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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회개해주세요!-679화 (679/925)

679회

76. 공작님과 바다 (4)

"여러분! 배 구했으니까, 지금 바로 항구로 와 달래요!"

예쁜 소라 껍데기를 찾으러, 저 멀리까지 갔던 에드나가 우리를 향해 뛰어오면서 소리쳤다.

아니마로부터 연락을 받았나 보다.

우리는 해안가를 따라 걸으며 항구로 이동했다.

부둣가에는 다양한 크기의 많은 배들이 참 많이도 정박해 있었다. 하지만 그 수와 걸맞지 않게 떠들썩한 활기 같은 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러할 게, 저 중에서 출항이 예정된 건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니.

속이 텅 비어버린 배들로 꽉 들어찬 항구는 쓸쓸함이 감돌았다.

"아니마가 알려준 좌표대로라면 저쪽에 있는···, 허억-!"

에드나가 안내를 하다 말고 갑자기 헛숨을 들이켰다.

대체 왜 저러나 싶어, 에드나의 손가락 끝을 시선으로 좇았다.

거대한 호화 여객선 한 척이 눈에 담겼다.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와 끼룩거리는 갈매기 소리만 들려오는 적적한 이 항구에서, 유일하게 사람 소리가 나는 배 한 척.

우리가 타야 할 배가 분명했다.

"여기야, 여기!!"

목소리에 신성력이라도 담았는지, 휴마누스의 목소리가 파도 소리를 뚫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는 이미 배에 올라 난간에 기대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유지스도 손을 흔들며, 성검 일행을 발견했다는 신호를 보냈다.

"언니이-!"

파도 소리에 반쯤 묻혀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휴마누스의 옆에서 깡충깡충 제자리 점프하며, 양손을 크게 휘저어대고 있었다.

충격에 빠진 와중에 그 작은 목소리를 어찌 들었는지, 에드나가 정신을 차리고 아니마를 향해 소라 껍데기를 든 손을 흔들었다.

고작 몇 시간 만의 재회인데도 반가움이 넘쳐났다.

그 모습을 보니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옆에 있는 세르펜스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마구 흔들었다.

"지금 올라갈 테니까 쫌만 기다려요!! 자, 세르펜스도 소리쳐 보세요!"

"오, 올라가겠습니다···!"

세르펜스가 얼떨떨하다는 표정으로 내 말의 일부분을 따라 했다.

그러자 휴마누스가 난간을 붙잡고 웃어댔다. 웃겼나 보다.

배에 올라타자, 선원들이 출항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삐 뛰어다니는 와중에도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다. 그런 그들에게서 활기가 느껴졌다.

"이렇게나 큰 배를 구해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청소를 꾸준히 해 둬서 바로 탈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더라고. 청결도 청결이지만, 오랫동안 관리를 안 한 배에 타는 건 아무래도 불안하잖아?"

휴마누스가 내 말에 대답하며 머쓱하게 웃었다.

우리 인원에 비해 이 배가 지나치게 큰 걸 알긴 아는가 보다.

"언니, 언니! 손에 든 그거눈 뭐얌~?"

"소라 껍데기인데, 아까 해변에서 발견했어. 한 번 귀에 대 볼래?"

"우와! 속이 빈 소라 껍데기 안에서 소리가 공명하며, 마치 파도 소리처럼 들려!"

아니마가 소라 껍데기를 귀에다 대고, 신기한 것을 마주한 척 눈을 빛냈다.

에드나는 그런 아니마를 푸근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있지, 있지! 나 이거 가져두 돼?"

"그럼, 물론이지. 처음부터 아니마, 네게 주려고 가져온 거야."

"징짜루? 와아~! 아니마, 넘 넘 씐나~!"

말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마는 소라 껍데기를 높이 들어 올리고, 에드나의 주변을 빙빙 돌며 온몸으로 '신남'을 표현하려 애썼다.

정신없이 방방 뛰어다니는 그 모습을 보며 에드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쟤는 유독 에드나 앞에서만 저러네?"

