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84화 (684/925)

684회

76. 공작님과 바다 (9)

{ 징그럽다고···? 내가, 징그럽다고오-?! 대체 얼마나 더 나를 모욕할 셈이냐!! }

덩치가 너무 커서 거울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자신이 징그럽게 생겼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콤플렉스였던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촉수 악마가 징그럽다는 말에 화를 내며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당연히 촉수들도 부들부들 떨렸다.

"윽! 안 그래도 멀미 때문에 속이 안 좋은데, 그런 걸 보여주면···. 웨에엑-!"

"선배, 제발 좀···!"

결국 나는 고개를 돌리고 참아왔던 토사물을 난간 너머로 쏟아냈다.

뒤에서 윈스톤이 뭐라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쾅!' 하는 굉음에 묻혀 뒷말은 들을 수 없었다.

{ 나를 보고 토를 해? 내가 역겨워?! }

손등으로 입가를 닦아내며 다시 뒤를 돌아보자, 악마가 길길이 날뛰며 촉수를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윈스톤이 나를 향해 휘둘러지는 촉수들을 쳐내거나 잘라내는 모습도 보였다.

푸로르는 리에나를 안아 든 채 깡총깡총 뛰어다니며, 보송보송한 하얀 털이 달린 다리로 촉수를 걷어찼다.

다리의 형태나 움직임 등으로 보아, 드루이드 능력으로 토끼의 힘을 빌려 온 모양이다.

유지스는 기예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촉수들을 피하며 연신 화살을 쏴댔다.

평소에 쓰던 화살과는 다르게, 화살대까지 금속으로 이루어진 화살은 촉수를 요리조리 피해서 악마의 몸체에 틀어박혔다.

정령의 힘을 머금었음에도 큰 데미지는 입히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바로 회복해 버린 것인지.

악마는 몸에 박힌 화살을 무시해버렸다.

휴마누스는 방패를 들어 올리거나 검을 휘둘러 에드나와 아니마를 보호했고, 두 마법사는 쉼 없이 마법진을 그려댔다.

처음에는 폭발형 마법이 악마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된 데미지를 주지 못하는 듯 보이자, 악마의 머리 위로 관통형 마법이 비처럼 쏟아졌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큰 효과는 없었다.

촉수에 의해 대부분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물속의 적에게 가장 효율적인 공격 마법은 단연 전격 계열이었으나,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전격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직 물속에 있는 세르펜스까지 마법의 영향을 받을까 봐 그런 거겠지.'

그렇게 검에 잘리고 마법에 의해 터져나간 촉수들은 금방 재생되었다.

몇몇 마법은 몸체에 명중했으나, 그렇게 생긴 상처 또한 빠르게 회복되었다.

휴마누스의 말대로였다.

촉수가 너무 많고, 회복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

'악마가 바닷속으로 들어갈 생각을 안 하는 걸 보면, 표적만 바뀌었지 계획대로 되긴 했는데···.'

날뛰는 악마를 상대로 분투하는 일행들의 모습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행들도 틈틈이 역공을 가하고 있지만, 악마가 바로 회복해 버리는 탓에 성과가 보이지 않아서 더더욱 그러했다.

"죄송합니다, 제 비위가 너무 약해서···."

{ 크롸롸라-!! }

일행들에게 하는 내 진심 어린 사과를 자신을 향한 빈정거림으로 받아들인 걸까?

악마가 이성을 잃고 발광하기 시작했다.

'뭐 저리 멘탈이 약해?! 무슨 말만 하면 화를 내네!!'

휘둘러지는 촉수의 수가 더 많아졌고, 그것에 실린 힘 또한 강해졌다.

그에 따라 일행들의 움직임도 더 바빠졌다.

에드나가 사용한 마법의 쓰임이 공격에서 방어로 전환됐다.

아니마가 전개한 공격 마법의 대상도 악마의 몸체가 아닌, 배를 향해 휘둘러지는 촉수로 바뀌었다.

- 펑, 퍼엉─!

마법에 의해 촉수들이 터져나갔지만, 금세 회복될 뿐이었다.

그래도 당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애초에 몸을 향해 공격해도 촉수로 막아 버리고, 정통으로 맞아도 바로 회복해버리니···. 결과적으로는 그게 그건가?'

어느 쪽이든 제대로 된 해를 입히지 못한다는 뜻이니,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들 고생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나 고생하는 사람이 둘 있었으니.

촉수 악마의 표적이 된 나를 지키는 윈스톤. 그리고 신성 결계를 펼쳐 배를 보호하는 리에나였다.

윈스톤의 몸과 손에 들린 검은 하나고, 나를 노리고 휘둘러지는 촉수는 수없이 많으니.

