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3회
75. 공작님과 백부님 (11)
아이가 있었냐는 오해를 받은 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세르펜스를 어떻게 훈육해야 할지 한창 고민하던 시기.
녀석에게 아이가 생기면 내 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가, 똑같은 오해를 산 적이 있다.
하지만 두 번째 들었다고 해서 덜 억울해지는 건 아니다.
"왜 제게 아이가 있다는 걸 전제로 깔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우리 가족 구성원은 부모님과 누나, 저. 이렇게 넷이 끝입니다! 아이도 없고 결혼도 안 했으며, 고양이도 안 키웠어요!"
"···고양이 대신 세르펜스 님을 키우는 거냐는 의심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에드나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정말 그러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사람을 고양이 대용으로 키운다는 발상을 떠올렸다는 게 바로 그 증거다.
보통 사람은 고양이를 안 키웠다는 말을 듣고,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한다.
"아무튼 뭔가 작은 오해가 있었나 보네요."
내 해명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미심쩍은 눈빛을 거두지 않던 세르펜스와는 달리.
에드나는 자신이 오해했음을 순순히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저는 그저 선우 씨가 세르펜스 님께 집착하는 이유가 '고향에 아이가 있기 때문'이었냐는 뜻으로 한 질문이었는데···."
"왜 제가 세르펜스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걸 전제로 깔고 말씀하시는 거죠?"
"전제가 아니라 사실이니까?"
"그런 적 없습니다."
"양심에 손을 얹고, 맹세코 없어요?"
에드나가 시키는 대로, 나는 양심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그래도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세르펜스가 제게 집착을 하면 했지, 제가 세르펜스에게 집착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녀석이 제 앞으로 온 청혼서를 몰래 처분했다는 얘기, 에드나 씨도 같이 들으셨잖아요."
"……."
"아! 그래도 녀석이 진짜 제게 집착한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원래 아이들은 어른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존재잖아요? 제게 가정이 생기면, 자신은 뒷전으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 먹고 경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 세상은 연약한 어린아이 혼자서 살아남기 힘드니, 일종의 본능이자 생존 전략인 셈이죠."
"연약···한···?"
에드나가 연약하다는 단어에 꽂혀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사람들은 무력만 가지고 사람의 강함과 약함을 판가름하는 건지 모르겠다. 진정한 강함은 마음에서 오는 법이거늘.
"선우 씨의 눈에는···. 네, 그렇게 보인다면야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아무튼 선우 씨가 세르펜스 님을 연약한 어린아이로 보고 계신다니, 그것을 전제로 말씀드릴게요."
"네, 하세요."
"선우 씨 말씀대로 아이가 보호자에게 본능적으로 매달리는 건 자연의 이치가 맞아요. 그런데 꼭 아이만 보호자에게 집착하라는 법은 없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에드나의 표정이 제법 진지했다.
아무리 봐도 나랑 농담 따먹기나 하자고 이러는 건 아닌 듯하다.
그렇다는 것인즉, 진짜로 에드나의 눈에는 내가 세르펜스에게 집착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뜻이다.
나는 좀 더 착실하게 생각에 잠겼다.
'보호자가 아이에게 집착하는 건 어떨 때지?'
아이를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며, 자신이 못다 한 무언가를 대신 이뤄주기를 바랄 때.
혹은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도구 취급할 때.
그도 아니라면 심적으로 의존할 대상이 아이뿐일 때.
그 밖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으나, 당장 떠오르는 건 이 세 가지 정도다.
'앞의 두 가지는 나랑 상관없으니까, 가능성이 있다면 세 번째인데···.'
이 부분은 조금 찔리는 면이 없잖아 있다.
영문도 모르고 낯선 세상에 홀로 똑 떨어져서 한창 혼란스러웠을 때,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세르펜스가 유일했으니까.
'그래도 지금은 세르펜스 말고도 의지할 사람이 많잖아?'
