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3회
75. 공작님과 백부님 (31)
알타르가 자신을 딱하다는 시선으로 쳐다보든 말든.
에일리히는 그에 아랑곳하지도, 나를 질투하지도 않았다.
그저 세르펜스만큼이나 열의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다.
'조카가 만든 간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보다, 손수 만든 간식을 조카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거겠지.'
두 명의 프라시더스를 위해서라도 빨리 달고나를 만들어야겠다.
마음이 급해졌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요리의 시작은 재료 세팅이다. 간단한 군것질거리를 만들어도 그 이치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국자에 설탕을 담기 전, 쟁반에 설탕을 넉넉히 붓고 넓게 폈다. 식소다가 담긴 통의 뚜껑도 미리 열어놨다.
그리고 알코올이 든 램프 심지에 불을 붙였다.
이로써 사전 준비가 끝났다.
"우선 설탕을 국자에 담아서 녹여야 하는데, 그 양은 국자의 2/3 정도가 적당합니다. 욕심내서 너무 많이 담으면 넘치니까 주의하세요."
나는 설명을 하며 국자에 설탕을 담고, 불 위에 올렸다.
그리고 나무 막대로 국자 가장자리 부분을 살살 긁듯이 섞다 보니, 설탕이 녹으며 몽글몽글 뭉쳤다.
이제부터는 그냥 휘적휘적 젓기만 하면 된다.
설탕이 캐러멜 반응을 일으키며 갈색빛을 띠었다. 벌써 굉장한 단내가 풍기기 시작했다.
"오···."
탄성이 들려온 방향을 힐끔 곁눈질로 살폈다.
세르펜스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한 손으로 입을 가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가, 자신이 흘린 소리에 깜짝 놀랐나 보다.
나는 시선을 다시 국자로 옮겼다.
잠깐 사이에 덩어리 하나 없이 설탕이 완전히 녹았다.
"지금이 바로 식소다를 넣는 타이밍입니다. 너무 적게 넣으면 제대로 안 부풀고 너무 많이 넣으면 쓴맛이 나니까, 양은 느낌적인 느낌으로 알아서 잘 넣어주세요."
"무슨 설명이···."
내 설명에 마법사 에드나가 아연하게 중얼거렸다.
마법 시약이든 스크롤이든, 재료의 양을 정확히 계량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느낌적인 느낌으로 알아서 넣으라는 말이 다소 곤혹스럽게 들린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에드나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이제부터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식소다를 넣고 섞자, 짙은 갈색빛이 돌던 액체화된 설탕이 순식간에 엷은 갈색으로 변했다.
나는 국자를 불 위에서 치우고 내용물을 빠르게 휘저었다.
이제야 달고나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그것이 봉긋하게 부풀어 오르며, 색도 더 뽀얘졌다.
나무 막대 끝이 살짝 묵직해진 느낌이 들었다.
완벽하게 휘핑 된 생크림처럼 막대가 지나간 자리에 그 궤적이 남았다.
"이제 이걸 아까 펴 놓은 설탕 위에 툭 털어내듯 붓고, 국자에 남은 건 나무 막대로 싹싹 긁어내면 됩니다."
국자 안 내용물을 비워낸 뒤.
나는 달고나용 누름판 대신 1호 사이즈 케이크 원형 틀 밑면에 설탕을 묻혔다.
그러고 나서 달고나를 꾹 눌렀다.
'영 느낌이 안 살지만 어쩌겠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살아야지.'
충동적으로 계획한 거라서 오늘은 어쩔 수 없다지만.
세르펜스가 달고나를 마음에 들어 하면, 아예 달고나용 도구들을 주문 제작해 버릴까 싶다.
"납작하게 누르고 살짝 식힌 뒤. 아직 말랑말랑할 때, 쿠키 커터로 살짝 찍어서 자국만 새기면···. 짠! 끝입니다!"
마무리로 베이킹용 스크래퍼를 이용해 달고나 밑부분을 긁듯이 쟁반에서 떼어냈다.
어렸을 때 국자를 태워가며 만들어 먹던 실력은 어디 가지 않고, 완벽한 달고나를 만들어냈다.
뿌듯한 마음에 어깨가 절로 으쓱여진다.
"쿠키 커터로 자국을 새긴 이유가 있나요?"
유지스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질문했다.