몇몇 촉수는 직접 몸으로 맞아가며 막아내야만 했다.

"어차피 세니어 결계가 있으니까, 약해 보이는 촉수는 그냥 무시하세요!"

"그럴 수는···."

"그러다가 윈스톤이 쓰러지면, 그때야말로 제가 무방비로 노출되거든요?!"

윈스톤이 분하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그래도 내가 말한 대로 따르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걸 알기에, 다른 것들에 비해 가느다란 촉수는 무시하고 검을 휘둘렀다.

- 쾅, 쾅, 쾅!

촉수가 세니어의 결계를 두드려댔다. 결계는 거뜬하게 촉수를 막아냈다.

휴마누스가 그렇게까지 무력이 강한 놈은 아니라고 말했고, 윈스톤이 몸으로 맞으며 버티는 걸 보고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휘둘러지는 촉수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움찔움찔 몸이 떨렸다.

- 쾅, 콰앙! 쾅!

이게 갑판의 결계를 두드리는 소리인지, 세니어의 결계를 두드리는 소리인지 분간이 안 간다.

그때 갑자기 배의 상부에 세워진 구조물을 보호하던 결계가 거두어지고, 리에나의 신성력이 배의 몸체에만 집중되었다.

'장기전을 각오한 거려나?'

어쩌면 배에 가해지는 충격이 누적되어, 더는 배 전체를 보호할 수 없게 된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돛이 찢어지고 돛대가 부러졌다. 방향타도 촉수에 쓸려 날아가 버렸다.

이제 배는 바다 위에 떠 있기만 할 뿐. 앞으로 나아가는 기능을 잃었다.

그러한 희생 덕분에 배가 무사할 수 있었으나. 내리치는 촉수의 힘에 의해,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 위태롭게 흔들리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 수 있는 휴마누스에게 어그로가 집중됐다면 좋았을 텐데···.'

이를 악물고 난간에 매달리는 그때.

악마의 뒤로 은색의 빛이 솟아올랐다.

새까만 밤하늘에 찬란한 휘광을 흩뿌리며 상승한 빛의 정체는 세르펜스였다.

녀석은 신성력 날개를 등에 달고 높이 날아올라 악마의 정수리에 검을 찔러 넣었다.

그 검을 타고 은빛 신성력이 악마의 정수리로 흘러 들어갔다.

저대로 그냥 죽어줬으면 좋았으련만.

머리 가죽이 굉장히 두꺼운 것인지, 아니면 특유의 재생 능력 때문인지.

놈은 죽지 않았다.

{ 끄아아아악-!! }

악마가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소리를 내질렀다.

신체에 무언가가 박혔고 그것이 지속적인 고통을 준다면,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본능이다.

촉수 하나가 세르펜스의 다리를 잡아채서 아무렇게나 휘둘렀다.

세르펜스는 자신의 몸이 수면에 내동댕이쳐지기 전에, 검으로 촉수를 끊어내고 날개를 펼쳐 높이 날아올랐다.

그런데도 다리에 감긴 촉수는 떨어지지 않고 더욱 강하게 옥죄었다.

"읏···."

이미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인데도 조이는 힘이 상당했는지, 세르펜스가 신음을 흘렸다.

녀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검으로 촉수를 찔렀다.

그러자 새하얀 불길이 일었다.

- 화륵!

성화는 정확히 악마의 촉수만을 태우고 사라졌다.

마기가 빠져나간 빈 껍데기라 할지라도, 성화는 여전히 그것을 부정한 것으로 인식하는 모양이다.

"하아, 하아···."

물에 푹 젖은 채, 숨을 몰아쉬는 세르펜스의 모습이 무척이나 지쳐 보였다.

하지만 악마는 녀석에게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 크롸롸라라─!!}

수많은 촉수가 세르펜스를 향해 휘둘려졌다.

방금 그 공격으로 어그로가 완전히 저쪽으로 옮겨간 것이다.

그렇다고 악마가 이쪽을 완전히 잊은 건 아니었다. 놈의 촉수 중 일부는 여전히 갑판을 두드려댔다.

하지만 신경이 완전히 세르펜스에게 쏠려있는 탓인지, 아무도 없는 공간에 헛방을 치기 일쑤였다.

그 덕분에 이쪽은 숨통이 트였다.

수십 개의 촉수가 세르펜스를 노리고 채찍처럼 휘둘러지면서도, 엉키거나 다른 촉수를 때리는 일은 없었다.

세르펜스가 아슬아슬하게 곡예비행을 하며 촉수들을 피해냈다.