지금도 가장 의지하는 사람은 여전히 세르펜스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녀석과 쌓아온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급류에 휩쓸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손에 닿는 대로 붙잡을 수밖에 없었던 과거와는 다르다.
"가끔 선우 씨는 세르펜스 님을 잘 키워내는 것만이 일생일대의 숙명인 사람처럼 보이는 거 아세요? 그래서 저는 고향에 두고 온 아이 대신, 세르펜스 님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고 계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다니···."
에드나의 목소리가 상념을 끊고 귓속에 파고들었다.
고향에 두고 온 아이 어쩌고 하는 얘기는 흘려들어도 상관없지만, 그 앞의 말은 상당히 신경 쓰였다.
"정말 제가 그렇게까지 세르펜스에게 집착하는 거로 보여요?"
"그래도 선우 씨는 세르펜스 님을 보좌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게 된 것이라 했으니, 그것을 고려하면 이해 못 할 수준은 아니에요."
에드나가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심각한 건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말했다.
하나 그 말을 뒤집어보면 전혀 다른 뜻이 된다.
'신이 내린 사명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면, 내가 세르펜스한테 엄청나게 연연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소리잖아?!'
사명이라든가, 숙명이라든가.
그런 얘기를 듣다 보니 어렴풋이 손가락 끝에 무언가가 걸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머릿속을 떠도는 그 무언가를 재빨리 낚아챘고, 그 순간 어떤 깨달음이 찾아왔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미루고 이곳에 남기로 한 것이니만큼. 나도 모르게 세르펜스를 더 훌륭하게 키워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던 게 아닐까?'
책임감 뒤에 숨어있던, 나조차 모르고 넘겼던 내 마음을 찾아냈다.
이곳에 남기로 결심한 뒤.
그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하고자, 예전보다 더 세르펜스를 키우는 일에 매진했던 것 같다.
'어차피 이곳에 남기로 한 거, 좀 더 천천히. 느긋하게 해도 되는데···.'
세르펜스가 성검 일행과 하루빨리 친해지길 바라며 안달 낸 것만 해도 그러하다.
녀석은 원래 낯가림이 많고 마음을 열기까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아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녀석이 성검 일행 앞에서 대외 버전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답답해했다.
서로 이름으로 부른다거나. 그들 앞에서 어린애 같은 행동을 은근슬쩍 드러내는 것만 해도, 세르펜스에겐 따라가기 벅찬 속도였을 터.
그렇게 숨이 턱에 닿도록 힘겹게 달리고 있는 녀석을 향해, 나는 좀 더 빨리 달려줄 수 없냐고 종용하려 들었다.
'만약 그때 에드나가 나를 말려주지 않았더라면, 결국 행동으로 옮겼을 수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정말로 내가 그런 짓을 했다면, 세르펜스는 자신이 내 기대에 못 미쳤다며 자책했을 테다.
내가 녀석을 타박할 생각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무의식적인 강박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다.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의 숨통을 조이고 만다.
세르펜스는 아직 어려서, 그것조차 자신을 향한 관심으로 받아들이며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큰 일이다.
어렸을 때 잘못된 가치관이 한번 형성되면 바로잡기 힘드니까.
'그렇다고 세르펜스를 설렁설렁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완전히 관심을 끊을 수도 없고···.'
결국 중요한 건 내 마음가짐이다.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녀석의 성장을 지켜봐 줘야 한···.
"또 육아 관련 고민을 하고 있죠?"
에드나가 내 눈앞에 대고 활짝 펼친 손바닥을 흔들며, 또다시 내 생각 사이로 끼어들었다.
족집게처럼 정확한 지적에 나도 모르게 움찔 몸을 들썩였다.
"어떻게 아셨어요?"
"굳이 '어떻게'라는 물음이 필요할까요?"
어차피 대부분의 시간을 육아 문제로 고민하는 것에 쓰고 있으면서, 그딴 걸 묻느냐는 뜻이다.