"그래도 보다 보면 귀엽지 않나요?"

"···저 행동이?"

"그렇다기보다는 귀여워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이요. 노력하는 게 가상하잖아요."

"확실히···. 정말 대단하긴 해. 누가 천만금을 준대도, 난 절대 저런 짓은 못할 거야."

리에나가 후후 웃으며 하는 말에 푸로르가 혀를 내두르며 수긍했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걸까?

에드나가 반색하며 얼굴 가득 환한 웃음꽃을 피워냈다.

"맞아요! 그 점이 바로 아니마의 가장 귀여운 면모죠! 제게 잘 보이려고 이렇게 애교를 부리는데 어떻게 귀여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아니마의 귀여운 점을 알아준 사람이 나타났다는 게 기뻤던 걸까?

에드나가 리에나의 손을 붙잡으며 감동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아니마의 장점에 대해 열렬히 떠들어대기 시작했고, 리에나는 그걸 다 들어주며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그 행태에 푸로르는 슬금슬금 옆걸음질로 멀어졌고, 아니마는 슬금슬금 다가가 에드나에게 껌딱지처럼 들러붙었다.

'나는 절대로 에드나 같은 팔불출은 되지 말아야지···. 어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순간.

옆에 서 있던 세르펜스가 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작은 목소리로 무시무시한 얘기를 해댔다.

"당신도 그리 생각하십니까?"

"에드나 씨의 취향은 존중하고, 친근한 사람에게 더 잘 보이고 싶어서 노력하는 아니마의 마음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 큰 어른이 아이를 흉내 낸답시고, 아이도 하지 않는 괴상한 발음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진짜 어린아이가 저런 발음을 듣고 따라 하다가 언어 발달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나,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입니다."

"그럼 절대로 따라 하지 않겠습니다."

세르펜스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결심하듯 말했다.

만약 내가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면 이 녀석은 어떻게 하려고 했을까.

문득 그런 의문이 떠올랐지만, 나는 애써 그것을 모르는 체하며 잘 생각했다고 녀석을 칭찬해 주었다.

평소라면 머리까지 쓰다듬어 줬을 터이나 이번에는 패스했다.

주위 선원들의 눈치가 신경 쓰이기도 하고, 선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항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그럼 바로 출발하게나."

휴마누스가 오랜만에 점잔을 빼며 황태자처럼 말했다.

아홉은 한데 뭉쳐 길거리를 돌아다니기에는 많은 숫자지만, 이 거대한 여객선에 승선할 인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숫자다.

모여있는 우리를 둘러본 선장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다 오신 겁니까?"

"그렇다네.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아! 아닙니다. 그럼 바로 출항하겠습니다."

어차피 휴마누스는 배 한 척을 통째로 전세 냈다.

머릿수대로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승객이 적으면 적을수록 신경 써야 할 일 또한 줄어드니 선장에게는 좋은 일이다.

선장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선원들에게 출항 명령을 내렸다.

선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물 밑바닥에 박혀 있던 닻을 끌어 올리고 접혀 있던 돛을 펼쳤다.

배가 조금씩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내 부두에서 멀어졌다.

"그건 그렇고, 해변에 다녀온 모양이네? 관광은 잘했어?"

다시 친근한 말투로 돌아온 휴마누스가 배 난간에 등허리를 기대며 질문했다.

그 물음에 유지스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해변은 예뻤죠. 발가락 사이를 간질이는 모래의 감촉도 재밌었고···."

"응? 근데 왜 그렇게 표정이 어두워?"

"바다에 온 건 처음이라 꼭 기념품을 사고 싶었는데, 가게가 전부 문을 닫아버렸더라고요···."

유지스가 힘없이 축 늘어지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기대를 많이 했나 보다. 다시금 악숭이들과 마왕을 향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마왕 새끼, 개새끼!! 이런 역병 같은 놈아! 영원히 마계에 짜져 있을 것이지, 왜 애먼 가나안 대륙에서 난리냐!!"

나는 바다를 향해 끓어오르는 울분을 토해냈다.