"리에나 님! 이제 전격 마법을 써도 괜찮을까요?"

에드나가 마법진을 그리다 말고 불현듯 떠올랐다는 표정으로 리에나에게 질문했다.

리에나는 창백한 얼굴을 한 채로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 힘들면, 마법으로 잠깐 배를 들어 올려 줄 수도 있는데···."

"저는 정말로 괜찮으니까, 여러분은 최선을 다해 악마를 상대해 주세요."

아니마가 우물쭈물 말을 건넸으나, 리에나는 그 배려를 거절했다.

그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걸 동료인 아니마는 알고 있었다.

두 마법사는 다시 마법진을 그렸고, 이내 그것을 완성해냈다.

{ 크와아악-! }

두 사람이 펼친 전격 마법이 악마에게로 쏘아졌다.

악마의 몸에 꽂힌 화살을 타고 전류가 악마의 몸속을 파고들었다.

파직파직 스파크가 튀었고, 놈의 촉수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순간, 갑자기 회오리가 일더니 바닷물이 치솟아 올랐다.

그 느닷없는 용오름 현상에도 세르펜스는 이상하게 침착했다.

예상했던 일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날개를 파닥여 그 범위에서 벗어나려 했다.

강력한 회오리 바람의 영향으로 비틀거리긴 했으나 분명 벗어날 수 있었다.

전격 마법을 정통으로 맞은 악마의 촉수가 꿈틀꿈틀 움직여, 녀석을 스치지만 않았더라면.

세르펜스의 몸이 마비된 건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맹렬히 회전하는 물기둥이 녀석을 삼켜버리는 것도 순간이었다.

"세르펜스!!"

녀석의 이름을 외쳐 보았으나, 이 목소리가 녀석의 귓가에 제대로 다다랐는지 알 수가 없다.

바닷물에 스며든 전류는 금세 사라졌지만, 그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

그리고 사그라든 건 악마의 몸에 흘러 들어간 전류도 마찬가지였다.

{ 크으윽···, 이것들이···! }

악마가 용오름에 휘말린 세르펜스에게서 신경을 끄고, 이번에는 에드나와 아니마를 노려보았다.

놈의 촉수가 또다시 배를 향해 휘둘러졌다.

아까와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주요 표적이 내가 아닌 에드나와 아니마라는 점이다.

"내가 어떻게든 다 막아줄 테니까, 너희는 신경 쓰지 말고 세르펜스를 구해줘!"

휴마누스가 방패에 신성력을 담아서 휘둘렀다.

동료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용사의 무구답게, 사방에서 날아오는 촉수들이 모조리 튕겨 나갔다.

그 덕분에 두 마법사는 안심하고 마법에 집중할 수 있었다.

허공을 수놓는 마법진을 보며, 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이상하다? 방금 같은 용오름을 일으킬 수 있다면, 왜 이런 단순무식한 공격만 퍼붓는 거지?'

거대한 해일이 배를 뒤집을 뻔했고, 파도 때문에 끊임없이 배가 출렁거리긴 했지만.

그건 일종의 충격파에 가까웠다.

놈에게 직접 물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었다면 진작 썼을 터.

그렇다는 건···.

"갑자기 그렇게 혼자서 가버리시는 게 어딨습니까?! 그것도 두 번이나!"

전격 마법의 영향이 미치지 않을 만한 거리에서, 검은 로브를 걸친 자가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악마가 소환되었으니. 소환한 자가 주위에 있을 거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어째서 세르펜스가 늦게 등장했는지 생각해 봤어야 했는데···.'

법숭이의 말을 토대로 분석해 봤을 때.

악마는 소환이 되자마자 상의도 없이 곧장 우리를 향해 혼자 헤엄쳐 온 게 아닐까 한다.

그리고 뒤늦게 합류한 법숭이와 함께 세르펜스를 공격하다가, 도발에 걸려 또다시 단독 행동을 한 듯하다.

{ 이 미천한 인간 마법사가! 감히, 감히이!! }

악마가 분노를 가득 담아, 자신에게 고통을 선사한 에드나와 아니마를 향해 촉수를 휘둘렀다.

그런 악마의 노기 어린 외침에 인간이며 마법사이기도 한 법숭이가 흠칫 몸을 움츠렸다.

"우, 우선은 펠이 프라시더스를 붙잡고 있는 사이, 그자부터 해치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 크롸롸라라라-! }

법숭이가 소심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으나, 이미 머리꼭지가 돌아버린 촉수 악마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불행 중 다행이다.

'그나저나 펠은 또 누구야?!'

법숭이 말고도 악숭이가 한 명 더 있나 보다.

아마도 저 용오름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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