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88화 (688/925)

688회

76. 공작님과 바다 (13)

* * *

"콜록 콜록!"

울걱, 짜디짠 바닷물이 목구멍을 거슬러 올라왔다.

그것을 토해내고 나자 꽉 막혔던 숨통이 탁 트였다. 하지만 개운하지는 않았다.

그저 고통스럽다.

붙잡혔던 발목이 욱신거리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몸이 무겁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무 추웠다.

"서, 선우···! 흐읏, 정신이 드는가?! 제발···. 흑! 눈을 떠라, 제발···."

숨이 쉬어지는 거로 보아 물 밖으로 나온 것 같은데 귀는 여전히 먹먹했다. 웅웅 이명이 울렸다.

그래도 소리가 안 들리는 것은 아니어서 누군가의 흐느낌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그 누군가는 아마도 세르펜스겠지···.'

아니나 다를까.

따끔거리는 눈을 억지로 뜨자, 녀석의 우는 얼굴이 바로 시야에 들어왔다.

세르펜스는 누워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울고 있었다.

뚝, 뚝.

녀석의 눈에서 흐른 눈물과 젖은 머리칼에서 떨어져나온 물이 내 얼굴에 떨어졌다.

"선우!!"

나와 눈이 마주치자, 울고 있는 녀석의 얼굴에 안도와 기쁨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세르펜스의 얼굴이 죄책감으로 얼룩졌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내가···. 내가···, 흐읏!"

내가 바다에 빠진 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굳이 누군가를 탓해야 한다면, 그 대상은 죽어가면서 나를 저승길 동무로 삼으려 했던 악마 놈이어야 한다.

'죽기 직전에 힘을 쥐어짜서, 보호색까지 쓰며 나를 저승길 동무로 삼으려 들 줄이야···.'

발목을 조이던 촉수의 그 물컹한 감촉이 떠올라 소름이 끼쳤다.

"흑, 흐으윽···. 미안하다, 선우···."

아무튼 세르펜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은빛을 토대로 유추해 봤을 때, 나를 구해낸 건 분명 세르펜스일 터.

그러니 내가 녀석에게 구해줘서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어째서 녀석이 나에게···.'

세르펜스는 대체 무엇을 사과하고 있는 걸까?

정말로 내가 위험에 처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있는 게 맞을까?

혹시···.

'나를 살려서.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를 앗아갔다는 생각에 사과하는 게 아닐까?'

분명 기도로 넘어간 바닷물은 기침과 함께 다 토해낸 것 같은데.

울컥, 속에서부터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 말을 안 하는 거지?"

내가 너무 조용히 누워있었던 탓일까?

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 건지, 세르펜스의 눈동자가 떨렸다.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 목소리를 들려다오···. 흐읏, 제발···."

"어, 그, 그러니까···. 으으···!"

입술이 파들파들 떨리고 이가 딱딱 부딪혀서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당황한 세르펜스가 내 품속을 뒤져, 아공간 주머니를 가져가 그 속에 있던 담요를 내게 덮어주었다.

아공간 주머니 속 물건들은 젖지 않았나 보다.

간식들이 다 바닷물에 절여져 못 먹게 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다.

'그나저나 이럴 땐 마법이 최곤데···.'

아쉽게도 두 마법사의 마력은 완전히 바닥난 듯했다.

그래도 담요를 덮으니 좀 낫다.

나는 걱정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세르펜스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본인이 반말하고 있는 거 아세요?"

"아···."

내 지적에 세르펜스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으로 보아, 자신도 모르게 반말을 쓰고 있었나 보다.

"급박한 상황에서 반말해 달라는 건, 제가 아니라 유지스의 리퀘스트입니다. 상대를 착각하셨어요."

"지금 그런···, 흑! 농담이 나오나?"

"안 나올 건 또 뭡니까? 골치 아픈 적과 싸워서 이겼고, 큰 부상 없이 다들 무사하잖아요?"

"선우가 죽을 뻔했는데, 어떻게 다들 무사하다는 말이 나올 수가 있지?!"

세르펜스가 화난 표정으로 버럭 큰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나를 말 없이 노려보다가, 돌연 울먹울먹하더니 내 가슴 위에 엎어져 펑펑 울기 시작했다.