신나게 아니마 자랑을 늘어놓던 에드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심지어는 아직 갑판 위에 있던 선원들까지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쟤 갑자기 왜 저래?"

휴마누스가 세르펜스에게 가까이 붙으며 내 상태를 질문했다.

그에 세르펜스는 '이 지역의 명물인 해산물 요리를 파는 가게가 전부 문을 닫아서'라고 답했다.

'그런 이유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닌데···.'

다소 억울하긴 했지만, 방금 소리를 지른 덕분에 속이 개운해져서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뭔가 좀···, 괜히 미안하네. 어제는 항구에서 배편만 잡아놓고 쉬어서, 가게들이 전부 문을 닫았을 줄은 몰랐어."

"됐어요, 그게 휴마누스 잘못도 아니고. 게다가 이렇게 근사한 배를 전세 내 주셨잖습니까? 오히려 저희가 휴마누스에게 고마워해야죠."

"하하하! 그것도 그렇네?"

내 말에 휴마누스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우고, 시원시원하게 웃었다.

보는 사람의 기분까지 맑아지게 만드는 쾌청한 웃음이다.

자연스럽게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지려는 찰나.

"배를 좋아하십니까?"

"세르펜스, 충동구매는 안 좋은 습관입니다. 정녕 이게 필요한 것이 맞는지, 다른 대체재는 없는지, 정말로 갖고 싶은 게 맞는지. 여러 방면으로 심사숙고한 다음에 구매를 결정해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으음···. 알겠습니다."

세르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고민에 들어갔다.

나는 녀석에게서 신경을 끄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다 너머로 우리가 떠나온 항구가 자그맣게 보였다.

배가 안정적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자 선원들의 움직임에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여유가 생긴 이들이 배 안쪽에서 커다란 연회용 테이블을 꺼내 왔다.

'아마도 휴마누스가 미리 말해 놓은 거겠지.'

테이블 주변으로 9개의 의자가 놓였다.

모두가 자리에 둘러앉자, 아직 내가 말도 안 했는데 에드나가 알아서 방음 마법을 펼쳤다.

"아니마, 아공간 주머니에서 저번에 샀던 케이크 좀 꺼내 줘."

휴마누스가 아니마를 향해 말했다.

부탁을 받은 아니마가 아공간 주머니를 열었다. 그 안에서 나온 건 '자두 업사이드다운 케이크'였다.

"크림이 있는 케이크는 생일 때 먹었을 것 같아서 다른 걸 사 봤는데, 괜찮지?"

"네, 괜찮습니다."

당연하게도 세르펜스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업사이드다운 케이크는 아직 세르펜스가 먹어보지 못한 종류의 케이크다. 자두가 들어간 간식 또한 마찬가지다.

휴마누스가 그 사실을 알고 이것을 사 온 건 아닐 테지만, 실로 탁월한 메뉴 선정이다.

세르펜스가 눈을 반짝이며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세계수 잎을 꺼내 유지스에게 넘긴 뒤, 아홉 장의 접시를 꺼내어 케이크 박스 옆에 두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포크를 나눠주었다.

케이크를 자르고 모두에게 분배하는 건 휴마누스가 하겠다고 나섰다.

자신이 세르펜스의 생일 선물로 산 것이니만큼 생색을 내고 싶었나 보다.

'그나저나 뭔 놈의 케이크 사이즈가 이렇게 커다랗지?'

지름이 어지간한 피자 라지 사이즈만 하다.

휴마누스는 케이크의 1/8만 한 크기를 뚝 잘라내어 접시에 올렸다. 그 접시는 생일 선물의 주인인 세르펜스에게로 돌아갔다.

"곧 저녁 시간인데, 그거 먹고 저녁까지 먹을 수 있겠어요?"

"······."

"아, 아니···. 먹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 네, 그냥 드세요. 선물로 받은 거니까, 특별히 넘어가 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세르펜스가 울상을 지었다가 방긋 웃었다.

그의 나이, 해가 바뀌어 올해로 (스물)일곱.

아직 밥보다 간식이 더 좋은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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