쿠키 커터는 '커터'라는 명칭에 걸맞게, 반죽을 그 모양대로 자르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다.
그런데 살짝 자국만 내고 끝이라고 하니 의문이 들었나 보다.
"당연히 있고 말고요! 달고나는 바늘로 선을 따라 콕콕 찔러서, 모양대로 깔끔하게 떼어내는 재미로 먹는 겁니다. 원래는 성공하면 하나 더 만들어 주는 게 룰인데 오늘은 각자 만들어 먹는 거니까, 그건 의미가 없을 것 같고···. 의견 있는 사람?"
"직접 만들지 말고 서로 만들어주는 거로 해요! 그래서 성공하면 소원 들어주기는 어때요? 이 자리에서 당장 해줄 수 있는 간단한 거로."
유지스가 다시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의견을 제시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수작이다.
그녀는 세르펜스에게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겠다는 약속 증서'를 받고 싶어했으나, 휴마누스의 훼방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 이 기회에 욕심을 채우려는 거겠지.'
하지만 소원이 '지금 이 자리에서 해줄 수 있는 간단한 것'에 국한된다면,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사람도 없을 테고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혹시 반대하시는 분?"
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피며 질문했다.
유지스와 에일리히는 세르펜스를 힐끔거리며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고, 세르펜스는 바늘을 들고 내가 만든 달고나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알타르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고, 윈스톤은 아무 생각도 없어 보였다.
'저쪽은 벌써 누구에게 뭘 시킬까 고민하는 것 같고···. 윈스톤은 자신에게 무언가 시키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확신하는 거려나?'
그럼 윈스톤이 만든 건 내가 먹어야겠다.
딱히 그에게 시킬 만한 것은 없지만, 그런 건 달고나 뽑기에 성공하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나는 마지막으로 에드나를 쳐다보았다.
"저도 좋아요. 재밌으면 나중에 아니마랑도 해보고 싶네요."
모두가 동의를 표했다.
그래도 이곳에 모인 구성원이 구성원이니만큼. 본격적인 놀이에 앞서 규칙을 정하는 게 먼저다.
"신성력이든 마법이든 정령의 힘이든, 능력을 쓰면 반칙입니다. 바늘에 침 묻히는 것도 안 됩니다. 모두 동의하셨으면, 다들 만들기 시작하세요."
내 말이 끝나자 세르펜스는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머지 인원은 달고나 만들기에 돌입했다.
나는 한참 전에 만든 달고나를 세르펜스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녀석이 부정행위를 하나 안 하나 감시했다.
'원래 달고나 뽑기는 갓 만들어서 말랑할 때 시작해야 성공 확률이 높은 법인데, 다 식은 거로 도전하다니···.'
심지어 내가 찍은 모양은 매우 복잡한 형태였다.
제아무리 만능펜스라 할지라도, 금방 부러뜨려 먹을 게 뻔하다.
'분명 그렇게 되는 게 뻔한 결과인데···.'
세르펜스는 내가 아까 설명해 준 방식대로, 달고나에 새겨진 선을 따라 콕콕콕 바늘로 찔렀다.
그 속도는 몹시 빠르되 바늘에 실린 힘은 매우 약했다.
모양을 바로 떼어낼 수는 없었지만, 달고나가 부서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바늘이 선을 따라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이윽고 네 바퀴째 돌았을 때.
"다 됐습니다."
세르펜스는 쿠키 커터로 꾹 찍어낸 것처럼 깔끔한 형태의 달고나를 내밀어 보였다.
초겨울인데도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설마, 다른 사람도 이런 미세한 힘 조절이 가능한 건가···?'
큰일 났다. 내가 그리던 그림은 이게 아닌데.
유지스는 이렇게 될 걸 알면서, 소원 들어주기 같은 걸 상으로 내걸었던 건가? 자신도 미세한 힘 조절이 가능하니까?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성공입니다. 확인했으니, 먹어도 됩니다."
내가 먹어도 된다고 말했는데도 세르펜스는 바로 먹기를 주저했다.
증거가 사라지면 내가 발뺌하며 무효라고 우길까 봐 걱정스러운가 보다.
그래도 손에 들린 달콤한 군것질거리가 먹고는 싶은지, 완성된 모양이 아니라 그 바깥 테두리 부분을 살짝 베어 물었다.