시야를 가리던 세르펜스의 얼굴이 치워지자,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보였다.

그렇게 오래 싸웠는데.

겨울이라 밤이 길어서인지, 아직도 하늘은 어두웠다.

"나, 나는···. 흐윽, 그대를 잃는 줄 알고···.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되는 줄 알고, 얼마나···, 얼마나···!"

진짜 많이 놀랐나 보다.

세르펜스가 엉엉 울어 젖히면서 서러움을 토해냈다.

나는 힘겹게 팔을 들어 녀석의 등에 올리고,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미안해요, 걱정 끼쳐서. 그리고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세르펜스는 대답 대신 울음소리를 더 높였다.

진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계속 녀석의 등을 토닥이며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휴마누스와 리에나, 푸로르는 내 무사함에 안도하는 듯했고, 유지스와 에드나는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마는 에드나의 옷자락을 꼭 움켜잡은 채, 품에 폭 안겨서 훌쩍거리는 중이었다.

만약 물에 빠졌던 게 에드나였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 보았다가, 덜컥 겁을 먹은 게 아닐까 한다.

'윈스톤은 어딨지?'

그 커다란 덩치로 누구 뒤에 숨을 수 있는 것도 아니건만.

어째서인가 주위를 둘러보아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윈스톤 경을 찾으시나요?"

내가 두리번거리자, 유지스가 눈치 빠르게 어딘가를 가리켰다.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니 윈스톤의 뒷모습이 보였다.

윈스톤은 혼자 일행들과 떨어져서 기절한 듯한 메숭이를 밧줄로 꽁꽁 묶고 있었다.

보이는 건 등뿐이라 표정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어째서인가 어깨가 축 처진 것 같아 보였다.

밧줄을 당기는 그의 옷자락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달빛에 반짝였다.

나는 다시 주위에 있는 일행의 모습을 둘러보았다.

다들 물을 뒤집어쓰긴 했지만, 대부분 말라 있었다.

허리까지 물에 잠겼던 푸로르와 리에나의 옷도 축축하기만 할 뿐. 물이 뚝뚝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윈스톤은 나와 세르펜스처럼 완전히 푹 젖어서, 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설마 윈스톤도 저 구하려고 바다에 뛰어들었어요?"

"네. 구해낸 건 세르펜스긴 하지만···."

혹시나 해서 던져본 질문에, 유지스가 난감하다는 듯 어색하게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세르펜스에게는 날개가 있으니.

날개로 물을 밀어내면, 평범하게 헤엄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내는 것이 가능할 테다.

오리발을 착용하면 더 빠르게 헤엄칠 수 있는 것처럼.

"윈스톤도 고마워요!"

"불러도 안 들릴 거예요. 제가 아이레에게 소리를 차단해 달라고 부탁했거든요."

유지스가 아직도 울고 있는 세르펜스를 눈짓하며 말했다.

이성을 잃은 녀석이 내 본명을 불러댄 탓에, 정령을 소환하여 소리를 차단한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악마는 확실하게 죽은 거 맞죠?"

"응. 내장을 분리해 내고, 그 속에서 심장처럼 보이는 걸 찾아서 성검으로 베었어."

휴마누스가 완벽하게 확인사살까지 끝냈음을 알렸다.

악마의 촉수에 붙잡혀 바닷속에 끌려 들어갔던 내가 불안해할까 봐, 일부러 자세하게 설명한 게 아닐까 한다.

"뭔가 미안하네, 내가 더 빨리 죽였어야 했는데···."

"아니, 뭐. 됐어요. 신경이 끊어진 뒤에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재생력이 좋고. 배 밑으로 우회해서 제 발목을 낚아챌 수 있을 정도로 기다란 촉수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난 바닷속에서 싸울 때 봐서 알고 있었거든···. 유독 긴 촉수가 두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널 붙잡은 게 아닐까 싶어."

괘념치 말라고 꺼낸 말이 도리어 휴마누스의 죄책감만 건드렸다.

그와 함께 바닷속에 들어갔던 세르펜스의 울음소리도 한층 더 커졌다.

"오구오구, 우리 공작님을 대체 누가 울렸담?! 저는 이제 괜찮으니까 뚝 해요, 뚝! 황태자 전하도 기운 내시고!"