듣고 보니 정말 그러해서 머쓱해졌다.
통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 '너 지금 집이지?'라는 물음을 받고, '헉! 어떻게 알았어?!'라며 놀란 꼴이다.
그렇게 내가 무안함 때문에 잠시 말을 잃은 사이.
돌연 에드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나저나 선우 씨가 고향으로 돌아가면 세르펜스 님이 많이 슬퍼하시겠어요. 아니···, 그냥 슬퍼하는 정도가 아니려나요?"
"예? 뭐, 그렇긴 하겠지만···."
"저만 해도 선우 씨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허전할 것 같은데, 세르펜스 님은 더 하겠죠. 선우 씨도 걱정이 참 많으시겠어요."
"저기요, 에드나 씨? 왜 제가 머지않아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것을 전제로 말씀하시는 거죠?"
오늘따라 에드나가 무언가를 전제로 까는 일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아까와 비슷한 문장구조로 되받아치자, 에드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돌아가시려고요?"
"에드나 씨는 제가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 가족들이 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게다가 아까 집사님도 선우 씨가 언제 돌아갈지 모른다고 말씀하시길래···. 악마 숭배 세력 문제를 해결하거나, 선우 씨 기준에서 세르펜스 님이 어른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신다는 줄 알았어요."
에드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리둥절해 했다.
일반적인 반응이다. 내가 에드나였어도 똑같이 놀랐을 거다.
"가긴 갈 겁니다. 하지만 제 할 일을 끝냈다고 뒤도 안 보고 돌아가기에는 정이 너무 많이 들어서요. 그리고 참 다행스럽게도, 언제 돌아가든 제가 이곳으로 보내졌던 시간대로 돌아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곳에서 시온으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나서 돌아갈 생각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힘든 결정이셨을 텐데, 용케도 그런 마음이 드셨네요."
"이곳에서 만난 인연들이 너무 소중해서, 돌아가면 미련으로 남을 게 뻔하니 어쩔 수 없죠. 세르펜스가 장성해서 가족을 꾸리는 모습도 보고 싶고···."
과연 세르펜스가 무사히 가정을 이룰 수 있을지, 조금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녀석이 못 미덥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비록 어린 시절 학대를 받으며 자라오긴 했으나, 그것을 대물림할 만큼 녀석은 모질지 못하다.
그리고 나 또한 녀석을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문제는 세르펜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느냐다.
결혼을 하기 싫어서라면 모를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갇혀서, 발을 내디딜 엄두조차 나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다면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하지만 내가 곁에서 머물며, 아이를 함께 키워주겠다고 한다면 세르펜스도 안심할 수 있겠지.'
덤으로 나는 세르펜스를 똑 닮은 아기 천사들과 노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 천사들의 모습을 상상하자 흐뭇한 미소가 절로 입가에 걸렸다.
"희생정신으로 이곳에 오래 머물기로 마음 먹으신 줄 알았는데, 표정을 보아하니 달리 사심이 있었나 보네요."
"어허! 사심이라니요? 제 순수한 마음을 그런 단어로 매도하지 말아 주세요! 에드나 씨도 아니마 씨를 똑 닮은 아기가 눈앞에서 어른거리면 못 떠날 거면서!"
"그, 그건 그래요. 적어도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잘 사는 모습은 봐야···. 아, 하지만 그럼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아무래도 에드나는 아니마의 집안 핏줄이 끊길 때까지 살고 싶은가 보다.
정말 중증이라 아니 말할 수 없다.
[성검의 주인] 속 아니마는 잘못 생각했다.
악마에게 몸을 뺏긴 에드나의 죽여 달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따를 게 아니라, 그녀를 향해 자신을 닮은 아기가 보고 싶지 않은 거냐고 설득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에드나가 악마를 물리치고 몸을 되찾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것이 정녕 가능한 일인지는 몰라도, 지금 에드나의 모습을 보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