무 문제 없으실 거예요."

"으음···. 그렇습니까?"

"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더욱이나 에일리히 님께서도 신성력 보유자이시잖아요."

주교가 안쓰럽다는 시선으로 세르펜스를 바라보며 위로를 건넸다.

어쨌거나 큰 피해는 없었고, 에일리히도 잘 회복되었다니까 불행 중 다행이다.

'제온이야 뭐, 전투직도 아니니 안전한 곳에 대피해 있었겠지.'

정황 파악도 끝났겠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를 안내받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 룸메이트는 세르펜스다.

녀석과 같은 방을 쓰는 건 이제 너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려서, 일일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세르펜스를 따라서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려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것은 문턱에 발을 들이민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둘씩이나.

"두 사람은 왜 따라 들어오려는 겁니까?"

"세르펜스가 걱정되어서요."

"나도."

내 물음에 유지스와 휴마누스가 차례로 대답했다.

그런 두 사람의 너머. 마주 보는 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던 윈스톤이 조용히 문을 닫는 모습이 보인다.

- 탁.

유지스와 휴마누스. 그 뒤를 이어 윈스톤이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배정된 방은 2인실이라고는 하나 공작저에 있는 내 방과 엇비슷한 넓이였다. 이런 방에 다섯 명이나 되는 인원이 들어와 있으니 더 비좁아 보였다.

'어차피 윈스톤은 바위처럼 묵묵히 있다가 돌아갈 것 같은데. 그럴 거면 지금 돌아가나 이따가 돌아가나. 그게 그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떠오르긴 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놓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세르펜스가 걱정되어 따라온 걸 테니까. 방이 좁다는 이유로 쫓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이 방에 모인 이들은 전부 세르펜스에게 세례명을 들었을 정도로, 녀석이 신뢰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걱정과 위로를 받는다면 녀석의 기분도 좋아질 테다.

"저는 괜찮습니다. 여러분도 인명 피해가 없었다는 얘기를 들으셨잖습니까?"

세르펜스가 곤혹스럽다는 표정으로 세 사람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아, 그래?' 하며 돌아가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눈치 없는 휴마누스조차도, 방을 나가기 위해 문을 여는 대신 입을 열었다.

"그래도 가족이 있는 집에 악마 숭배자들이 들이닥쳤다는데, 아무리 일이 잘 해결됐어도 걱정되는 게 당연하잖아."

"가족이라고는 하나 저와 백부님은 함께 보낸 시간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전까지는 교단의 규율에 따라 남남으로 지냈고, 제 가족사에 관한 건···. 다들 아시잖습니까?"

"알기는 아는데···."

휴마누스가 말끝을 흐리며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세르펜스의 가족사에 관한 얘기에 말문이 막혔나 보다.

"하지만 그런 거치고는 세르펜스의 안색이 너무 어두워 보이는걸요?"

유지스가 세르펜스의 안색을 지적하자, 녀석이 당황스레 제 얼굴을 더듬었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싶더니 유지스에게 방음을 부탁했다.

정령이 소환되어 힘을 발휘하니 방 안에 가벼운 바람이 일었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황상, 이 사건을 알리지 말아 달라고 한 피해자는 백부님이실 겁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가족이 걱정할까 봐···, 였죠?"

"네. 그런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째서 그분께서는 제가 자신을 걱정하리라 여기신 건지. 그리고 지금 제가 그분을 걱정하고 있긴 한 건지···."

누가 봐도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며, 아까도 걱정스레 에일리히의 안위를 물어본 주제에.

세르펜스는 잘 모르겠다며 헛소리를 해댔다.

"내가 보기에는 쟤가 걱정하고 있는 거로 보이는데, 아니야?"

"아니지 않고, 맞아요."

"제가 보기에도 세르펜스는 에일리히 님을 걱정하고 계신 게 틀림없어요."

휴마누스의 물음에 나와 유지스가 나란히 대답했다.

덧붙여 윈스톤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음···. 다행입니다."

자신이 에일리히를 걱정하지 못할까 봐. 그래서 그의 기대를 배반하는 꼴이 될까 불안해하고 있었나 보다.

어지간히도 자신의 감정에 확신이 없는가 보다.

그런 불안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상대방을 아무래도 상관없는 남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증거나 다름없거늘.

세르펜스가 한숨처럼 숨을 길게 내뱉었다.

이제야 불안을 걷어내고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녀석은 냉정함을 되찾고, 상황을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백부님께서 이번 사건을 조용히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셨다고는 하나, 교단 측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그 부탁을 받아들인 건 아닐 겁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