내가 몸을 일으키면 세르펜스도 일어날까 싶어, 손으로 갑판을 집고 머리부터 천천히 상체를 들어 올렸다.

가슴 위에 엎드려있던 세르펜스가 주륵 미끄러져 내 배에 안착했다.

그냥 누워있는 게 낫겠다 싶어 다시 머리를 갑판에 댔다.

'그건 그렇고···. 분명 그 요리 프로에서 유독 긴 다리 두 개는 세균이 많아서 더러우니까, 먹지 말고 잘라서 버리라고 했던 것 같은데···.'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몹시 찝찝해졌다.

따뜻한 물이 가득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축 늘어져 있고 싶다.

"저기···, 치워줄까?"

휴마누스가 세르펜스를 손가락질하며 물어 왔다.

아이가 너무 떼를 쓰면 힘을 써서라도 붙잡아두어야 할 때가 분명히 있긴 하다.

그러나 그건 아이의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스스로 신체를 제어하지 못할 때나 쓰는 방법이다.

지금의 세르펜스도 살짝 그래 보이긴 하지만, 녀석의 경우에는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거다.

세르펜스는 충분히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며, 말로 타이르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아이다.

나는 휴마누스에게 괜찮다고 대답한 뒤.

세르펜스의 등을 토닥거리던 손을 옮겨, 녀석의 머리 위에 올렸다.

"이제 그만 울고 일어나요. 세르펜스가 저를 구해줘서, 무사히 잘 살아있잖아요. 그럼 기뻐하고 안도해야지, 왜 자책하며 울고 있어요?"

"하, 하지만, 선우는···. 흐으윽···!"

세르펜스가 뒷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으로 얼버무렸다.

그래도 녀석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다.

틀렸으면 하고 바랐거늘. 애석하게도 내가 추측한 게 옳았다.

아까 그 사과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뺏어서 미안하다는 뜻이었다.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전 제가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세르펜스는 아니에요?"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울어요?"

"······."

"뚝, 할 거죠?"

"···하겠다."

세르펜스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나는 상체를 일으켜 앉아, 울음을 꾹 참아내려고 애쓰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고, 우리 공작님! 울보인 거 사람들한테 다 들켜서 어째?"

"상관없다. 당신만 내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있어 준다면···."

효자펜스가 훌쩍거리며 '부모님,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라는 말을 제 식대로 표현했다.

불현듯 옷에 달고 있던 부토니에의 존재가 떠올랐다.

'아까 세르펜스가 내 가슴 위에 엎어져서 울었을 때, 배긴다는 느낌이 들었던가?!'

설마 바다에 빠뜨린 건가 싶어 정신이 아찔해졌다.

나는 서둘러 가슴을 더듬었다.

다행히도 부토니에는 잘 달려있었다. 그냥 세르펜스가 엎어질 때, 부토니에가 있는 부분을 알아서 피했나 보다.

그래도 완전히 안도하기에는 이르다.

부토니에를 옷에서 떼어내어 자세히 살폈다.

떨어진 보석은 없는지, 비어 보이는 곳은 없었다.

"휴우···, 무사했구나!"

"잃어버렸어도 얼마든지 다시 사 줄 수 있다."

"그래도 세르펜스가 제게 선물한 효도의 증표잖아요. 잃어버리지 않도록 소중히 할 겁니다."

내 말에 세르펜스가 감격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세르펜스의 얼굴을 마주 보며 흐뭇하게 웃다가, 녀석이 안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안경이 있든 없든 완벽한 얼굴이라, 허전하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코에 무언가 걸쳐져 있다는 느낌이 전혀 없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손을 얼굴에 올렸다.

역시나 안경은 없었다. 바닷속에 빠뜨린 모양이다.

"잃어버린 안경은 신경 쓰지 마라.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니."

"그런 거 신경 쓴 적 없는데요? 크레아토 씨가 준 안경 많잖아요. 이참에 바꿉시다."

"그것들은 너무 화려해서···."

"어허, 바꿉시다 다음엔?"

"···그럽시다."

"옳지, 옳지! 굿 세르, 굿 펜스!"

나는 세르펜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경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안경 줄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녀석이 이전에 쓰던 안경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앞으로 쓸 안경은 예술 작품에 가까우니까.

잃어버리면 너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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