"어때요?"
"첫맛은 달고 끝 맛이 씁쓸하다는 점은 초콜릿과 비슷한데, 맛은 완전히 다릅니다. 게다가 바삭하게 부서지면서, 혀에 닿자마자 녹아내리는 이 느낌은···. 으으음···."
세르펜스가 눈까지 감으며 맛을 음미했다.
그 상태로 달고나를 바작바작 먹는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마음에 드나 보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 실망하면 어쩌나 했는데 입맛에 맞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래서 소원은 생각해두신 거 있어요?"
나는 녀석이 테두리 부분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질문했다.
세르펜스가 망설이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부터 내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소심한 성격 탓에 묵혀두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반응 속도가 빨랐다.
게다가 표정은 뭐 이리 비장한지 모르겠다.
대체 얼마나 거창한 것을 부탁하려고 저러나 싶어, 살짝 긴장되었다.
"말씀해 보세요."
"평소 당신은 제 머리를 자주 쓰다듬잖습니까? 저도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고 싶습니다."
거절당할 것을 걱정이라도 하듯. 세르펜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소원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질 정도로 별거 아닌 소원이다.
나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녀석에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쓰다듬고 싶었으면, 진작 말씀하시지! 자, 여기 머리 대령이요!"
세르펜스의 손이 머리 위에 얹혔다. 생각했던 것보다 무게감이 느껴진다.
머리카락이 결 방향대로 내려갔다가, 역방향으로 쓸어 올려지고. 다시 결 방향대로 쓸려 내려가길 반복되었다.
'뭔가 칭찬받는 느낌이네.'
실시간으로 머리가 헝클어지고 있지만,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세르펜스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 눈에 불을 켠 사람이 두 명이나 있었으니까.
"이제 끝!"
내가 시간 종료를 선언하자, 세르펜스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던 손을 내려다보며 잼잼 죄암질했다.
세르펜스의 머리카락만큼 부드럽진 않지만, 시온의 머리칼은 곱슬이라 만지는 재미가 있었나 보다.
"세르펜스, 제 머리도 쓰다듬고 싶지 않은가요?"
유지스가 자신이 만든 달고나를 들고 흔들며 도발하듯 말했다.
굉장히 지능적인 수법이다.
어디 도전해 볼 테면 도전해 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본인이 세르펜스에게 쓰다듬 받길 원해서 저러는 게 틀림없다.
순진한 세르펜스는 그 승부를 받아들였다.
에일리히는 그 모습을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는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그런 그의 손에는 완성된 달고나가 하나 들려있었다.
"그거, 제가 먹어도 됩니까?"
"알타르 님께서 이걸 왜···. 제게 뭔가 시키고 싶은 거라도 있습니까?"
에일리히가 께름칙하다는 표정으로, 손에 들린 달고나를 숨기며 알타르를 쳐다보았다.
이들에게 달고나는 100% 당첨 소원권이나 다름없으니.
전 직장 후배가 달고나를 탐낸다는 건 야자 타임보다 더한 걸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
모르긴 몰라도 한 대 때릴 테니, 맞고 나서 뒤끝 없이 잊어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에일리히 님께서 저를 따라 이곳에 왔다가, 교단을 나가시겠다고 선언하신 탓에 제가 시말서 쓴 건 아시죠?"
"네, 알타르 님께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씀하셨잖습니까."
"에일리히 님께서는 그걸 다 흘려들으셨고요."
"···그래서, 원하시는 게 제 사과입니까?"
"네."
에일리히가 마뜩잖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달고나를 내어주고, 알타르가 만든 달고나를 가져갔다.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세르펜스는 유지스의 달고나 뽑기도 성공적으로 완성해냈다.
"이것 참, 어쩔 수 없네요! 제 머리를 쓰다듬으셔도 좋아요!"
한쪽에서는 세르펜스가 유지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해 냈고.
다른 한쪽은···.
"성공했습니다, 어서 제게 사과하십시오!"
"저도 성공했습니다. 제 소원은 알타르 님의 소원을 취소하는 겁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사과 못 합니다. 저는 최대한 화를 억눌렀고, 단 한 번도 교단을 나간 것을 잘못이라 생각한 적 없습니다."
"그거랑 제가 시말서를 쓰게 된 것에 대한 사과는 별개잖습니까!"
"······."
불화가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